씨벌교황

 



1. 개요
2. 활동 이력
3. 정체
4. 관련링크


1. 개요


과거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했던 네임드 악플러.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 악플러의 시초'''로 평가받고 디시인사이드를 어둡게 물들인 만악의 근원인 인물이다.

2. 활동 이력


국내 인터넷 초창기 시절이었던 하이텔 등의 단말기가 유행하던 때 두루넷[1] 신정보동호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부터 그는 거만한 태도와 말투, 그리고 저질 사진을 올려 대며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두루넷과 신정보동호회 측에서도 자중을 부탁했다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씨벌교황을 축출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축출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두루넷을 떠나 더 큰 인터넷으로 갈 것을 천명하며 다음과 같은 짧은 글을 남겼다.

"이런 작은 곳에서는 나의 뜻을 펼칠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쓰레기 같은 x xx xxxx 같은 곳을 떠나 내 뜻을 좀 더 펼칠 수 있는 곳으로 가겠다. 나를 추종하는 수많은 이들과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이여 나를 따르라. 이제는 너희들의 힘이 필요한 시기니."

당시 이미 씨벌교황에게는 특유의 추종자들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인터넷에서 터전을 잡은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 언론사 딴지일보였다. 정확하게는 딴지일보 독자투고(딴지독투) 게시판에서 주로 놀았다.
진보 성향 네티즌들이 활동하던 딴지일보에 등장한 그는 특유의 필력과 해킹 실력을 앞세워 당시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욕설로 게시글을 1,500페이지 넘게 도배하고는[2] 딴지일보의 각종 기사들을 삭제하거나 마음대로 편집하는 행패를 부렸다. 이에 딴지일보 운영자였던 김어준은 씨벌교황에게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요청을 무시하고 홈페이지 테러를 계속 감행하였다. 결국 딴지일보는 이 일로 3일이나 홈페이지를 폐쇄한 뒤 개편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딴지일보 측에서는 씨벌교황을 고소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고소를 취하하였다. 이후 괴이하게도 딴지일보 측은 고소 취하를 넘어서 씨벌교황을 욕하는 글들을 직접 삭제하는 등 여론 통제를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3][4] 이러한 조치에 반발한 네티즌들은 자체적으로 사이버수사대나 경찰서에 씨벌교황에 대한 고소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묵살되어 무산되었고, 심지어는 개인적으로 딴지일보 측에서 "나중에 괜한 피해 보지 말고 이쯤에서 취하하라"는 연락이 왔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아직도 딴지일보가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서는 미스터리다.
이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이후 딴지일보는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이 때부터 씨벌교황의 악명과 함께 온갖 루머가 크게 퍼지기 시작했다. 가령 최소 600억 이상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호라는 설부터 시작해서 씨벌교황에게 개인 용역깡패들이 있다는 설, 후술될 프리메이슨 회원이라는 설까지 돌게 되었다.
이후 씨벌교황은 초토화되다시피 한 딴지일보를 뒤로 하고 활동 영역을 넓혀 '''디시인사이드'''에 진출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순수했던 디시인사이드에[5] 그는 처음으로 반말과 욕설을 유입시키며 또다시 악명을 떨쳤다.[6] 그의 등장 이후 디시에 막장 종자들이 유입됨과 동시에, 기존에 활동하였던 디시인들까지 김유식의 주도 하에 씨벌교황을 필두로 한 막장 종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입이 거칠어지면서 순수하고 건전한 문화였던 아햏햏하오체[7] 등의 문화가 명맥이 끊김과 동시에 막장 문화가 들어서기 시작하여, 헬게이트에 빠져버렸다. 디시인사이드가 막장화 된 이후의 행적은 불문이나 더이상 눈에 띄는 행적은 보여주지 않았고, 자연스레 잊히면서 그저 초창기에 있었던 올드비 수준으로만 남게되었다.
이 사람만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인터넷의 막장화와 키배병림픽 같은 악플 문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온라인 상에서 부활한 지역감정[8] 정치 성향 대립은 물론이고[9] 자국 혐오[10] 남녀 대립[11],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프로불편러, 만물일베설/만물여혐설, 미러링이라는 부정적 개념까지 최소 몇 년은 늦춰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이 당시에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네티즌들도 있다. 씨벌교황이 활동하던 때가 네티즌들이 어그로에 익숙하지 않아 소위 말하는 병먹금을 지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그로를 더욱 부추겼기 때문에 세력이 커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12] 지금은 디시인사이드, 루리웹 등의 대형 커뮤니티 유저들이 어그로는 무시하거나 아이피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대응하면서 씨벌교황보다 더 악질인 어그로들도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씨벌교황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으나, 인터넷 상의 악플 및 혐오 확산 문화가 오롯이 씨벌교황 덕에 생겼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씨벌교황 등장 전에도 이미 딴지일보의 독자투고 게시판 등에서 인터넷의 속성상 심각한 악플들은 넘쳤다. 멀리 갈 것도 없이, 1995년창세기전이 출시되고 나서 소프트맥스 홈페이지가 악플에 몸살을 앓은 일례가 있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사실상 팬덤을 제외한 인터넷 전역)이 문희준에 악성 루머를 퍼뜨리며 욕설, 조롱, 비난하였던 것은 씨벌교황이 대두되기 전이었으며, 과연 그 당시 문희준에 대한 비난이 씨벌교황보다 못한 수준이었는지 따져보면 글쎄올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외국계 커뮤니티'''일 것이다. 표현 규율을 정하지 않는 완전 자유 커뮤니티들에선 국가 막론하고 온갖 욕설과 감정대립, 혐오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며, 심지어 인조이재팬에서도 그랬다. 인터넷에서 과격한 표현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익명성 보호가 이루어지는 현대의 시대적 조류일 뿐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디시에서 씨벌교황을 악명높은 존재로 회자하는 것은, 그 전에 있었던 디시인사이드, 더 나아가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인터넷에서 무분별한 활동을 벌이는 네티즌 전체가 근본적으로 보유한 막장성을 씨벌교황 하나에게 덮어서 묻어버리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심해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막장 커뮤니티들 역시 과거에는 그러한 커뮤니티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그 구성 요소들은 인터넷 전역에 흩어져 있었으며, 만악의 근원이 완벽하게 외부에서 유입 되지는 않았다. 딴지일보 기사나 기타 저술에서 씨벌교황에 대해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글 자체의 재미를 주기 위한 수사이며, 초기 인터넷 사회에서 자신들이 발휘하던 영향력을 은연 중 과시하려는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싱하형, 다빈치코드와 함께 디시인사이드 3대 유저로 정되었다.
인터넷 상에선 1969년생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사실이라면 그는 지금쯤 50대가 되어 있다. 1977년생이라고도 하나 이 역시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페이스북에 ‘압축배트’라고 검색하면 그로 추정되는 계정이 나온다. 보다보면 혐짤이나 잔혹한 영상도 있으니 주의. 페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루머들이 사실이라면 현재는 스페인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있는듯 하다. 현재는 계정이 삭제됐는지 보이지 않는다.

3. 정체


그의 정체에 관해서는 프리메이슨 설 , 딴지일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설[13][14]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몇 가지 확실한 것은 자기 포장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키보드 워리어이며, 딴지일보 초창기 활동 당시 aeonblast라는[15] 아이디를 사용했다는 것. 그런데 이후 동일 아이디를 더 사용했는지는 불명이다.

4. 관련링크


[1] Thrunet. 1996년 11월 창립된 한국 최초의 케이블 인터넷 통신망이고 자체 포털 사이트도 운영했다. 지금은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잊혔지만(2006년 하나로텔레콤에 인수돼서 소멸) 당시에는 TV 광고도 할 정도로 메이저했다. 두루넷의 존재로 유추해 보았을 때, 현재 씨벌교황은 최소 44세 이상의 연령일 것으로 추측된다.[2] 일명 '씨팔만대장경 집필' 사건이라 한다.[3] 이 사건은 후술될 '씨벌교황 = 딴지일보가 만든 가상의 인물' 설의 근거가 된다.[4] 게다가 딴지일보란 사이트 자체도 이런 정체성이 없던 사이트도 아니다. 오히려 딴지일보 오프라인 초판부터 패러디와 풍자란 이름 아래에 이뤄진 조롱섞인 합성, 김구라로 대표되는 초기 팟캐스트의 막장성 등 애시당초 딴지의 윗쪽에 있던 사람들에게 씨벌교황과 죽이 맞았으면 맞았지 적대시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5] 이 때 디시는 사이트내에서 유행한 하오체에 대해서도 과연 하오체가 반말이냐 아니냐에 대해 논쟁이 자주 일어날 정도로 클린했다.[6] 나중에 밝혀진 내용으로는 김유식도 씨벌교황을 고소하려 했으나 교묘하게 IP 우회 등의 발 빠른 대처로 물증을 숨겨서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7] 하오체와 아햏햏 등 초창기 디시의 풋풋한 문화를 선도했던 방송인 김풍이 당시 디시의 문화를 고스란히 옮겨와 만든 사이트가 고구마언덕이었다.[8] 단, 디시의 지역감정 자체는 막갤에서 고담대구 등의 3대 마경이라는 지역드립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쪽이 정설에 가깝고, 연고지 성향이 강한 야갤이 본격적으로 퍼뜨리기 시작했다.[9] 마찬가지로 온라인 전체의 정치성향 대립은 공식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이후로 탄생했고, 디시의 본격적인 우경화의 시초는 2004년 정치사회 갤러리여옥대첩 기점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10] 자기 친족이 앵글로색슨족이라고 자랑하거나 독일 뮌헨 대학교에 다닌다는 둥 자기 자랑을 늘어놓은 전적이 있으며, 이외에도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의 글도 많았다.[11] 이 악플러가 쓴 글 중에 만나면 안되는 여친에 대한 내용도 있다.[12] 그래서 이 악플러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악플러'라는 거품론을 주장하는 일부 네티즌들도 있다. #[13] 주로 그의 악행에 대해 딴지일보 측에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은 점(사실 이건 상술했다시피 고소를 취하한 것에서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훗날 씨벌교황이 사용한 이메일 주소며 몇몇 신상정보가 딴지일보 관광청인 노매드 직원의 것인 점,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도용으로 탄로가 난 점을 근거로 두고 있다.[14] 이 음모론 때문에 분노한 회원들이 딴지 측에 전화를 걸어 비난했고 결국 딴지 운영진이 "그만 좀 해 씨바새끼야!"라고 윽박질렀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인지 거의 같은 시기에 어떤 사람이 삽을 보여주며 "씨벌교황 너 잡히기만 해봐라 죽었어", 또는 "직접 처리하겠다."라고 으름장으로 벼르는 글까지 섰다는 웃지 못할 일화까지 나왔다.[15] 동일한 주소의 사이트도 운영한 전적이 있다. 대박회라는 이름으로 당시 유명한 악플러들의 친목장소였다. 한편 다음팟 PD인 이재석의 아이디 역시 이와 동일하지만, 동일인물은 아니다.[16] 문제는 그 1위의 대상이 의외인데 바로... 그런데 딱히 당시 유명세를 보면 의외가 아니다.[17] 내용을 보아 정황상 일베저장소에서 작성된 글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