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용광로 사고

 



1. 개요
2. 기타


1. 개요


2010년 9월 7일 새벽 2시경 충청남도 당진시[1]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
환영철강이라는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만 29세 남자 직원 김 모씨가 '''작업 도중 5m 높이의 전기로 위에서 실수로 발을 헛딛고 빠져 사망한 사고다.'''[2]
희생된 김씨가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 아버지가 42세에 얻은 4남매 늦둥이라는 점 등이 뒤에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건 자체의 충격은 상당히 컸지만 어째선지 지상파에서는 뜨지 않고 그대로 묻혀가는 듯하다 다음 기사에 달린 댓글로 달린 추모가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며 화제가 되었다.
아래는 그 댓글의 #전문.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참고로 이 시의 지은이인 닉네임 '제페토'는 이 사건 외에도 댓글에 시를 여럿 썼고, 결국 2016년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출판했다. 시집 제목은 위 시를 표제작으로 삼은 《그 쇳물 쓰지 마라》.
어쨌든, 위 시를 읽고 자극을 받았는지, 이에 질세라 재야의 네티즌들도 실력을 뽐내려는 듯 아래와 같은 시들을 올렸다.
자연의 모든 것이 잠든 시간,
홀연히 뜨거운 불길 앞에 홀로 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은 사람이 있네.
그러한 그를 참 곱게 여기셨는지
제 나이 서른도 안된 한 청년의
한 목숨 급하게도 거두어 가시네.
지상의 시간은 비록 너무나 짧았지만
지상의 장인정신 천상에서 인정받아
도안공 되어 오랜 시간 평안 하기를
내 이제는 어디 농으로 라도
용광로처럼 뜨거웠던 젊은 날이라는 둥
용광로같은 열정이라는 말 따위는 쓰지 않으련다.
그날도 어김없이
짙은 어둠 속 새벽까지
탄광의 꺼뭇꺼뭇한 분진과 같은
열창의 숨을 들이켜야 했던 용광로 청년이여,
쳐다도 못보겠소
너무도 마음이 시려서.
불러도 못보겠소
너무도 목이 메어서.
덧없는 인생이라지만
이렇게 애닯게 스러지니
이 땅의 젊은이들
눈물보가 터졌소.
특히 아래 시는 언론에 의해 위 "그 쇳물 쓰지 마라" 의 "답시" 로 간주되면서 회자되었다.
'''차라리 쇳물되어''' - 이유성 -
나의 뼈 나의 살이여
나의 형제 나의 아들이여
난 구름사이 작은 햇살도 싫어했거늘
그댄 불덩이를 안고 살았고나
헛디딘 그 발판 다 녹여내고
묶지 못한 안전로프 다 태워라
그대 땀 용광로 녹슬게 하고
그대 피 한반도 물들게 하라
뼈도 가루도 못 찾는다면
차라리 쇳물되어 미소짓고 부활하라.
실제로 해당 철은 시신이 매우 뜨거운 열에 융해되면서 나온 칼슘, 단백질, 지방과 같은 불순물이 섞였을 것인지라 순도가 떨어져 상업적 가치가 없을 거라고 한다. 사람 잡아 만든 쇳물에 상업적 가치를 따져 무엇하겠냐마는...이런 이유에 힘입어 해당 쇳물로 추모 조형물을 만들자는 탄원이 힘을 얻었다.
다만 유족의 의견을 도외시하고 고인의 몸이 녹아들어간 조형물을 후대에 사료로 남기자는 주장은 민감한 부분이다. 본인이 의도하지도 않은 사고 탓에 희생됐는데, 유해가 마땅히 있어야 할 묘지에 묻혀있지 못하고 사람들 시선을 끄는 것을 썩 바람직하다고만 볼 것도 아니기 때문. 일단 환영철강 측에서는 이 여론에 대해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가족들 역시 "회사 측과 합의도 이루어졌고 슬픔을 잊고 싶다"며 동상 건립을 거부할 뜻을 명확히 했다. 따라서 추모비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처음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사람 크기의 상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2010년 9월 10일, 환영철강 측의 의뢰를 수용하여 당진경찰서 과학수사팀이 전로에서 잔여 시신을 수습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1600도의 초고온에 노출되면서 육체를 구성하던 근육, 장기 등은 이미 대부분 쇳물에 융해되어 거의 형체도 남지 않았고, 대퇴골 정도의 뼈 일부만 겨우 건져냈다. 수습된 뼛조각에서 금속 성분을 제거한 후 유골함에 넣어 당진 장례식장에 안치했다고.
업체는 당시 작업의 잔해물인 15t가량의 쇳가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으며, 이후 해당 쇳가루를 다시 녹인 뒤 구형의 상징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유족이 명절 때 와서 보고 가곤 한다고.출처

2. 기타


여담으로 이미 옆나라 중국에서는 이런 류의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그것도 대규모로 발생해왔다. 2007년 4월 18일 랴오닝성의 주물용기가 추락해 '''32명의 인력'''이 그대로 30톤의 1500도 쇳물을 뒤집어쓴 채 산화했고, 당시 시체들은 형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2006년 11월엔 장수성에서 넘처흐른 쇳물에 휩쓸려 8명이 희생됐고 2005년 10월엔 쓰촨성에서 주물용기가 폭발해 2명이 사망하는 등 이런 사고가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아직 저 정도의 막장 사고들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졌으나, 2012년 9월 10일 정읍의 선박엔진 부품 제조공장에서 쇳물을 운반하는 기계가 뒤집혀 직원 두 명이 쇳물을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1] 당시에는 당진군이었다. 시로 승격된 것은 이 사고 이후인 2012년 1월.[2] 용광로(고로)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용광로는 밀폐된 구조라 사람이 빠지지 않으며 사고가 난 것은 고철을 녹이는 데 사용하는 전기로다. 용광로에서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곳은 출선구 이후의 대탕도 구간 외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