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운

 

1. 개요
2. 역사
3. 상세


1. 개요


SM그룹 소속의 중견 선사로, 벌크선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벌크선 분야에서는 국내 2~3위 규모의 선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수합병에 적극적인 SM그룹에 편입된 이후 벌크선 분야의 경쟁력과 전용선에서 창출된 안정적인 이익을 바탕으로 10위권의 벌크선사 삼선로직스를 인수하고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매각에 참여하는 등,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해운업계에서 드물게 사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2. 역사


6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맹기 제독이 1968년 창업했다. 대한해운은 업계 안팎에서 보수적인 이미지로 보여지기도 했는데, 창업 이후 40년 넘게 해운업 외길만을 고집한 점, 창업자를 비롯해 초기부터 군인과 해양대 출신이 많았다는 점, 전용선에 기반한 선대를 운용했다는 점 등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대한해운의 커다란 변곡점은 크게 두 번 찾아오는데, 첫번째는 2000년대 초중반의 해운업 초호황 시기이다.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으로 인해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 수요가 폭증하고 당연히 이런 원자재를 운송하는 해운업도 대호황을 맞이한다. 이때 대한해운은 상당한 규모의 선대를 기반으로 계속 최대 실적을 갱신하며 달러를 갈퀴로 긁어모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실적 추이를 보면 성장세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데, 2006년 1조 1천억이었던 매출은 2007년에 2조(!), 2008년에는 3조 5천억(!!)으로, 2006년에 900여 억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07년에 3,500억, 08년에는 5,000억을 돌파했다.
그러나 해운업 거품이 꺼지면서 순식간에 시망 테크를 타기 시작하여, 2009년 매출은 2조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급감했고 영업이익은 순식간에 4,800억의 적자를 보게 된다(...)
이후 2011년까지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법정관리행. 법정관리 당시 매출은 1조 아래로 쪼그라 들었고 1,000억이 넘는 영업손실, 부채비율은 1,000% 넘게 치솟았다.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과 비슷하게 호황기의 고가 용선(用船) 계약이 주 문제였던 걸로 알려졌다.
법원의 감독 아래 대한해운은 손실의 주 원인인 용선 계약을 대부분 해지하게 된다. 이때 해외 용선사들은 용선료의 97%(...)를 떼였다고 한다.#
두 차례의 매각 시도 끝에 부실기업 인수합병 전문 SM그룹에 인수된다. 이때가 대한해운의 두 번째 변곡점. 창업주 2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SM그룹에 인수된 이후 외형은 매출 5,000억 정도로 크게 축소됐지만, 10% 내외의 영업이익률과 200%가 채 안 되는 부채비율을 유지하는 등 내실을 다지고 안정을 되찾았다.#

3. 상세


기존에는 벌크선 분야에서 팬오션 다음 가는 국내 2위였지만,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막강한 자금력으로 양대선사인 한진, 현대에서 벌크선 사업부를 인수해서 에이치라인해운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면서 콩라인에서도 밀려나게 되었다.
포스코, 한국전력 및 발전 자회사 등 우량 화주들을 다수 유치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을 거쳐 매출의 대부분이 전용선에서 비롯되는 사업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극심한 해운업 불황에서도 안정적인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한편으로 상술한 것처럼 10위권의 벌크선사 삼선로직스를 인수하고, 한진해운의 주요 자산 매각에 참여하는 등 다시 외형 확장에 나서고 있다. 모기업이 된 SM그룹이 인수합병에 워낙 적극적인 성격인 점이 반영된 듯.
벌크선이 주력인 해운사이지만 한국가스공사와 장기 계약을 맺은 전용선으로 일부 LNG선대도 운용 중이다. 전체 선대는 여기서 확인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