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스
2003년 7월 여름, 정규 1집을 발표하며 데뷔한 2인조 여성 그룹이다. 김근영과 이윤미를 흑과 백 느낌의 완벽히 대비된 이미지의 섹시 컨셉으로 배치했으며 게임 작곡계의 거장 ND Lee가 작곡해준 펑키한 타이틀곡 '더 (More)'로 데뷔했다. 팀명 '더 에스'의 뜻은 ''''Sexy'의 극치를 달린다는 의미'''에 여성의 실루엣과 닮은 이니셜 S를 부각시킨 네이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홍보 기사에서 '몸으로 부르고 눈으로 듣는다'는 식의 언플도 하고 SBS 도전천곡 출연자 미리보기 소개 멘트로도 이 슬로건을 인용하곤 했다.
경상남도 밀양군(현 밀양시) 출신의 김근영은 부산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고, 어릴 적부터 이국적인 느낌에 혼혈인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으며 연예계 진출 제안도 많았지만 가수로서 실력을 더욱 갈고 닦기 위해 성인이 되고 나서야 데뷔를 준비했다고.
이윤미 같은 경우는 이미 가수 데뷔 전 KBS2 예능프로그램 산장미팅 - 장미의 전쟁 시즌2에서 일반인 여대생으로 출연해 브라운관에서 털털하고 악바리 이미지로 연예인들 못지않게 대활약 하고 있었으며 팬카페가 개설돼 4만 명의 회원수를 거느렸었다. 출연 때는 일반인이라 했지만 사실은 데뷔 준비중인 연습생이었으며 소속사였던 '위 엔터테인먼트'에서 더 에스 데뷔 전 그룹의 인지도를 미리 높혀두기 위해 이윤미를 이 방송에 출연시켰는데 그야말로 프로그램이 대박 터진 것.
이어 몇달 뒤 '더 에스'의 데뷔 소식이 기사화되자 섹시 컨셉트에 대한 반감과 일반인이라고 밝혔던 점, 기존 방송 이미지로 인한 이윤미의 안티들은 '니가 얼마나 라이브 잘하나 보자' 벼르고 있었는데 실상 무대를 까보니 라이브 실력이 나쁘지 않아 의외였다는 호평이 많았다.
하지만 이윤미의 인지도가 그룹으로 이어지지 않고 부진하던 상황이었다. 이윤미가 한창 잘 나가던 KBS2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박 났다보니 KBS 외의 지상파에선 견제 차원에서 '더 에스'의 섭외를 보이콧했다. 라이브에도 자신 있었다고 언플했지만, 정작 올 라이브를 진행하던 MBC나 립싱크에 관대했던 SBS에도 끝내 나오지 못했다.[1] 이에 KBS2의 음악방송이었던 뮤직뱅크, 하이파이브[2] 등의 예능과 엠넷, KMTV, 채널V 등의 케이블 채널 밖에는 홍보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거기에 7월 말부터는 고정출연하던 산장미팅 - 장미의 전쟁 시즌2(Part.2)에서도 강제 하차했다. 이유는 당시 여성 출연진 중 한명이 스폰서 논란 및 청부 폭력 사건에 연루되었고 녹화 사흘 전 잠적하며 펑크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들끓자 프로그램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제작진들은 '장미의 전쟁 Part.2(시즌2)'를 새로운 남녀 출연자들로 전면 개편해 이미지 쇄신하겠다며 아무 죄가 없던 이윤미를 포함한 기존 출연진들을 모두 하차시켰다. [3] 그렇게 어렵게 활동을 이어가던 도중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대형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003년 8월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녹화한 KMTV <쇼!뮤직탱크>의 무대에서 이윤미의 가슴 노출사고가 발생한 것. 어깨 끈이 없는 상의를 입은 채 무대에 오른 이윤미는 왼쪽 옷이 격렬한 춤 때문에 흘러 내려 2만여 관중 앞에서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이윤미는 무대에 열중하느라 옷이 내려간 줄도 몰랐다고. 다행히 생방송이 아니었기에 본 방송에서는 이 사고 부분이 편집되었고, 이윤미의 노출 사고가 났던 2절 후반부를 통째로 드러내고 대체 화면으로 소리만 내보냈다. 대체 화면은 이 무대 오르기 전 낮에 미리 '더 에스'가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노는 장면을 녹화해뒀었는데 이 씬으로 대체했다. 한동안 판도라TV, 엠군 등을 통해 이날 방영분이 긴 시간 흑역사로 남아있었으나 이제는 오래된 사건이기에 온라인 사이트에서 이 날 방영분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 사고 이후 '더 에스'는 활동 1달도 채 안된 짧은 기간을 끝으로 공식적인 팀 활동을 중단했다. 이윤미가 가수 활동에 회의감과 수치심을 느껴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게다가 이윤미 측의 부모님들도 완강히 활동에 항의하며 반대해 결국 팀 탈퇴에 이르게 된다. 이에 후속곡으로 내정됐던 'Inside'는 선보이지 못했다. 이는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됐고 10월 초, 소속사는 '더 에스'의 멤버 교체나 해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후속 앨범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결국은 해체를 선택한 셈. 결국 이들의 데뷔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되었고 당시 이 논란을 두고 가요계에 무분별한 섹시 컨셉 열풍이 이런 참사를 만들었다는 논조의 비판 기사도 많이 나왔기도 했으나 업계는 아랑곳 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몇년간은 계속 신인 여가수들의 섹시 컨셉트 대홍수 시대였었다.
이윤미는 팀 탈퇴 후 곧바로 연기자로 전향을 공식화 했으며 팀 해체 후 곧바로 아침드라마 오디션을 보는 등 배우로 활동을 이어갔다. 몇 년 뒤 작곡가 주영훈과 결혼했으며 현재는 세 딸 아이의 엄마가 됐다. 가수활동은 사실상 접었지만 가끔 O.S.T. 작업 참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에스'의 정규 1집 앨범은 현재 저작권 권리 문제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막혀있다. 몇 년 전 '엠넷뮤직'에서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스트리밍 서비스중이었으나 이내 중단됐고 사이트 역시 최근 지니와 합병으로 사라졌으며, 당시 엠넷닷컴에서도 더 에스, The S, 더에스로 검색하면 안 나오고 스펠링 'S'를 쳐야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엠넷의 음원을 그대로 이어받아 서비스했던 초창기 네이버 뮤직에서도 이 앨범을 들을 수 있었지만 VIBE로 통합을 앞둔 현재는 서비스 이용이 중지됐다. 이윤미를 검색하면 이 팀이 나와야하는데 서로 DB가 연결된 곳도 많이 없다. 팀명이나 노래 제목을 제대로 모르면 더욱 답이 없었으며 이런 이유로 못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음원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포털사이트나 매니아DB 등의 사이트에서도 '더 에스'의 검색 결과가 누락되거나 표기 오류 등록,[4] 자료 조차 아예 증발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요즘처럼 인터넷에 정보들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던 시절이 아니었고 제대로 된 활동도 못해보고 사라졌으니 당시 기준 여느 DB에 등록되기도 전에 없어졌다 보는게 맞을지도... 실제로 앨범 CD 발매 전 해체 되버리는 바람에[5] 프로모션용 음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후반엔 동명의 남성 솔로가수가 데뷔하는 바람에 이들을 더욱 검색으로 찾긴 힘들다. 최근에는 '더에스'를 검색하면 각종 기업 관련 검색 결과만 주로 나온다. 2001년에 데뷔한 걸그룹 에스의 2기 느낌이 드는 팀명이지만 사실 전혀 연관 없다.
<이윤미 당시 프로필>
▲ 생년월일: 1981년 9월 25일
▲ 체격조건: 176㎝, 50㎏
▲ 가족관계: 부모, 남동생
▲ 출신학교: 서울 한산초-한산중-영파여고-동국대 연극학과 휴학 중
▲ 데뷔: 1998년 영파여고 2년 재학 중 슈퍼 엘리트 모델 출전, 탤런트상 수상
▲ 이상형: 귀엽고 자상한 남자
<김근영 당시 프로필>
▲ 생년월일: 1979년 5월 11일
▲ 체격조건: 176㎝, 51㎏
▲ 가족관계: 부모, 언니, 남동생
▲ 출신학교: 경남 밀양 밀성초-밀양여중-경북 청도여고-부산예대 연극과 졸
▲ 데뷔: 2003년 '더 에스'로 KMTV <쇼 뮤직탱크>
▲ 이상형: 자상하고 나한테만 충실한 남자
[1] 견제 문제기 때문에 지상파 음악방송 한정이다. 여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는 출연했다. 예를 들면 SBS의 도전 천곡, 뷰티풀 선데이 등의 예능 프로그램.[2] 기존 2003년 6월에 종영했던 '뮤직플러스'의 후속 음악방송. 이 역시 가요계의 전반적 화제성 하락세로 음악방송의 저조한 시청률로 이어져 이듬해 종영한다.[3] 괌에서 마지막회를 촬영 후 급하게 마무리 지었으며, 이후 시즌3은 반대로 남자 대학생들과 여성 연예인들의 짝짓기 컨셉으로 전환했다.[4] '더 에스'라 나오지 않고고 S, 에스, THES, 에스더, 더 에스더 이런식으로 나오는 곳도 더러 있다. 또한 'The S', '더에스' 라고 검색 할 경우 이 글자가 포함된 모든 게 다 검색되게 때문에 난감. 애초에 팀명을 너무 검색하기 어렵고 평범하게 지어진 것도 그렇고 여기에 데뷔곡 '더' 역시 검색 결과에 이 글자를 포함한 모든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검색하기 어렵다. 당시엔 이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생각을 못했겠지만...[5]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음반 발매가 방송 활동보다 한참 후에 나올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