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스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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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sthenes
(BC 385? ~ BC 322)
고대 아테네의 정치가, 웅변가.
1. 칼리스트라투스의 연설에 감명받아 웅변을 배우다
2. 웅변을 위한 노력
3. 필리포스 2세와의 전쟁을 주장하다
4. 아테네에서 몰락하다
5. 죽음
6. 대중매체


1. 칼리스트라투스의 연설에 감명받아 웅변을 배우다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죽자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후견인이 재산을 횡령하고 관리를 소홀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데모스테네스는 몸이 허약하고 연약한 기질이라 주변에서 공부를 권하지 못했다.
여위고 행색이 병자와 같아 그의 외모를 보고 일설에 따르면 힘없는 피리 연주자로 그의 이름을 따서 '바탈루스'라고 불렀으며, 그의 거동이 야만적이고 악랄하다고 해서 일설에 따르면 뱀을 시적으로 부르거나 행동이 굉장히 난폭한 시인의 이름을 따 '아르가스'라고도 불렀다.
오로포스 시의 문제로 공개 재판이 열려 칼리스트라투스가 변론을 하게 되었을 때 가정교사, 학교 선생이 재판을 구경하자는 것을 듣고 가정교사에게 부탁해 그곳으로 갔으며, 칼리스트라투스가 한 웅변에 감동을 받았고 이사이우스에게서 웅변을 배웠다.

2. 웅변을 위한 노력


데모스테네스는 자라서 자신의 후견인들과 법정에서 싸워 달변으로 횡령당한 재산의 일부를 되찾았으나 그 때뿐이었다. 막상 정식 공청회에 나서 웅변을 처음 했을 때는 앞뒤 안 맞는 논리, 작은 목소리, 더듬는 버릇 때문에 '돈 찾는 웅변만 잘하는 거냐'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고 한다. 그 때 유명한 배우이자 친구인 사티루스의 도움으로 자신의 단점을 알아내 고쳐나가기 위해 지하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서 발성을 연습하거나 머리를 일부러 깎아 2, 3개월 동안 지하실에서 연습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헤어진 후에 만나서 한 이야기에 대해 되풀이하고 여기에 반대할 말을 하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한 말, 자신이 남에게 한 말을 고치거나 변화시켜 보기도 했다. 발음이 바르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버릇이 있어 입에 조약돌을 물고 연설하는 것으로 고쳤고 음성은 평지를 오르거나 가파른 비탈을 달리면서 숨이 찼을 때 연설하거나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고쳤으며, 커다란 거울을 집에 걸어놓고 그 앞에 서서 연설하면서 적절한 제스처를 취하거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연습을 했다.
데모스테네스는 얌전하지 못하고 온화하지도 않았으며, 의지가 강해 원한은 반드시 갚으려고 했고 32세 때 미디아스를 고소했다가 뇌물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3. 필리포스 2세와의 전쟁을 주장하다


데모스테네스는 마케도니아에 대해 무엇이든지 비난하거나 공격했고 아테네 사람들을 선동했으며, 그 이름은 필리포스 2세에게까지 알려졌고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 시민들을 선동해 마케도니아와 전쟁을 했다. 그 당시에 마케도니아군이 공격한 비잔티움, 페린티아를 구원하기 위해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하고 데모스테네스가 직접 사절이 되어 그리스 각지에 필리포스 2세에 대한 적개심을 불어넣었으며, 일부의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게서 1만 7천, 용병에게 줄 돈을 거두었다.
필리포스 2세가 암피사에서 승리를 거두고 엘라테아를 습격해 포키스를 점령하자 데모스테네스는 테베와 동맹을 맺을 것을 주장했으며, 테베에 사절로 파견되었고 필리포스 2세는 이에 전령을 보내 화의를 요청했으며,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 테베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데모스테네스는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하려고 했으며, 기원전 338년에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참전했지만 전투가 벌어지자 도망쳤고 그리스 연합군은 마케도니아에게 패했다. 전투에 패배하자 그의 반대파들이 고발하는 등 비난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고소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전과 같이 존중해 국사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데모스테네스는 카이로네이아에서 전사한 사람들에 대한 추도 연설을 했다.

4. 아테네에서 몰락하다


필리포스 2세가 죽자 화관을 쓰고 여러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좋아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그리스의 여러 도시와 동맹을 맺어 테베가 마케도니아군을 공격했고 데모스테네스는 페르시아의 장군들에게 마케도니아를 공격할 것을 권유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보이오티아에 침공하고 테베 등을 빼앗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는 사람을 보내 열 사람의 웅변가를 요구했고 데모스테네스는 사절로 임명되었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의 노여움이 두려워 키타이론 산까지 갔다가 도중에 되돌아가서 사절의 직위를 반납했다.
이 일로 인해 데모스테네스는 실각했고 마케도니아에서 도망쳐 온 하르팔로스에게 매수당하면서 고발당해 50탈렌트의 벌금을 물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감옥에 도망쳐 트로이젠, 아이기나 등에서 망명 생활을 보냈다.

5. 죽음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자 아테네에서 찾아온 사절들과 협력해서 마케도니아를 공격해 그리스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권유했고 이로 인해 헬레닉 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아테네에서 그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면서 데모스테네스는 아테네에 돌아올 수 있었고 그가 벌금으로 내기로 한 50탈렌트는 면제되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크라논에서 헬레닉 동맹을 격파하고 안티파트로스, 크라테로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무니키아에 침공하자 데모스테네스는 당연히 패전의 책임을 물어야 할 처지가 되었고, 결국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아테네에서는 반 마케도니아 운동의 선동가인 데모스테네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안티파트로스는 여러 사람을 파견해 데모스테네스와 히페레이데스를 포함한 일파들을 잡아들이도록 했는데, 데모스테네스는 칼라우리아 섬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숨어있었다.
그가 숨어있는 위치가 발견되어 안티파트로스의 측근이자 친우인 아르키아스[1]가 추적했고 아르키아스와 그의 병사들이 신전에 들이닥쳐 데모스테네스를 잡으러 왔다. 데모스테네스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면서 신전 안으로 들어가 편지를 쓰는 척 하면서 독약이 든 병에 갈대로 만든 붓을 넣어 거기서 흘러나온 독약을 마셨고, 신전 밖으로 나가면서 쓰러져 사망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따르면 아르키아스가 데모스테네스에게 '해는 끼치지 않을 테니 같이 가시죠'라고 구슬리자 데모스테네스는 짐짓 웃으면서 '나는 자네의 연극에는 관심 없다네'라며 받아쳤고, 아르키아스가 화를 내며 창을 겨누자 데모스테네스는 오히려 웃으면서 "자네는 그렇게 난폭한 게 어울리지, 예의바른 건 어울리지 않아. 유서를 쓸 테니 잠시 기다리게"라고 하고는 독약을 바른 붓을 입에 물고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자 옆에서 지켜보던 아르키아스가 병사들에게 '죽음이 두려워 울고있다'고 말하면서 그를 조롱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데모스테네스가 움직이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고 여긴 아르키아스가 다가가 그를 흔들었는데, 그제서야 간신히 일어난 데모스테네스는 옆에 있는 포세이돈 신상을 향해 "이곳에서 죽어 신전을 더럽히기 전에 신전에서 나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는 일어나 걷다가 결국 신전을 나가지 못하고 신상 앞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6. 대중매체


히스토리에에선 유려하며 가열한 언변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웅병술을 가진 우수한 웅변가라고 한다.[2] 마케도니아 주전파로 필리포스 2세가 원정 도중 다쳤다는 소식에 득세한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는 장군이나 부관이 아닌 아테네를 고무할 일개 병졸로 참가하였으며 안전한 후군에 있었는데 알렉산드로스 왕자의 틈새 찌르기로 후군을 몰살시키고 데모스테네스는 왕자의 검이 옆의 병졸의 목을 치다 부러저셔 간신히 살아남는다. 데모스테네스는 죽은 병졸의 입에 꽃혀진 칼날을 빼내다 전쟁의 공포에 도망쳐버린다.[3]

[1] 투리(Thurii) 출신으로, 원래 연극 배우였는데 마케도니아로 오면서 군인이 되었다. 도망자 혹은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군인이라 그런지 별명이 ''도망자 사냥꾼''으로 불렸다.[2] 반면 포키온은 말수가 적으나 정확하게 사물의 핵심을 찌르는 가장 강력한 웅변가[3] 히스토리에서는 포키온이 전쟁을 아는 평화파인 반면에 데모스테네스는 전쟁을 모르는 주전파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