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테로스
Κρατερός
(BC 370? ~ BC 321)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에 종군해 페제타이로이의 탁시아르크를 지내 파르메니온의 직속 부하로 마케도니아의 우익에서 부지휘관을 맡았으며, 헤파이스티온과 자주 다투었고 필로타스를 싫어했다. 기원전 334년의 그라니코스 전투, 기원전 333년의 이소스 전투, 기원전 331년의 가우가멜라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싸울 때 알렉산드로스 3세가 병력을 둘로 나누어 배후의 산맥으로 이동할 때 남겨져 이동이 지연되는 것처럼 가장해 적의 주의를 끌었으며, 이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리오바르자네스를 포위하는 것에 성공해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병사들의 인기를 겸비해 보병대(페제타이로이)의 최선임 대대장으로서 중장보병을 지휘해 전설적인 전공을 세웠다.
인도 원정 때 헤파이스티온의 승진 문제로 헤파이스티온과 충돌해 서로 주먹을 날렸으며,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는 중장보병을 지휘했다. 볼란 협로를 지날 때 반란군을 체포해 압송했고 기원전 324년에 안티파트로스의 마케도니아 섭정 지위를 대체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해 효력을 잃었는데,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연합해 헬레닉 동맹을 결성해 봉기하면서 라미아 전쟁이 일어나자 헬레닉 동맹들과 싸웠다.
대왕의 사후 안트파트로스와 함께 마케도니아 본토를 공동 통치한다.
1차 디아도코이 전쟁때 헬레스폰토스에서 에우메네스와 전투를 치루다가 자신의 말에서 떨어져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사망했다.
마케도니아 내에서 인망이 가장 높은 장수였기에 에우메네스 측의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전향할 것을 기대했다.(네오프톨레모스의 장담이 있었다.) 그러나 에우메네스는 휘하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피그레스라는 이름의 외국인 장수와 싸우러 간다고 속이고, 마케도니아 출신이 아닌 현지인 기병들을 동원하여 공격, 결국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BC 370? ~ BC 321)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에 종군해 페제타이로이의 탁시아르크를 지내 파르메니온의 직속 부하로 마케도니아의 우익에서 부지휘관을 맡았으며, 헤파이스티온과 자주 다투었고 필로타스를 싫어했다. 기원전 334년의 그라니코스 전투, 기원전 333년의 이소스 전투, 기원전 331년의 가우가멜라 전투 등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싸울 때 알렉산드로스 3세가 병력을 둘로 나누어 배후의 산맥으로 이동할 때 남겨져 이동이 지연되는 것처럼 가장해 적의 주의를 끌었으며, 이로 인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아리오바르자네스를 포위하는 것에 성공해 페르시아군을 격파했다. 뛰어난 전술적 능력과 병사들의 인기를 겸비해 보병대(페제타이로이)의 최선임 대대장으로서 중장보병을 지휘해 전설적인 전공을 세웠다.
인도 원정 때 헤파이스티온의 승진 문제로 헤파이스티온과 충돌해 서로 주먹을 날렸으며,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는 중장보병을 지휘했다. 볼란 협로를 지날 때 반란군을 체포해 압송했고 기원전 324년에 안티파트로스의 마케도니아 섭정 지위를 대체하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해 효력을 잃었는데,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연합해 헬레닉 동맹을 결성해 봉기하면서 라미아 전쟁이 일어나자 헬레닉 동맹들과 싸웠다.
대왕의 사후 안트파트로스와 함께 마케도니아 본토를 공동 통치한다.
1차 디아도코이 전쟁때 헬레스폰토스에서 에우메네스와 전투를 치루다가 자신의 말에서 떨어져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사망했다.
마케도니아 내에서 인망이 가장 높은 장수였기에 에우메네스 측의 마케도니아 병사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전향할 것을 기대했다.(네오프톨레모스의 장담이 있었다.) 그러나 에우메네스는 휘하 마케도니아 병사들에게 피그레스라는 이름의 외국인 장수와 싸우러 간다고 속이고, 마케도니아 출신이 아닌 현지인 기병들을 동원하여 공격, 결국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