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파트로스
1. 마케도니아의 장군
Ἀντίπατρος
(기원전 397년 ~ 기원전 319년)
마케도니아 왕국과 디아도코이의 인물.
필리포스 2세가 전쟁으로 부재할 때 섭정을 맡았고, 북방 산악 민족들의 봉기를 진압하기도 했으며, 필리포스 2세가 사망했을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지지했다. 기원전 331년에 페르시아의 그리스인 장군 멤논의 사주를 받은 스파르타가 마케도니아에 대항하면서 코라고스의 부대를 격파하자, 섭정 안티파트로스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여름에 메갈로폴리스에서 스파르타의 왕 아기스 3세를 전사시키며 승리하여 후방을 안정시켰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안티파트로스를 대신해 크라테로스를 섭정으로 삼아 교체하려고 했지만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망했다. 안티파트로스는 크라테로스와 공통 통치하기로 한 상황이었다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폴리스들이 헬레닉 동맹을 결성해 봉기하자 남쪽으로 내려가서 테살리아의 라미아에서 봉기를 진압하다가 포위되었지만 레온나토스가 지원군 2만 명을 이끌고 포위망을 뚫어준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1] 기원전 322년에 마케도니아군이 우세한 상황에서 평화 협정을 맺었다.
그 틈에 페르디카스가 최고 지위를 차지하고, 안티파트로스의 딸인 니카이아와 이혼을 하며, 알렉산드로스 3세의 누이인 클레오파트라 공주와 재혼하려고 하자 안티파트로스가 분노해 크라테로스, 안티고노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손을 잡고 페르디카스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기원전 321년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페르디카스를 공격했고 이후 페르디카스는 부하들에 의해 암살되었는데, 트리파라디소스에서 권력을 분배하여 제국의 섭정이 되었다. 기원전 320년에 에우메네스를 죽이기 위해 안티고노스 1세를 총사령관으로 보냈고 기원전 319년에 노령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는 이후 폴리페르콘을 격퇴하고 알렉산드로스 4세 모자를 죽인 후 안티파트로스 왕조를 창건했다. (다만 그의 사후 단기간에 멸망하고 혼란을 거친 후 안티고노스 1세의 손자인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안티고노스 왕조를 중흥시키며 안정을 회복한다.)
2. 그리스의 시인
1번의 인물과 헷갈리지 않게 시돈의 안티파트로스(Antipater of Sidon), 고대 그리스어로는 Ἀντίπατρος ὁ Σιδώνιος라고 부른다.
기원전 2세기때의 시인으로, 그가 살았던 도시 국가 시돈은 레바논 초기 역사에서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도시 국가 중 하나였다.
저작도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 시인이 유명한 이유는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언급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들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바빌론뿐 아니라 지중해 일대의 주요 도시들을 돌아다녔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때 자신이 본 건축물 중 거대한 바빌론 성벽, 제우스 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로도스의 거상, 쿠푸왕의 피라미드, 마우솔로스 영묘, 아르테미스 신전를 인상깊었다고 꼽았다. 그 중 단연 으뜸은 아르테미스 신전이었다고.
[1] 정작 레온나토스 자신은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