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키온
Phocion
(BC 402년경? ~ BC 318)
아테네의 정치가, 장군.
플라톤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고 크세노크라테스에게도 학문을 배웠으며, 용모가 단정하면서 침착했고 사람들은 그가 웃거나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포키온은 온순하고 인정이 많았지만 그의 외모가 엄격해보여 가까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도 없고 외투를 입을 때 외투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거리를 다니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밖으로 나갈 때, 전쟁에 나가 진영에 있을 때, 너무 추워서 견딜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얇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는 장군이 되려고 한 적은 없었지만 남들보다 더 많이 장군을 지냈고 장군에 임명되면 나라를 위해 거절하거나 사퇴하는 일이 없었고 그는 45번이나 장군으로 선출되었다.
선거 때는 그 자리에 한 번도 없었기에 궐석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포키온이 선출되었지만 그 때마다 포키온은 사람을 보내 다른 사람을 대신 뽑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시민들의 뜻을 따르거나 말이나 행동으로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는데도 시민들이 포키온을 따르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의 연설은 항상 교훈적이고 청중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의 기분에 맞춰주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폴리에우크투스는 포키온에 대해 당대에 가장 힘찬 웅변가라고 평가했다.
아테네의 동맹국이나 섬으로 다른 장군이 오면 언제나 성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항구를 폐쇄하면서 사람들과 가축을 시내로 피난시켰는데, 포키온이 오면 자기들의 배를 장식하면서 상륙 지점까지 나와서 포키온을 영접했다.
청년 시절에 카브리아스를 따라 전쟁에 종군해 군사에 관한 지식이나 교훈을 많이 얻었으며, 카브리아스가 전쟁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그를 격려해 행동하도록 하거나 카브리아스가 격노할 때 진정시키기도 했다. 낙소스 전투에서 좌군을 지휘해 승리에 공헌하면서 훌륭한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카브리아스가 각 섬 사람들로부터 전비를 거두어 포키온의 20척의 군선을 주자 포키온은 섬 사람들과 싸우라고 보내는 것이면 이 정도는 부족하지만 맹우로 보내는 것이라면 한 척 만으로 충분하다면서 한 척만 받았다.
카브리아스가 살아있을 때 성심껏 그를 섬겼고 카브리아스가 전사하자 그의 가족들을 부양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에우보이아로 들어가 그 곳의 힘을 빌려 여러 도시를 정복했으며, 에레트리아의 플루타르코스가 마케도니아 군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져서 구원을 요청하자 포키온은 에우보이아군이 몰려와 플루타르코스도 합류할 것으로 생각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갔다.
포키온은 타미나이 시 근처의 언덕에서 진을 치고 적이 공격할 때 병사들에게 싸우도록 하지 않고 제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으며, 플루타르코스가 겁을 먹는 것으로 판단해 공격하자 아테네의 기병대들은 돌진해 적의 선봉대를 격파해 플루타르코스도 도주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의 군에서는 승리한 것이라 확신하면서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했지만 아테네군이 제사를 끝마치고 몰려나와 플루타르코스군을 완전히 격파했으며, 자레트라 요새를 점령하고 포로로 잡은 그리스 병사들을 모두 놓아주었다.
또다시 필리포스 2세가 군사를 이끌고 와 헬레스폰트로 진격해 케르소네수스, 페린투스를 점령하고 비잔티움도 점령하려고 했는데, 카레스가 파견되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포키온이 장군으로 임명되어 헬레스폰트에 있는 그리스 동맹군을 구하러 간다. 포키온은 성 밖에 진을 치려고 했지만 비잔티움 시민들이 그를 믿고 성 안으로 들였으며, 포키온은 헬레스폰트에서 필리포스 2세를 격파했다.
이 때 메가리아인들에게 원조를 요청받자 시민들을 무장시켜 메가리아로 진격해 니사이아 시를 요새화해 적이 침공할 염려를 없도록 했으며, 필리포스 2세가 휴전을 요청하자 포키온은 사람들에게 휴전을 맺을 것을 설득했지만 시민들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하자는 데모스테네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기원전 338년에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에게 패하자 시민들은 포키온에게 정사를 맡기자고 했으며,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와 공정한 조건으로 맺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데마데스는 그리스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휴전하자고 하자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를 손에 넣은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알기 전까지 그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반대했지만 상황이 위급해 포키온의 제안은 묵살되었다.
이로 인해 필리포스 2세의 요구대로 군선, 말들을 바치게 되자 아테네인들은 휴전한 것을 크게 후회했으며,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하자 아테네에서는 축제를 벌이자고 했지만 포키온은 이에 반대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테베스를 침공해 데모스테네스가 독설을 퍼붓는 것에 대해 꾸짖었으며, 테베스를 멸망시킨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리스로부터 데모스테네스 등 다섯 사람을 요구했고 이 때 시민들이 모이자 포키온은 알렉산드로스 3세를 진정시키고 쌍방을 위해 협상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포키온의 주장을 시민들이 받아들인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처음에 그 내용을 전달할 때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비우고 내동댕이쳤지만 두번째로 전달할 때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름을 받아 포키온이 추억담, 탄원을 이야기했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충고의 말을 해달라고 하자 왕의 계획이 세상이 조용해지는 것이라면 휴전하고 영광이 목표라면 페르시아를 정벌해야 한다고 했다.
포키온은 여러 가지 조언과 제안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환심을 사서 그의 노여움을 풀어주었으며, 포키온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존경을 받아 좋은 대우를 받았다. 또한 알렉산드로스 3세가 포키온에게 100탈렌트를 보내자 이를 거절했고 포키온은 자기 발을 닦을 물을 스스로 길어오고 아내가 식구들이 먹을 빵을 손수 반죽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사르디스의 감옥에 갇힌 에케크라티데스, 아테노도루스, 데마라투스, 스파르톤 등을 풀어줄 것을 요청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들을 석방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레오스테네스가 전쟁을 하려고 했으며, 포키온은 이를 반대했다. 레오스테네스가 모집한 병력이 막강하게 되면서 이만하면 전쟁하기에 넉넉하냐고 묻자 포키온은 단기전에는 넉넉하지만 장기전에는 어렵다고 했으며, 포키온의 예견대로 레오스테네스는 보이오티아군을 상대로 승리해 크게 명성을 떨치다가 끝내 레오스테네스가 전사했다.
포키온을 장군으로 세우면 전쟁을 중단할 것을 염려한 자들이 안티필루스를 포키온의 친구라고 자칭하게 하면서 그를 내세웠으며, 포키온은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사이라 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보이오티아를 침략하기 위해 원정대 편성을 했고 포키온은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포키온은 시민들이 전쟁을 종용하면서 자기들을 전쟁터로 데려달라고 고집을 피우자 하는 수 없이 60세 이하의 모든 아테네의 시민들이 5일간의 군량을 준비하고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선언을 하라고 했다.
이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포키온은 자신의 나이가 80이라도 여러분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장군인 미키온이 람누스에 상륙해 해안 지방을 약탈하자 그를 공격해 죽였다.
안티파트로스가 전군을 이끌고 아테네로 진군하자 데마데스가 휴전을 요청하자는 발언이 통과되면서 포키온은 안티파테르를 만나기 위해 테베스로 가서 휴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재외국민세를 내고 있어서 크세노크라테스가 시민권을 주려 했지만 포키온은 사절단의 일원으로 간 몸이라 자격이 없다면서 이에 저항했으며, 안티파트로스에게 부탁해 아테네에서 내기로 한 전쟁배상금 기한을 연기받았다. 데마데스가 마케도니아로 가서 안티파트로스가 병 중인 것을 확인하고 아테네에 있던 안티고노스에게 귀국해서 그리스, 마케도니아를 손에 넣으라고 했는데, 포키온은 이 사실을 알고 데마데스가 아테네로 돌아오자 체포해 데마데스의 아들을 먼저 죽인 후에 데마데스도 죽였다.
안티파트로스가 부하들에게 직위를 임명하고 사망하자 기병대장으로 임명된 카산드로스가 니카노르를 보내 수비대 대장의 자리를 인계받도록 하면서 무니키아를 장악하게 했으며, 안티파트로스가 죽은 사실이 알려지자 아테네 시민들은 포키온이 이를 알고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니카노르와의 우정 때문이라면서 비난했다.
마케도니아의 섭정이 된 폴리페르콘이 선동자를 이용해 아테네의 시민들을 선동하려 했으며, 이러한 일이 드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니카노르를 체포하려 하자 포키온은 그를 지나치게 믿어 도망치게 했다. 니카노르가 피라이우스 시를 점령할 계획을 세워 마케도니아 군을 살라미스 섬에 투입하면서 여러 시민들을 매수해 부패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도 니카노르를 믿었다.
폴리페르콘의 아들 알렉산도르스가 아테네를 점령하면서 포키온은 모든 권한이 박탈되었으며, 아그노니데스가 포키온을 반역죄로 몰면서 포키온은 사형으로 죽임을 당했다.
일본 역사 만화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에서 명지휘관으로 묘사된다.[1] 해전에서는 선박이 지나치는것으로 만으로도 상대 선박의 노를 전부 부숴버려 노젓는 선원을 부상시켜 에우메네스 왈 ''''평화주의자 성격'''이라고 평했다. 또 신중한 식견도 보여주었는데 어떻게서든 페르시아의 힘을 빌려서라도 무찌르자는 데모스테네스와 다르게 후일을 위해서라면 좀더 신중하게 하여 그리스인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용병부대(멤논)을 빌리는 식 후일 마케도니아 권력자인 안티파트로스의 계략으로 내통 의혹을 받아[2] 테베&아테네 연합 vs 마케도니아 전에 참가하지 못했는데[3] 필리포스 2세의 언급으로는 만약 이 군세를 포키온이 지휘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싹하군'''할 정도[4]
(BC 402년경? ~ BC 318)
아테네의 정치가, 장군.
1. 성품
플라톤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고 크세노크라테스에게도 학문을 배웠으며, 용모가 단정하면서 침착했고 사람들은 그가 웃거나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포키온은 온순하고 인정이 많았지만 그의 외모가 엄격해보여 가까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도 없고 외투를 입을 때 외투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거리를 다니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다고 하며, 밖으로 나갈 때, 전쟁에 나가 진영에 있을 때, 너무 추워서 견딜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얇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2. 능력
그는 장군이 되려고 한 적은 없었지만 남들보다 더 많이 장군을 지냈고 장군에 임명되면 나라를 위해 거절하거나 사퇴하는 일이 없었고 그는 45번이나 장군으로 선출되었다.
선거 때는 그 자리에 한 번도 없었기에 궐석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포키온이 선출되었지만 그 때마다 포키온은 사람을 보내 다른 사람을 대신 뽑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가 시민들의 뜻을 따르거나 말이나 행동으로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는데도 시민들이 포키온을 따르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의 연설은 항상 교훈적이고 청중에게 아첨하거나 그들의 기분에 맞춰주려는 의도는 없었으며,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폴리에우크투스는 포키온에 대해 당대에 가장 힘찬 웅변가라고 평가했다.
아테네의 동맹국이나 섬으로 다른 장군이 오면 언제나 성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항구를 폐쇄하면서 사람들과 가축을 시내로 피난시켰는데, 포키온이 오면 자기들의 배를 장식하면서 상륙 지점까지 나와서 포키온을 영접했다.
3. 행적
3.1. 카브리아스 휘하에서 종군
청년 시절에 카브리아스를 따라 전쟁에 종군해 군사에 관한 지식이나 교훈을 많이 얻었으며, 카브리아스가 전쟁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그를 격려해 행동하도록 하거나 카브리아스가 격노할 때 진정시키기도 했다. 낙소스 전투에서 좌군을 지휘해 승리에 공헌하면서 훌륭한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카브리아스가 각 섬 사람들로부터 전비를 거두어 포키온의 20척의 군선을 주자 포키온은 섬 사람들과 싸우라고 보내는 것이면 이 정도는 부족하지만 맹우로 보내는 것이라면 한 척 만으로 충분하다면서 한 척만 받았다.
카브리아스가 살아있을 때 성심껏 그를 섬겼고 카브리아스가 전사하자 그의 가족들을 부양했다.
3.2. 마케도니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에우보이아로 들어가 그 곳의 힘을 빌려 여러 도시를 정복했으며, 에레트리아의 플루타르코스가 마케도니아 군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져서 구원을 요청하자 포키온은 에우보이아군이 몰려와 플루타르코스도 합류할 것으로 생각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갔다.
포키온은 타미나이 시 근처의 언덕에서 진을 치고 적이 공격할 때 병사들에게 싸우도록 하지 않고 제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으며, 플루타르코스가 겁을 먹는 것으로 판단해 공격하자 아테네의 기병대들은 돌진해 적의 선봉대를 격파해 플루타르코스도 도주했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의 군에서는 승리한 것이라 확신하면서 진지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했지만 아테네군이 제사를 끝마치고 몰려나와 플루타르코스군을 완전히 격파했으며, 자레트라 요새를 점령하고 포로로 잡은 그리스 병사들을 모두 놓아주었다.
또다시 필리포스 2세가 군사를 이끌고 와 헬레스폰트로 진격해 케르소네수스, 페린투스를 점령하고 비잔티움도 점령하려고 했는데, 카레스가 파견되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포키온이 장군으로 임명되어 헬레스폰트에 있는 그리스 동맹군을 구하러 간다. 포키온은 성 밖에 진을 치려고 했지만 비잔티움 시민들이 그를 믿고 성 안으로 들였으며, 포키온은 헬레스폰트에서 필리포스 2세를 격파했다.
이 때 메가리아인들에게 원조를 요청받자 시민들을 무장시켜 메가리아로 진격해 니사이아 시를 요새화해 적이 침공할 염려를 없도록 했으며, 필리포스 2세가 휴전을 요청하자 포키온은 사람들에게 휴전을 맺을 것을 설득했지만 시민들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하자는 데모스테네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3.3. 아테네를 위기에서 구하다
기원전 338년에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에게 패하자 시민들은 포키온에게 정사를 맡기자고 했으며,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와 공정한 조건으로 맺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데마데스는 그리스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휴전하자고 하자 포키온은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를 손에 넣은 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 알기 전까지 그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반대했지만 상황이 위급해 포키온의 제안은 묵살되었다.
이로 인해 필리포스 2세의 요구대로 군선, 말들을 바치게 되자 아테네인들은 휴전한 것을 크게 후회했으며,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하자 아테네에서는 축제를 벌이자고 했지만 포키온은 이에 반대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테베스를 침공해 데모스테네스가 독설을 퍼붓는 것에 대해 꾸짖었으며, 테베스를 멸망시킨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리스로부터 데모스테네스 등 다섯 사람을 요구했고 이 때 시민들이 모이자 포키온은 알렉산드로스 3세를 진정시키고 쌍방을 위해 협상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포키온의 주장을 시민들이 받아들인다.
알렉산드로스 3세는 처음에 그 내용을 전달할 때는 알렉산드로스 3세가 비우고 내동댕이쳤지만 두번째로 전달할 때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부름을 받아 포키온이 추억담, 탄원을 이야기했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충고의 말을 해달라고 하자 왕의 계획이 세상이 조용해지는 것이라면 휴전하고 영광이 목표라면 페르시아를 정벌해야 한다고 했다.
포키온은 여러 가지 조언과 제안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환심을 사서 그의 노여움을 풀어주었으며, 포키온은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존경을 받아 좋은 대우를 받았다. 또한 알렉산드로스 3세가 포키온에게 100탈렌트를 보내자 이를 거절했고 포키온은 자기 발을 닦을 물을 스스로 길어오고 아내가 식구들이 먹을 빵을 손수 반죽할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사르디스의 감옥에 갇힌 에케크라티데스, 아테노도루스, 데마라투스, 스파르톤 등을 풀어줄 것을 요청해 알렉산드로스 3세가 그들을 석방했다.
3.4. 노구를 이끌고 전쟁에 나서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레오스테네스가 전쟁을 하려고 했으며, 포키온은 이를 반대했다. 레오스테네스가 모집한 병력이 막강하게 되면서 이만하면 전쟁하기에 넉넉하냐고 묻자 포키온은 단기전에는 넉넉하지만 장기전에는 어렵다고 했으며, 포키온의 예견대로 레오스테네스는 보이오티아군을 상대로 승리해 크게 명성을 떨치다가 끝내 레오스테네스가 전사했다.
포키온을 장군으로 세우면 전쟁을 중단할 것을 염려한 자들이 안티필루스를 포키온의 친구라고 자칭하게 하면서 그를 내세웠으며, 포키온은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사이라 했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보이오티아를 침략하기 위해 원정대 편성을 했고 포키온은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포키온은 시민들이 전쟁을 종용하면서 자기들을 전쟁터로 데려달라고 고집을 피우자 하는 수 없이 60세 이하의 모든 아테네의 시민들이 5일간의 군량을 준비하고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선언을 하라고 했다.
이로 인해 큰 소동이 벌어졌지만 포키온은 자신의 나이가 80이라도 여러분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했으며, 마케도니아의 장군인 미키온이 람누스에 상륙해 해안 지방을 약탈하자 그를 공격해 죽였다.
3.5. 안티파트로스와의 강화 협상
안티파트로스가 전군을 이끌고 아테네로 진군하자 데마데스가 휴전을 요청하자는 발언이 통과되면서 포키온은 안티파테르를 만나기 위해 테베스로 가서 휴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마케도니아의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 그 장소에서 휴전한다.
-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게 완전 항복한다.
- 데모스테네스, 히페리데스를 안티파트로스에게 인도할 것.
- 아테네 전래의 정치형태를 보유하되 선거권은 재산 정도에 따라 결정할 것.
- 아테네는 무니키아 지방에 마케도니아군이 주둔해도 좋다는 것을 승인할 것.
- 아테네는 전비의 일부를 배상할 것.
재외국민세를 내고 있어서 크세노크라테스가 시민권을 주려 했지만 포키온은 사절단의 일원으로 간 몸이라 자격이 없다면서 이에 저항했으며, 안티파트로스에게 부탁해 아테네에서 내기로 한 전쟁배상금 기한을 연기받았다. 데마데스가 마케도니아로 가서 안티파트로스가 병 중인 것을 확인하고 아테네에 있던 안티고노스에게 귀국해서 그리스, 마케도니아를 손에 넣으라고 했는데, 포키온은 이 사실을 알고 데마데스가 아테네로 돌아오자 체포해 데마데스의 아들을 먼저 죽인 후에 데마데스도 죽였다.
3.6. 죽음
안티파트로스가 부하들에게 직위를 임명하고 사망하자 기병대장으로 임명된 카산드로스가 니카노르를 보내 수비대 대장의 자리를 인계받도록 하면서 무니키아를 장악하게 했으며, 안티파트로스가 죽은 사실이 알려지자 아테네 시민들은 포키온이 이를 알고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은 니카노르와의 우정 때문이라면서 비난했다.
마케도니아의 섭정이 된 폴리페르콘이 선동자를 이용해 아테네의 시민들을 선동하려 했으며, 이러한 일이 드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니카노르를 체포하려 하자 포키온은 그를 지나치게 믿어 도망치게 했다. 니카노르가 피라이우스 시를 점령할 계획을 세워 마케도니아 군을 살라미스 섬에 투입하면서 여러 시민들을 매수해 부패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도 니카노르를 믿었다.
폴리페르콘의 아들 알렉산도르스가 아테네를 점령하면서 포키온은 모든 권한이 박탈되었으며, 아그노니데스가 포키온을 반역죄로 몰면서 포키온은 사형으로 죽임을 당했다.
4. 창작물에서
일본 역사 만화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에서 명지휘관으로 묘사된다.[1] 해전에서는 선박이 지나치는것으로 만으로도 상대 선박의 노를 전부 부숴버려 노젓는 선원을 부상시켜 에우메네스 왈 ''''평화주의자 성격'''이라고 평했다. 또 신중한 식견도 보여주었는데 어떻게서든 페르시아의 힘을 빌려서라도 무찌르자는 데모스테네스와 다르게 후일을 위해서라면 좀더 신중하게 하여 그리스인으로 구성된 페르시아 용병부대(멤논)을 빌리는 식 후일 마케도니아 권력자인 안티파트로스의 계략으로 내통 의혹을 받아[2] 테베&아테네 연합 vs 마케도니아 전에 참가하지 못했는데[3] 필리포스 2세의 언급으로는 만약 이 군세를 포키온이 지휘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싹하군'''할 정도[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