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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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직 변호사이자 제4대 전미 농구 협회 커미셔너. 1984년부터 30년동안 구단의 조직과 개혁을 이끌며 지금의 미국프로농구를 인기 스포츠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
2. 생애
미국 뉴욕에서 식료품점을 경영하고 있는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가게 일을 자주 도왔으며 이후 친구들과 함께 농구를 한 적이 있어 뉴욕 닉스를 응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농구선수보다 공무원이 되고 싶은 꿈을 생각했던 스턴은 럿거스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정치학과 역사학을 배운 덕분에 우수한 성적을 자랑했고, 콜럼비아 대학교 법과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에는 외부 법률 자문위원으로 NBA 사무국과 인연을 맺었다. 1978년에는 제3대 NBA 총재였던 래리 오브라이언의 권유로 법무부문 설립과 관련된 요청을 거절하였고 고문을 거쳐 1980년에는 이사회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1984년 12월, 오 브라이언의 후임으로 제4대 NBA 커미셔너에 선출되어 아담 실버에게 총재직을 넘겨주기까지 무려 30년동안 협회를 이끌었다. 1980년대에는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엄청난 흥행을 유도했고, 1990년대에는 마이클 조던의 엄청난 인기로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는데도 기여를 했다. 또 1992년에 개최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참가한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이 한자리에 모인 드림팀을 구성하면서 NBA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밖에 도핑 테스트 도입, 1997년 전미 여자 농구 협회 창설, NBA 공식 사이트 및 TV 개설, NBA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허용, 글로벌 경기 송출 등 많은 업적을 이루어 냈다.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2014년에는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2016년에는 FIBA 명예의 전당에 입성되었다.
3. 사망
2019년 12월 13일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중태에 빠졌으며, 2020년 1월 1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기타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임시 구단주 자리를 맡은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