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닉스

 


[image]
'''뉴욕 닉스'''
'''New York Knicks'''
'''창단'''
1946년 (78주년)
'''연고지'''
뉴욕주 뉴욕 맨해튼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애틀랜틱 디비전
'''연고지 변천'''
뉴욕 (1946년~현재)
'''구단명 변천'''
'''뉴욕 닉스''' (1946년~현재)[1]
'''홈구장'''
구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 III, 1946년~1968년)[A]
69연대 무기고 (69th Regiment Armory, 1946년~1960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 IV, 1968년~현재)[A]
'''저지 스폰서'''
스퀘어스페이스 (Squarespace)
'''구단주'''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2]
'''사장'''
리온 로즈 (Leon Rose)[3]
'''단장'''
스캇 페리 (Scott Perry)
'''감독'''
톰 티보도 (Tom Thibodeau)
'''G 리그 제휴'''
웨스트체스터 닉스 (Westchester Knicks)
'''로컬 경기 중계'''
MSG Network
'''약칭'''
'''NYK '''
'''홈페이지'''

'''공식 SNS'''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2회)'''

'''1970, 1973'''
'''컨퍼런스 우승
(8회)'''

1951, 1952, 1953, 1970, 1972, 1973, 1994, 1999
'''디비전 우승
(8회)'''

1953, 1954, 1970, 1971, 1989, 1993, 1994, 2013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32''' - (1969-70시즌, 1992-93시즌 82경기 60승 22패)[4]
'''최저 승률'''
'''.207''' - (2018-19시즌, 82경기 17승 65패)
'''최다 승'''
'''60승''' - (1969-70시즌, 1992-93 82경기 60승 22패)
'''최다 패'''
'''65패''' - (2018-19시즌, 82경기 17승 65패)
'''최고 계약'''
'''$124,064,681''' - 2014년 카멜로 앤서니
'''팀 컬러 / 유니폼'''
[ 펼치기 · 접기 ]
'''팀컬러'''
<color=#1f2024> 파랑색 오렌지색 은색 검은색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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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ION'''
'''ICON'''
'''STATEMENT'''
City

1. 소개
2. 역사
2.1. 초창기~전성기
2.2.1. 강력했던 "유잉의 닉스"
2.3. 계속된 안습의 우승 도전기
2.4. 스캇 레이든-아이재아 토마스의 연쇄 테러
2.5. 도니 월시와 위닝팀으로의 복귀, 그리고 멜로의 시대
2.6. 2011-12 시즌
2.7. 2012-13 시즌
2.8. 2013-14 시즌
2.9. 2014-15 시즌
2.10. 2015-16 시즌
2.10.1. 프리시즌
2.10.2. 정규시즌
2.11. 2016-17 시즌
2.12. 2017-18 시즌
2.13. 2018-19 시즌
2.14. 2019-20 시즌
2.15. 2020-21 시즌
3. 영구결번
4. 2020-21 시즌 선수단
5. G 리그 산하팀
6. 기타
6.1. 연고지의 가치, '닉스 경기'의 특별함


1. 소개


'''뉴욕 닉스는 썩어버린 집단입니다!'''

'''썩어버린 집단은 내부에서 바꿀 수가 없어요!'''

- ESPN 해설가 맥스 켈러맨 (舊 닉스팬[5]

)

'''제발 한 번이라도!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정상적인 선택을 하란 말입니다!!!'''

- ESPN 해설가 스티븐 A. 스미스 (닉스팬)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맨해튼.
다른 메이저 스포츠인 MLB, NFL, NHL와 심지어 MLS에도 뉴욕의 이름을 쓰는 구단이 2개씩 있다.[6] 즉 다른 종목은 최대 시장인 뉴욕을 어떻게든 나눠가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NBA에서 뉴욕의 이름을 쓰는 팀은 닉스뿐이다.[7]즉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의 농구팬들을 독점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살리지 못하고 뉴욕 팬들에게 욕만 쳐먹고 있으니 안습.
사실 그 덕에 안습인 팀 성적에도 거의 매년 NBA 구단가치 1-2위를 찍고 있으니 뉴욕 프리미엄을 얻고는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뉴욕이 1위를 놓친건 이들이 사정없이 추락하고, 미국 제2의 시장인 LA 레이커스가 2년 연속 우승한 2000년대 후반 정도? 뉴욕 연고란 점 때문에 한동안 바닥을 기면서도 팀 연봉으로 1억 달러가 훌쩍 넘는 돈을 지불했던 적도 있으니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뉴욕 프리미엄과 높은 인기 덕분인지 닉스는 최근 성적이 바닥이지만 여전히 리그에서 가장 비싼 티켓 가격을 자랑하고 있다. 냉정히 말해 토론토나 멤피스 같은 곳에서 이 성적 냈으면 홀라당 말아먹기 딱 좋다. 게다가 한 두 해도 아니고 2000년대 들어 잠깐 잘하고 몇년 말아먹고, 또 아주 잠깐 잘하다 말아먹고를 반복하고 있다. 뉴욕이 아니었으면 벌써 장사 접고 연고지 이전했을 것.
닉스가 현재같은 위치를 갖고 있는건 연고지 빨이 크지만, 그 역사도 크다. 미국의 NBA팬들 대부분은 그냥 우리 동네에 팀이 있기 때문에 응원하는게 아니라 평생 응원팀을 바꾸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미국인들과 얘기할때 "What's your team"이라고 하면 지금 응원하는게 아니라 네가 계속해서 응원해온 팀이 어디냐는 소리. 물론 슈퍼팀 시절의 마이애미 히트나 4년간 3번 우승하던 시절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처럼 잘 나가면 단기간에 팬이 폭발적으로 늘지만, 이들 대부분은 잘 나가니까 갑자기 응원하기 시작한(영어로 jump on the bandwagon이라고 한다) 팬이라 성적이 떨어지면 쭉 빠지고,골수팬들은 팬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닉스는 NBA초창기 때부터 꾸준히 뉴욕에서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팀이다. 특히 현재 NBA 미디어에서 목소리가 큰 5~60년대 초반생들은 70년대 닉스의 황금기를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사람들이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그 다음 세대의 어린 시절엔 유잉의 닉스가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고작 몇년 전에 뉴욕에 자리잡고 별다른 황금기도 없던 네츠가 이런 위상을 가지려면 최소 십수년간은 꾸준히 강팀으로서 위용을 보여야 한다. 물론 슈퍼팀을 꾸리면 단기간의 인기는 누릴 수 있겠지만...게다가 뉴져지 시절에 길기 때문에 "브루클린 네츠"로서 이미지도 아직 희미한 편. 비록 안습인 기간이 너무 길긴 하지만 뉴욕 닉스의 역사와 이미지는 1,2년만에 세워진게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가 망할때도 충성스런 팬덤으로 이뤄진 이들의 지지가 강하듯이, 닉스도 아무리 망해도 강한 지지를 받는다. 물론 이와 별개로 밑에 나오는 것처럼 미친 티켓 가격이나, 망하는 팀 경기가 화려한 이벤트 취급받는거는 뉴욕+매디슨 스퀘어 가든 프리미엄이다. 포인트는 닉스가 뉴욕의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는데는 수십년에 걸렸으며, 새로운 팀 하나 이사왔다고 금방 바뀌는게 절대 아니란 것.
팀명인 닉스는 정식 명칭인 '니커보커스'(Knickerbockers) 의 줄임말이며, 네덜란드 출신의 뉴욕 이민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해당 명칭은 19세기 중반에 활약했던 야구팀의 이름이기도 하다.
홈구장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다.

2. 역사



팀의 43년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

2.1. 초창기~전성기


NBA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역사가 깊은 팀이며, 그런 만큼 리그 내에서 선구자이거나 역사의 현장에 등장하기도 한다. 1946년에 BAA의 원년 멤버로 창단하여 11월 1일에 토론토 허스키스[8]와 NBA 역사상 첫 개막전을 치렀다.[9] 창단 초기에는 딕 맥과이어와 해리 갈라틴을 축으로 1951년부터 3년 연속으로 파이널에 나갔으나, 밥 데이비스와 바비 완저의 로체스터 로열스에게 1번, '거인' 조지 마이칸의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에게 2번 무릎을 꿇고 말았다.
1956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건 단판제에서 패배한 뒤 10년동안 플레이오프 딱 한번 진출하면서 암흑기를 지냈으며, 특히 1962년 3월 2일 필라델피아 워리어스전 때 윌트 체임벌린의 100득점 달성의 희생양이 됐다. 다만 1964년 드래프트 때 무명대학 그램블링 스테잇 출신 윌리스 리드를 8번으로 뽑은 뒤 팀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1967년에는 레드 홀즈먼 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해 다시 본격 강팀으로 발돋움하게 되고, 이후 월트 프레이저의 급성장은 1969-70 시즌 뉴욕을 파이널로 이끌게 된다.
1970년 벌어진 파이널의 상대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엘진 베일러라든가 제리 웨스트, 그리고 특히 '''윌트 체임벌린'''은 우승 좀 해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10] 그리고 시리즈는 치열하게 진행되며 7차전을 향했다.
7차전을 앞두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분위기는 어두워져 있었다. 바로 팀의 정점인 윌리스 리드가 6차전의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출장을 못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것.
하지만 이 때, 뉴욕 팬들은 기적을 보게 되었다. 바로 그 '''윌리스 리드'''가 절뚝거리면서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던 것. 거기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 리드가 '''점프볼'''을 따내더니, 순식간에 4득점을 따내면서 뉴욕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광분, 아니 그 이상의 분위기로 치닫았다. 비록 리드는 이 4득점을 끝으로 경기장을 나갔지만 시작부터 기세를 잡은 뉴욕은 프레이저가 36득점을 뽑아내며 첫번째 우승을 이뤄낸다. 리드의 투혼은 '''The Jump'''라고 불리며 닉스팬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윌리스 리드는 사상 최초로 시즌 MVP-파이널 MVP-올스타전 MVP를 싹쓸이하는 대 업적을 세운다.
1971-72 시즌 다시 파이널에 올라 또다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맞붙었지만 이번에는 졌고, 1972-73 시즌에도 파이널에 올라 이번에도 또 상대는 레이커스. 이번에는 4-1의 스코어로 비교적 가볍게 잡아내며 두번째 우승을 이루게 되었고, 윌리스 리드는 다시 파이널 MVP를 탔다.
[image]
1970년대 초반 닉스의 황금기 멤버들, 이 사진의 6명은 감독까지 전원이 영구 결번되었다.
그러나 1974년에 '캡틴' 윌리스 리드가 무릎 부상으로 은퇴하고 프레이저도 점점 노쇠화하기 시작하면서 또다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고, 다시 기약없는 암흑기를 향해 걸었다. 1982년에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사들인 버나드 킹을 중심으로 플레이오프에 얼굴을 내밀긴 했지만 그가 온갖 말썽을 부리고 부상으로 신음했기에 예전처럼 주목할만한 팀은 아니었다. 1984/85 시즌에 킹의 오른쪽 무릎 인대가 찢어지면서 팀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2.2. 켠김에 조던까지


리드를 능가할 만한 리더를 찾던 닉스는 1985년 드래프트에서 1픽을 획득한 닉스는 당시 NCAA에서 4년간 조지타운 대학 농구팀을 우승 3번, 준우승 1번으로 이끈 '''패트릭 유잉'''을 지명해 숙원을 풀었다. 유잉을 중심으로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한 닉스는 1988-89 시즌 오랜만에 디비전 1위를 차지하는 등 다시 예전같은 강팀의 면모를 되찾기 시작한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단 하나 있다면, 당시 동부 컨퍼런스는 '''마이클 조던'''이 리그를 씹어먹을 포스로 날뛰고 있던 시절이라는 것. 결국 1989년, 1991년 플레이오프에서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만나 탈락했다.
1991년에 데이브 체키츠 사장이 어니 그룬필드 관리부장을 부사장 겸 단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룬필드 신임 단장은 '쇼타임 레이커스'를 만들어낸 팻 라일리를 모셔와 팀의 체질개선을 시도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유잉을 중심으로 끈적하기 이를데 없는 수비력을 위주로 하는 팀으로의 변화였다.
유잉을 필두로 존 스탁스, 찰스 오클리 등은 그야말로 깡패같은 수비를 선보이며 '''갱스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이렇게 변화된 팀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다시 조던에게 도전하지만 3승 4패로 1승이 모자라 또 미끄러지고 말았다.
1992-93 시즌, 라일리가 시도한 변화는 거의 완성되었고 닉스는 리그 최강의 수비팀으로 거듭났다. 이 시즌 구단 역대 최고승률이 60승 22패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성적 또한 57승의 불스보다 우위였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팀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또다시 조던의 불스에게 도전했지만 첫 2판을 잘 잡아놓고 4판을 내리 깨진 덕분에 2승 4패로 탈락했다.(...) 특히 2승 2패로 맞선 5차전 마지막 포제션에서 찰스 스미스가 2~3초를 남겨두고 연달아 골밑슛을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골수 닉스팬들에게 '망할 놈의 찰스 스미스'라고 까이고 있다.(...) 또 닥 리버스와 앤서니 메이슨, 존 스탁스 등 개인기가 뛰어난 이들이 플레이오프 들어 부담감 떄문에 유독 볼 핸들링이 좋지 않고 실책도 많아 닉스로서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래서 지금까지 조던에게 깨진 것만 해도 무려 '''4번'''이다. 안습. 이렇게 번번히 조던의 벽에 막혀서 좌절하나 싶더만...
드디어 하늘이 내리신 기회가 왔다! 1993-94시즌을 앞두고 조던이 은퇴를 선언한 것
이 시즌 57승으로 동부 컨퍼런스 2위를 차지한 닉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를 3승 1패로 격파했다. 닉스는 이어 조던이 없는 시카고와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차례로 4승 3패로 따돌려 정말 오랜만에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상대는 하킴 올라주원휴스턴 로키츠.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있던 닉스는 6차전 스탁스가 시리즈를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슛이 하필이면 올라주원의 새끼손가락에 걸려버리며 결국 7차전까지 끌고 가게 되고... 7차전에서 존 스탁스의 '''3점슛 11번 시도 0번 성공'''이라는 화려한 삽질 덕분에 통한의 준우승을 거두게 된다. 7차전 스코어가 90-84로 6점차 스코어였음을 감안하면 정말 '''안습'''.
1995년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는 인디애나와 만나 7차전까지 가서 졌다. 굳이 이걸 적은 이유는 이 시리즈의 1차전에서 일명 '''밀러 타임'''의 희생양이 됐기 때문. 자세한 것은 레지 밀러 참조. 밀러 타임을 끝으로 라일리는 계약기간을 1년 앞두고 지휘봉을 내놨다. 1995-96 시즌을 앞두고 후임으로 팻 라일리의 네임밸류에 뒤지지 않는 명장 돈 넬슨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라일리 밑에서 오랫동안 농구를 해왔던 선수들은 그와 확연히 다른 스타일인 넬슨의 시스템에 좀체로 적응하지 못했고, 결국 감독과 선수들간의 불화가 생겨 힘겨운 시즌을 치러야 했다. 게다가 전 시즌까지 주전 스몰포워드였던 찰스 스미스를 벤치로 내리고 앤서니 메이슨에게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기며 오펜스의 코어로 삼자 롤이 줄어든 다른 선수들의 반발을 샀으며, 이 와중에 당시 닉스의 부동의 주전 슈팅가드였던 존 스탁스마저도 벤치로 내려앉히고 휴버트 데이비스를 주전으로 대신 기용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무브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구단에 샤킬 오닐을 영입하기 위해 패트릭 유잉을 트레이드시키자고 했다가 구단에서마저 찍히는 바람에 결국 돈 넬슨은 단 한 시즌도 채우지 못하고 34승 25패를 기록한 시점에서 시즌 도중에 경질되고 말았다. 후임으로는 어시스턴트 코치였던 제프 밴 건디가 새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 해 플옵 2라운드에서 '''또''' 조던의 불스에게 깨졌다. 다행(?)인건 조던한테 깨지는건 이게 끝이다.
조던은 두번의 은퇴가 있어서 불스에서의 커리어가 13시즌에 그쳐 13번 플레이오프 진출에 그쳤다는 것, 게다가 조던과 유잉의 커리어 초창기에는 두 팀 다 약팀이라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연례행사급으로 붙고, 깨진 셈이다. 조던과 유잉으로 치면 둘이 처음 붙은 89년부터 조던이 은퇴하던 98년까지 십년간 딱 절반인 5번 붙어 유잉이 전패, 그 중 두 번(89년, 93년)은 정규시즌 성적이 더 좋았음에도 업셋당했다. [11]
그러나 분명한 건 피스톤즈가 성장중인 불스의 가장 큰 장벽이었다면, 왕조 불스의 가장 큰 적은 닉스였다는 것이다. 92년에는 최전성기 불스를 7차전까지 물고늘어졌으며, 93년에는 조던을 야투율 4할에 그치게 철저히 수비해주며 심지어 첫 두 경기를 따내기까지했다. 96년에도 비록 1승4패에 그쳤지만 동부에서 불스에게 유일하게 승을 따낸게 바로 뉴욕이었다. 심지어 60승을 한 올랜도도 스윕당한 마당에. 게다가 4차전 역시 패했지만 웨닝턴의 위닝샷으로 겨우 이길만큼 혈전이었다. 게다가 조던이 은퇴한 94년엔 드디어 복수에 성공하며 파이널 진출.
만약 97년에 난투극이 일어나 유잉을 포함한 양팀 선수들이 집단으로 징계당해 시리즈 전적에서 밀리던 마이애미 히트가 역전하지 않았더라면 동부 파이널에서 다시 불스와 명승부를 펼쳤을 것이다. 당시 닉스는 조던을 괴롭힐 수 있는 운동능력과 체력을 지닌 맨투맨 수비수 (존 스탁스)와 조던의 가장 큰 무기인 돌파를 힘들게 만드는 피지컬한 수비수 (찰스 오클리)와 강력한 블러커까지(패트릭 유잉은 한때 시즌 평균 블럭 4개까지 했다) 있었으며, 자비에 맥대니얼스나 앤서니 메이슨같은 터프가이들도 그를 괴롭혔다. 심지어 92시리즈에서 닉스의 주전 가드로 출장하며 조던을 막은 (아직 스탁스는 후보였다) 제럴드 윌킨스는 93시즌에 마찬가지로 조던에게 매번 깨지던 캐브스가 아예 조던에 대한 대항마로 데려가서 꽤나 괴롭혔다. 물론 괴롭혔다뿐이지 결국 불스가 캐브스를 스윕해버리지만...또한 당시 불스가 가장 약한 것이 운동능력과 기술을 겸비한 센터였는데, 93 동부파이널에서 유잉은 25.8점 11.2리바운드, 비록 1승밖에 못했지만 96 2라운드에선 23.4점 11.2리바운드로 좋은 활약을 했다.
97 동부 파이널 당시 알론조 모닝은 불스를 상대로 평균 15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모닝은 센터치고 단신이라 로드맨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고 롱리와는 사이즈 차이가 너무 커 부담스러워했다. 만약 35세의 나이로 올 NBA 세컨드 팀에 오르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던 유잉이라면 불스를 더욱 괴롭혀줄 수 있었을 것. 유잉은 중거리 슈팅력과 다양한 득점기술이 있는 센터라 로드맨이 막기는 무리였으며, 롱리가 1인치 크다곤 하나 어차피 파워, 기동력, 기술, 농구센스 모두 유잉이 압도적인 우위라 별 위협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2.2.1. 강력했던 "유잉의 닉스"


"조던의 불스"에게 5전 전패란 기록이 커서[12] 안습 이미지가 크지만 사실 유잉이 이끌던 닉스는 매우 강력한 팀이었다. 닉스가 역사상 55승을 넘은 적이 5번인데 그 중 세번이 90년대란 점, 그리고 역대 최고 승수인 60승을 기록한게 우승시즌인 69-70시즌과 더불어 92-93시즌이란 점, 닉스가 우승을 차지한 70년대엔 절대강자가 없이 전력이 평준화된 춘추전국시대였다는 점, 90년대 닉스의 앞을 가로막은 팀이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인 마이클 조던의 불스란 점을 생각하면 패트릭 유잉이 이끌던 닉스가 팀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고 주장해볼 수도 있다.
유잉의 입단 직전에 팀을 이끈 건 84-85년 득점왕 버나드 킹이었다. 그러나 킹과 유잉의 막강한 인사이드-아웃사이드 듀오는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데, 85시즌 막판에 킹이 당시까지 아무도 복귀한 적이 없었던 끔찍한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13] 킹은 87시즌 후반에 잠깐 복귀했지만 이미 전성기 기량을 잃은 후였고[14] 87시즌 후반엔 유잉이 부상으로 아웃되었기 떄문에 결국 둘은 한 경기도 같이 뛰지 못했다.
유잉은 입단과 동시에 에이스가 되었지만 초창기 닉스는 실력있는 선수도 없는데다가 2년차 때 휴비 브라운 감독이 경질되고 복귀한 센터 빌 카트라이트를 활용하기 위해 유잉이 파워포워드로 출전하는 등 정리가 하나도 안된 상태였다. 즉, 딱히 팀 색깔이라고 할만한게 없었다.
이런 상황을 타파한 것은 바로 87년 부임한 릭 피티노, 그리고 이 해에 드래프트된 센스 넘치는 루키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이었다. 대학 무대에서 이미 상당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다가 프로에 첫 발을 딛은 피티노는 팀을 전반적으로 정비했고, 카트라이트를 벤치로 내리고 전반적으로 로스터를 정비한다. 특히 마크 잭슨은 루키임에도 무려 10.6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는데, 이런 잭슨의 재능을 믿고 피티노는 다음 시즌 빠른 페이스를 하게 된다. 88-89시즌에 닉스는 공격페이스가 리그 3위, 평균득점이 5위였다.[15] 이 시즌 닉스는 52승으로 무려 18년만에 디비전 우승을 거두었고 2라운드까지 올라갔지만, 6번시드였던 조던의 불스에게 업셋당하고 만다.[16]
그러나 피티노가 89년 시즌 후 사임하고 후임 스튜 잭슨 밑에서 90, 91시즌 연속으로 실망스런 결과를 보게 되고, 잭슨은 91시즌 도중 경질, 닉스는 1라운드 탈락에 그친다.
유잉 시절의 닉스가 확고한 색깔을 갖게 된 건 위에 언급됐다시피 91-92시즌을 앞두고 팻 라일리를 영입하면서부터. 이런 수비위주 농구는 제프 밴 건디 시절 초반, 정확히 말하면 유잉이 아직 위력적이던 97, 98시즌 정도까지만 해도 유지되었는데, 유잉의 기동력이 크게 느려지던 99시즌에 마커스 캠비, 래리 존슨, 라트렐 스프리웰, 앨런 휴스턴 등 젊고 빠른 선수들로 팀의 중심이 옮겨지면서 유잉의 입지가 좁아지게 된다.
유잉 시절 닉스는 (시즌별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폭발적인 공격력은 없는 반면 유잉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씩 득점을 넣어줄 수 있는 롤플레이들로 떼우는 수준이고, 수비로 상대를 박살낸다. 이 시절 가장 강력했던 92-93시즌 로스터를 보면 평균 24점을 올린 유잉 다음으로 득점 2위가 17점을 넣은 존 스탁스, 그 다음은 12.4점을 넣은 찰스 스미스, 10점 넣은 앤서니 메이슨로 두 자리수 득점원은 이게 끝이다.[17] 파이널에 오른 93-94시즌은 2위 스탁스가 19점, 3위 찰스 오클리가 11.8점이고 5점 넣던 벤치플레이어 앤서니 보너를 제외하면 '''필드골 5할 넘는 선수가 없다'''. 당시 닉스 경기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찰스 스미스나 오클리는 자기만의 고투무브나 1대1 득점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스탁스는 기복이 있었다. 94파이널 당시 유잉의 부진이 컸던 건 유잉 외에 딱히 고득점을 넣어줄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8] 공격 수치상으로 보면 팀을 혼자 이끌던 시절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한심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우승후보로 군림한 건 이들의 막강한 수비력 덕분이었다. NBA 수비 트렌드는 90-91시즌에 플래그런트 파울 처벌 규정이 대폭 강화됨에 따라 80년대 피스톤즈같은 육탄수비가 막혔는데, 팻 라일리 지휘 하에 닉스는 룰의 한계까지 몰아붙히는 매우 거칠고 피지컬한 수비를 했다. 외곽에서 닉스 가드들, 그리고 떡대로 유명한 자비에 맥다니엘스 등은 당시 규제되지 않던 핸드체킹을 적극 활용해 조던같은 선수들을 손을 쓰며 체력을 소모하게 했으며, 돌파시 찰스 오클리, 앤서니 메이슨 같은 떡대들이 거칠게 몰아붙히고, 이들을 전부 다 뚫으면 골밑에선 패트릭 유잉이 끝판왕처럼 버티고 있었다. 즉, 라일리가 짜놓은 수비진은 돌파형 외곽 선수들에겐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94년에 NBA는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핸드체킹룰을 규제하는 1차 개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후로 예전만큼 피지컬한 수비는 못하게 됐지만 닉스는 강력한 로테이션을 이용한 트랩 수비나 기본적으로 뛰어난 수비력으로 위용을 유지했다. 다만, 아무래도 예전만큼 외곽 선수들을 잡아먹는 수준은 아니었는지 96년 플레이오프에선 전성기가 지난 조던이 오히려 평균 36점, 야투율 44.2%를 기록했다. [19] 대신 공격진 강화를 위해 앨런 휴스턴, 래리 존슨 등을 영입하며 서서히 색깔 변화를 시도한다. 사실 95-96시즌도 원래 돈 넬슨 감독을 영입하며 팀 색깔을 변화하려 했으나 이 양반이 유잉을 트래이드하자는 등 너무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는 바람에 해고, 라일리의 어시스턴트 코치이던 밴 건디가 나머지 시즌을 임시로 치르면서 (다음 시즌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 색깔이 유지된 것이다. 즉, "막강한 수비와 대충 때우는 수준의 공격으로 진흙탕 농구를 만들어 상대를 질식시키는" 닉스 특유의 농구 스타일은 91-92시즌부터 95-96시즌까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96-97시즌에도 닉스는 예전과 동일하게 로우페이스 수비위주 팀이었지만, 바뀐 룰과 멤버 구성 등으로 이전까지 이들의 투박하지만 강력한 모습과는 달랐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게 주전에서 식스맨으로 내려간 존 스탁스.[20]
위에 언급된 리즈 시절 닉스는 '''투박하고 거칠었지만 매우 강력했다.''' 이 팀의 방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마크 잭슨을 91-92시즌 후 트래이드한 것인데, 당시 27세로 전성기였고 이후에도 준올스타급 커리어를 보낸 선수를 하락세가 완연한 닥 리버스와 롤플레이어인 찰스 스미스를 받아온 것이다. 이후 닉스는 유잉이 팀을 떠날 때까지 존재감 있는 포인트가드가 사실상 없었다. 리버스는 80년대엔 좋은 선수였지만 트래이드되기 전 클리퍼스 시절부터 이미 벤치롤로 내려앉았고, 94-95, 95-96시즌 풀타임 주전이었던 데릭 하퍼는 과거에 훌륭한 선수였지만 전성기가 90년대 초반에 끝난 선수였다. 그리고 잭슨 트래이드 이후 두 시즌간은 리버스, 하퍼, 그렉 앤서니가 로테이션으로 주전 PG로 뛰었다. 그 이후 세대의 크리스 차일즈나 찰리 워드까지도 닉스의 리딩가드는 그야말로 때우는 수준이었다. 당시 뛰어난 리딩가드가 없는 팀이 우승후보가 되는건, 시카고 불스의 트라이앵글처럼 확실한 공격 시스템과 사기급 공격무기(조던)가 없는 이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닉스는 그 이상으로 상대팀 공격을 망가뜨리는데 능했다. 닉스의 발빠르고 운동능력 뛰어난 가드진은 앞선에서 괴롭혔으며, 힘 좋고 터프한 포워드들 (오클리, 메이슨)은 몸으로 대화를 하며 골밑과 외곽을 오가며 선수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이들을 다 뚫고 나면 막강 수비수 패트릭 유잉이 골밑에서 반겨주었다.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2020년 현대까지 꾸준히 공격수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룰 개정이 이뤄져서 현대 기준으로는 당시 닉스를 상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운데, 이 팀을 상대한다는건 일단 육체적으로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작고 재빠른 스탁스가 손으로 밀고 당기는 걸 제치면 오클리가 육중한 몸뚱이를 들이댄다. 골밑에서 신체접촉도 현재보다 훨씬 신체접촉에 관대했던 만큼 더 거칠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진흙탕 농구의 끝판왕이 바로 닉스였다. "우리도 못 넣지만 니들은 더 못 넣는다!"로, 이러는 사이 리그 내에서 손꼽히는 빅맨 득점원인, 닉스에서 유일하게 잘 넣는 선수인 유잉이 꾸준히 득점해주는 것. 이로 인해 닉스는 득점을 뻥뻥 올리며 상대를 안드로메다 관광 보내는 경우는 많이 없었지만 (그러기엔 공격력이 빈약했다), 반대로 한 수 위인 상대를 만나도 결코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실제로 95년 플레이오프 당시 1라운드에서 3승 1패로 쉽게 올라간 이후, 7차전-7차전-7차전으로 당시만 해도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 경기수인 25경기를 치렀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엔 골밑이 빈약하고 빠른 페이스로 공격 농구를 하는 공격올인팀들이 유독 서부에 몰려있었는데 [21] 이 팀들의 하드카운터로 작용할 팀이 바로 닉스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애틀은 94시즌 무려 63승이나 거둔 서부 1위인 막강 로스터였음에도 이들을 상대로 평균 6.8블럭을 기록한 디켐베 무톰보의 덴버를 만나 1라운드 탈락했다. 그런데 (비록 골밑 존재감은 무톰보만 못하지만) 유잉 외에도 뛰어난 수비수들이 있고 전체적인 전력은 월등한 닉스라면 훨씬 더 유리하다. 또한 시애틀의 특기인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는 조던처럼 외곽 선수를 괴롭히는데는 최고지만 골밑 매치업이 박살나는 상황에서 유잉을 막는건 역부족이다. [22][23] 게다가 선즈는 팀내 최장신이 208cm였고, 이들이 내세운 마크 웨스트나 올리버 밀러라면 유잉 입장에선 우스운 상대였다. 안타까운 점은 닉스가 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정작 이들이 파이널에 올라갔던 94,99시즌엔 각각 시즌 중 서부 최강의 골밑존재감을 지녔던 로키츠와 스퍼스를 만났다는 것이다.[24]

2.3. 계속된 안습의 우승 도전기


1996-97 시즌을 앞두고 오프시즌에 앨런 휴스턴과 크리스 차일즈, 벅 윌리암스 등을 FA로 영입했고, 트레이드로 래리 존슨 등을 영입했으며, 신인 지명에서도 시라큐스의 영웅 존 월라스와 켄터키 듀오인 월터 매카시, 단테 존스[25]를 지명하며 순식간에 전력이 급상승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72승을 기록한 불스, 마찬가지로 시즌 초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승수를 쌓은 마이애미 히트와 더불어 동부의 3강을 형성하였으며 60승 달성이 가능한 페이스로 달려나갔다. 비록 정규시즌의 마지막 달인 4월에 주전들의 잔부상으로 하위팀에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57승에 그치긴 했지만, 이나마도 지금 현 시점까지 닉스는 정규시즌 57승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이 시즌의 닉스는 그 불스와도 정규시즌에서 4차례 만나 2승 2패로 호각을 이뤘으며, 그 2패조차도 각각 1점차, 2점차 패배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불스의 2년 연속 70승 달성 여부가 달려있었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종료 40여초를 앞두고 존 스탁스의 결정적인 3점슛으로 불스에 패배를 안기며 불스는 이 시즌 69승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모든 농구팬들이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만날 불스와 닉스의 진검승부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닉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에 일격을 당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그 과정이 참으로 안습인데 해당 시즌 61승을 거둔 히트가 시드에서는 57승의 닉스보다 앞서긴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앞서 서술했듯이 불스와도 호각을 이룬 닉스쪽이 한 수 위였다. 그리고 실제로 4차전까지 닉스는 히트를 시리즈스코어 3승 1패로 압도하며 히트보다 한 수 위의 팀이라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그런데 5차전에서 히트의 PJ 브라운이 경기도중 닉스의 찰리 워드를 소위 풍차들리듯이 플로어에 메다꽂아 난투극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패트릭 유잉, 래리 존슨, 앨런 휴스턴, 존 스탁스 등 주축선수들이 죄다 출장정지 처분을 받고 말았다. 싸움 당사자인 워드도 한 경기, 싸움을 시작한 브라운은 두 경기 징계. 우스운 것은 이들이 난투극 가담이 아닌, 난투극을 말릴 의도라도 벤치에 앉은 선수가 벤치를 이탈했을 때 출장정지를 받게 된다는 규정에 걸려버린 것. 반면 히트는 가해자인 PJ 브라운만 출장정지를 받고 나머지는 전력 누수가 없었다. 당해 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징계였으며, 심지어 모든 선수가 6차전을 결장하면 닉스는 "최소 9명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 뛸 수 있어야한다"는 NBA규정을 못 지킬 판이었으므로 일단 유잉,휴스턴, 워드는 6차전 결장, 나머지 두 선수는 7차전을 결장하게 됐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뿐이지 규정상으로 이상한 건 아니었다. NBA는 싸움이 일어났을 시 벤치를 이탈한 선수에게 무조건 1경기 출장정지를 내린다. 공교롭게도 닉스의 주축선수들이 그 순간 모두 벤치에 앉아있었던 것이 불운했을 뿐. 사실 당시 싸움에 적극 참여한 선수는 워드 뿐이었고 유잉은 무심코 벤치에서 일어나 지켜봤을 뿐 싸움에 끼지도 않았고 래리 존슨은 적극적으로 말렸다. 이 때문에 선수노조에서는 징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항의했다. 심지어 당시 유잉은 달려나가려다가 동료 벅 윌리엄스가 급히 붙잡고 "안돼! 여기 있어"라고 해서 뛰어나가지도 않았는데도 벤치공간을 이탈했다고 칼같이 징계를 내린 것.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는 여기서 볼 수 있다. #. 이 때문에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물론 브라운도 히트에서 중요한 선수긴 하지만 닉스는 팀 내 기둥인 유잉을 포함해 너무 많은 전력 누수가 있었기 때문. 6차전은 닉스 입장에선 도저히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경기였고,[26] 7차전에서도 스탁스와 존슨이 빠진 전력 공백을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당시 스탁스와 존슨은 7차전 or 닉스가 시리즈 승리시 다음 라운드 시카고와의 1차전을 결정하는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둘 다 7차전 결장을 택했다. 두 선수 없이도 히트와 해볼만한 전력이었고, 어차피 우승을 노리는 팀이니 최강 불스와는 풀전력으로 붙고 싶었던 듯. 그러나 한풀이를 하려는 듯 무려 63%야투율로 37점 17리바운드를 퍼부은 유잉, 25점을 곁들인 휴스턴의 활약에도 나머지 선수들이 전부 한자리수 득점에 그치는 (전부 합쳐서 28점) 부진과 더불어,상대팀 히트에선 3점슛 6개를 포함해 38점을 퍼부은 팀 하더웨이의 활약 등으로 결국 패하고 만다.
결국 주전들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닉스는 5차전을 내준데 이어 6, 7차전까지 허물어지며 3승 4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시리즈가 종료되고 유잉은 NBA 사무국이 내린 징계의 형평성을 언급하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일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규정이 강화되는데 한몫한게 바로 닉스였다는 것. NBA는 집단 난투극이 잦아지자 싸움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규정을 강화했는데, 결정타로 작용한 싸움 중 하나가 바로 94년 닉스와 불스의 집단 난투극이었다. 당시 시카고에서 열렸고, 닉스-불스 라이벌리의 절정에서 데릭 하퍼와 조조 잉글리쉬로 시작된 싸움에는 엄청나게 많은 선수들이 얽혔는데, 문제는 이게 관중석까지 번졌다는 것. (물론 선수들이 팬들과 싸운 건 아니고 싸우다 관중석까지 밀려난 것) 심지어 직관하러 온 데이빗 스턴 총재는 불과 몇 미터 밖에 있었다. 졸지에 팬들에게 경기 보러 왔다가 험한 꼴을 보게 한 NBA는 강경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의 영향은 아니지만 이듬해부터 NBA는 핸드체킹 금지룰과 3점슛 단축, 노차징 존 등을 공격권장룰을 여럿 도입해 점점 덜 피지컬하고, 공격위주 농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한다. 여담이지만 도입 직후엔 오히려 역효과로 인해 90년대 중후반엔 거의 사상 최악의 느린 페이스 농구가 펼쳐진다. 심지어 3점슛 라인 단축은 세 시즌만에 폐기.
그렇게 닉스를 물리치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히트는 모두의 예상대로 불스에 힘 한번 못쓰고 탈탈 털렸고[27], 닉스와 불스의 진검승부 꿀잼 시리즈를 기대한 농구팬들에게 허탈함을 안겨줬다.
이듬해인 1997-98 시즌은 유잉을 4년 FA 계약으로 잔류시키고, 전 시즌과 이번 시즌에 뽑은 신인급 유망주들을 모조리 포기하며까지 즉시전력감 크리스 더들리와 크리스 밀즈를 영입했다. 전년도 불스와 호각을 이룬 전력을 온전히 보존한 채로 팀의 뎁스를 더하자 이 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는 우승 예상팀으로 2년 연속 디펜딩 챔피언인 불스가 아닌 닉스를 꼽았을 정도로 이 시즌 닉스의 전력은 엄청나게 좋았다. 하지만 시즌이 개막하고 1/3정도 지난 시점에서 유잉이 전치 6개월자리 손목 골절로 시즌아웃 되어버렸고, 닉스의 우승 도전은 언감생심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플옵 1라운드에서 전년도에 척을 진 히트를 만나 난투극까지 불사하며 유잉 없이도 히트를 물리치는 업셋을 달성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1998-99 시즌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이른바 '''8번 시드의 기적'''을 일으키며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하필이면 유잉이 인디애나와의 컨파 도중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상대는 왕조의 기반을 닦아가고 있던 서부 최강 샌안토니오 스퍼스... 새롭게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앨런 휴스턴라트렐 스프리웰로 이루어진 일명 '트윈 테러'가 분전하긴 했지만[28] 시리즈 스코어 1승 4패로 패배, 기적은 준우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1999년, 유타 재즈 부사장이던 스캇 레이든[29]이라는 인물이 팀의 단장으로 부임한다. 그리고.....

2.4. 스캇 레이든-아이재아 토마스의 연쇄 테러


레이든 단장은 일단 첫시즌엔 딱히 나쁘진 않았다. 라트렐 스프리웰에게 5년 62m에 달하는 계약을 안겨주긴 했지만 뭐 당시엔 나쁘지 않은 무브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시즌도 비록 2년 연속 파이널 진출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호성적을 거두었다.
그런데, 다음 시즌인 2000-01 시즌을 앞둔 2000년 9월 20일... '''패트릭 유잉을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이 소식에 뉴욕 팬들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잉이었다. 뉴욕의 '''심장'''이라 불리던, 그 유잉을 리빌딩이란 명목으로 트레이드 시켜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서라도, 유잉을 트레이드시키며 제대로 받아온게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뭔가 많이 받아오긴 했는데 그 중 대다수가 전력보탬과는 거리가 먼 선수들이었다. 이 트레이드는 닉스 외에도 시애틀 슈퍼소닉스, LA 레이커스, 피닉스 선즈, 이렇게 4팀이서 신인 지명권을 포함해 무려 16명의 선수가 낀 초대형 트레이드였는데, 유잉을 보낸 대가로 받아온 선수들 중 그나마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은 왕년의 슈퍼스타였던 글렌 라이스, 한때 시카고 왕조의 주전 센터로 유명했던 룩 롱리, 94-95년 휴스턴 로키츠의 2연패 당시 주전 슈팅가드로 활약한 버논 멕스웰, 그리고 96 드래프트 출신으로 레이커스의 백업 센터를 맡았던 트레비스 나이트 정도였다.
일단 글렌 라이스는 전성기 시절 슈퍼스타였지만 닉스로 이적할 당시엔 이미 33세로 전성기를 지나 평범한 선수가 돼 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미 닉스엔 라트렐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라이스는 벤치 멤버로 출전해야만 했다. 결국 닉스에서의 첫 시즌은 화려했던 호네츠 시절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인 평균 12득점을 기록하고 시즌 후 바로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됐다.[30] 룩 롱리는 어차피 커리어 내내 평범한 센터였고 시카고 시절 반짝 잘해서 거액 장기계약을 맺었지만 불스를 떠난 직후 제 실력이 들통난,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였다. 거기다 은근히 부상이 잦은 데다 이미 서른을 넘겨 더 이상 성장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닉스에선 왼쪽 발목부상에 시달리며 한 시즌만 치른 후 은퇴했는데, 25경기밖에 못 뛰면서 평균 2득점(...)을 기록했다. 트래비스 나이트는 그나마 26세로 젊은 편이었지만 직전 시즌에 평균 1.6득점을 넣는 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닉스에서도 평득이 2점을 넘긴 적이 없었다. 버논 맥스웰의 경우 시애틀에서 부상을 당한 이후 완전히 맛이 가서 전력 외로 분류된 상태였고, 닉스로 이적해서는 프리시즌 도중 방출될 정도로 몸상태가 좋지 못해 결국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닉스를 떠났다.
결론적으로 이 트레이드를 통해 닉스가 얻은 건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 15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잉의 거대계약을 처리한 것? 어짜리 라이스, 롱리, 나이트 셋의 연봉만 합쳐도 유잉이 받는 돈과 똑같았다. 애초에 NBA는 양 측의 연봉 총액이 맞아야 트레이드가 성립한다. 예외규정도 있지만... 굳이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자면 라이스와 유잉의 해당 시즌 활약이 대동소이했으므로 백업 센터 두 명을 추가로 얻은 것 정도? 그러나 이 나이트, 롱리의 활약은 민폐에 가까웠으므로 이조차도 득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유잉을 트레이드하면서 뉴욕 팬들의 마음에 엄청난 스크래치를 남긴 것에 비하면 웬만큼 좋은 선수를 데려오지 않고서야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근데 정작 데려와서 한 번이라도 써먹어 본 건 과거만 화려한 평범한 스윙맨 하나에 폐품급 센터 둘이니... 게다가 유잉을 보내고 받아온 1라운드픽 2개는 전성기가 한참 지난 마크 잭슨과 그저그런 백업 센터였던 오델라 해링턴을 영입하는데 날려먹고 말았다. 그리고 뉴욕은 유잉이 떠난 이후 10년을 넘도록 50승을 넘기지 못하다가 2012-13 시즌에서야 50승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즈에서 2005년에 낸 기사에 따르면, 당시 뉴욕이 유잉을 트레이드한 것은 유잉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감독인 제프 밴 건디가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고... 결국 뉴욕 입장에서는 떠날 게 뻔한 선수를 급하게 보내려다 보니 별 방법이 없었던 걸 수도 있다. 관련 기사 다만 기사에도 약간 언급되어 있듯이 유잉이 떠난 이유가 닉스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기보다는, 챔피언십을 따내지 못해 받는 비난과 떨어지는 기량 탓에 팀 기여도는 점점 낮아지는 등, 이런저런 주변 환경 탓에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마지못해 떠나고 싶어했다는 쪽이 더 맞는 듯. 먼 훗날 유잉이 이 시기를 회고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트레이드를 요구한 걸 나중에 후회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닉스에서 은퇴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후회된다고.
그렇게 유잉 없이 맞이한 2000-01 시즌. 유잉이 이탈하고, 오프시즌 FA 최대어 중 하나였던 브라이언 그랜트를 라이벌 마이애미 히트에 뺏기는 악재가 있긴 했지만, 기존 멤버들은 건재한데다 유잉 대신 얻어온 글렌 라이스가 라트렐 스프리웰, 앨런 휴스턴과 트리플 테러를 구축했다. 게다가 제프 밴 건디 감독의 수비전술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연속경기 두자리수 실점 기록을 이어가는 등, 유잉이 빠져 빈약해진 프론트코트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선전하며 전 시즌보다 고작 2승만 줄어든 48승 34패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난 토론토 랩터스에 일격을 당해 10년만에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의 결과를 맞았다. 늘 플레이오프 2라운드 이상이 기본이었던 닉스의 조기 탈락이야말로 앞으로 닉스가 겪을 기나긴 암흑기의 전조와도 같았다.
2001-02 시즌 전 래리 존슨과 급작스럽게 이별했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 때문에 더 이상 제대로 뛰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고 잔여연봉 지급을 조건으로 바이아웃했다. 이미 예정된 결별이었는지 존슨을 방출하기 전에 파워포워드 클라렌스 웨더스푼을 5년 계약으로 잡았고, 앨런 휴스턴은 무려 6년 100m이라는 초 거대 계약으로 잔류시켰다. 휴스턴이 그 시점에서 뉴욕의 간판스타이긴 했지만, 그제껏 평균 20득점 한번 넘어본 적이 없는 선수에게 총액 100m의 계약은 너무한거 아니냐는 여론이 대세였다. 결론적으로 이게 본격적인 닉스 잔혹사의 서막이 되었다.
2001-02 시즌 초반 제프 밴 건디가 스스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전 시즌보다 현저히 약해진 로스터를 이끌면서도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며 선전하던 와중이었으나 본인은 더 이상 뉴욕 감독직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며 사임하였다. 어시스턴트 코치인 돈 체니가 감독직을 물려받았으나 연패를 거듭하며 최종 성적 30승 52패로 디비전 꼴찌와 더불어 14년만의 플레이오프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마커스 캠비와 마크 잭슨, 7순위 드래프트 픽으로 뽑은 브라질 선수 네네 힐라리오까지 얹어주며 덴버로부터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영입했다. 그 시점에서 맥다이스는 분명 올스타급 파워 포워드이긴 했으나, 직전 시즌 무릎 부상으로 10경기 출전에 그친 상태라 몸상태에 의문부호가 붙어있었다. 결국 우려대로 두 번째 시범경기에서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해 그대로 시즌아웃되었다.(...) 전 시즌과 별반 다르지도 않은 성적으로 역시나 플레이오프 탈락.
2003-04 시즌을 앞두고 수비형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했고, 라트렐 스프리웰을 포기한 댓가로 키스 밴 혼을 얻어오는 등 선수 구성에 나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역시나 성적은 초반부터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했고, 가까스로 재활에서 복귀한 맥다이스가 올스타 기량을 완전히 잃어버린채로 롤플레이어 수준의 활약에 그치는 등 악재가 거듭되자 '''그간 수많은 삽질을 거듭한 레이든은 결국 짤렸다.''' 역대급이라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9순위 지명권으로 마이크 스위트니(NBA에서 4시즌을 뛴 후 은퇴했으며 그중 뉴욕에서 2시즌 통산 43게임 830득점 기록)를 지명하는 대형 삽질이 그의 마지막 작품과도 같았다. 이 드래프트는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가 나온 그 드래프트이다. 사실 진정한 패자는 2순위 다르코 밀리시치를 지명한 디트로이트다. 9순위 뉴욕의 스위트니도 망한 지명으로 볼 수 있지만 후순위면서 주전급으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지는 않다. 후순위자들 중 주전급으로 성장했던 선수는 데이비드 웨스트(18픽), 조시 하워드(29픽), 모 윌리엄스(47픽), 카일 코버(51픽) 정도였다.
후임 단장으로 임명된 게[31] 바로 아이재아 토마스. 토마스는 당당하게 레이든의 '잔재'들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고, 감독을 바로 뉴욕 출신의 명장 레니 윌킨스로 교체했다. 그 후 브루클린 출신의 스테판 마버리를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팀을 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당시만 해도 토론토 단장과 인디애나 감독으로 성과를 낸 실적이 있는 토마스에 대한 지지는 높았다. 심지어 당시 우리나라 농구 월간지에서도 '일 잘하는 단장이 팀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격찬했을 정도였고, 설마 토마스가 삽질을 해봐야 레이든보다는 나을꺼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후 닉스가 맞이한 것은 레이든보다 더한 재앙 그 자체였다.'''
토마스는 이후 계속되는 삽질을 통해 레이든의 잔재를 치우긴 커녕 '''그 위에 거대한 똥덩어리를 끼얹어 버린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무브를 계속하는 통에 팀의 샐러리는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었고, 로스터는 망가졌으며 닉스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토마스의 이해할 수 없는 무브는 이듬해 오프시즌부터 바로 나타났다. 시카고 불스로부터 자말 크로포드를 영입해 온 것이다. 이미 팀에는 앨런 휴스턴과 스테판 마버리, 페니 하더웨이 등 공격형 가드가 많은데도 여기에 또 공격형 가드를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맞이한 2004-05 시즌, 전 시즌보다 퇴보한 모습으로 레니 윌킨스는 시즌 도중 경질을 당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33승 49패로 역시나 플옵 진출에 실패.
2005-06 시즌을 앞두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5년 50m이라는 초 거대 계약을 안겨주며 감독으로 선임했고, 시카고 불스로부터 에디 커리를 영입하며 기대감을 안겼다. 지금은 먹튀와 조롱의 대명사가 된 커리이지만 당시만 해도 심장에 관련된 메디컬 이슈를 제외하면 매우 전도유망한 센터였고 실제로 닉스에서도 2년차까지는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 닉스가 1라운드 픽을 2개나 포기해 가면서도 자신있게 커리를 영입한 이유가 저 1라운드픽 2개로 커리를 능가할 선수는 뽑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였다. 물론 이는 나중에 엄청난 패착이었음이 드러나지만.[32] 더불어 역대 최고의 먹튀로 빠지지 않는 제롬 제임스를 5년 계약으로 영입한 것도 이 시점이었다.[33]
그러나 애시당초 로스터 자체가 빈약해 래리 브라운조차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마버리같은 스타일과 상극이던 브라운 감독의 성향상 더더욱 힘든 부분이 있었다. 결국 23승 59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브라운 감독은 한 시즌만에 해고가 되었다. 사임이 아닌 해고라서 퇴직금(?) 40m은 고스란히 챙겨가셨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실제로 잔여 연봉 전액이 아닌 18.5m을 지급받는 조건으로 해고를 수용했다. 그래도 딱 1년 감독을 하고 무려 28.5m을 챙긴 셈이니 지금 시점에서 봐도 엄청난 거액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다음 2006-07 시즌부터는 '''아이재아 토마스 본인이 직접 감독을 겸업(?!)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감독이 된 후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리겠다는 욕심으로 팀캐미도 고려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스티브 프랜시스나 제일런 로즈, 잭 랜돌프 등의 고액연봉 선수들까지 끌고와 로스터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팀 샐러리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130m까지 치솟지았만 성적은 역시나 두 시즌 동안 33승 49패, 23승 59패에 그치며 투자 대비 성적이라는 측면에선 이 보다 더 최악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팀내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혐의로 고소당해 토마스 본인은 물론, MSG 컴퍼니와 구단주 제임스 돌란까지 함께 고소를 당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당시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닉스가 홈 경기를 할 때마다 아이재아를 해고하라는 챈트가 울려퍼졌고 팬들이 단체로 농성을 했으며, 토마스 옆에는 항상 경호요원이 붙어있어야만 했다.
레이든과 아이재아의 장엄한 삽질의 역사는 이 위키 한바닥을 가득 메워도 모자란 관계로(...) 다음 두 글을 통해 대충이라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이건 레이든의 삽질이고
이건 아이재아의 삽질이다.
참고로 국내의 한 NBA 커뮤니티에서 2002년쯤 닉스의 샐러리 상황을 분석한 결과 '''"이 팀은 최소한 2007~8년까지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게시물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지구 반대편의 일개 팬조차 뻔히 예측할 수 있었던 상황을 소위 전문가 집단이 해결은 커녕 대안 제시조차 못하고 그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건 도대체...

2.5. 도니 월시와 위닝팀으로의 복귀, 그리고 멜로의 시대


아이재아는 그야말로 도저히 치우기가 불가능할듯한 똥덩어리들을 남긴채 짤리고, 후임 GM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 사장을 역임했던 도니 월시가 오게 되었다.
사실 월시가 부임했을 당시 뉴욕 팬들은 딱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월시의 유,무능을 떠나서 그만큼 아이재아가 남긴 유산이 도무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었기 때문.
어쨌든 월시는 부임하자마자 '팀의 샐러리를 대폭 줄이는 체질개선을 통해 샐러리캡의 여유를 확보하고 2010년 FA시장에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등 대어를 잡겠다'는 일명 '2010 프로젝트'를 천명하고 대대적인 체질개선에 돌입하게 된다.
우선 2008-09 시즌을 앞두고 발빠르게 마이크 댄토니를 감독에 선임했고, 듀크대 출신으로 불스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친 포인트가드 크리스 듀혼을 영입하며 '런앤건'이라는 확실한 팀컬러를 부여했다. 전직 GM겸 감독이었던 아이재아의 이도저도 아닌 답답한 농구에 등을 돌렸던 뉴욕의 팬들은 댄토니식 화끈한 공격 농구에 다시 경기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비록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 시즌보다 9승이 올라간 32승을 올렸으며, 그 보다 더 고무적인 건 열광적이기로는 NBA 1등을 달리는 뉴욕의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 굉장한 소득이었다.
그리고 2009-10 시즌. 댄토니 스타일의 농구가 빛을 발해 시즌 초반 9경기에서 6승 3패라는 호성적을 거뒀고, 이 과정에서 고액연봉자들이 좋은 활약을 보인 틈을 타 발빠르게 샐러리를 비워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알 해링턴, 잭 랜돌프, 자말 크로포드, 래리 휴즈, 자레드 제프리스 등의 고액연봉자들을 모두 팔아치우는데 성공했다. 댄토니 체제하에서 태업 논란까지 일으키며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된 스테판 마버리를 바이아웃으로 내보냈고, 마찬가지로 몸관리 실패탓으로 전력 외로 분류된 에디 커리와 더불어, 먹튀의 대명사 제롬 제임스까지 처분하는데 성공하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후 2010년 팀의 샐러리는 2007년에 비해 무려 '''3분의 2'''가 줄어들었다. 월시가 도저히 불가능해보였던 일명 '''똥치우기'''를 해낸 것이다.
2010년 FA시장에서 비록 르브론 제임스는 놓쳤지만 그래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영입하면서 빈손으로 돌아가진 않았다.
2010-11 시즌 아마레라는 확실한 팀의 코어가 생기자 뉴욕의 성적은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그리고 시즌중에 카멜로 앤서니천시 빌럽스를 트레이드로 영입. 이 때 출혈이 상당히 크기는 했다만, 팬들은 아마레와 카멜로, 천시가 이끄는 공격 농구에 열광했다. 최종 성적은 42승 40패. 정확히 10년만에 찾아온 5할 승률, 그리고 7년만에 찾아온 플레이오프였다. 비록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헌데 시즌이 끝나고 제임스 돌란 대주주가 월시와 연장계약을 맺지 않으면서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34]
일단 월시가 팀의 자문(고문)역할을 맡기는 했지만,[35] 그 뒤에 팀은 내리막을 향해 걷게 되는데...

2.6. 2011-12 시즌


직장폐쇄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치러지게 되는 대망의 2011-12 시즌, 닉스는 천시 빌럽스를 사면룰로 내보내면서 지난 시즌 우승팀인 댈러스의 수비형 센터 타이슨 챈들러를 사인&트레이드로 영입했고, 이로써 카멜로 앤서니-아마레 스타더마이어-타이슨 챈들러로 이어지는 막강한 프론트 코트를 구축하면서 우승후보로 급부상하나 했는데.....
개막전에서 카멜로 앤서니의 맹활약으로 보스턴 셀틱스를 꺾으며 상큼한 출발을 했으나 천시 빌럽스의 이적으로 인해 매우 약해진 백코트가 큰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개막전에 주전이랍시고 나온게 토니 더글라스에 랜드리 필즈(...)
닉스의 감독인 마이크 댄토니의 전술은 근본적으로 포인트 가드의 기량과 리딩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데(선즈 시절의 스티브 내쉬나 2010-11 시즌 닉스의 포인트 가드 펠튼) 현재 닉스에서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만 한 포인트 가드가 없는 상황이다. 토니 더글라스는 포인트 가드인 주제에 리딩능력은 없다고 해도 괜찮은 수준(...)인데다 득점해줄 옵션이 두 개나 있는데도 자신이 무리한 슛을 거듭하며 2011-12 시즌 닉스 팬덤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루키인 이만 셤퍼트가 등장해 새로운 희망이 되나 했으나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1번이라기 보다는 듀얼가드 성향이 강한 선수이고, 루키인 관계로 몇 차례의 부상과 경험부족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는 상황.
걱정은 현실이 되어 2월 1일 현재 뉴욕 닉스는 8승 13패로 동부 컨퍼런스 10위로 쳐져있다. 댄토니는 미봉책으로 카멜로 앤서니에게 포인트 포워드 역할을 맡겨보기도 했으나, 앤서니는 르브론과 달리 올라운더라기 보다는 스코어링에 특화된 선수이고, 패싱 센스가 좋다는 것도 포워드 기준에서 좋다는 것이지 게임 전체를 리딩할 능력은 부족한 편이라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앤서니는 본연의 역할인 스코어링도 제대로 못하고, 리딩도 제대로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으며, 가드와의 2:2플레이가 주무기인 아마레 역시 2:2를 해줄 가드가 없고(...) 아이솔레이션에서의 기량도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뉴욕 닉스 팬들은 시즌 전에는 한가지 옵션 정도로 생각했던 배런 데이비스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황. 최소한 준수한 포인트 가드의 리딩이 받쳐준다면 네임밸류가 워낙 좋은 만큼 팀이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2월 4일, 뉴저지 네츠와의 경기에서 하위 리그를 전전하던 대만계 가드[36] 제레미 린이 갑툭튀. 그 데런 윌리엄스를 농락, 25점 7어시스트 5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하며 승리로 이끌었다. 처음엔 운이라 생각했지만, 5일 유타 재즈와의 홈경기에는 28점 8어시스트, 8일 워싱턴 위저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23점 10어시스트 4리바운드, 이어서 벌어진 LA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선 38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맘바 킬러라는 업적까지 획득! 현지에서는 'Jeremy Lin Show', 'Linsanity'라 부른다고.[37] 쓸만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전술이 삐걱거리던 차에 시야와 드라이브인이 뛰어난 포가가 등장했으니 댄토니 입장에선 천군만마를 얻은 셈. 하지만 린이 닉스에 가지는 가장 큰 의미라 하면은 '''뉴욕권에서 NBA가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
린이 들어온 후 7연승으로 밀워키를 따돌리면서 PO권에 진입, 린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동부지구 7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2위 마이애미 히트에 1승 4패로 패해 탈락.

2.7. 2012-13 시즌


2011-12 시즌이 끝나고 로스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랜드리 필즈를 내보내고 린새니티의 주인공 제레미 린과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 랜드리 필즈는 스티브 내쉬 영입을 위한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다가 역시 내쉬를 원하던 토론토가 닉스의 트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제한적 FA였던 필즈에게 3년 20M의 계약을 제시하는 바람에 닉스의 내쉬 영입은 불발되었지만 결국 내쉬가 레이커스행을 택하면서 토론토만 필즈의 오버페이 계약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얼리버드 권한을 인정받아 제한적 FA가 된 제레미 린은 리빌딩을 꾀하던 휴스턴에서 4년 30M에 달하는 거액의 계약을 제시했고, 닉스가 이 계약을 매치하지 않는 대신 영입한건 40에 가까운 제이슨 키드. 그리고 2년 전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레이먼드 펠튼을 다시 영입. 그외 백업으로 여전히 경쟁력있는 센터였던 마커스 캠비와 더불어 커트 토마스, 라시드 월러스 등 노장들을 영입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노망주(?) 파블로 프리지오니를 영입한 것도 이 시즌. 특히 캠비와 토마스는 그 1999시즌 8번 시드의 기적일 일궈낸 주축 멤버들로서 그간 타 팀들을 돌고돌아 커리어의 종착역으로 닉스를 택했다.
필즈와 린의 거액 계약에 매치하지 않는 것은 그간의 뉴욕과 다르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린을 버리고 데려온 게 하필 전해 그야말로 폭망했던 펠튼이라는 것에 대해 삽질이라는 목소리가 컸고, 로스터에 노장들이 너무 많은 게 약점으로 지목돼 시즌전 예상에서는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게다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시즌 직전 또다시 부상을 당하며 또다시 암울한 한해가 예상되었으나...
뉴욕으로 돌아온 펠튼의 부활, 클래스를 보여주는 제이슨 키드의 리딩과 롤플레이어들의 클러치 3점슛, 그리고 닉스에서 드디어 에이스 본능에 눈뜬 카멜로 앤서니의 대활약으로 시즌 초반 21승 8패의 엄청난 상승세를 달리며 동부지구 1위를 질주했다. 이 시기 닉스를 대표하는 것은 빠르고 정확한 볼무빙으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며 오픈 3점 찬스를 만들어 점수를 쌓고 리그 최강의 스코어러 카멜로 앤서니의 다재다능한 플레이로 승부를 결정짓는 강력한 오펜스와, 수비 로테이션에 일가견이 있는 마이크 우드슨 감독의 전술로 상대방을 꽁꽁 묶어버리는 디펜스. 레이먼드 펠튼-제이슨 키드-파블로 프리지오니로 이어지는 훌륭한 백코트진이 턴오버를 최소화하고 빠른 볼무빙을 통해 찬스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한 결과였다. 이 시기의 닉스는 심지어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가 빠졌을 때도 그 마이애미 히트를 가비지로 20점차로 관광태우며 저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도 복귀해 골밑에서 끈끈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더 상승세를 타나 싶었으나.. 올스타 브레이크 후 핵심 멤버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하락세를 탔다. 거기에다 아마레는 다시 수술로 시즌아웃, 팀 수비의 기둥인 타이슨 챈들러도 부상으로 결장하고 앤서니도 잠시 빠지면서 시즌 중반 17승 18패를 기록하며 이 시기 미친 연승을 달린 마이애미 히트에게 당연히 1위는 빼앗기고 한때 인디애나에도 밀리며 상위 시드까지도 위태로워졌다.
하지만 빅맨 기근 상황에서 급히 데려온 케년 마틴이 프론트진의 공백을 메워주고 앤서니가 복귀하며 시즌 막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16승 2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끝냈다. 특히 이 기간에는 카멜로 앤서니가 초인적인 위력을 발휘했는데, 그는 4월 한 달간 무려 평균 36.9점을 쏟아 부으며 동부 컨퍼런스 4월의 선수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4월 1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는 개인 최다 동률인 50점을 폭발시켰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세 경기 연속 40점 이상을 기록했다. 심지어 라이벌 르브론 제임스까지 제치고 유니폼 판매 1위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멜로의 생애 최고의 시즌. 2012-13 시즌 뉴욕 닉스의 최종 성적은 54승 28패로 동부지구 2번시드를 받아들고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게 되었다.
54승의 승수는 1996-97 시즌 이후 최고 승률이었으며 1993-94 시즌 이후 처음으로 디비전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케빈 듀란트를 제치고 이번 시즌 득점왕을 차지했고, 사실상의 2옵션 역할을 수행한 J.R. 스미스는 리그 최고의 식스맨에게 주어지는 식스맨 상을 수상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상대팀은 보스턴 셀틱스. 비록 라존 론도가 빠져 전력이 약화되긴 했으나 폴 피어스케빈 가넷을 필두로 여전히 저력있는 팀이었지만 확실히 주전 포인트 가드 론도의 공백을 메우지는 못해 뉴욕의 백코트진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렸고, 그로 인해 볼 운반과 앤서니의 수비까지 부담하게 된 피어스의 체력방전 등으로 인해 닉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J.R. 스미스가 3차전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반칙으로 퇴장당한 후, 4차전 징계로 출장 정지를 먹었고, 4차전에서 닉스는 연장승부 끝에 셀틱스에게 졌다. 그 후 "내가 있었으면 진작에 시리즈 끝내고 골프 치고 있었을 거다." 라는 망언을 뱉는 등 다소 해이한 모습을 보여줬다가 보스턴 노장들의 투혼에 5차전도 지고, 6차전에서야 진땀승을 거뒀다.
세미파이널에서는 애틀란타 호크스를 4-2로 물리치고 올라온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났으며 피지컬과 조직력을 앞세운 페이서스에게 허물어져야 했다. 이 과정에서 뉴욕의 안일한 조직력이 도마에 올랐는데, 2차전이 끝난 이후 주전 센터 타이슨 챈들러가 "멜로와 스미스가 너무 이기적이다. 선수들이 패스를 할 생각이 없다." 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J.R. 스미스는 1,2라운드를 통틀어서 야투 성공률이 고작 29%(...)라는 환상적인 수치를 기록함과 동시에 '''한 번 악동은 영원한 악동''' 임을 증명했다. 앤서니 역시 어깨부상 여파와 무리한 슛셀랙션으로 인해 에이스 역할을 못해주면서 2라운드는 전반적으로 인디애나에게 완패한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2.8. 2013-14 시즌


또다시 분주한 오프시즌을 보냈는데, 1라운드픽에 마커스 캠비와 스티브 노박을 묶어 드래프트 1번 출신 빅맨 안드레아 바르냐니와 트레이드했다. 토론토에서는 그야말로 암적인 존재로 취급받던 바르냐니였기에 대체 왜 데려왔나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보낸게 부상으로 별로 나오지도 못한 마커스 캠비와 3점밖에 없는 노박이라 사실상 1라운드픽으로 바르냐니를 영입한것이니 손해볼 건 없다는 평가도 있긴 했다. 그리고 메타 월드 피스와 계약하고, 케년 마틴과 J.R. 스미스, 프리지오니와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지만, 여전히 우승후보 1순위인 마이애미, 메가톤급 트레이드로 올해야말로 뉴욕의 주인이 되겠다는 브루클린, 마이애미를 벼랑끝까지 몰아넣었던 소리없는 강자 인디애나, 로즈가 복귀하는 시카고 등 동부의 강호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관건.
막이 열리자 우려했던 바르냐니는 생각보다 잘해주지만 완전히 맛이 간 아마레, 부상으로 누워버린 챈들러와 펠튼, 공격전술의 부재 등 여러 요소가 겹치면서 혹독한 시즌 초반을 보내고 있다. 멜로가 애쓰고 있지만 난조에 빠진 팀을 구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고액연봉자들의 약간의(...) 분발과 워낙 엉망진창인 동부 컨퍼런스의 상황이 겹쳐서 플옵 싸움을 할 정도로는 성적을 끌어올린 상태다. 2014 드래프트가 역대급으로 평가받고는 있지만 어차피 닉스는 픽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하지만 J.R. 스미스가 자신의 동생 방출에 대해 단장을 공개비판하는 등 팀 내부에서도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리고 결국 메타 월드 피스와 비노 우드리히 역시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지나자마자 출전 문제로 트러블을 일으킨 끝에 방출되었다.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 지난 시점에서 8위와의 성적 차이가 5게임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라 플레이오프 진출은 요원해 보인다. 그와중에 레이몬드 펠튼이 불법총기소지 혐의로 조사까지 받게 되면서 팀 분위기는 내려갈대로 내려가버렸다. 그나마 3월에서 4월 경에는 시즌 내내 구설수에 시달리던 J.R. 스미스가 신들린듯한 3점슛 행진과 에이스 카멜로 앤서니의 꾸준한 활약에 힘입어 한 때 8연승 행진을 달리며 동부 컨퍼런스 8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애틀란타가 4월 12일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닉스는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다.
멜로를 데려옴으로서 1라운드 픽도 없고 그 멜로는 올시즌을 끝으로 옵트아웃해서 FA가 될 수 있는데 본인이 승리를 원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만약 닉스의 밝은 청사진을 제대로 그려서 설명하지 못하면 멜로가 팀을 떠날 가능성도 꽤 높으며, 그게 실제로 일어날 경우에는 당분간 다시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과거 레이커스 시절 정상급 식스 맨이었던 라마 오덤을 데려오는 무브를 선보였는데, 내년 시즌을 위한 영입이기에 당연히 팀 옵션이 포함된 2년계약을 맺었다.
결국 시즌이 끝난지 며칠 안되어, 마이클 우드슨 감독과 코칭스태프 모두 경질되고 말았다.

2.9. 2014-15 시즌


'''다시 시작된 흑역사'''



뉴욕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는 명장 필 잭슨이 사장으로 부임했으며, 잭슨 휘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우승 반지를 5개나 차지한 경험이 있고 2014년 플레이오프까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데릭 피셔가 이듬해부터 감독을 맡게 되었다.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 타이슨 챈들러레이몬드 펠튼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시키고 호세 칼데론과 유망주,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아왔다. 시카고나 휴스턴으로의 이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멜로를 꾸준한 설득을 통해 5년간 $124M과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얹어주는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면서 팀에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날 데려왔던 라마 오돔은 결국 웨이브시켰다. 더 이상 NBA 무대에서 뛸 만한 기량이 아니라는 평. 이로써 오돔은 큰 이변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필 잭슨은 수하였던 짐 클레몬스를 코치로 초빙해가며 감독 시절에 써먹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사용해보려고는 하는데 시즌 초반 22경기 4승 18패를 찍으며 손발을 맞추려면 갈 길이 멀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접전까지 끌고 가다가 집중력 부족으로 패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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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5 시즌 뉴욕의 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 워싱턴 위저즈와의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퀸시 에이시가 존 월에게 하드 파울을 하며 시비가 붙었는데, 다같이 달려들어서 떼어내는 워싱턴 선수들과 비교된다.
1월 10일에는 샬럿 호네츠와 홈경기에서 82-110으로 무기력하게 지며 시즌 '15연패'를 달성했다. 어느새 개막 17연패를 한 76ers를 제끼고 유유히 리그 전체 꼴찌를 달리는 있다. 관중들은 아예 종이봉투를 뒤집어썼을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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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투어 경기를 보고 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티에리 앙리. )
1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펼쳐진 투어경기에서는 밀워키 벅스에게 79-95로 지며 시즌 '16연패'에 다다른다. 1월 19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상대로 99-92로 승리하며 17연패까지는 가지 않았다. 2월 16일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방출했다. 멜로는 올스타전을 끝으로 무릎 수술을 위해 시즌 아웃.
'''2014-15 시즌 결과는 17승 65패. 닉스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다.''' 뒤에서 2등인데 다음 시즌 드래프트도 전체 4픽으로 밀리는 등 불운이 계속되고 있다.

2.10. 2015-16 시즌



2.10.1. 프리시즌


4픽으로는 라트비아산 거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을 선택했다. 선발 직후 쏟아지는 뉴욕 팬들의 야유가 일품.[38]
애틀란타 호크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전 시즌 포텐을 터트리지 못한 팀 하더웨이 주니어를 내보내고 받아온 신인 1라운드 픽으로 노트르담 대학교의 신인 제런 그랜트(Jerian Grant, 발음 Jare-n)를 지명했다.[39] 또 2라운드에서는 유럽리그에서 뛰었던 윌리 헤르난고메즈를 선발한다.
오프시즌간 FA 영입 행보를 많은 이들이 기대했지만 굵직한 대어들은 모두 놓쳤다. 뉴욕의 팀 사정상 대어들이 올리가 없으니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트라이앵글과 어울리는 빅맨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렉 먼로와 서로 관심이 있었으나 약한 수비력을 걱정한 필 잭슨이 맥시멈 계약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하였고, 먼로는 밀워키 벅스와 계약했다. 라마커스 알드리지 같은 경우에는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센터 포지션에서 뛰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알드리지가 거절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계약했다. 대신 쏠쏠한 롤 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지난 시즌 풍비박살났던 팀을 어느 정도 복구하는데 성공한다. 포틀랜드에서 뛰었던 애런 아프랄로와 로빈 로페즈, 올랜도에서 뛰었던 카일 오퀸, 새크라멘토에서 뛰었던 데릭 윌리엄스, 워싱턴에서 뛰었던 케빈 세라핀을 영입했고,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였던 루 아문슨과 랜스 토마스는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가드진을 보강하고자 예전에 레이커스에서 뛰면서 코비 브라이언트의 서브로 쏠쏠한 활약을 했던 샤샤 부야치치까지 유럽에서 공수해왔다.
섬머리그에서 4번픽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가 몸싸움에 약한 모습과 긴 슈팅레인지, 우수한 수비력을 번갈아가며 보여주어서 뉴욕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포르징기스가 4번픽으로 뽑힌 이유가 당장의 임팩트보다는 나중에 성장했을때의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이므로 팬들은 이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 물론 아직까지 예상은 잘되면 노비츠키, 못해도 바르냐니... (파우 가솔과 비교되기도 했지만 가솔과 비교했을 경우에는 피지컬이 너무 약하다.) 최근 연습 영상을 보면 확실히 기대가 되는 신인임은 분명하다. 좋은 모습을 보이던 모리스 엔도어(Maurice N'dour)를 댈러스 매버릭스에 뺏겨서 무진장 욕을 먹기도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보장된 금액이 큰 매버릭스의 계약을 선택했다고 한다.
ESPN에서 시즌전 예상한 성적은 전 시즌에 비해서 8승이 추가된 25승 57패로 동부 컨퍼런스 14위. 공신력이 전혀 없는 예측[40]이기 때문에 흘려듣는 것이 건강에 좋다. 다들 이거보다는 잘 할거라는 분위기.
블리처리포트에서 조사한 전세계 구단 가치에서 작년보다 하락한 8위를 기록했다. NBA 구단중에는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에 이은 2위. 작년에는 레이커스보다 높은 순위였지만 한 시즌을 시원하게 말아먹으면서 순위가 하락했다. 레이커스도 못한건 마찬가지인데.[41]
최근 내년 오프시즌에 리키 루비오를 노리고 있다느니, 자말 크로포드 트레이드에 관심이 있다느니 하는 소문들로 인해서 뉴욕팬들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올림픽을 대비해서 Team USA 예비 멤버들이 모여서 연습하는 영상이 업로드 되었는데, 르브론 제임스, 러셀 웨스트브룩, 그리고 카멜로 앤서니가 포스트에서 공을 잡은 상태로 코치 몬티 윌리엄스를 상대로 공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다. 멜로가 부상에서 복귀했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고무적.

2.10.2. 정규시즌


드래프트 당시 야유까지 들었던 신인 포르징기스의 대활약으로 지난 시즌보다 훨씬 팀이 단단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지구의 브루클린, 필라델피아가 완전히 몰락한 것에 비하면 뉴욕 닉스는 이번 시즌에 조금은 희망을 되찾았다고 봐도 될 듯 하다. 한국시간으로 1월 7일 18승째를 올려 일찌감치 작년 승수를 넘어섰다. 승률도 5할 언저리로 플레이오프를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위치다.
시즌 초중반, 부진한 카멜로 앤서니에 대한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구단에서는 언론에게 멜로를 트레이드할 생각이 절대 없다고 코멘트. 뉴욕 언론이 또 한 건 했다(...).
포르징기스 효과로 인해 팀 전체의 분위기가 조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멜로는 가자미 역할도 잘해내면서 팀을 조율해주고 있고, 포르징기스는 아직 리그 정상급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골밑을 잘 사수해주고 있다. 연패를 자주 당하는 것은 고쳐야 할 부분.
드래프트 당시의 야유가 거짓말인 것처럼, 포르징기스의 저지 판매 순위가 NBA 전체 '''4위''' 까지 올라갔다. 기사
그러나 데릭 피셔 감독은 2016년 2월 9일(한국시간) 결국 경질되었다.
피셔 경질 후, 단조로운 공격 패턴, 딸리는 뒷심이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좀처럼 승수를 쌓지 못하고 있다. 플레이오프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3월 1일 90년대 닉스에서 찰스 오클리, 패트릭 유잉과 함께 활약했던 앤서니 메이슨이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향년 50세. 기사
필 잭슨의 트라이앵글을 찰스 바클리와 레지 밀러가 크게 비판하는 등 팀이 외적인 부분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코비 브라이언트는 필 잭슨을 믿어보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제프 호나섹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다.

2.11. 2016-17 시즌


'''사장덕에 모든 것을 망친 시즌'''[42]
불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호세 칼데론, 제리안 그랜트, 로빈 로페즈를 내주고 가드 저스틴 홀리데이, 데릭 로즈를 얻었고, 조아킴 노아도 4년 72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지난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로즈였기 때문에 이래저래 우려하는 팬들도 있지만 동시에 슈퍼스타가 두명이나 모였기에 사람들의 기대감도 큰 상황.
코트니 리와 4년 4800만 달러로 계약했다. 나름 좋은 계약으로 취급 받는 중으로 노아, 로즈, 포르징기스, 멜로, 코트니 리로 정상적으로 가동만 된다면 괜찮은 라인업을 만들었다. 옵트아웃을 한 애런 아프랄로는 새크라멘토로 떠났고, 이후 브랜든 제닝스를 영입하고, 랜스 토마스와 4년 24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그 외 언드래프티 마샬 플럼리와도 계약을 맺었다. 포워드로 리투아니아의 26살 선수 Mindaugas Kuzminskas 선수까지 영입했다고 한다. 알짜 영입은 잘하고 있다는 평가인데 위에도 언급한 것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갈지는 두고볼 일. 그외에도 마이애미에게 찬밥 취급을 당하고 있는 드웨인 웨이드 영입설도 들려오는 등, 뉴욕의 오프시즌은 뜨겁다.(웨이드는 시카고로 이적)
시즌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맞붙었고, 88-117로 화끈하게 털렸다.
계속해서 지다가, 로즈와 노아의 전 소속팀인 시카고 불스와의 대결에서 10점차로 이겼다! 시카고의 홈에서 경기가 열렸고, 최근 시카고가 잘나가고 뉴욕이 부진한걸 감안하면 더욱 이변이다. 포르징기스가 잘했고, 멜로와 노아, 로즈도 준수하게 활약. 로즈는 전성기 시절 속공을 보여주었고 멜로는 로즈와 롤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제몫을 했다. 노아와 로즈가 들어올땐 야유를 받았으나 나갈땐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때 시카고 영웅들의 완전한 퇴장.
12월 7일 기준으로 기록이 12승 9패로, 프리시즌만 해도 근접도 못할 것이라고 점쳐진 '''동부 컨퍼런스 공동 3위'''를 달리고 있다. 일찍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분석자들이나 해설자들이 닉스는 이번 시즌도 퇴물들만 모아놓아 폭망할 것이라는 것처럼 얘기한 걸 감안하면 경악스러운 정도. 사실 정말 저번 몇 시즌이라면 절대 못 이겼을 경기들도 이기고 있어서 플옵 희망이 커져 간다. 멜로, 포르징기스, 로즈가 에이스 역할을 나눠서 하고 있고, 카일 오퀸과 저스틴 홀리데이의 대폭발, 유럽 루키들의 쏠쏠한 활약 등등에 힘입어 시즌을 3승 6패로 시작한 후 '''9승 3패'''라는 엄청난 상승세를 타는 중. 노아도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고 있지만 폼이 돌아오길 바라자.
그러나 12월 중순 데릭 로즈가 등 부상을 당했고, 기세가 꺽인 뒤, 로즈가 복귀했지만, 6연패를 당하며 16승 17패, 3년 연속 5할 승률 미만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짓더니 2017년 1월 17일 현재 시즌이 약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18승 23패로 하위권을 수성(?) 중인데 무엇보다 이기고 있는 경기를 뒤집혀 지는 경우가 많아져서 닉스 팬들의 뒷목을 제대로 잡게하는 중이다. 최근 12경기에서는 고작 2승에 그치는 등 한 때 동부 컨퍼런스 4위까지 올랐던 순위가 동부 11위까지 추락했다.
여기에 1월 10일에는 데릭 로즈가 일종의 태업 비슷한 것을 시전하면서 선수단 사기도 엉망인 상황.[43] 1월에 필 잭슨의 절친인 한 기자가 멜로를 극딜하는 기사를 써서 화제가 되고 있다. '카멜로는 이제 뉴욕에서 쓸모가 없어졌다' 라는 글과 '필 잭슨은 뉴욕에 와서 맞는 판단만 내렸다' 라는 글을 썼는데, 기자 대신 필 잭슨이 대차게 콩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이 기자는 예전에도 잭슨이 사적으로 한 말을 기사로 그대로 옮기는 일들이 있었는데 (당연히 잭슨이 하라고 시켜서), 당연히 뉴욕 기자들은 저게 잭슨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 하는 중. 멜로가 예전만큼은 못하고 있지만 절대 팀의 부진은 멜로 혼자만의 탓은 아니고, 로즈의 이탈, 포르징기스의 부상, 노아의 퇴물 플레이 등등 이유는 많다. 게다가 아주 좋았던 팀 분위기를 12월달부터 '멜로는 볼호그 ㅇㅇ' 라는 식의 언플로 망쳐놓은건 잭슨인데 왜 그 화살을 멜로에게, 그것도 딴 사람 입으로 돌리려고 하느냐 라는 의견이 대부분. 카멜로는 정말 실망했는지, '지네들이 내가 뉴욕에서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하면 걔네들이랑 앉아서 얘기해봐야겠네' 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던 트레이드를 억지로 생각해봐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거기에다가 멜로가 잭슨과 미팅을 요청해도 씹힌다는게 알려졌다. 정말 잭슨이 공식적인 말 한마디 없이 팀 전체를 말아먹고 있는 셈.
1월 17일에 잭슨과 멜로가 면담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가관인 것은 잭슨이 멜로더러 '뉴욕에 남고 싶냐?' 라는 질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멜로 입장에서는 말이 안나올 상황. 자신에게 최고 대우의 계약을 제시하며 팀에 남아줄 것을 부탁한 사장이 가만히 말없이 농구만 한 자신에게 팀에 대한 충성심과 쓸모를 의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너무 빨리 펼쳐진 것. 당연히 멜로는 뉴욕에 남을거라고 대답했고[44], 일은 좀 사그러들고 있다. 하지만 이 일로 잭슨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듯.
2월 9일에는 MSG에서 클리퍼스와 경기 도중 90년대 닉스의 레전드 찰스 오클리가 구단주에게 팀의 성적 부진과 개판인 상황에 대해 항의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와중에 닉스의 광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는 멜로의 편을 드는 등 현재 닉스팬들은 필 잭슨과 카멜로 앤서니 두 파로 갈라져서 싸우는 모양새.
후반기 들어서도 딱히 반전을 이끌어내지는 못하는 가운데, 2할도 못 찍는 이웃 브루클린에게 1주일 동안 2연패를 하는 굴욕도 맛봤다. 최종 성적은 31승 51패.
시즌 종료 하루 후 사장 필 잭슨이 9월 이후 처음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 기자회견은 많은 닉스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한다. 일단 나오자마자 카멜로 앤서니를 '''또다시 극딜한다.''' '우리는 멜로를 중심으로 이기지 못하고 있다. 멜로는 닉스와 맞지 않는 선수이며, 은퇴 후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지기만 하고 이기지 못한 선수라는 딱지를 달고 싶긴 싫을거다. 다른 팀을 알아보는게 좋을것이다.' 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발언을 했다. 이게 참 어이 없는 말인게, 잭슨이 정말 멜로를 트레이드 하고 싶으면 언론 플레이로 이름값을 올려야하는데, 잭슨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리어 멜로를 깎아내리고 있다. 안그래도 멜로의 계약과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트레이드를 성사시킬 수 있는 상대도 많지 않은데 왜 계속 멜로를 까서 더 타팀이 트레이드에 거부감을 가지게 하냐는 의견이 다수다.
그리고, 멜로와 닉스가 무패행진을 한건 아니지만 잭슨이 오기 전엔 멜로와 닉스는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과 오랫동안 못해봤던 플옵 시리즈까지 이겨봤다. 이걸 이끈 감독을 가차없이 자르고 팀을 해체한건 잭슨이었고, 닉스는 그대로 플옵권에서 광탈하며 지금의 모습을 쭉 보이고 있다. 포르징기스의 잠재력을 본 데릭 피셔 감독이 잭슨이 사랑하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포르징기스의 3점슛과 픽앤롤 장점을 살리기 위한 전술로 가려고 하자 자신의 제자였던 피셔도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그러면서 되지도 않는 트라이앵글만 고집하고 퇴물 모으기를 한 잭슨이 멜로를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모든 언론은 잭슨을 신나게 까고 있고, 멜로더러 그냥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해 눌러 앉아버릴 것을 종용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말 어이없는 사실은 그렇게 내보내지 못해 안달인 멜로를 최고액 계약을 안겨주며 팀에 잔류시킨 사람이 바로 잭슨 본인이라는 점.''' 닉스 사장에 취임하면서 당면과제의 최 우선순위가 멜로를 잔류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실제로 시카고나 휴스턴으로의 이적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멜로에게 향후 팀의 청사진을 제시함과 더불어 5년 124m와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얹어주며 눌러앉혔다. 멜로도 계약 직후 잭슨 사장의 비전을 신뢰하여 잔류를 택했다는 식으로 말했을 정도였다. 자기가 사장으로 오기 전 이미 저질러진 고액 계약을 똥치우기하는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애걸복걸하며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주며 눌러앉혀놓고는 이제와서 언플로 딴소리나 하는 모습 때문에 언론도 팬들도 모두 잭슨에게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는 여러번 코치들이 진행하고 있는 연습을 중단시킨 후 선수들에게 트라이앵글 레슨을 했다던가, 포르징기스가 3점을 쏘면 비겁한 방식으로 득점을 하는 것이라던가, 참 사장으로서 도대체 뭘 하는건지 묻게 되는 말을 수없이 해댔다. 상술한 잭슨의 발언에 멜로는 인스타그램에 '아 그래?ㅋㅋㅋ' 라는 글을 올리고, 멜로를 좋아하고 따르는 포르징기스는 어지간하게 빡쳤는지 잭슨과의 퇴장미팅을 쌩까고 센트럴 파크에서 형들과 놀았다. 라트비아로 돌아가 시즌 시작 전까지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이런 식으로 정말 잭슨 때문에 폭망해버린 시즌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잭슨이 멜로와 포르징기스를 까면서 포르징기스의 미래까지 우려가 되고있는 상황이다. 멜로가 르브론, 웨이드, 과 함께 젊은 선수들의 우상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잭슨이 그런 멜로에게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것은 닉스에게 결코 좋은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선수가 이런 팀으로 오고 싶어할까?
각 리그마다 팀이 2개 이상씩 있는 뉴욕은 보통 한 팀이 죽을 쑤면 나머지 한 팀은 중간이라도 가는데, NBA는 닉스가 내부분열에 네츠는 아예 풍비박산이 나버려서 뉴욕의 농구팬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2.12. 2017-18 시즌


카멜로, 포르징기스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켰던 '''필 잭슨이 결국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지속적인 멜로와의 불화는 둘째치고 구단의 미래인 포르징기스와의 마찰이 사임의 가장 큰 이유가 된 듯. 트라이앵글의 '트'자만 봐도 울렁증을 호소하는 뉴욕팬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부상과 결근으로 신뢰를 잃은 로즈와 재계약 협상을 포기했고 결국 로즈는 클리블랜드로 떠났다.
멜로도 결국 트레이드하려고 시도 중인데, 당초에는 휴스턴행이 유력했지만 휴스턴의 라이언 앤더슨 처분 건이 해결되지 않아 진척되지 않던 중 카이리 어빙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면서 팀의 운명을 걸고 멜로 + 알파 ↔ 어빙 딜을 성사시키고자 노력중이다. 그러나 멜로는 당초 클리블랜드행에 관심이 있다는 입장을 바꿔 휴스턴행이 아니면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휴스턴은 크리스 폴을 영입한지라 전혀 멜로에 관심이 없어 보여 멜로 드라마 시즌 2는 흐지부지 끝날 모양새였다가... 결국 카멜로 앤서니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 팀으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를 추가하면서, 멜로는 곧장 트레이드 되었다.
멜로는 트레이드하기 굉장히 어려운 선수였지만 티켓파워를 노리는 오클라호마시티가 에네스 칸터와 덕 맷더맛, 그리고 시카고 2라운드 픽을 주면서 뉴욕은 성공적인 트레이드를 할 수 있었다.
현재는 시즌 초반 가히 MVP급 포스를 뿜으며 경기당 평균 30점씩 때려박는 포르징기스를 중심으로 새로 합류한 베테랑 재럿 잭, 신인 프랭키 닐리키나, FA로 다시 친정팀에 돌아온 팀 하더웨이 주니어, 닉스에서 2년차를 맞는 코트니 리등이 백코트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고 칸터와 카일 오퀸이 프론트코트에서 받쳐주며 시즌 초반은 일단 순항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반 좋은 행보가 일정빨이라 그렇다는 몇몇 사람들의 예측대로 후반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포르징기스는 부상으로 시즌 아웃. 칸터 역시 부상으로 빠지면서 이번 시즌도 플옵과는 멀어지는 모양새. 브루클린 네츠도 기를 쓰고 팀을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분투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걸리고 있어 뉴욕시는 이번에도 NBA로는 웃지 못하게 되었다.[45]
최종 성적은 29승 53패.
칸터 대신 오클라호마시티로 간 카멜로 앤서니가 득점마진 -53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삽질에 벤치멤버 출전을 거부하는 등 소란을 일으키고 있어서 칸터 트레이드는 뉴욕의 소소한 승리로 끝났다.

2.13. 2018-19 시즌


'''이도저도 아닌 시즌...이였다가 결국 탱킹시즌'''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호나섹을 경질하고 멤피스에서 경질된 데이비드 피즈데일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포르징기스는 이번 시즌도 시즌아웃이 될지도 모른다는 루머와 소속팀과 시즌 내내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던 카와이 레너드가 뉴욕으로 올 지도 모른다는 루머로 비시즌부터 시끌벅적했지만, 트레이드 자원이 여의치 않아서 사실상 불발되었다.
드래프트에서 9픽으로 워크에틱이 훌륭하다는 평을 들은 케빈 녹스를 지명했고, 2라운드에서 36픽으로 7풋 센터 미첼 로빈슨을 지명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드래프트라는 평. 두 선수 모두 섬머리그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여줘서 팬들의 행복회로를 태우고 있다.
닉스팬들은 3년전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에게 했듯이 폭풍같은 야유로 케빈 녹스를 환영(?)해주었다. 무려 포르징기스의 6번 유니폼을 입고 말이다.(...) 다른 팀팬들은 닉스팬들의 야유를 보고 "녹스는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르징기스 때처럼 진지한 실망의 야유보다는 닉스팬들도 어느 정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뉴욕의 환영 방식 여담으로 포르징기스 드래프트 당시에 눈물을 흘렸던 꼬마는 이번에도 녹스를 뽑은 것에 실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아 본레와 마리오 헤조냐를 영입했다. 두 선수 모두 포텐이 생각보다 터지지 못하는 상황. 무디에이와 함께 긁어보는 복권의 의미가 크다.
에네스 칸터의 옵트인으로 샐러리에 유동성이 없어졌다. 노아를 처리하기에 자원이 마땅히 없어서 결국 추가적인 FA영입이나 트레이드도 없이 시즌을 맞을 에정이다.
시즌 시작 전부터 암울한 것이 포르징기스는 12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돌아올 수가 없다고 한다.
일단 시즌 개막전에서는 올해도 탱킹하기로 결심한 애틀랜타 호크스를 27점차로 관광보내고 승리했다.
결국 10월에 노아를 웨이브했다. 3시즌간 6.4밀이 잡히지만 남겨둬봐야 좋을게 없는 선수였다.
11월 상승세인 피즈데일 감독을 잘랐던 멤피스를 원정길에서 잡고 파죽의 3연승을 했지만, 잠깐이고 하락세가 될 예정이다. 다만, 팀 하더웨이 주니어의 상승세와 언드래프티인 알론조 트리어의 활약이 돋보이며, 노아 본레와 무디에이의 부활조짐이 긍정적이다.
당연히 플레이오프는 어렵고 팬들도 탱킹하자며 GG를 치고 있는 상황. 홈에서 피닉스에 패하는 등 역시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카고, 애틀랜타, 피닉스, 클리블랜드와 함께 탱킹 경쟁 중이다. 가끔가다가 좋은 경기력으로 몇 번 이기고는 있다. 그럼에도 2019년 신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스, 캐벌리어스와 신나게 탱킹중인데다가, 게다가 1경기 차면 뒤집힐 수 있는 승률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그리고 신년 경기였던 1월 24일에는 제임스 하든에게 커리어 하이인 무려 61득점을 기록하는 개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에네스 칸터가 현직 터키 대통령인 레제프 타이에프 에르도안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등, 별의별 일들로 인해 오히려 좋은 결과보다는 안좋은 결과만 있다는 게........
케빈 듀란트가 차기 시즌에는 돈을 우선 본다는 발언을 꺼내자, 곧바로 올인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브루클린 네츠가 최악의 암흑기 상황에서도 4년만에 팀을 일으켜세우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들어간데 반해(마지막 진출 14-15) 닉스는 네츠보다 2시즌이나 더 플레이오프 진출을 못하고서도(마지막 진출 12-13) 이번 시즌도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어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결국 1월 31일 팀의 미래라 여겨졌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이번 시즌의 에이스였던 팀 하더웨이 주니어, 코트니 리, 트레이 버크까지 몽땅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댈러스에서는 디안드레 조던데니스 스미스 주니어, 웨슬리 매튜스, 미래의 1라운드 드래프트 지명권 두 장을 받아왔다. 데스주를 제외한 이적생들은 18-19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탱킹으로 시즌 종료 후 맥시멈 FA 매물을 노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2명까지 사인이 가능할 정도로 샐러리가 비워진다고 한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경기인 애틀란타전에서 승리하며 지옥같던 18연패에서 간신히 탈출, 전반기를 11승 47패로 마감했다.
후반기에도 팀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었으며 결국 시즌 종료 세 경기를 남긴 상황에서 리그 전체 꼴찌를 확정했다. 4월 8일 기준 16승 64패를 기록중이어서 남은 두 경기를 전패한다면 2014-15 시즌 세운 프랜차이즈 최악의 기록(17승 65패)을 갈아치울 가능성도 있다. 잔여 경기는 1승 1패로 마무리하며 프랜차이즈 최소 승리 타이기록을 세우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이 끝난후에 뉴욕은 지난 시즌 부터 영입에 올인하고 있고 여름에 FA자격을 갖게되는 케빈 듀란트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듀란트가 자신의 영입 조건으로 스타급 FA선수 한명을 같이 영입해 달라는 조건을 걸은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서 여름에 FA가 되는 스타급 선수중에 카이리 어빙도 같이 영입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울러서 신인 드래프트 1순위에 당첨이 되면 최대 거물인 자이언 윌리엄슨을 손에 넣겠다는 심산도 있다. 하지만 뉴욕이 1순위에 뽑힐 확률은 14% 정도이고, 전체 1픽이 농구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 또한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결국 2019 드래프트 로터리에서 3번 픽에 추첨되었다. 1픽을 얻고 윌리엄슨을 이용해 앤서니 데이비스의 트레이드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AD의 소속팀 '''뉴올리언스가 1픽마저 챙겨가며(...)''' 뻘쭘한 설레발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AD는 뉴올이 1픽을 뽑아서 자이온을 데려온다 해도 여전히 구단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무조건 뉴올에 트레이드를 요청할꺼라고 한다. 결국 AD는 뉴욕이 아닌 레이커스로 갔다.

2.14. 2019-20 시즌


6월 21일 2019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의 지명권으로 듀크 대학교 출신의 슈팅 가드 R.J. 배럿을 지명했다.
케빈 듀란트가 아킬레스건 부상 전까지 영입에 사활을 걸었던 것처럼 보였던 뉴욕은 부상 이후 장기간의 재활을 거칠 듀란트의 몸 상태에 우려를 드러내면서 풀 맥스 계약을 망설였다. 결국 뉴욕이 망설이는 사이 듀란트는 결국엔 뉴욕의 라이벌 팀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을 결정했다. 그런데 사실 듀란트는 뉴욕과의 계약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에이전트가 듀란트에게 뉴욕 이적을 적극 권유했으나, 그나마 닉스를 지탱해줬던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팀 하더웨이 주니어마저 떠나고 유망주 밖에 남지 않은 뉴욕의 전력 상태에 의구심을 품어 뉴욕 이적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듀란트와 마찬가지로 영입을 시도했던 카이리 어빙도 뉴욕 측이 어빙의 에이스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며 영입을 주저했고, 결국 어빙도 결국 네츠로 이적을 결정지었다. 또한 FA가 된 디안드레 조던도 네츠로 이적하며, 지난 시즌에 탱킹을 감수하면서도 영입을 목표했던 선수들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목표했던 '빅 3'는 모두 놓쳤지만, 7월 1일부로 이적 시장이 열리자 뉴욕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줄리어스 랜들에 3년(2년 보장, 1년 팀 옵션) 6,300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줬고, 이어 타지 깁슨을 2년 2,000만 달러, 바비 포티스를 2년 3,100만 달러에 영입했다. 이어서 캐치 앤 슛에 능한 3&D 자원인 슈터 레지 불록과 2년 2,100만 달러로 계약했으며, 다음 날인 7월 2일에는 10년 차 베테랑 가드 웨인 엘링턴을 2년 1,600만 달러, 포인트 가드 엘프리드 페이튼과 2년 1,6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먼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의 랜들(206cm), 깁슨(206cm), 포티스(211cm) 모두 비슷한 체격을 가진 빅 맨이고 또한 랜들을 제외한 5명의 선수들은 평균 10점대의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듀란트, 어빙보다는 무게감이 덜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자원들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지만, 다수의 준척급 선수들로 선수단을 꾸렸기 때문에, 선발 명단은 다른 팀에 비해 뒤처질 지는 몰라도 벤치 자원은 강력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만약 뉴욕이 이번 시즌 잘 풀린다면, S급 선수들 없이도 지난 시즌 잘 나갔던 덴버 너기츠와 같이 동부 컨퍼런스의 다크 호스가 될 지도..?는 무슨 그냥 무너지고 있다.
팀의 멸망에 화난 팬들은 경기장에서 구단주를 경질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이런 팬들을 직원들을 대거 동원해서 강제로 경기장에서 끌어내는 등 그냥 막장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이번에 영입한 선수들 모두 2년의 계약 기간을 안겨줬는데, 언론과 팬들은 최초 계획이었던 어빙과 듀란트 동시 영입에 실패하자 이들을 위해 비워 놨던 샐러리 캡을 여러 명의 알짜 자원들로 채우며 2년 뒤 후일을 도모하는 행보로 보고 있다. 특히 6명의 계약이 모두 종료되는 2년 뒤에는 '''야니스 아데토쿤보'''와 '''제임스 하든'''이 FA가 되기 때문에, 준척급 자원으로 PO 진출을 내다볼 수 있는 성적을 기록하며, 빅 네임의 영입 기회를 노리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어떤 NBA 팬도 뉴욕 닉스 프런트가 저걸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46]
2019년 포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서 5위를 차지하며 또 다시 전체 NBA 구단 가운데 1위를 차지하며 팬들을 슬프게 했다. 자이온이고 뭐고 구단이 거창하게 내세운 대형 FA선수 영입이 죄다 망했는데도 연고지의 위엄으로 또 다시 1위가 되었다. 정말 닉스가 우승이라도하는 날엔 양키스도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ESPN에 따르면 프런트의 스티브 밀스가 해고되었고, 대체자로 토론토 랩터스의 유지리를 원한다고 한다
그렇게 꿈도 희망도 없는 시즌을 또 치르다가 휴스턴 로켓츠의 연승을 끊어내는 멋진 경기를 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기에서 닉스의 슈퍼팬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의 입장을 제한하는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또 구설수에 올랐다. [48]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구단주 제임스 돌란과 영구결번 레전드 패트릭 유잉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마저 들려왔다. ##
올랜도 버블에 초대받지 못하며 결국 최종성적은 21승 45패, 동부지구 1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한편 새로 선임된 사장 레온 로즈가 닉스 부활의 첫번째 초석이될 감독 선임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주요 후보는 제이슨 키드, 케니 앳킨슨, 탐 티보듀라고.
2020년 7월 26일 신임 감독으로 톰 티보도를 선임했으며, 계약 기간은 5년이다. # 티보도 감독의 대표적인 단점인 주전 선수 혹사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지만 동시에 닉스에서 가능성만 보여준 채 재능을 꽃피우고 있지 못한 유망주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담으로 티보도는 현재 팀 내에서 센터 자원인 미첼 로빈슨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이번 드래프트 추첨에서마저 '''샬럿 호넷츠과 시카고 불스가 4순위 이내를 먹어버리는''' 닉스 입장에서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며 졸지에 8순위로(...) 밀려났다. 닉스 팬은 이번 드래프트에서 포인트 가드 자원 중 2순위로 꼽히는 타이리스 할리버튼이나 마찬가지로 가드 자원인 킬리안 헤이즈가 제발 8순위까지 남아있기를 바라고 있다.
뜬금없이 크리스 폴을 데려오기 위해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케빈 낙스와 지명권을 포함한 트레이드를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팬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은 편. 이후 러셀 웨스트브룩과도 연결되기도 했다.

2.15. 2020-21 시즌


CBS스포츠에서 '''향후 5년간 미래가 가장 암울한 NBA 워스트 팀 4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샐러리캡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으로 인해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정해지자 유망주와 픽을 받는 대신 악성 계약을 감수하겠다고 나섰다.# 작년 투맥스 전략이 실패한 이후로도 샐러리 관리는 상당히 잘한 편이기 때문에 운신의 폭은 커진 편.
그런데 정작 톰 티보도 감독이 '윈나우' 무브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때문인지 러셀 웨스트브룩, 크리스 폴 트레이드 등이 언급되었으나 정작 닉스 프런트에서는 너무 큰 대가를 줘야할까봐 거래를 꺼리고 있다고. 그 사이에 크리스 폴은 결국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되었다.
2020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픽으로 홈타운 보이인 오비 토핀을 지명했다. 예상됐던 픽업 트레이드 없이도 준수한 선수를 지명하는 데 성공했다. 공격에 강점이 있지만 수비가 약점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팬들은 제2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지명 직후 토핀은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이후 타지 깁슨, 엘프리드 페이튼, 웨인 엘링턴 등 스쿼드 플레이어들과의 옵션 발동을 포기하고 바비 포르티스를 웨이브하는 등 샐러리를 추가로 비우고 있는데 같은 시기 보스턴의 고든 헤이워드가 전격 옵트 아웃을 선언하면서 닉스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49] 하지만 고든 헤이워드는 4년 120M으로 샬럿 호네츠로 이적했다.
'''**2020 오프시즌 주요 IN&OUT**'''
IN: 오비 토핀(루키), 임마누엘 퀴클리(루키), 오스틴 리버스, 알렉 벅스,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 (12월 21일 방출), 널렌스 노엘, 오마리 스펠먼 (1월 8일 방출)
OUT: 타즈 깁슨 (1월 8일 재영입), 바비 포티스, 웨인 엘링턴, 알론조 트리어, 모리스 하클리스, 데이미안 닷슨
시즌 초반 4승 3패 동부컨퍼런스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야투율이 지난 시즌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3점슛 성공률이 상당히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새로 영입된 멤버들인 알렉 벅스, 엘프리드 페이튼이 외곽슛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알렉 벅스는 3점슛 성공률 66.7%라는 리그 1위의 3점 성공률을 보여주면서 팀의 상승세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에이스인 랜들과 배럿의 호흡도 지난 시즌 보다 좋아진 모습을 보이는것도 상승세의 한축이다. 랜들이 지난 시즌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볼 소유 시간을 줄이고 팀에서 플레이 메이킹과 볼 핸들러로 변신을 시도한게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기도하다. 랜들의 평균 어시스트 기록을 보더라도 확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하지만 1월 9일 오클라호마시티전 패배 이후 내리 5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외곽에서 쏠쏠히 포인트를 쓸어 담았던 알렉 벅스가 왼쪽 발목 염좌로 장기 결장으로 빠졌고 페이튼의 기복있는 플레이가 겹쳐졌다. 페이튼보다 더욱 더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이는 베럿도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내려갈 놈은 결국 내려간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1월 18일 보스턴전을 시작으로 주포인 배럿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이더니, 커리를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던 골스를 잡으면서 3연승을 달리고있다. 골스전에 배럿은 개인 최다인 28득점을 기록하면서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감독이 티성근이라는 별명 답게 주포인 랜들과 배럿의 출전 시간이 리그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혹사를 시키고 있지만 확실하고 짜임새 있는 안정된 수비전술을 바탕으로 공격도 잘 풀어나가고 있다. 특히 공격 리바운드 1위 로빈슨과 수비 리바운드 1위 랜들의 강력한 타워 라인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면서 리그 최소 실점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3. 영구결번


'''뉴욕 닉스의 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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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2'''
'''15'''
'''15'''
'''19'''
월트 프레이저
딕 바넷
딕 맥과이어
얼 먼로
윌리스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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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4'''
'''33'''
'''613'''

데이브 드부셔
빌 브래들리
패트릭 유잉
레드 홀즈먼

  • 패트릭 유잉과 닉스 극 초창기의 딕 맥과이어를 제외하면 모두 1970년대 닉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주역들이다. 유잉과 맥과이어는 우승반지가 없는 영구결번 선수들이기도 하다.
  • 빌 브래들리는 2번 우승때의 주력 멤버이기도 했지만, 은퇴 후 정계에 투신해 더 유명해진 선수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 출마를 선언해 초반 바람을 일으켰지만, 민주당 앨 고어 후보를 넘지 못해 후보로는 선출되지 못했다.
  • 레드 홀즈먼은 닉스의 2차례 우승을 이끈 명장으로 그가 거둔 613승을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 리그의 시작을 함께 한 정말 오래된 팀인데도 웬만한 팀들은 다 있는 한자릿수 영구결번 선수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뉴욕 닉스의 파이널 MVP'''
'''1970년 파이널 '''
'''1973년 파이널'''
윌리스 리드

4. 2020-21 시즌 선수단


'''2020-21 시즌 뉴욕 닉스 선수단 '''
감독
톰 티보도
코치
조니 브라이언트 (수석코치), 마이크 우드슨, 케니 페인, 대런 어만, 앤디 그리어, 래리 그리어
가드
0. 자레드 하퍼, 4. 데릭 로즈, 5. 임마누엘 퀵클리, 6. 엘프리드 페이튼
8. 오스틴 리버스, 9. R.J. 배럿, 11. 프랭크 닐리키나, 18. 알렉 벅스
가드-포워드
21. 테오 핀슨, 25. 레지 불록
포워드
1. 오비 토핀, 17. 이그나스 브래즈데이키스, 20. 케빈 녹스 2세
포워드-센터
3. 너렌스 노엘, 30. 줄리어스 랜들. 67. 타지 깁슨
센터
23. 미첼 로빈슨

5. G 리그 산하팀


[image]
웨스트체스터 닉스
Westchester Knicks
설립년도
2014년 (10주년)
역사
웨스트체스터 닉스 (2014년~현재)
연고지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애틀랜틱 디비전
홈구장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센터 [50]

6. 기타


  •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 항상 상위권에 올라가는 팀이다. 2017년 기준, 전 세계 모든 스포츠구단을 통틀어 7위에 위치하는 천문학적 자산가치를 가진 팀이다. (약 33억 달러, NBA 전체 1위) 무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바이에른 뮌헨보다도 높은 순위이다. 그러나 우승은 커녕, 하위권에만 맴돌고 있다. 2019년 포보스 지 발표 기준으로는 5위, 2020년은 3위가 되면서 순위가 더 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플레이오프 진출은 한 번도 없었다.
  • 구단 운영 면에서 역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정 반대의 의미로. ESPN 얼티밋 스탠딩[51]에서 닉스는 매년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 전체 122팀 중 121위 (NBA 최하위), 2016년 전체 122팀 중 114위 (NBA 29위. 최하위는 피닉스 선즈)를 기록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막장 팀임을 꾸준하게 인정받고 있다. ESPN의 평가를 요약하자면, 티켓도 비싸고 주차도 비싼데 눈이 썩어들어가는 경기력을 선보이는 선수 및 코치진. 막장 구단주 때문에 지속 가능한 비전도 없고 당연히 우승 가능성도 없는 팀. 단 한가지 최악이 아닌 것은 매디슨 스퀘어 가든.
  • 미국의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52]가 닉스의 오랜 팬이다.[53] 1990년대 닉스와 접전을 벌였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레지 밀러와의 신경전으로 유명하다.
  • 뉴욕 언론들은 스포츠와 관련해 극성맞기로 유명하다.[54] 우승 도전에 실패한 말년의 패트릭 유잉에게도 큰 비난을 쏟아부은 적이 있었고[55][56], 포르징기스에게도 시즌 전에는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포르징기스가 잘하자 태도가 번개같이 바뀌어 찬양했었다. 빅마켓 중의 메가빅마켓인 뉴욕에서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화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57], 이런 언론의 태도가 뉴욕의 부진의 이유라고 지적하는 농구팬들도 있다.
  • 언론뿐만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NBA 인터뷰에서 특별히 언급하거나, 의견을 밝히는 일도 많은 구단이다. 셀틱스나 레이커스, 불스처럼 화려한 역사를 써내려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NBA 리그 내에서 존재감은 확실히 큰 구단이다.
  • 마지막 우승이 40여년 전이고, 현재도 부진한 성적에 시달리고 있지만, 90년대 유잉과 터프가이들의 끈끈했던 농구를[58] 봤던 팬들과 카멜로 앤서니의 영입으로 유입된 몇몇 팬들로 인해 한국 국내에도 팬층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뉴욕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뉴욕인데 왜 이렇게 못함?"이라면서 까이는 게 다반사. 한국에 어느 정도 팬층이 있는 것이 확인되는 양키스/메츠/닉스/자이언츠(풋볼) 중에서 '좆욕'이라는 비하명칭으로 불리는 건 닉스 밖에 없다.(...)
  •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에서도 닉스의 안습한 상황이 언급된다. 마티를 찾기 위해 지하철에 탄 알렉스가 한 남자가 들고 있던 신문을 읽고는 으르렁거리더니 "아, 뉴욕 닉스가 또 졌네"라며 한탄한다. 거기에 "매번 그렇지, 뭐"라며 거드는 맬먼의 대응이 압권. 참고로 영화의 개봉 시기는 2005년 5월로 33승 48패를 찍던 2004-05시즌이 막 끝났을 무렵이다. 저런 대사가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닌 셈.
  • 팀이 닌자 거북이의 2번째 영화인 닌자터틀: 어둠의 히어로에 출연했다.[59]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경기 도중 미켈란젤로가 피자를 떨어뜨려 디안드레 조던이 화려하게 자빠진다.(...) 카멜로 앤서니는 따로 출연장면도 있다.
  • 가수인 UMC, 그리고 LG 트윈스를 담당하고 있는 윤세호 기자가 닉스의 오랜 팬이다.[60] 또한 K팝 스타 시즌 3에 나와서 이름을 알린 가수 한희준도 미국 생활을 오래 했던 영향으로 이 팀을 응원하고 있다.[61]
  • 시카고 불스의 감독으로 마이클 조던과 함께 철저하게 닉스를 괴롭혔고, 닉스의 단장이 되어 또 다시 닉스를 괴롭힌 필 잭슨은 아이러니하게도 2번밖에 없는(1970, 1973) 닉스의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 2018년 한국을 방한한 데니스 로드맨이 김정은이 뉴욕 닉스 게임을 직관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일이 있었다. MSG가 여러모로 농구의 성지임을 입증하는 또 다른 사례이지만 닉스 구단의 입장에선 회피하고 싶을 듯.[62] 김정은은 학창 시절 불스팬이었다고 한다.
  • 라이벌 구단은 인디애나 페이서스, 마이애미 히트. 페이서스는 시카고 불스와 더불어 가장 치열하게 90년대 플옵에서 경쟁한 팀이고 히트는 팻 라일리의 이적 관련 사이가 험악하다. 닉스가 오래된 구단이다보니 대부분의 미국 동북부/중부 구단들과는 라이벌이라고 보면 된다. 종목을 막론하고 라이벌인 뉴욕-보스턴 라이벌리는 아무래도 우승 전적이 너무 차이나니까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마블의 루크 케이지(드라마)에서 뉴욕 형사 중 한 명이 셀틱스 팬이라고 말하자 파트너 형사가 "뉴욕에서 셀틱스를 응원하니까 너가 애인을 못 만드는거에요"라고 까는 걸 보아서는 라이벌 의식이 꽤 있는 듯 하다. 위키피디아에 항목이 있는 5개의 라이벌팀은 마이애미 히트[63], 보스턴 셀틱스[64], 시카고 불스[65], 인디애나 페이서스[66], 브루클린 네츠[67].
  • 뉴욕에 오래있던 팀이다보니 간간히 뉴욕 배경 영화/드라마에서 많이 나온다. 우피 골드버그가 출연한 에디가 꽤 유명한 영화.(1996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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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 더 디비전에서 메디슨 스퀘어 가든도 나오면서 '뉴욕 채리엇'이라는 농구팀의 흔적들이 등장한다.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챔피언을 달성한지라 게임을 하던 닉스팬들은 드디어 뉴욕에 좋은 농구팀이 생겼구만이라면서 씁쓸한 조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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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뉴욕 닉스의 전성기를 그리는 다큐멘터리나 서적이 나오곤 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제목 중 하나가 When the Garden was Eden (가든이 낙원이었을 때)다. 닉스팬들의 40년이 넘어가는 오랜 기다림을 짐작케하는 제목.
  • 브루클린 나인 나인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앤디 샘버그의 캐릭터 페랄타 형사가 패트릭 유잉을 만났는데 너무 떨려 발이 꼬이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유잉의 바지를 홀라당 벗겨버렸다는 개그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냥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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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닉스가 우승할 때 저는 3살이었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전 올해 51살입니다..."

- 뉴욕 닉스가 비시즌에 또 대삽질을 하자 절망한 스티븐의 넋두리

  • ESPN의 유명 해설가 스티븐 A. 스미스가 닉스의 골수팬이다. 닉스의 비시즌 삽질 때문에 정말로 빡쳐하는 인물. NBA의 모든 뉴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냉철한 분석을 재밌게 전달하는 스타일의 해설가지만 닉스 관련 얘기로는 공사구별이 안될 정도로 진짜 분노와 실망이 절절하게 느껴지게 이야기한다. 그 중의 백미는 역대급으로 거물들의 이동이 많았던 2019년 오프시즌. 자이언 윌리엄슨을 놓친 것부터, 케빈 듀란트카이리 어빙을 모두 놓치고, 그 대안으로 줄리어스 랜들, 바비 포티스, 타지 깁슨 등과 계약을 맺은 닉스를 보고 ESPN의 NBA 관련 패널들 모두가 이분의 실망과 좌절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를 시전하였다. 같이 First Take를 진행하는 맥스 켈러맨이 제대로 놀리기 위해 닉스 저지에 테이프로 랜들의 이름을 붙여서 선물한 것은 덤.
  • 스티븐 A 스미스와 설전을 벌이는 맥스 켈러맨 역시 맨해튼 출신이라 닉스팬이었으나 "썩은 집단을 내부에서 바꿀 수는 없다"라고 천명하면서 네츠로 떠났다. 제임스 돌란이 팀을 팔 때 다시 닉스로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 휴스턴 로켓츠 출신의 유명 해설위원 케니 스미스도 뉴욕 출신이라 닉스팬이다. TNT 방송에서 닉스가 또 다시 삽질을 할 때마다 한숨만 푹푹 쉬는 중.[68]
  • 구단주 제임스 돌란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신구장 이전을 막으려다가[69] 클리퍼스 구단주인 스티브 발머에게 제대로 당하는 중이며, 닉스 선수들의 미디어관계자 접근을 제한하는 등 경기장 안팎에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중이다. 현 시점 NBA 최악의 구단주.
  • 국내 NBA 커뮤니티에서는 뉴욕 닉스를 우승시키는 선수는 마이클 조던을 능가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극성스럽기로는 어디에도 지지않는 뉴욕 언론들이 선수들 비난할 때는 살벌하게 하면서도 찬양할 때는 또 끝내주게 하는 점, 그리고 뉴욕 연고지 구단이 가지는 특유의 세계적인 구단 가치를 보면 확실히 70년대의 윌리스 리드처럼 닉스를 우승시키는 에이스 선수가 나온다면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6.1. 연고지의 가치, '닉스 경기'의 특별함


뉴욕 닉스는 스포츠에서 연고지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이다. 뉴욕의 많은 인구, 거대한 경제규모 (즉, 부유한 관객들과 강력한 구매력), 그리고 연예계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스포츠 연고지로선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입지를 갖고 있다. 닉스는 2000년대 극초반 이후 조금 잘하다 몇년 망하는 걸 거의 20년째 반복하는 '''그야말로 연고지 밖에 없는 팀'''인데, 그 티켓 파워가 아직까지도 리그 전체에서 가장 핫하다는 점에서 정말 연고지가 스포츠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뉴요커가 농구장에 안 오면 NBA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위의 2017년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가 나올 당시 뉴욕은 31승으로 플레이오프도 못 나간 팀이었는데 가치는 '''NBA 1위'''다. 참고로 저때 NBA 2위는 마찬가지로 플레이오프 탈락(26승)한 LA 레이커스였으며, 우승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6억달러로 닉스보다 7억달러나 적다. NBA 구단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4구단 중 워리어스를 제외하면 뉴욕, LA, 시카고로 이 순서대로 그대로 미국의 3대 도시이다. NBA구단 가치에서 연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셈. 그나마 사실 오클랜드를 연고로 하는 골든스테이트도 대도시인 샌프란시스코까지 지역권에 있는 곳이고, 저 리스트에 포함된 나머지 NBA팀들인 클리퍼스, 네츠는 각각 LA와 뉴욕에 위치한 팀들이고, 보스턴 셀틱스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이다. 결국 나름 중상위권 마켓을 갖고 있는 워리어즈나 셀틱스도 성적이 나오니까 저 정도 가치인 것이고, 뉴욕이나 LA에 있는 팀들은 지지부진하거나 '''아예 망해도''' 그만한 가치를 자동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LA 레이커스도 닉스와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기는 어려운데, 레이커스는 2010년대 중반, 코비 브라이언트의 노쇠화 이전까지는 구단의 암흑기가 거의 없었던 리그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윌트 체임벌린, 제리 웨스트의 은퇴 후인 70년대 중반(74 ~ 76년), 매직 존슨의 은퇴 후인 90년대 초중반(91 ~ 96년) 몇년 동안 고전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76년 카림 압둘자바, 97년 샤킬 오닐을 영입하고는 다시 탄탄대로를 달렸다. 사실 90년대 초중반도 93/94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었는데 레이커스의 챔피언 컨텐더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남아있었고 무엇보다 이 시기가 마이클 조던의 시대여서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아 고전한 것처럼 느껴진 감도 있다.[70] 어쨌든 레이커스의 구단 가치는 연고지 가치가 가장 큰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NBA 역사상 최고의 성적 + 올타임 레전드급 선수들과 함께한 역사 + 성적과 역사를 통해 얻은 명문구단 이미지'''도 비중이 작지 않다.
구단의 가치는 뉴욕 빨이라고 쳐도, 닉스 경기에 항상 수많은 연예인들이 찾아오고 티켓 값이 그렇게까지 비싼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닉스 경기 자체가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
닉스 경기를 코트사이드(코트 바로 옆에 바닥에 놓인 의자에 앉아 선수들을 코앞에서 관람하는 것)로 관람하는 것은 부유하고 유명한 이들이 즐기는 럭셔리한 놀이문화 중 하나이며, 경기장에 넘쳐나는 연예인들, 화려하고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가든[71], 뉴욕이란 주목도 (아무리 성적이 안 좋아도 닉스는 전국적으로 나가는 TV중계가 잡힌다)로 인해 닉스 경기 자체가 마치 콘서트같은 화려한 이벤트로 취급받는다.
즉, "닉스 경기" 자체가 단순히 프로농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2014년 1월에 뉴욕 타임즈보도한 바에 따르면 닉스 경기에서 맨 앞의 6자리는 항상 톱스타들과 그들의 동행에게만 주는 Celebrity Row라고 알려져있는데, 기사가 다룬 경기에선 여기에 배우 데이비드 듀코브니[72], 뮤지션 폴 사이먼, 그리고 모델 케이트 업튼이 초대되었다고 한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 측에 따르면, 팬들을 열광시키게 하는 소위 "A급 인사"라면 경기장 측에서 자리를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이기든 지든''', 그게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죠.(Win or lose, it’s one of the reasons people come to the games)"라고 한다. [73]
또한 자주 경기장을 찾는 유명인사들은 별개의 입장로, 엘리베이터, VIP 클럽하우스, 최고급 뷔페 등 혜택이 있다고. 이 중 농구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이는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로, 레이커스의 잭 니콜슨과 더불어 유명인사 NBA 팬의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물론 이런 유명인사들은 항상 영상과 사진 촬영에 임해줘야하는 불문율이 있다. 이런 의무를 여러 차례 거절해서 클럽하우스 출입이 금지된 유명인사는 '''우디 앨런'''이 있는데 (물론 경기를 못 본다는게 아니라. 클럽하우스 출입이 금지), 앨런 정도 거물에게 퇴짜를 놓는다는 점에서 매디슨스퀘어가든의 자존심과, 닉스경기가 얼마나 프리미엄 이벤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코트사이드 좌석, 특히 중요한 경기의 코트사이드 좌석의 경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앉을 수 없다. 천문학적인 가격도 가격이지만, 닉스 경기란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 속된 말로 "물관리"를 하기 때문에 소위 말해 "급이 되는" 이들만 앉을 수 있는 자리란 것.[74] 쉽게 말해 사람들이 "닉스 경기는 특별한 것"이란 인식을 계속할 수 있도록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는 자리란 소리.
참고로 저 기사가 나올때 닉스의 성적은 '''15승 26패''', 시즌 최종성적은 37승으로 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었다. 그런데도 저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미 닉스 경기는 브로드웨이 연극 관람, 타임스퀘어,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방문 등과 더불어 뉴욕관광의 명물이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닉스가 잘하건 말건 상관없이.'''
닉스경기의 프리미엄화가 이런 성향을 어느 정도 부추긴 것도 있다. 닉스경기의 관람객 중에는 실제로 농구광팬들이 많긴 하지만, 자신의 재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A급 연예인들, 부자들, 뉴욕에 관광와서 "그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스포츠경기 보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도 많다. 즉, 이들은 닉스가 이기러 보는 것보다는 '''닉스 경기를 보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잘하든 말든 상관없이 보러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LA도 마찬가지) 그런데 밀워키나 오클라호마씨티같은 소도시는 거주하는 슈퍼스타들이나 부자들의 수도 적고, 외부 관광객의 수도 적기 때문에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농구팬들, 특히 지역주민들이다. 팬들은 당연히 팀이 맨날 지면 보러올 맛이 적어지기 때문에 경기력에 따라 입장수익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구매력이 비슷한 스몰마켓도 각자 사정이 다른데, 인디애나나 오클라호마 같은 경우 주 전체가 인구는 적지만 농구 인기가 엄청나고 (오클라호마시티의 경우 예전에 뉴올리언즈 허리케인으로 홈이 없어진 호네츠가 잠깐 둥지를 틀었을때 엄청난 반응에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여기로 연고지 이전을 확정했을 정도), 유타같은 경우 예전에는 오락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농구로 몰렸으나 제리 슬로언 체제 하에서 20년 이상 좋은 성적을 거둔 명문으로 거듭났기에 고정 팬들이 많다. 같은 소도시라도 이런 요소가 있으면 흥행에 유리하다. 반대 케이스가 밀워키같은 도시로, 70년대 카림 이적 이후 처참히 몰락, 80년대에 강호로 이름 날렸지만 이후 오르락내리락해 명문이라고 부르긴 아쉬운, 고정팬들이 적은 도시로 이런 곳은 성적 영향을 크게 받고 2020년 현재처럼 잘 나가도 인기가 오르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야말로 최악은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도시 자체는 규모가 꽤 크지만 영토가 무지하게 넓은 캐나다 특성상 주변도시들과 거리가 있어 도시권 자체가 그리 크진 않고, 농구 인기도 없으며, 신생팀이라 당연히 고정팬들을 기대할 수도 없고, 설상가상으로 농구도 못해 흥행도 최악이었다. 심지어 밴쿠버 시절 스타도 곰처럼 우직한 골밑농구를 하는 브라이언트 리브스, 실력에 비해 화려함이 적은 샤리프 압둘라힘같이 인기가 없을 법한 농구를 하는 선수들. 그나마 토론토 랩터스는 초창기에 데이먼 스타더마이어를 위시한 빠른 농구→빈스 카터란 초특급 스타→크리스 보쉬로 이어지면서 연고지가 유지될만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브루클린 네츠가 빨리 뉴욕시로 들어왔다면 경쟁자의 존재로 어느정도 상쇄가 되었겠지만 네츠는 닉스의 등쌀에 유랑생활을 하다가 뉴욕시에 온 지 6년밖에 지나지 않아 뉴욕 프리미엄은 닉스가 모두 흡수. '''성적이 안 나와도 구단가치 흥행은 리그 최고라 프런트가 개판을 치는''' 닉스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75]
TNT의 '오픈 코트'에서도 아예 한 회를 '뉴욕의 농구'에 할애하여 다루었다. 뉴욕의 농구 선수들도 MSG에서 농구를 하는 것을 하나의 꿈으로 여기고 있고 마이클 조던도 뉴욕 경기에 특별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등 MSG는 하나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여러모로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양키스 게임과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닉스 게임은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양키 스타디움에는 승리의 기억이 많고 MSG에는 패배의 기억이 많을 뿐.
같은 구장의 뉴욕 레인저스도 연고지의 힘인지 리그 2위의 팀 가치를 유지 중이다.[76] 레인저스는 성적도 괜찮은게 차이점.[77]
사실 지나고 보면 "Linsanity"란 별명으로 언론에 도배가 됐던 제레미 린 역시 실력에 비해 엄청난 주목을 받은 셈이다. 린이 11-12시즌 당시 7연승을 이끌던 기간부터 부상 당하기 전까지 평균 기록은 18.5점 7.7어시스트 야투율 44%였다. 7연승 기간 동안 그는 24.4점 9.1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가장 높은 득점은 38점, 어시스트는 13개였다. 물론 이당시 린이 대단한 활약을 펼친 것은 사실이나, 특정 구간만 뽑아보면 이 정도 기록이 나오는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제레미 린은 하버드 출신, 무명 선수의 약진, NBA에서 희귀한 동양계 선수라는 스토리가 있어서 다른 팀에서 활약했더라도 충분히 주목받고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이목이 주목되는 '''닉스'''에서 그려낸 성공 스토리가 아니었다면, 그만큼 엄청난 수준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1] 정식 명칭은 '뉴욕 니커버커스'이지만, 언론이나 구단 측에서는 '닉스'를 많이 쓴다. 로고에는 60년에도 팀명이 들어가면 항상 Knick라고 표기되었지만, 당시에는 중계방송 도중 처음 소개할때 풀네임인 "New York Knickerbockers"라고 하고 중계도중엔 약칭인 닉스라고 지칭하곤 했다. 그러나 점점 풀네임을 쓰는 빈도수가 줄어들어 현재에 와서는 6,70년대 농구인들이 '''가끔''' 언급하는 정도고, 젊은 세대는 아예 닉스가 약칭이란 걸 모르는 팬들도 많다. 약칭으로 널리 알려진 오클랜드 As와 다른 점인데, 니커보커스란 단어 자체가 현재 거의 쓰이지 않아 미국인들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단어이기 때문.[A] A B NHL 뉴욕 레인저스와 공용[2] 제임스 돌란(James Dolan)이 소유하고 있는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지주회사. 제임스 돌란은 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소유주 래리 돌란의 조카이기도 하며, 한때 뉴욕의 케이블TV 회사였던 케이블비전을 경영했던 사람이기도 하다.[3] 기존 사장인 스티브 밀스가 한국 기준 2월 5일 해고되었다[4] 70시즌은 우승, 93시즌은 컨퍼런스 결승에서 조던의 불스에 패배.[5] 맨해튼 출신으로 닉스의 오랜 팬이었으나 제임스 돌란이 팀을 팔지 않는한은 닉스팬을 하지 않겠다면서 떠나버렸다.[6] NHL의 뉴저지 데블스도 범위를 넓게 잡으면 뉴욕 생활권 안에 들어있다. 즉 뉴욕 생활권에는 NHL 구단이 무려 3개나 있다는 것.[7] 2012년 뉴저지 네츠가 연고지를 브루클린으로 이전하면서 뉴욕 유일의 NBA 팀이라는 타이틀은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리그에서 뉴욕의 이름을 쓰는 유일한 팀이다.[8] 허스키스는 이후 해체됐으며, 지금은 토론토 랩터스가 얼터 유니폼으로 토론토의 첫 농구팀을 기리고 있다. 농구의 창시자인 네이스미스 박사가 캐나다계 미국인이었던지라 NBA는 초창기부터 캐나다의 국가를 경기 전에 트는 등, 나름 예우를 했다.[9] 경기는 68-66으로 닉스가 승리했다. 즉 뉴욕 닉스는 NBA 최초의 승리팀이라는 이야기. , 96-97시즌에 50주년 기념으로 닉스와 랩터스가 다시 개막전을 열었는데 닉스가 또 이겼다.[10] 얼마나 안습했냐면 이때 당시 베일러는 NBA 12년차로 8번째 결승 진출이었고, 웨스트는 10년차였고 7번째 결승 진출이었는데 '''모조리 준우승이었다.''' 그리고 체임벌린은 데뷔 이후 계속해서 빌 러셀과 보스턴 셀틱스에게 당하다가 67년에 딱 한번 우승하긴 했는데, 68년에 보스턴보다 더 뛰어난 팀 전력을 갖추고 시리즈 전적 3-1로 앞서다가 역전당했다. 이 셋은 68년 당시 리그 최고의 가드/포워드/센터라 불릴만했는데(실제로 68년에 베일러는 베스트 5격인 퍼스트 팀, 윌트는 '''MVP''', 웨스트는 세컨드 팀에 올랐다), 러셀과 보스턴에게 하도 당하는게 분통터졌는지 다음 시즌에 체임벌린이 레이커스로 합류해 셋이 뭉치는 초대형 사건을 터뜨린다. 90년대로 따지면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존 스탁턴이 뭉치는 격이며 현재로 따지면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가 뭉치는 꼴이다. 문제는 '''그러고도 69년에 보스턴에게 졌다.''' 이 정도 되니 우승을 향한 이들의 열망은 어마어마했다.[11] 89년은 팀내 넘버투인 오클리를 트래이드하고 카트라이트,그랜트, 피펜을 주전으로 올리고, 시즌 내내 적당한 PG를 못 찾아 결국 조던을 PG로 쓰는 등 팀 전체가 오락가락했으며, 93년엔 매너리즘과 조던의 도박스캔들로 인해 분위기가 안 좋았다.[12] 패트릭 유잉은 평생 단 한번도 조던의 팀을 토너먼트에서 탈락시킨 적이 없다. 대학시절 유일한 맞대결은 UNC의 승리로 끝났고, 프로에서는 다들 알다시피... 불스를 이긴 94시즌엔 당연히 조던이 없었고.[13] 킹이 85년 3월에 부상을 당한 뒤 코트 위에 다시 선 것은 87년 4월, 2년도 넘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14] 하지만 킹은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부활. 이후 전경기 출전도 이뤄내고 90-91시즌에는 평균 28.4점을 넣으며 올스타전에도 복귀하는 등 훌륭한 말년을 보낸다. 닉스가 87년 이후 아무 대가 없이 그를 방출한 것과 90-91시즌에 38승에 그치며 1라운드 탈락한 걸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부분.[15] 이때 아직 젊고 운동능력이 살아있던 유잉조차도 달리는 농구를 했다. 유잉 개인으론 페이스가 빠르던 89시즌에는 평균 22점, 페이스/평균득점이 둘 다 리그 12위로 떨어진 89-90시즌에 오히려 기량이 절정에 오르며 28.6점, 리그 3위를 기록했다. 같은 90시즌에 평균 블럭슛 4개, 필드골 성공률 55.1%(각각 리그 2위, 6위)까지 기록하며 라이벌 하킴 올라주원을 제치고 올 NBA퍼스트팀 센터에 올랐으니 의심할 여지없는 유잉의 리즈 시절.[16] 여담으로 릭 피티노는 이때 성공 덕분인지 97년에 보스턴 셀틱스에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으로 2001년에 사임하기 전까지 102승 146패란 실망스런 성적만 남기고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된다.[17] 이 시즌의 팀 전체 세부 스탯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하다. 60승이나 거둬 동부 1위, 전체 2위의 높은 팀성적임에도 득점은 27개 팀 중 24위, 오펜스 레이팅(경기 페이스를 감안해 공격권 100번당 팀이 득점한 횟수)는 리그 22위에 그쳤다. 그러나 수비에선 디펜스 레이팅 리그 1위, 실점도 리그에서 가장 적었다. 즉, 평범한 것도 아니고 리그 '''하위권'''인 공격능력(27개팀 중 22위면 100명 중 81등한 꼴이다)에도 막강한 수비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팀이었던 것.[18] 존 스탁스가 팀공격을 캐리했다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당시 스탁스는 평균 17.7점, 야투율 36.8%에 그쳤고, 맹활약이라고 할만한 건 6차전 27점 정도였다. 유잉이 시리즈 평균 18.3점, 야투율 36.3점으로 오히려 근소하게 나음에도 사람들이 "유잉이 끔찍하게 부진하고 스탁스가 오히려 잘했다"고 기억하는건, 평상시 유잉은 저 정도 기록을 낼 선수가 아니지만 스탁스의 기량으로 저런 수비를 당하며 저런 기록을 낸 건 상당히 잘 한 것이기 때문.[19] 조던치곤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93시즌의 조던이 닉스를 상대로 32점/야투율 40%를 기록했다. 가벼운 손목 부상이 있긴 했지만 1,2차전 당시 조던은 레이업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닉스는 그를 괴롭혔다.[20] 유잉 본인으로 보면 팀이 변화를 겪은 뒤 96-97시즌에도 올NBA세컨팀에 오르는 등 슈퍼스타였고 팀의 확고부동한 에이스였다. 98시즌에도, 그리고 99시즌이나 99-00시즌에도 팀의 중심이자 주전센터였다. 그러나 유잉의 뛰어난 실력과 별개로 팀 색깔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가운데 기동력이 느려진 유잉은 잘 맞지 않는 조각이었다. 물론 이와 별개로 패트릭 유잉 항목에 나와있는 "유잉 무용론"은 개소리다. "실력이 있지만 팀 색깔에 안 맞는다"와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다"는 전혀 다른 소리다.[21] 런 TMC 트리오의 골든스테이트, 숀 켐프-게리 페이튼의 시애틀, 찰스 바클리-케빈 존슨의 피닉스 등.[22] 실제로 96년 파이널 3차전에서 룩 롱리는 플레이오프 커리어 하이 (19점)을 찍는 등 평소보다 훨씬 활약했다. 당시 경기를 보면 안 그래도 수비가 좋은 편은 아닌 켐프가 롱리의 거대한 덩치에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있다. 롱리만 해도 이 정도였는데, 만약 실력으로 상대도 안되는 패트릭 유잉이 상대였다면... 또한 롱리는 96파이널 통틀어 11.7점을 기록해 97,98 파이널 기록인 6.8점, 5.5점보다 훨씬 잘했다. 96시즌 시애틀은 디펜스 레이팅이 리그 2위일 정도로 뛰어난 수비팀은 반면, 97유타는 리그 8위, 98유타는 17위에 불과했다. 소닉스가 재즈보다 수비를 훨씬 잘하는 팀이었음에도 이 팀은 사이즈가 작았기 때문에 롱리가 이 팀을 상대로 평소보다 수월하게 플레이한 반면, 재즈엔 롱리와 사이즈가 비슷한 그렉 오스터텍이 있었기에 별 활약하지 못한 것. 그만큼 사이즈는 중요하다.[23] 실제로 켐프와 키가 같고 수비력은 넘사벽인 모닝도 유잉 상대로 많이 고전했다. 유잉이 35세, 모닝은 27세이던 97년 플레이오프 매치업에서 유잉은 23.7점 11.5리바운드 2.2블럭 야투율 48.8%로 19.1점 9.1리바운드 2.9블럭 야투율 40.2%을 기록한 모닝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앞섰다. 해당 시즌 이들의 정규시즌 성적과 비교하면 유잉은 득점, 리바운드가 소폭 상승하고 야투율은 그대로였지만, 모닝은 득점, 리바운드가 소폭 하락하고 야투율은 53.4%에서 대폭 하락했다.[24] 99시즌 스퍼스는 팀 던컨과 데이비드 로빈슨을 보유했으며, 닉스는 오히려 유잉까지 잃었다. 94년 로키츠는 당시 전성기였던 하킴 외에 한때 올스타였던 오티스 쏘프가 파워포워드에서 보좌했다.[25] KBL에서 뛰었던 그 단테 존스다. 다만 데뷔 시즌 발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2년차 시즌인 97-98 시즌 직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되어 닉스에서는 1경기도 뛰지 않았다.[26] 그럼에도 최종 점수는 90:95로 5점차 패배였다. 아무리 홈 경기의 이점이 있었다고 해도 주전 세 명이 빠져나간 경기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선전한 경기였다.[27] 히트는 상성이 불스와 안 좋았다. 불스를 괴롭힐 수 있는 건 작고 재빠른 가드나 사이즈와 기술을 겸비한 센터인데, 당시 제2의 전성기를 맞던 팀 하더웨이는 슬슬 노장의 반열에 들던 선수라 스피드를 많이 잃었으며, 모닝은 사실상 파워포워드의 사이즈를 지닌 선수인데다 엄밀히 따지면 득점이 주특기도 아니었다. 결국 하더웨이는 야투 3할대로 17점, 모닝은 15점에 그치며 맥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웬일로 불스 에이스 조던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는데도 맥없이 패했다. 불과 1년전에 불스를 상대로 평균 23점을 기록한 유잉, 기량이 한창 올라오던 휴스턴 등이 있었다면 재밌는 승부가 됐을 듯.[28] 재밌게도 상대팀의 던컨과 로빈슨 듀오는 '트윈 타워' 라고 불렸다.[29] 그의 아버지가 전 유타 재즈의 사장이었던 프랭크 레이든. 구단 감독부터 시작해 단장, 사장까지 역임하며 유타 재즈를 강팀으로 만드는데 일조했고 감독 시절에는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했던 유능한 인물이다. 아들 역시 재즈에서 코치 겸 스카우터부터 시작하여 부사장까지 역임해 아버지를 도와 서부의 강호로 만드는 데 일조했으나 나중에 닉스로 오면서 아버지의 명성에는 못 따라갔다.[30] 이 때 받아온 선수가 샌던 앤더슨과 하워드 아이즐리였는데, 저 둘은 유망주도 아닌 평범한 롤플레이어였고 그나마도 당시 라이스의 계약이 2년 남은데 반해 저 둘은 무려 6년 계약이 남아있었다. 영입 당시에도 저 둘의 계약기간이 많이 남은데 대해 불안해하는 닉스팬들이 많았는데,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되어 저 둘의 샐러리는 2000년대 후반까지 닉스의 샐러리 유동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31] 반면 전임인 스캇 레이든은 2005년부터 7년간 유타 재즈의 코치를 맡다가 이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부단장을 거쳐 2016년부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단장이 되었다.[32] 이 포기한 픽 2개로 뽑힌 선수가 라마커스 알드리지조아킴 노아였다. 패착 정도가 아니라 패망 수준.[33] 일각에선 제롬 제임스의 몸값이 연 6m 수준으로 싸니 먹튀라고 하기엔 애매하지 않느냐며 주완 하워드나 길버트 아레나스처럼 몸값 비싸고 활약을 못 해주는 선수가 먹튀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저들은 경기를 뛰기라도 했지 제롬 제임스는 '''경기를 안 뛰고 그냥 놀았다.''' 출장 경기수로 따져 연봉을 일당으로 계산시 제롬 제임스가 거의 넘사벽의 먹튀가 맞다.[34] 덕분에 돌란 대주주는 트위터에 한바탕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자신에 대한 욕으로'''(...)[35] 다만 그는 2012년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운영담당 사장으로 복귀했다.[36] 양친이 모두 대만 화교이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거기에 하버드 출신에 기독교도. [37] 3일짜리 논개런티 계약이었는데, 이제 남은 시즌까지 '''8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거취가 불분명해서 팀 동료네 소파서 잘 정도였는데 이젠 뭐...[38] NCA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켄터키의 윌리 컬리-스타인, 듀크의 저스티스 윈슬로우, 위스콘신의 프랭크 카민스키 등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스페인 리그에서 그저그런 활약을 보인 포르징기스를 뽑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39] 정확히는 호크스가 지명이지만 그 전에 이미 픽이 트레이드 된 상태였다. 제런의 경우 시카고 불스와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했던 호레이스 그랜트의 조카이자 필라델피아 76ers의 포워드 제라미 그랜트(Jerami Grant)의 형이다.[40] 트위터 답변들과 ESPN에서 일하는 사람들 몇백을 랜덤으로 뽑아서 순위를 매기게 한 다음에 평균낸 것이다.[41] 사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레이커스는 그래도 플옵에는 진출하는 팀이었고, 닉스는 바닥권팀이었음에도 닉스의 가치가 더 높았다.(레이커스의 가치가 1위로 올라선 것은 코비 중심으로 개편된 팀이 우승하고부터이다.) 아무래도 브루클린 네츠가 오면서 예전에 비해 뉴욕 프리미엄을 덜 받는 것으로 보인다.[42] 피닉스에서 업-템포와 런앤건으로 잠시나마 부활을 이끈 감독을 영입해 놓고, 그 감독에게 픽앤롤을 특기로 하는 가드와 쓰지도 못하는 센터를 사다줘 놓고는, 가만히 있는 에이스와 뭔가 해볼려는 감독에게 틈만나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왜 안하냐?"며 흔들어댔다.[43] 정확한 사인은 가정사 문제로 인한 무단결근이다. NBA는 이유를 막론하고 허가없이 팀을 무단이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로즈에게 2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44] 어차피 멜로는 트레이드 거부권을 계약서에 삽입했기 때문에 멜로가 승인하지 않는 이상 트레이드는 불가능하다.[45] 뉴욕 양키스지안카를로 스탠튼을 영입하면서 애런 저지와 함께 양대리그 홈런왕들을 수집하는 등 제대로 악의 제국으로 부활하려는 면모를 보이고, 뉴욕 메츠 역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등의 성과를 거두었고 뉴욕 레인저스뉴욕 아일랜더스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뉴욕 자이언츠뉴욕 제츠는 두 팀 모두 무너져버리면서 17-18시즌 뉴욕은 농구와 미식축구로 슬픔을 맛보아야 했다.[46] 애초에 닉스는 패트릭 유잉 시절 이후 거의 매년 FA시장을 노려왔으나 제대로 된 적이 없다.그나마 2010시즌의 슈퍼스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도 젊고 유망한 선수들 다 놓치고 플랜B 로 영입한 것이나, 부상 병력이 심한데다 하락세에 접어든 선수였기에 오래 써먹지도 못했다. 문제는 아마레 영입이 당시 닉스 기준으론 대박에 가까웠다는 것. 세계 최고의 연고지에 전통도 있고, 돈도 잘 써서 대형 선수들이 한번쯤 고려하는 행선지인데도 이 모양이라는 걸 프런트가 정말 일을 심각하게 못한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47] 90년대 닉스의 레전드인 찰스 오클리는 처참한 운영을 하는 구단주에게 경기 중에 강하게 항의하다가 닉스 경기 출입금지처분을 당했다.[48] 28년 동안 닉스의 경기에 입장할 때 VIP관객 출입구 대신 직원 출입구를 써오던 스파이크 리를 경비원들이 제지한 것. 스파이크 리는 이런 걸 지시할 수 있는 것은 구단주인 돌란 뿐이라면서 "나를 찰스 오클리처럼 취급하는 것이냐"[47]면서 분노했다.[49] 다만 페이튼이 팀을 떠나면서 팀 내 볼 핸들러가 0명에 가까운 상황인데, 헤이워드나 밴블릿 영입과는 별개로 신인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볼 핸들러 영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50] WNBA 뉴욕 리버티와 홈구장 공유.[51] ESPN The Magazine's Ultimate Standings. 전미 4대 프로스포츠에 소속된 총 122개 구단을 대상으로 매년 운영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평가 지표는 티켓 및 주차 등의 가격(Affordability 12.2%), 감독의 운영 능력(Coaching 2.8%),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Fan relations 27.2%), 프랜차이즈 스타 및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태도(Ownership 12.8%), 선수단 가치(Players 14.7%), 홈 경기장 시설&편의성&프로모션(Stadium experience 11.7%),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의 우승 경쟁력(Title track (3.9%), 팬들이 지불한 금액 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가(Bang for the buck (14.7%) 총 7가지이며, 포브스 지에서 발표하는 구단가치와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매년 최상위권에서 놀고 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이 팀은 NBA 내에서도 손꼽히는 스몰 마켓이다.[52] 똑바로 살아라, 말콤X, 농구게임 NBA 2K16의 커리어모드 스토리 등을 감독했다.[53] 닉스의 홈경기때마다 코트 바로 앞의 좌석, 그러니까 TV 중계 카메라 앵글을 기준으로 왼쪽 골대 바로 아랫지점 코트의 맨 앞좌석에 그의 자리가 있다.[54] 라디오 스포츠 채널 방송이나 지역신문 스포츠 코너를 읽어보면 그야말로 뉴욕에서 프로스포츠 선수로 뛴다는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뉴욕 양키스의 예만 들어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을 경우 무진장 까이는 것은 기본이다. 팬들은 물론이지만, 진행자나 담당기자들이 자료를 들고 까는 모습은 정말이지 몸서리가 쳐질 정도. 그래서 한때 뉴욕 레인저스 단장으로 재직한 로저 닐슨(Roger Nielsen) 같은 경우는 통근 중에는 아예 라디오 스포츠 채널은 아예 안 들었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하다 못해 일라이 매닝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라디오나 신문에서 일제히 "너님은 왜 위대한 형의 발톱의 때만도 못함?"이라며 노상 씹었다. 팬들은 일라이의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벌써 뛰쳐나갔을 것이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라디오 진행자들 역시 뉴욕에서 선수 생활을 할려면 보통 강심장 아니고는 못 견뎌낸다고 대놓고 말한다.[55] 유잉은 15년 동안 뉴욕을 굳건히 지켜온 선수였지만 선수생활 말년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떠났다.[56] 이런 뉴욕 언론이 유일하게 까방권을 준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데릭 지터.[57] 유잉은 뉴욕에서 선수를 한다는 것은 현미경 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유잉은 선수 시절 이러한 뉴욕 언론을 철저하리만치 무대응으로 일관해 결국 언론이 먼저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게 했다.[58] 유잉이 센터로서 골밑을 지켜주고 찰스 오클리, 앤서니 메이슨 등의 포워드들의 피지컬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전형적인 마초 농구가 팬들의 눈길을 끌었던 시기다.[59] 닌자 거북이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프랜차이즈다.[60] 윤세호 기자의 경우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한 영향인지 뉴욕 메츠뉴욕 자이언츠도 함께 응원하고 있다. 가끔 SNS에서 닉스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답답해할 지경.[61] 2020년 12월 31일자 볼륨을 높여요에 고정 게스트로 나와서 사연을 읽어주다가 읽게 된 사연이 "9살 때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팬인데, 입덕하고 한 번도 우승을 못 보다가 입덕한 지 23년만에 우승을 봐서 기쁘다"라는 내용이였다. 이 사연을 읽은 뒤 9살 때부터 닉스의 팬이라는 것을 본인이 직접 밝혔는데, 본인 왈 만년 꼴찌라고 셀프 디스를 시전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고, 닉스는 우승을 못할 것 같다면서 다저스의 우승이 엄청 질투가 났다고 했을 정도.(...) 당시 사연 자체는 좋아하는 미국 야구 팀이라고만 언급이 되었지만 올해에 드디어 우승을 봤다는 걸 봐서는 그냥 대 놓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라고 봐도 될 정도.[62] 다만 이렇게 보기는 힘들다. 김정은이 깽판치러 미국에 올수는 없을 것이고 그가 미국에 온다면 그 자체만으로 비핵화 과정에 어마어마한 진전이 이뤄졌다는 얘기기 때문에 지금같은 독재자가 아닌 과거에 냉전을 종식시킨 공헌자 중 하나로 인정받던 고르바초프처럼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정은이 MSG에 온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사건이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기 때문에 닉스는 환영할 것이 분명하다.[63] 팻 라일리의 이적으로 두 팀의 관계가 험악하다. 라일리는 닉스 프런트에 전권을 요구했는데 닉스는 거절했고 히트가 오히려 받아들이면서 그 쪽으로 가버린 것. 닉스의 주전가드 팀 하더웨이 주니어의 아버지 팀 하더웨이(마이애미 히트 영구결번)는 인터뷰에서 이 라이벌 질문을 많이 받는다.[64] 뉴욕과 보스턴의 전통의 라이벌. 리그 원년(1946년)부터 유일하게 연고지를 옮기지 않은 팀들이라 자존심도 엄청나게 높다.[65] 90년대 마이클 조던과 패트릭 유잉과 상남자들이 대결했던 라이벌전. 이 시기 닉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불스를 잡은 건 조던이 야구를 하러갔던 93-94시즌이 유일했다. 조던의 가장 큰 피해자도 닉스.[66] 스파이크 리레지 밀러의 설전으로 대표되는 라이벌전. 페이서스는 90년대 후반 엄청난 강팀이었고 닉스와는 플옵에서 또 너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주 충돌했다.[67] 네츠가 창단하자마자 시작된 라이벌전. 네츠가 브루클린에 입성하면서 뉴욕시 라이벌이 되었다.[68] 재미있는 점은 스미스는 94년 NBA 파이널 당시 휴스턴 소속으로 닉스를 꺾고 우승을 한 바 있다.[69] 이로 인해, 돌란은 클리퍼스 팬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구팬으로부터 견공자제분 취급을 받고 있다.[70] 이 당시 NBA 내 모든 언론과 미디어가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성적과 상관없이 언제나 닉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뉴욕 언론들조차 이 시기만큼은 닉스와 불스(엄밀히 말하면 조던) 기사량이 거의 동등한 수준이었다.[71] NBA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구장명명권을 판매하지 않은 경기장인데, 명명권 판매로 얻는 수익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경기장 자체의 이름값이 높기 때문이다[72] 미드 X파일에서 멀더 요원역을 맡았던 그 배우 맞다.[73] 매디슨 스퀘어 가든 측에서 이런 유명인사들과 접촉하고, 별로 안 유명한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경기관람을 하고 싶다는 유명인사들이 겹칠 때 누구에게 자리를 줄지 결정하는 팀이 있다고 한다. 물론 위에 언급된 Celebrity Row에 앉는 것은 그야말로 톱급 인사들이고, 웬만한 유명인사들은 좋은 자리에 앉아도 코트사이드는 무리라고. 예를 들어 2014년 당시 WBC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미구엘 코토는 5번째 줄, 뉴욕 레인저스 선수들은 17번째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한다.[74] 간단히 말해, 웬 듣보잡 졸부가 비싼 돈을 내고 코트사이드 자리에 앉았다고 치자. 그를 본 사람들은 "어? 유명인인가?"라고 검색을 해볼테고 그가 돈밖에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면 "유명인들만 앉는" MSG 코트사이드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기장에 오려고 했던 A급 스타들도 "뭐야, 돈만 있으면 개나소나 오는 자리였어?"라고 해 안 올 확률이 높고, 이 자리를 별볼일 없는 연예인들에게 주거나 일반인들로 채우기 시작하면 프리미엄 브랜드는 사라진다. 결국 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어필할 요소가 농구 자체밖에 없게 되니,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이 망하면 흥행에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물론 뉴욕이란 연고지가 워낙 특별하고, 뉴욕 연고 팀이란 자체가 크니 다른 마켓처럼 망하진 않겠지만 지금처럼 "특별한" 이미지는 사라질 것이다.[75] 사실 이는 뉴욕빨도 있지만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란 이름값도 크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경우, "가든에서 열린 경기의 최고 득점자"가 될 경우 (즉 닉스 홈경기에서 최고 득점자) 언론 주목도가 엄청나다. 물론 초고득점은 항상 언론의 주목을 받지만, 다른 팀의 경우 "~가 최다득점" 혹은 "~를 상대로 최다득점" 이런식으로 되는데 최근 제임스 하든이 61점을 넣었을때처럼 (심지어 이건 신기록도 아니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점!"이란 헤드라인이 많다. "~가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70점!" 이런 헤드라인이 있는가? 다른 모든 경기장은 명명권 수익 연간 몇백만달러 얻겠다고 기업 이름을 붙인, 말 그대로 경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팀과 도시가 사용하는 공간일 뿐 어떤 의미도 없다. 그러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그 유명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고 뉴욕의 상징 중 하나이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이 특별한 경기장을 쓰는 닉스와, 돈 더 주는 기업이 나오면 언제든 이름이 바뀔 "바클레이 센터"를 쓰는 네츠는 프리미엄 면에서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76] 1위는 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인데 이쪽은 NHL롯데 자이언츠 취급을 받고 있다. NHL의 경우는 하키가 캐나다, 그 중에서도 몬트리올이 발상지라 MSG가 하키의 성지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는 중.[77] 하지만 레인저스도 돌란의 간섭으로 인해 암흑기가 온 적이 있으며 2012년 파이터 기질로 유명한 당시 존 토토렐라 감독이 대놓고 인터뷰에서 한 소리한 적이 있을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은 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