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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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제 25회 하계 올림픽 대회. 오랜 보이콧의 역사가 끝난 대회이자,[2] 냉전의 종식으로 동서 대립이 없는 가운데 펼쳐진 최초의 대회다.[3]
2. 유치
유치 운동이 벌어지던 시점에는 그래도 세계 경제가 그럭저럭 회복한 상황이기도 했기 때문에 1988 서울 올림픽 당시보다는 유치전에 뛰어든 나라가 많았다. 사실 이 시점에서는 이 대회가 냉전의 종식 이후 벌어지는 최초의 대회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유치는 비교적 손쉽게 바르셀로나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고향이 바르셀로나다. 그렇다고 사마란치가 노골적으로 바르셀로나를 편들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프랑코 독재 이후 달라진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스페인 정부의 절실함이 겹치면서 바르셀로나는 비교적 손쉽게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이때 미국도 절실히 올림픽 유치를 원했다. 왜냐하면 1992년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년 기념해라서 절실했지만, 스페인은 더욱 절실했고, 결국 유치에 성공했다.[4] 게다가 이미 1984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때문에 후보에 넣었어도 대륙별 순환개최 때문에 안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 특징
1972 뮌헨 올림픽 이후로 IOC 회원국 전체가 참여한 대회였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북한과 쿠바도 참가했다. 거기다 통일된 독일과 통일된 예멘이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논란으로 참가정지를 당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차별의 종식과 함께 다시 올림픽에 참가했다.[5]
소련은 해체되었으나 발트 3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단일 팀[6][7] '이란 이름으로 단일 팀을 구성하여 참가했으며,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29개로 미국을 그야말로 박살내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개최국 스페인은 홈버프를 받아서 6위를 하고 한국은 스페인에 이어서 7위를 했다.
그에 반해 동유럽의 스포츠 강호였던 유고슬라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유고 연방내 수많은 국가들이 분리독립하여 붕괴되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같은 유고 연방에서 독립되어 나온 다른 나라들이 출전했던데 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도국이였던 신 유고연방은 보스니아 내전 과정에서의 학살 지원 문제로 발목이 잡혀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고 말았다.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참가할 수 있어서 국기가 아닌 오륜기를 들고 참가했다. 신 유고연방의 올림픽 출전 금지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전쟁, 내전 상황속에서도 올림픽 대회에 당당히 참가했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스리랑카, 레바논, 모잠비크, 앙골라와는 대조적이었다.
직전 대회 개최국이자 종합 4위를 기록했던 대한민국은 이 대회에서 '''금12 은5 동12'''로 종합 7위에 올라 지난 대회 성적이 결코 홈그라운드의 유리함 덕분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선전을 했다. '''특히 대회 시작 후 첫 금메달(사격, 여갑순)과 마지막 금메달(마라톤, 황영조)을 따냈으며''',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은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를 달고 획득한 마라톤 첫 금메달이었다.[8][9] 황영조는 이 금메달로 몬주익의 영웅[10] 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카퍼레이드를 했던 마지막 대회이기도 하다.당시 카퍼레이드를 다룬 대한뉴스 영상[11]
이 대회의 진가는 성화봉송식 마지막 장면에 있다. '''불화살'''을 이용해 성화를 점화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베를린 대회 이래 별 특색없이 최종 성화주자 1인이 계단을 이용해서 점화했으나, 직전 대회였던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3명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서 성화대에 점화해 의미도 담고[12] 변화도 주었다. 이후로는 매회 획기적인 성화대 점화 방식을 내비치는 것이 경기대회의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대회의 불화살 점화식은 세계인에게 성화 점화를 하나의 이벤트로 각인시킨 것이었다.
사실 불화살은 성화대 안에 명중한 것이 아니라 성화대 위를 지나갔다. 스쳐도 화살의 불이 가스에 이어붙는 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별탈없이(?) 안전하게 점화되었다.[13] 이 화살은 안전하게 회수되어 기념으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성화를 점화한 사람은 스페인의 휠체어 양궁 선수인 안토니오 레보요다.[14]
성화 점화 후 대회 주제가 <Amigos Para Siempre>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초대형 오륜기가 몬주익 스타디움 중앙에서부터 펼쳐져 각국 선수단 전체를 뒤덮은 장면은 역대 올림픽 개회식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감동적인 명장면이다.
바르셀로나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떠오르게 됐다. 이전까지는 프랑코 총통의 탄압으로 말미암은 스페인의 흑역사로 인지도가 낮아 숨겨진 여행지였으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내내 보여준 아름다운 항구와 시가지의 모습에 반하여 많은 여행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지역 감정이 상당부분 치유된 모습이 확인된 대회다. 축구 대표팀은 카탈루나의 특징을 고려해서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축구 예선 경기를 치렀는데,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오르자 결국 바르셀로나에 가서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누 캄프에서 야유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축구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페인 국기를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대표팀을 응원했고, 경기에서 스페인이 승리하며 축구 금메달을 가져갔다. 지역감정 문제가 어느 정도 남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립은 없다는 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간 내내 주경기장 및 공식 시설에는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깃발이 휘날려 여전히 지역주의/분리주의 문제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4. 주제가
공식 주제가는 호세 카레라스와 세라 브라이트먼이 듀엣으로 부른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 KBS와 MBC에서는 애국가 직후(오프닝업)/직전(방송 클로즈다운) 때 가사 해석판을 붙여 올림픽 기간 동안 틀어주었다.[15]
바르셀로나 폐회식에서 <Amigo para Siempre>를 부르는 호세 카레라스와 사라 브라이트먼.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한국어판 주제가(MBC 방영)의 후렴부가 이 노래의 표절이 아니냐는 시비가 있었다. 그런데 좀 흠좀무한 것이 나디아 한국판 주제가 작곡가가 그 유명한 '''마상원'''.[16]
그리고 원래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는 <Amigos para Siempre>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와 몽셰라 카바예 듀엣이 부른 <Barcelona(바르셀로나)>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직전인 1991년 11월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하자, 올림픽 정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17] 로 부랴부랴 IOC에서 <Amigos para Siempre>로 갈아치워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주관방송사인 에스파냐 TVE나 미국 NBC, 한국의 방송사들이 줄창 아미고스 빠라 시엠쁘레를 틀어주고 있을 때에도 BBC는 꿋꿋하게도 공식 주제가가 아닌 프레디의 <바르셀로나>를 올림픽 특집중계(Grandstand)[18] 타이틀로 사용했다. #
생전의 프레디 머큐리와 몽셰라 까바예가 무대에서 부른 풀 버전. 라이브는 아니다. 아미고스 빠라 시엠쁘레도 보컬 자체는 까레라스와 브라이트먼이라는 두 레전드급의 포스가 절절 넘쳐나지만, BGM이나 곡의 긴박감은 <바르셀로나> 쪽이 나은 편이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 올림픽스 계정[19] 올라온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기록영화에 보면 오프닝을 상기의 Barcelona로 쓰고 있다.
라포엠이 해당 곡을 리메이크하였다.
5. 대한민국 하계올림픽 성적
■ 1992년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2 Summer Barcelona Olympics)
- 기간 : 7월25일~8월9일
- 종목 : 근대5종, 농구, 다이빙, 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야구,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태권도(시범종목), 로울러하키(시범종목), 페로타(시범종목)
- ▶대한민국 참가 현황 : 임원 97명, 선수 247명 참가.(레슬링, 배구, 배드민턴,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야구, 양궁, 역도,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 ▶대한민국 참가 성적 :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 획득. 종합순위 7위.
- 금메달 : 레슬링(57kg) 안한봉
- 금메달 : 레슬링(74kg) 박장순
- 금메달 : 남자 배드민턴(복식) 김문수, 박주봉
- 금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정소영, 황혜영
- 금메달 : 남자 사격(소구경 소총 복사) 이은철
- 금메달 : 여자 사격(공기소총 10m) 여갑순
- 금메달 : 여자 양궁(개인) 조윤정
- 금메달 : 여자 양궁(단체) 김수녕, 이은경, 조윤정
- 금메달 : 역도(56kg) 전병관
- 금메달 : 여자 유도(72kg) 김미정
- 금메달 : 남자 육상(마라톤) 황영조
- 금메달 : 여자 핸드볼
- 은메달 : 레슬링(자유형 48kg) 김종신
- 은메달 : 여자 배드민턴(단식) 방수현
- 은메달 : 남자 양궁(개인) 정재헌
- 은메달 : 여자 양궁(개인) 김수녕
- 은메달 : 남자 유도(60kg) 윤현
- 동메달 : 레슬링(그레코로만형 52kg) 민병갑
- 동메달 : 여자 배드민턴(복식) 길영아, 심은정
- 동메달 : 복싱(60kg) 홍성식
- 동메달 : 복싱(75kg) 이승배
- 동메달 : 남자 유도(71kg) 정훈
- 동메달 : 남자 유도(78kg) 김병주
- 동메달 : 남자 체조(도마) 유옥열
- 동메달 : 남자 탁구(단식) 김택수
- 동메달 : 남자 탁구(복식) 강희찬, 이철승
- 동메달 : 남자 탁구(복식) 김택수, 유남규
- 동메달 : 여자 탁구(단식) 현정화
- 동메달 : 여자 탁구(복식) 현정화, 홍차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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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 대회 마스코트인 코비(Cobi). 모티브는 카탈로니안 셰퍼드.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 2위를 차지했는데 마스코트 중에서는 우표, 기념주화, 메달 등 기념품이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디자이너는 스페인의 국민 디자이너인 하비에르 마리스칼이며 2014년 2월,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스칼展이 열리면서 이 마스코트도 한국에서 다시 소개되었다.
- 개회식 때 입장식에서는 참가국의 국기 색깔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입은 피켓걸들이 해당 국가의 국호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새겨진 커다란 비비빅 모양의 피켓을 앞세우고 각국 기수와 선수단을 이끌었다. 단, 소련 해체로 인한 '단일 팀(EUN)'이 입장했을 때는 먼저 'UNIFIED TEAM'(영어), 'Équipe unifiée'(프랑스어)라고 새겨진 피켓을 든 피켓걸이 먼저 입장하고 오륜기를 든 기수가 뒤따라 입장한 다음 단일팀을 이룬 국가의 이름이 영어로 새겨진 작은 피켓 3개가 나란히 입장하고 해당 국가의 국기들을 앞세운 기수들이 나란히 입장한 다음 선수단이 자신들의 국적에 해당하는 소형 국기를 흔들며 입장했다.[20]
- 인류 역사상 최강의 농구팀으로 영원히 회자되는 드림팀 1기가 바로 이때 미국 대표팀이다. 사상 최고의 선수 마이클 조던을 필두로 훗날 크리스찬 레이트너를 제외한 전원이 개인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스타들로만 구성된 초호화 라인업이었는데 적당히 연습하면서도 모든 경기에서 30~40점차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유럽 농구 에이스였던 토니 쿠코치는 조던과 피펜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막아 공조차 잡기 힘든 정도였다. 이 드림팀의 등장으로 당시 FC바르셀로나에게도 드림팀이란 별명이 생겼다. 주요 선수로 호마리우, 스토이치코프, 과르디올라, 쿠만이 있었고 감독이 지금의 바르샤를 있게한 요한 크루이프였다.
- 여자 유도 57kg급에 출전한 스페인의 미리암 블라스코는 결승전에서 영국의 니콜라 페어브라더와의 대결에서 이겨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2015년에 두 사람은 결혼한다.
- 복거일의 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일본 제국의 식민지인 조선의 게이조(경성)와의 올림픽 유치경쟁에서 바르셀로나가 패배했다. 그리하여 소설 속의 평행우주에서는 1992 게이조(경성)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23]
- 자덕들에게도 의미있는 올림픽. 기존의 크로몰리 프레임을 이용한 퍼슛형 자전거로 겨루던 경기에서 카본파이버로 만들어진 신기하게 생긴 자전거가 나타나 상을 휩쓸어버렸다. 그 자전거가 로터스 108이며, 당시 선수는 크리스 보드만. 콜나고, 치넬리 등 전통있는 유명 자전거 회사들이 크롬 몰리브덴 파이프와 러그로 정성스레 만들던 자전거에서, 자동차 제조사인 로터스가 신소재인 카본파이버를 이용해 유체역학적인 디자인으로 상을 휩쓸자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결국 돈 없는 선수팀은 최신 기술의 고가의 자전거를 쓰기 어렵게 되고, 이는 선수의 수준과는 관련없이 자전거 빨로 우승해버리는 도핑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24] 그래서 로드바이크 경기는 리컴번트와 같이 과학적인 연구로 빠르게 만든 자전거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제는 철인 3종 경기에서나 그런 자전거가 가끔 보인다. 구조 자체가 썩 안정적이지 않아 대중화되지는 못 했지만.
[1] 한때 RCD 에스파뇰의 홈구장으로 쓰였다. 현재 에스파뇰은 코르네야라는 새 경기장으로 구장을 이전한 상태이다[2]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은 남아공과의 스포츠 교류 문제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집단 불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아프카니스탄 침공에 반발한 미국 주도로 서방 진영 대거불참, 1984년 LA 올림픽은 모스크바에 대한 보복으로 공산권 국가 대거 불참, 1988년 서울 올림픽도 북한과 이에 동조한 친북 국가(알바니아, 쿠바, 니카라과,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세이셸)들 불참.[3] 하지만 모든 국가가 참여한 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브루나이가 자국 사정으로 불참했으며, 브루나이는 폐막식에 임원단 1명을 보냈다. [4] 게다가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달이 당시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통한 것이었고, 이후 스페인 강대국화의 시작이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점에서도 더더욱 스페인의 올림픽 유치 명분을 키우는 셈이 되었다.[5] 다만 국기가 아닌 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다. 이유야 당연히 당시 깃발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연상시키기 때문. 이후 2년 뒤에 열린 동계 올림픽 때도 바뀐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으며, 넬슨 만델라가 취임하면서 현재의 국기로 교체되었다.[6] 구 소련 국가 대부분이 독립국가연합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이 팀을 '독립국가연합 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공식 호칭은 그냥 '단일 팀(영어 Unified Team, 불어 Équipe unifiée)'이다. 약칭 EUN. 단 유로 1992의 구 소련 팀은 '독립국가연합'이란 이름으로 참가했다.[7] MBC의 고창근 캐스터가 중계방송시 이 팀을 언급할 때 'EUN'이라고 언급했다.[8] 그리하여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폐막식에서 애국가가 연주된 몇 안 되는 올림픽이다. 올림픽 남자 마라톤 메달리스트에 대한 시상은 올림픽 폐막식 도중에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개최국의 국가, 차기 대회 개최국의 국가, 그리스 국가, 그리고 해당 대회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의 국가가 연주되는데, 한국의 애국가가 올림픽 폐막식 도중에 울린 경우는 첫 번째는 당연하지만 1988 서울 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고, 두 번째는 1984 LA 올림픽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해당한다. 그리고 네 번째 경우가 바로 이 황영조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인 것.[9] 참고로 동계 올림픽의 경우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30km과 남자 50km 메달리스트에 대한 시상식을 폐막식 도중에 실시한다.[10] 마라톤의 골인지점이자 마라톤 금메달 시상식이 열린 곳이 몬주익 올림픽 주 경기장이었기 때문이다. 1988 서울 올림픽으로 따지면 '잠실의 영웅'인 셈이다.[11]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카퍼레이드를 하려 했지만 반발이 심해 취소되고, 대신 도보 행진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비판이 많았다. 이 때문에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강제적인 면을 없애고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선수들만 참가하도록 방식을 바꿨지만 이 역시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12] 원래 손기정 옹이 점화할 예정이었으나 너무도 뻔하게 예상되었던지라 경기장 진입 주자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손기정-임춘애-최후의 3인(김원탁, 정선만, 손미정)으로 되었는데 각기 체육계, 교육계, 문화계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지극히 평범한 세 사람을 성화 점화주자로 내세운 것은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노태우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뜻도 있다.[13] 성화봉송 당시 만일의 대비를 위해 소방관들이 배치해 있었다고 한다. [14] 잘 서있기에 왜 휠체어를 타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텐데, 의족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상을 잘 보면 오른쪽 다리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을 볼 수 있다.#[15] MBC의 경우는 가끔 이전 대회의 손에 손잡고를 함께 틀어주기도 했다.[16] 80년대 유명 만화주제가의 작곡과 번안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어떤 것은 일본 원판보다도 낫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는 마상원악단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17] 지금에야 이게 뭔소린가 싶겠지만, 한마디로 동성애자(프레디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양성애자였다만)가 부른 주제곡은 안된다 이거다. 당시에는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당대 사회의 보수성을 볼 수 있는 단면.[18] BBC Olympic Grandstand는 축구의 BBC MOTD와 마찬가지로 레전드급 프로그램이다. 직역하면 올림픽 중계석. 각 대회 때마다 오프닝들이 장난 아니니 유튜브에서 꼭 찾아보자. 특히 서울 올림픽 Grandstand 오프닝과 2002 한일월드컵 오프닝은 꼭 보자. ITV가 2002 월드컵 방송 오프닝에 게이샤와 검도 등 완전 일본풍으로만 제작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이후에 한국 국대가 승승장구하자 부랴부랴 안정환의 반지키스를 집어넣은 것에 비하면 정말 간지가 철철 넘치는 게 BBC이다.[19] 2014년경부터 IOC는 OBC라는 자체 방송시스템을 통해 올림픽 관련 영상기록들을 관리하고 있다.[20] 공교롭게도 EUN 다음으로 입장한 국가가 구 소련을 구성하고 있었던 에스토니아였고 그 다음 순서로 입장한 국가가 바로 구 소련의 적성국가였던 미국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원래대로라면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입장했어야 했지만 양국이 전쟁중이어서 이 두 나라 사이에 다른 나라들이 낑겨서(?) 입장했고(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서는 이 두 나라가 연달아 입장했다.), 훗날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남북 동시입장이 무산되자 대한민국 다음에 북한이 입장했어야 했지만 그 당시가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 터진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이어서 남북한 사이에 다른 나라들이 낑겨서 입장한 바 있었다.[21] 국적은 벨라루스. 단일 팀 체조 선수들은 그대로 소련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그도 마찬가지.[22] 동계올림픽은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미국의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달성했다. 이 대회에서 하이든은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에 걸려있던 5개의 메달을 모두 싹쓸이하며 사상 초유의 전관왕에 오른다.[23] 소설 속 평행우주의 현재 연도가 1987년이기 때문에 1992년의 올림픽 개최는 미래의 일이다.[24] 로터스 108은 자전거만 1천만 원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휠부터 마빅 디스크휠과 삼발이라 휠값도 비쌌겠지만, 어쨌든 휠값 빼도 자전거 자체도 비싼데다가 연구비용도 많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