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오리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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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데이비드 앤서니 오리어리
(David Anthony O'Leary)
생년월일
1958년 4월 2일
국적
[image] 아일랜드
출신지
잉글랜드 런던 스토크 뉴잉턴
포지션
센터백
신장
185cm
유소년 경력
아스날 FC (1973~1975)
소속팀
'''아스날 FC (1975~1993)'''
리즈 유나이티드 (1993~1995)
스태프
리즈 유나이티드 코치 (1996~1998)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 (1998~2002)
아스톤 빌라 감독 (2003~2006)
알 아흘리 클럽 감독 (2010~2011)
'''아스날 FC 역대 주장'''
팻 라이스
(1977~1980)

'''데이비드 오리어리'''
'''(1980~1983)'''

그레이엄 릭스
(1983~1986)
1. 개요
2. 커리어
2.1. 아스날에서
2.2. 리즈에서
2.3. 국가대표팀에서
3. 감독 시절
3.1. 리즈 유나이티드
3.2. 아스톤 빌라
3.3. 카타르에서
4. 여담


1. 개요


아일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아스날 '''최다 출장 선수'''(통산 722경기). 별명은 거미(Spider).

2. 커리어



2.1. 아스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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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런던 스토크 뉴잉턴에서 태어나 3살 때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73년에 학생 신분으로 아스날 유소년팀에 입단하고 2년 뒤인 1975년에 1군으로 투입되어 그해 8월 16일 번리전에서 데뷔했다. 이후 그는 1993년까지 통산 722경기를 출전하게 되었다.(1980/81 시즌 당시 27경기를 부상으로 빠졌다.)
그는 1979년 FA컵 우승, 1980년 유러피안 컵 위너스컵 결승 진출을 시작으로 1980년부터 3년간 주장을 지냈고, 이후에도 더 질주하여 100, 200, 300경기를 넘어 26세 때 400경기를 달성한 뒤 1988/89 시즌에는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성공시킨 뒤 1989년 11월에는 조지 암스트롱의 출전 기록(621경기)를 뛰어넘고 1991년 리그 우승을 거쳐 1993년 FA컵 우승을 끝으로 아스날을 떠난다.

2.2. 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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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아스날의 영광을 뒤로 하고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별로 뛰지 못하고 1995년에 은퇴했다.

2.3. 국가대표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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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부터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유로 19881990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공헌을 했다고 한다.

3. 감독 시절



3.1. 리즈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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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 뒤인 1996년부터 조지 그레이엄 감독에 의해 리즈 유나이티드의 코치로 일하다가 그레이엄이 토트넘으로 옮기자 리즈 수뇌부는 마틴 오닐을 점찍었지만, 오닐이 이를 거절하자 오리어리가 감독 자리에 앉았다.
부임 첫 시즌인 1998/99 시즌을 4위로 마치며 순항을 시작한 팀은 1999/2000 시즌에 3위로 챔스 진출권을 따냈으며 그해 열린 UEFA컵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전유럽에 알리게 되었다.[1] 2000년 오프시즌 당시 전 시즌 결과에 고무된 피터 리즈데일 회장은 엄청난 자금을 풀어 리오 퍼디난드, 로비 킨, 올리비에 다쿠르 등을 입단시켰고, 거기에 이언 하트, 개리 켈리, 앨런 스미스, 조나단 우드게이트 등 유스팀부터 올라온 선수들과 유망주들을 사재기하며 구성한 팀은 젋은 패기로 똘똘뭉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해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지만 리그에서는 '''승점 2점 차이'''로 4위에 그쳐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다시 리버풀에게 넘겨준다.[2]
2001/02 시즌을 준비하면서 전년도에 데려온 로비 킨을 헐값에 팔아 버리고 로비 파울러세스 존슨을 영입한다. 하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데려온 세스 존슨은 극악의 적응력을 보이며 망해 버렸다. 겨우 5위로 마감하긴 했으나 이때부터 리즈의 몰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리그 4강권, UEFA컵 4강,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기세등등해진 선수들은 높은 주급을 원했고 이를 위해 구단주는 은행 대출로 힘들게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면서 거기 걸려있던 막대한 중계권 수입을 놓쳐버린 타격이 컸다. 상환해야 할 금액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선수 판매에 나서지만 대부분 헐값에 팔아 버려 제대로 된 이윤을 남기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결국 오리어리 감독은 2001/02 시즌을 끝으로 물러났고, 리즈는 2003/04 시즌을 끝으로 2부리그로 강등당했다.

3.2. 아스톤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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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에서 경질된 이후 야인으로 지낸 2002/03 시즌 도중에 선더랜드 AFC에서 감독이 교체될 당시에 그가 감독 물망에 올랐으나, 그는 아스톤 빌라행을 택하게 되었다. 그는 2003/04 시즌을 6위로 마쳤으나 풋볼 리그 컵을 우승한 미들즈브러 FC(리그 11위) 때문에 유럽대항전 진출을 못했고 2004/05 시즌에는 10위, 2005/06 시즌에는 16위로 별 볼일 없는 성적을 보여주고 2006년에 미국인 사업가 랜디 러너가 새 구단주로 취임하자 물러났다.

3.3. 카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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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알 아흘리 클럽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별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1년만에 경질당했다.

4. 여담


그의 동생으로는 1980년대 샘록 로버스-셀틱 등지에서 활동한 피어스 오리어리가 있는데, 인지도는 형에 못 미친다.
[1] 하지만 당시 4강전에서 만난 터키 갈라타사라이 SK에게 1무 1패(2:2, 0:2)로 탈락했는데 터키 원정에서 리즈 서포터 2명이 칼에 맞아 살해당하는 일이 터져 국제적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범인인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의 증언으론 터키 국기와 갈라타사라이 깃발을 밑닦는 자세를 하며 도발했다고 한다. 리즈를 제치고 결승에 올라간 갈라타사라이는 아스날 FC까지 제치고 대회 우승을 거둔다.[2] 당시 잉글랜드에게 주어진 챔피언스리그 티켓은 3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