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오닐
1. 개요
영국(북아일랜드)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노팅엄 포레스트 FC 감독을 맡고 있다.
스타플레이어였던 선수 시절 노팅엄 포레스트 선수로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과 함께 1979년과 1980년 연속으로 유러피언 컵(지금의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북아일랜드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당시 북아일랜드는 개최국 스페인을 이기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2. 선수 경력
1971년 아일랜드 리그 리스번 디스틸러리 FC에서 데뷔했다. 단 7경기만 뛰었지만 중간에 참여한 컵 위너스 컵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했고 그걸로 인정받은 마틴 오닐은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이적하게 된다. 10년동안 노팅엄 소속으로 리그 285경기 출전 48득점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마틴 오닐이 이적할 당시인 1971년 2부리그 소속이었다. 그러나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1975년 부임하고 그의 지도 하에 마틴 오닐은 1부리그 승격을 돕는다. 브라이언 클러프의 지도 하에 마틴 오닐은 리그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2회, 유러피언 컵 2회 연속 우승 등 노팅엄 포레스트의 전성기를 이끈다.
1981년 노팅엄 포레스트를 떠난 후에 4년 동안 노리치 시티, 맨체스터 시티, 노츠 카운티, 체스터 필드, 풀럼 등을 떠도는 저니맨 생활을 했고 1985년을 끝으로 33살에 선수생활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1987년 35살의 나이에 지역리그인 7부리그 구단 그랜덤 타운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1989년 셥셰드 차터하우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1990년 5부리그 소속 위컴 원더러스 감독으로 부임서 팀을 상승세로 이끌었다. 5년동안 팀에 머물며 5부리그 팀이었던 위컴 원더러스를 1992/93시즌 4부리그로 승격시켰고 그 다음시즌인 1993/94 시즌엔 3부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5년동안 명성을 쌓은 마팅 오닐은 1995년 2부리그 팀인 레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했다. 약소팀을 이끌고 부임 첫 시즌에 바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었다. 그 후 4시즌 동안 9-10-10-8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을 지켰고 풋볼 리그 컵을 2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이끌며 본격적으로 감독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2000년 셀틱 FC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 후 첫번째 올드 펌 더비를 6:2 대승을 이끌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두번째 올드 펌에선 1:5 대패를 하기도 했다. 부임 첫 시즌인 2000/01 시즌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우승, 스코틀랜드 FA컵 우승, 스코틀랜드 리그 컵 우승을 하며 스코틀랜드 내 트레블을 이끌었는데 이것은 1968년 이후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알렉스 퍼거슨의 후임으로 맨유 감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01/02시즌에도 리그 타이틀을 획득하여 리그 2연패에 성공했다. 2002/03 시즌에는 리그 내에서 준우승에 머물렀고 UEFA컵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주제 무리뉴가 이끄는 포르투에게 패배하며 무관에 그쳤다. 2003/04시즌에는 리그 타이틀을 되찾고 FA컵인 스코티쉬 컵도 우승을 하며 더블을 기록했고 UEFA컵에선 4강까지 진출했다. 마지막 시즌인 2004/05시즌에는 리그 준우승에 그쳐 스코티쉬 컵 2연패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2005년 6월 부인의 병 간호를 이유로 셀틱에서의 감독생활을 마감했다.
셀틱에선 총 282경기를 이끌었고 213승 29무 40패를 기록하며 3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FA컵 우승, 1차례의 리그컵 우승과 UEFA컵 준우승 1회 등으로 셀틱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감독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셀틱에서의 활약으로 2004년 신년 서훈명단(2004 New Year Honours)에 올라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았다.관보링크
2006/07 시즌 아스톤 빌라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아스톤 빌라는 랜디 러너가 새롭게 구단주로 부임함에 따라 전폭적인 지원과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목표로 팀을 꾸렸는데 여기에 알맞은 감독으로 마틴 오닐을 선택한 것. 마틴 오닐은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전 시즌 16위였던 팀을 11위로 이끌었다. 그 뒤 2007/08, 2008/09,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문턱에 갔으나 계속된 후반부 추락으로 3시즌 연속으로 리그 6위에 머물러야 했다. 그 밖에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로 꺾고 우승했고 2010년 리그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아쉽게 밀려 준우승을 했다. 그러나 2010/2011 시즌을 앞두고 돌연 아스톤 빌라 감독에서 사임했다. 구단주와 불화가 있었다는 듯.
2011년 12월 선더랜드 AFC의 감독으로 부임, 처음 열 경기에서 7승을 거두며 선더랜드의 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2-13 시즌에는 아스톤 빌라 시절 보여 줬던 그의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며 강등 위기에 몰렸고, 2013년 3월 31일 경질되었으며, 이어 2013년 말에 아일랜드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는데 수석 코치가 놀랍게도 '''로이 킨'''이다.
유로 2016 예선 D조에서 독일과 폴란드, 스코틀랜드, 조지아, 지브롤터와 한 조가 되었다. 마틴 오닐의 아일랜드는 예선 3차전 월드컵 우승팀 독일 원정에서 존 오셔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1-1로 비기는 파란을 일으켰고, 9차전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 셰인 롱의 결승골로 독일을 1-0으로 이기는 파란을 일으켰다. 최종전은 폴란드 원정경기로 경기 결과에 따라 본선 직행도 가능했지만 1-2로 패하여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보스니아. 1차전 보스니아 원정경기에서 후반 37분 로비 브래디의 선제골로 승리를 눈앞에 두었으나, 후반 40분 에딘 제코에게 동점골을 내줘 아쉽게 1-1로 비겼다. 원정골을 넣었기 때문에 2차전이 조금 더 유리해진 상황에서, 홈에서 펼쳐진 2차전을 조나단 월터스의 2골로 2-0으로 승리, 합계 3-1로 보스니아를 꺾고 유로 2016 본선에 진출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예선 D조에서 조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덴마크 대표팀을 맞아 합산 스코어 1-5로 대패하며 본선행에 실패했다. 이후 UEFA 네이션스 리그 18-19시즌 리그B 4조에 배정되었으나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리그C로 강등되며 비난이 들끓었다. 결국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한다.
2019년 1월 15일, 잉글랜드 챔피언쉽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경질당했다.
4. 성격
감독으로의 능력과는 별개로 닐 워녹[2] 과 함께 선수들이 기피할만한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워녹과 다른 점은 워녹은 대놓고 성격이 안 좋다고 평가받는다면[3] 이 감독은 언론 앞에서는 부드러운 척하지만 '''뒷담화와 뒤끝'''이 대단하다는 점이다.
주니뉴 파울리스타가 겪었던 마틴 오닐의 성격
이렇게 하고선 주니뉴가 떠나자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를 죄수처럼 잡아두고 싶지 않았다. 그가 몇주전 내게 찾아와 고국에서 뛸 기회를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것." 언론플레이 실력이 상당한 인물이다.
로비 새비지[4] 가 겪은 마틴 오닐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다.[5]
또한 익명을 요구한 아스톤 빌라의 선수는 전반에 지고 있으면 라커룸 분위기가 장난 아니라고 증언하기도 했다.로비 새비지가 마틴 오닐에 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말하길. 자기도 살짝 성질있고, "내 플레이와 하는 행동을 보면 나도 만만치는 않은 사람이다. 다만 마틴 오닐은 '''존나 무서웠다(scared the shit out of me)'''. 그 새끼는 훈련장에서 어느날은 반갑게 웃어주고, 바로 그 다음날 내가 인사해도 씹고 지나가는 등 사람을 혼란케 했다. 못 본건가 싶었는데, 내가 하는 말도 씹고 아예 사람 취급을 안할 때도 있었다. 마치 내가 아예 존재 하지않는 사람 취급을 하는거다. 물론 나한테만 그런것은 아니었다. 오닐이 라커룸에서 선수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벽에 쿵쿵 박으면서 호통을 치는 광경은 꽤 봤는데, 마틴이 지랄발광하는 징조는 따로 있었다. 경기 중이나 경기 후 그가 입술을 오므리며, 인상을 찡그리거나 손으로 입을 감싸듯 쓰다듬으면, 그날은 누군가가 개박살 나는 날이었다. 그 손동작을 보면, 나는 제발 내가 뭘 잘못한게 아니길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 손동작은 정말로 무서웠다. 오닐은 사람에게 굴욕감과 망신을 주는데 정말 천재적인 능력을 가졌고, 내가 아는 그 어떤 인간보다 그 능력을 잘, 그리고 자주 써먹었다. 한번은 올드 트래포드에서 우리가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결국은 2골을 따라잡혀 비긴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동점골의 원인이 나였다. 내가 볼을 빨리 클리어하지 않고 미적대는 바람에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닐의 손동작을 봐버렸고 정말로 겁에 질렸다. 그리고는 그라운드를 나서면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살짝 떨궜다. 그런데 다음날, 다다음날 아무일도 없자, 나는 별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몇주가 지나도 아무일이 없어서 안도 했다. 그러나 어느날, 여느때 처럼 트레이닝을 마치고 선수단과 스탭들이 휴식을 가지면서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오닐이 또 자기 자랑과 일화를 선수들에게 얘기 해주고 있었다. 이 새끼 얘기들이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이번거는 지루하기만 하고 재미는 하나도 없어서 내가 장난삼아 하품을 했다. 그러자 오닐이 얼굴이 벌개지더니, '''존나''' 큰 소리로 전 스탭과 선수들에게 들리게 외쳤다. '''"오, 꼴사납고 불쌍한 새비지~''' '''이렇게 불쌍할 수가... 그렇게 무섭고 서러웠냐?''' '''그래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눈깔 빠지게 질질 짰어?''' '''아이고 불쌍해라. 너같이 불쌍하고 꼴사나운 놈은 처음 본다."''' 오닐은 이런 새끼다.
2009년에 열린 피스컵 안달루시아 아틀란테와의 경기에서도 상대선수를 밀치며 욕설을 퍼붓다가 퇴장당하기도 했다. 참고로 피스컵 역사상 최초의 감독 퇴장이고 본인 감독 경력에서도 첫 퇴장이기도 하다.
5. 비판
마틴 오닐 감독이 아스톤 빌라의 감독에서 사임하자 아스톤 빌라의 선수들은 야 신난다를 외쳤다고 한다.(...) 성격 뿐만 아니라 특정선수들을 편애하고 최적의 능력을 보여줄수 있는 포지션에 배치하지 않는 전술에 대한 불만이 컸던 모양이다.
성적은 좋지만 그 못지않게 단점도 큰 감독이다. 신인을 키우는 데 무관심하고 베스트 11외의 선수들을 기용해 변화를 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사람이라 두껍지도 못한 스쿼드에 항상 정해진 멤버만 가동시키던 빌라는 시즌 막판이면 체력이 방전되며 스스로 무너져내렸다. 또한 이로 인해 실력이 있음에도 벤치에서 썩어 나가는 선수도 많다. 빌라의 전성기만 기억하는 축구 팬들은 보드진이 오닐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가 무너져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빌라의 상승세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빌라를 지금 위치에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든 장본인도 오닐이다.'''
또한 금전감각도 희박한데, 빌라에 부임하고 나서 검증된 선수들만을 영입해 베스트 11을 꾸린 건 좋았으나, 앞뒤 가리지 않는 이적 자금의 지출, 주급 지출로 인해 09-10 시즌엔 무려 주급으로만 7천만파운드(약 1500억) 가까운 돈을 구단이 지출하게 만들어, 구단 재정을 잘 꾸려가던 프런트진과의 마찰도 사임에 결정적 원인이 되었으리라는 의견들도 많다.
주급 예산만 불려놨으면 다행이지 이적료도 1억 2천만 파운드 이상을 쓰고도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한번도 이뤄내지 못했다.
빅4를 위협할 팀으로 여겨지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던 아스톤 빌라는 그가 사임한 2010/11시즌 중하위권으로 추락했고, 오닐 시절의 무리한 지출의 여파로 유망주 위주의 스쿼드를 구성한 12/13 시즌에는 강등권을 오가며 고전하고 있다. 팀에 대한 책임감이 없이 시즌 개막 며칠 전에 갑자기 사임한 감독이란 작자 때문에 한 팀의 시즌 플랜이 완벽하게 꼬여버린 좋은 예이며, 장기적인 혜안이 없는 감독이 초래하는 폐단에 대해서도 잘 드러난 사례.
지동원이 있는 선더랜드 AFC의 감독이 되었다. 어쩌면 이로써 한국 팬들이 그의 싸이코패스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생생한 일화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지동원의 입을 통해선 별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지동원이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93분 극적 결승골을 넣자 말 그대로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지동원이 몇 번 실수를 한것에 대해서 "죽여버릴지도 몰랐다"고 했다...
결승골을 넣은 당일의 BBC Match Of The Day 인터뷰에서는 지동원의 골에 대해서, '(지동원에게) 그 당시 내가 지시한 공격패턴은 분명히 측면돌파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중앙돌파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결승골을 넣어서 다행이었지만 못 넣었으면...
2012-13 시즌에는 지동원을 팀 전력에서 완벽히 배제시켰기 때문에 한국 네티즌들의 질타 소리가 높았다. 그 외에도 구단 운영의 측면에서는 스티븐 플레처와 아담 존슨 등 고액의 트레이드를 주저없이 단행했음에도 단조로운 전략전술로 일관하며, 잘 뛰는 것 이외에는 재능이 없는 아일랜드 리그 출신의 제임스 매클린 같은 선수들을 중용하였고, 지동원과 코너 위컴 등의 유망주 육성에도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등 아스톤 빌라 시절의 단점을 그대로 보여 주며 팀의 미래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팀이 강등권으로 몰리자 경질당했다. 국내외 여론은 잘 짤랐다는 평과 너무 늦게 짤랐다는 평이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 방만한 트레이드로 몇 년째 물을 먹고 있어, 앞으로 중위권 클럽에서 감독하긴 힘들 듯.
그리고 2013년 아일랜드 축구 대표팀의 감독으로 들어갔다. 클럽과 달리 트레이드나 주급, 유스에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이쪽이 낫다. 비슷한시기에 수석코치도 새로 들였는데 수석 코치는 '''로이 킨'''이다.
6. 경력
6.1. 선수 경력
- 디스틸러리 (1970/71)
- 아이리쉬 컵 (1): 1970/71
- 노팅엄 포레스토 (1971/72 - 1980/81)
- 풋볼 리그 디비전 1 (1) : 1977/78
- 풋볼 리그 컵 (2) : 1977/78, 1978/79
- FA 커뮤니티 실드 (1) : 1978
- 유러피언 컵 (2) : 1978/79, 1979/80
- 유러피언 슈퍼 컵 (1) : 1979
7. 감독 경력
7.1. 리그 기록
7.2. 대회 기록
- 위컴 원더러스 (1990/91 - 1994/95)
- 풋볼 컨퍼런스 (1): 1992/93
- FA 트로피 (2): 1990/91, 1992/93
- 풋볼 리그 디비전 3 Play–Offs (1): 1993/94
- 레스터 시티 (1995/96 - 1999/00)
- 풋볼 리그 디비전 1 Play-offs (1): 1995–96
- 풋볼 리그 컵 (2): 1996-97, 1999-2000 / 리그 컵 준우승 (1) : 1998/99
- 셀틱 FC (2000/01 - 2004/05)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3): 2000/01, 2001/02, 2003/04
- 스코티쉬 컵 (3): 2000-01, 2003-04, 2004-05
- 스코티쉬 리그 컵 (1): 2000–01
- UEFA 컵 준우승 (1) : 2002/03
- 아스톤빌라 (2006/07 - 2009/10)
- 풋볼 리그 컵 준우승 (1) : 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