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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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동독 마르크 지폐.
Mark, Ostmark[1]
마르크계 통화로 옛 동독의 화폐단위. 기호는 M. 중앙발권은행은 동독국립은행(Staatsbank der DDR).
독일의 경험을 살펴 보자.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환율에 대하여 동독의 법정 환율(서독에서 동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과 서독의 시장 환율(동독에서 서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이 있었다. 동독의 독일국가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까지 동독의 특수은행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법정 환율을 [ 1 : 1 ]로 유지했지만, 서독의 독일연방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부터 서독의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시장 환율이 [ 10 : 1 ]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독이 서독에 통합한 1990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결단을 내려 [ 1 : 1 ]로 교환하는 바람에 가치가 매우 낮은 동독 마르크의 가치가 갑자기 몇배 이상 폭등했고 '''동독 마르크를 [ 1 : 1 ]로 서독 마르크와 교환한 동독 주민들은 처음에는 행복했으나''' 동독계 기업의 부실화와 동독계 일자리의 감소에 행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서독산 소비재의 대량 공급과 독일연방은행의 고금리 정책에 힘입어 옛 동독 지역의 물가는 가까스로 안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통일 시 1 동독 마르크를 1 서독 마르크로(6,000 마르크 이상의 예금에는 2:1) 교환해주었다. 이게 동서독 주민간의 빈부격차를 '''일단은''' 줄일 수 있었지만 이후 통일 독일의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헬무트 콜이 나노 단위로 까이게 된다. 이렇게 해준 것은 정치적 요인이 컸다. 당시 독일 정부에서 1:1로 교환은 안 해줄수도 없는게 정말로 3:1로 거래했으면 동서간 임금격차가 1:9로 벌어지고, 그만큼 동독 지역에서의 불만이 커져서 통일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설사 통일 되더라도 동독 지역의 공동화와 빈곤화로 인한 사회불안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그런판이라 서독 정부에서 이런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실제 시뮬레이션도 여러 번 돌려봤다.) 1:1 교환정책을 진행해왔던 것
간혹 독일 기념품점에서 동독 마르크 동전 세트를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베를린에서.
회수된 동독 마르크 지폐는 사용제와 미사용제 전량을 동베를린의 동독국가은행에서 모두 반출하여 작센-안할트주 할버슈타트 근처의 지하 벙커로 이송해 보관되었다. 그런데 2001년에 도난 사고가 발생하면서 관리를 담당하는 독일재건은행에 의해 전량 소각되었다. 이 때 발권되지 않은 200마르크와 500마르크 지폐가 일부 수집가들에게 팔렸다.
1차 동독 마르크의 주화는 1, 5, 10, 50페니히가 발행되었다.
2차 동독 마르크의 주화는 1, 5, 10, 20, 50페니히, 1, 2, 5마르크가 발행되었다.
발행은 준비했지만 통일로 인해 유통되지 못한 권종도 있다.
100 동독 마르크 지폐.
Mark, Ostmark[1]
마르크계 통화로 옛 동독의 화폐단위. 기호는 M. 중앙발권은행은 동독국립은행(Staatsbank der DDR).
1. 통일 이후
독일의 경험을 살펴 보자.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환율에 대하여 동독의 법정 환율(서독에서 동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과 서독의 시장 환율(동독에서 서독으로 여행할 때에 쓰이는 환율)이 있었다. 동독의 독일국가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까지 동독의 특수은행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법정 환율을 [ 1 : 1 ]로 유지했지만, 서독의 독일연방은행에 따르면 1989년 10월부터 서독의 외환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동독 마르크와 서독 마르크의 시장 환율이 [ 10 : 1 ]에 이르렀다. 그런데 동독이 서독에 통합한 1990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결단을 내려 [ 1 : 1 ]로 교환하는 바람에 가치가 매우 낮은 동독 마르크의 가치가 갑자기 몇배 이상 폭등했고 '''동독 마르크를 [ 1 : 1 ]로 서독 마르크와 교환한 동독 주민들은 처음에는 행복했으나''' 동독계 기업의 부실화와 동독계 일자리의 감소에 행복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서독산 소비재의 대량 공급과 독일연방은행의 고금리 정책에 힘입어 옛 동독 지역의 물가는 가까스로 안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통일 시 1 동독 마르크를 1 서독 마르크로(6,000 마르크 이상의 예금에는 2:1) 교환해주었다. 이게 동서독 주민간의 빈부격차를 '''일단은''' 줄일 수 있었지만 이후 통일 독일의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헬무트 콜이 나노 단위로 까이게 된다. 이렇게 해준 것은 정치적 요인이 컸다. 당시 독일 정부에서 1:1로 교환은 안 해줄수도 없는게 정말로 3:1로 거래했으면 동서간 임금격차가 1:9로 벌어지고, 그만큼 동독 지역에서의 불만이 커져서 통일 자체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설사 통일 되더라도 동독 지역의 공동화와 빈곤화로 인한 사회불안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그런판이라 서독 정부에서 이런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실제 시뮬레이션도 여러 번 돌려봤다.) 1:1 교환정책을 진행해왔던 것
간혹 독일 기념품점에서 동독 마르크 동전 세트를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베를린에서.
회수된 동독 마르크 지폐는 사용제와 미사용제 전량을 동베를린의 동독국가은행에서 모두 반출하여 작센-안할트주 할버슈타트 근처의 지하 벙커로 이송해 보관되었다. 그런데 2001년에 도난 사고가 발생하면서 관리를 담당하는 독일재건은행에 의해 전량 소각되었다. 이 때 발권되지 않은 200마르크와 500마르크 지폐가 일부 수집가들에게 팔렸다.
2. 권종
2.1. 주화
1차 동독 마르크의 주화는 1, 5, 10, 50페니히가 발행되었다.
2차 동독 마르크의 주화는 1, 5, 10, 20, 50페니히, 1, 2, 5마르크가 발행되었다.
2.2. 지폐
발행은 준비했지만 통일로 인해 유통되지 못한 권종도 있다.
[1] 보통 독일에서 Ostmark라고 했을때 동독 마르크라고 알아듣지만, 실제로 Ostmark라는 화폐단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