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독일 연방 공화국'''
'''Bundesrepublik Deutschland
'''
[image]
[image]
'''국기'''[1]
'''국장'''
'''Einigkeit und Recht und Freiheit
통일과 정의와 자유'''

'''상징'''
'''국가'''
독일인의 노래
'''위치'''
[image]
'''1949년 ~ 현재[2]'''
'''성립 이전'''
'''통일 이후'''
'''연합군 점령하 독일'''
'''독일 연방 공화국'''[3]
'''자르 보호령'''
'''역사'''
'''1949년 5월 23일 건국
1990년 8월 31일 통일 관련 조약 체결
1990년 10월 3일 통일'''
'''지리'''
'''위치'''
중부유럽
'''수도'''
서베를린(명목상)
(사실상)
'''면적'''
248,577km2
'''인문환경'''
'''인구'''
1950년 50,000,000명
1990년 63,300,000명
'''언어'''
독일어
'''종교'''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공화정, 연방제, 의원내각제
'''국가원수'''
독일 대통령
'''정부수반'''
총리
'''주요 수상'''
콘라트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
'''경제'''
'''통화'''
독일 마르크
1. 개요
2. 행정구역
3. 영역
4. 경제
5. 군대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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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Westdeutschland / BRD
영어
West Germany / Federal Republic of Germany
프랑스어
Allemagne de l'Ouest
한국어
표준어: 서독, 독일연방공화국 / 문화어: 도이췰란드 련방 공화국, 서부 도이췰란드[4]
중국어
德意志聯邦共和國 / 聯邦德國 / 西德
일본어
西ドイツ[5]

1. 개요


1949년 5월 23일부터 1990년 10월 3일 이전, 즉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있었던 시절 독일연방공화국의 통칭이다. 통일은 서독의 일방적인 동독 흡수통일독일민주공화국이 소멸하고 독일연방공화국이 옛 독일민주공화국을 이루는 5개 주의 연방 가입을 받아준 것이다. 따라서 현 독일 건국 역사도 통일 시점이 아닌 서독 건국일을 따른다.
동북쪽에 위치한 독일민주공화국과 대조하는 표현으로 서독 또는 서부독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독일민주공화국이 없어진 뒤의 독일연방공화국에 대해선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때에 따라 "구 서독 지역" 같은 표현은 쓸 수도 있겠지만, 뉴스 보도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조금 더 에둘러서 "구 연방주 지역"(Alte Bundesländer)이라고 부른다.[6] 독일민주공화국이 존재하였을 당시든, 없어진 지금이든 독일연방공화국 국기[7]국장, 국가(독일의 노래 3절)[8]도 같다. 약자는 BRD로, 독일민주공화국 측에서 서독을 지칭할 때 해당 약자를 사용했다.
서독의 법적 수도는 베를린이었지만 실질적 수도는 이었다. 베를린은 공식적으로 동/서독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는 연합군 4개국의 관할지역인데다 그마저도 동독에 둘러싸인 월경지였기에 실질적으로 수도로서 기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작은 도시 본에 정부 중앙기구들을 입지시켜 서독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했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하여 많은 문서에서 서독의 수도를 본으로 표기하고 있다. 통일 이후에는 본에 있던 연방 기관들이 대거 베를린으로 이전했다.[9] 하지만 여전히 본에 일부 행정기관들이 잔류하여 서독의 수도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2. 행정구역


처음에는 9개 주였다가, 1957년 자를란트 주가 서독에 복귀하여 10개 주가 되었다. 서베를린은 서독 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하기는 했으나 공식적으로는 서독의 주가 아닌 미영프 3개국의 점령지였기 때문에 서베를린에서 서독 당국이 주권을 행사하는데에는 일부 제약이 있었다.

3.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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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멸망 후 분할된 연합군 점령하 독일 지도. 미국·영국·프랑스 관할 지역을 합쳐 서독이 되었다. 베를린은 본래 전부가 소련 점령 지역이었으나 독일의 전통적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에 미·영·불 3개국이 압력을 넣어서 분할한 결과 동독 영토 한 가운데에서 서독이 행정권을 행사하는 일종의 월경지가 되었다. 브레멘 주는 미국 점령 지역의 월경지로 영국 점령지에 둘러싸여 있다.[10] 지도에서 프랑스가 점령한 파란색 땅 서쪽으로 옅은 노란색(거의 흰색으로 보임)으로 칠해진 땅이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의 자를란트 주이다.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1947년 독일에서 분리돼 프랑스의 보호를 받는 자르 보호령이 되었다가 1956년 서독으로 겨우 복귀해 자를란트 주가 되었다. 참고로 동독보다 더 동쪽에 있던 지역들은 각각 폴란드소련[11] 영토로 합병됐다. 이 중 소련에 합병된 지역은 동프로이센쾨니히스베르크를 위시로 한 북쪽 1/3 지역으로, 합병 이후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소련이 해체된 오늘날도 같은 이름으로 러시아에 속해 있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서독의 영역은 구 바이마르 공화국 영토의 53%를, 현 독일 영토의 69.6%를 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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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당시 독일 지도. 동독(빨간색), 서독(파란색)과 서베를린(연두색), 자르 보호령(보라색)이 나타나 있다. 이 지도에서는 동·서독 각 주(Land, 복수형: Länder; 영어: state)[12]의 경계선을 그어놓았다. 원래 베를린은 공식적으로 동·서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미/영/소/프 연합국 4개국의 관할지역이었기에 독일의 '주'가 아닌 연합국의 '특수지역'으로 간주되었으나, 1949년 동독 정권이 수립되자마자 동독 정부는 베를린의 소련군 관할지역이던 동베를린을 자국의 수도로 선포하였고 소련과 공산권 국가들 역시 이를 인정하면서 동베를린은 서베를린과 달리 사실상 동독의 일부로 편입되었다.[13] 때문에 이 지도에서는 서베를린만 '구멍'이 나 있다. 동독 영토를 그릴 때에는 이렇게 서베를린 부분에 '구멍'이 나야 올바른 영토 표시가 되지만[14], 동독에서 자국 영토를 그릴 때는 종종 이걸 무시하기도 하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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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란트 주의 서독 복귀 이후 동독(빨간색)과 서독(파란색·색)의 영역. 동독은 땅이 크지도 않은 데다가 중앙집권형 국가가 되어서 주를 폐지하고 주보다 크기가 작은 '구(Bezirk)'를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두었다.. 그래서 이 지도에서는 동독의 주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다. 참고로 동독의 주는 통일 직전에 부활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그어졌던 5개 주 그대로 부활했으나, 경계선은 변화하였다.) 주로서의 실제 기능은 통일 이후에 회복되었다. 그리고 동베를린은 통일 후 서베를린과 통합, '도시주 베를린'이 되면서 연합국 점령지 취급에서 벗어나 정식으로 독일 영토가 되었다.

4. 경제


한때는 미국과 소련에 뒤이은 전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었으며 일본이 추월한 이후에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을 유지했다.[16] 경제 규모는 유럽에서 소련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국민 소득도 유럽을 통틀어서 최상위권을 자랑했다.''' 심지어 동독마저도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 국민소득이 소련을 포함하여 가장 높았다.
동독과의 격차는 냉전이 한창 진행될 때부터 통일 직전까지는 인구로는 서독이 4배, 실질 기준으로 경제 규모로는 6배, 1인당 경제 규모는 1.5배 정도였다. 나중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것은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를 1:1로 환산한 고정 환율제의 결과였다. 실제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질 환율을 감안했을 경우 서독과 동독간 1인당 경제 규모 격차는 그보다는 늘어난다. 경제 수준이 별 차이가 없던 한국과 북한[17]과는 다르게 동서독은 시작부터 불평등한 상황이였다. 영국이 점령한 독일 최대의 항구 함부르크, 제 1의 공업지대 루르와 쇼미더머니의 미국이 점령해 전후 복구를 재빨리 마치고 오히려 더 발전한 바이에른 등을 가진 서독과 달리 동독이 차지한 메클렌부르크, 포메른 등은 융커들이 주도하는 농업 중심 경제를 유지해 서독에 비해 산업화가 뒤떨어진 지역이었다. 오히려 동독이 서독의 1인당 경제 규모를 이렇게까지 따라잡은 것도 중간은 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구 독일 제국부터 나치 독일 내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지역은 동부 프로이센 지역이었지만 그곳은 신생 폴란드에 넘어갔다. 그리고 원래 중부 독일이었던 동독 지역은 그것보다는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력이나 자본이 전부 서독으로 가 버렸다.

5.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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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군을 재현한 모습)
서독의 군사력은 미국, 소련을 이어서 세계 3위였으며 막강한 육군력과 공군으로 서유럽의 방어를 담당하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강군이었다. 게다가 병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계화부대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이는 미 공군의 항공 지원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개전 초 소련군 수백만 명의 대군을 거의 서독군이(혼자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서독 육군의 주 총기로는 HKG3 자동소총이나 MG3 다목적 기관총, H&K MP5 기관단총 같은 자국산 총기들을 운용하였지만 HKG3와 MP5를 개발, 운용하기 전에는 벨기에 FN FAL 자동소총과 이스라엘 UZI 기관단총을 G1, MP2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기도 했었다.
독일 연방군 문서 참조

6. 여담


옛 서독 지역이 옛 동독 지역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망률이 2.9배 더 높다고 한다. 동독의 경우 이른바 '불주사', 즉 결핵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혔기 때문이다. 또 서독은 임신 12주 이후의 낙태가 늦게 허용되어 재통일 시 동독 여성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결국 재통일 직후인 1993년을 기해 조건부 합법이 되었다.

[1] [image]
통일 이후의 독일 연방 공화국과 편의 상 구분하기 위해 독수리가 그려진 문장을 넣은 정부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2] 서독은 통일 이전 도이치 연방 공화국을 편의상 구분하는 명칭일 뿐, 국명과 국체는 흡수통일하는 형태로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3] 체제 연속[4] 1998년까지는 남한과 동일하게 독일련방공화국, 서독이라 썼다.[5] 또는 西獨逸/西独逸(모두 니시도이쯔(にしドイツ)), 약칭 西獨/西独(せいどく, 세이도쿠)[6] 반대로 구 동독 지역은 "신 연방주 지역(Neue Bundesländer)"이라고 부른다.[7] 원래 동·서독의 국기는 동일하게 흑적금 삼색기였으나 이후 동독이 국기에 동독 국장을 추가한 형태로 수정해서 구분됐다.[8] 독일의 노래 3절을 국가로 채택한 건 1952년이었다.[9] 물론 베를린이 동독의 수도였던만큼 정부청사로 쓸 건물은 있었지만 상징성 문제와 건물 자체의 노후화. 안전성 문제 등이 겹쳤기 때문에 건물을 새로 신축했다.[10] 미국의 점령지는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 지역이기 때문에 항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이 브레멘이었다. 브레멘 주 자체도 월경지를 가지고 있는 땅이라, 지도에 둘로 찢어져서 칠해져 있다. 프랑스 점령지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지만 여기는 프랑스 본토와 직접 접한 곳이니 항구가 없어도 별 상관은 없었다. [11] 그 중에서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12]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 그은 것이라 그 이전과 차이가 있다.[13] 반면 미/영/프를 위시로 한 서방 국가들은 동독의 동베를린 통치를 동독 정부의 월권으로 여겨 동베를린을 동독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가면 대사관을 동베를린에 설치하는 등 사실상 현실을 인정하게 되지만 어쨌거나 서방 국가들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어 소멸하는 그날까지 정식으로 '동독의 수도는 동베를린'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14] 1988년에 동독에서 나온 한 지도를 보면 실제로 이렇게 되어 있다. #[15] 1970년대부터 동독은 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민족 국가인 서독과는 별개의 사회주의 민족 국가임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외국'인 서독이나 서베를린은 자국 영토로 그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16] 서독과 일본의 인구 차가 거의 2배 정도까지 차이가 나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이다.[17] 원래 북한이 상대적으로 조금 나았다고도 하지만 6.25전쟁으로 다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