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6장
네이버 웹툰 동토의 여명 1부 6장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1. 60. 잿빛늑대
시간을 잠시 돌려, 출격 이전의 상황.
어두운 서고를 밝히는 등불 주위로 나방과 날벌레 수마리가 꼬여든다. 그리고 그 아래 꽤 너른 탁자에, 갈색머리 궁녀 하나가 앉아 있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리아다.
'어딜 가도 막내 일은 정해져 있단 건가.. 밤 늦게까지 책정리라니..'
그때, 리아는 왠 인기척을 느낀다. 하지만 저 너머엔 그 누구도 뵈질 않고.. 리아는 조심스레 묻는다.
"거기.. 누구.."
그 순간! 뒤에서 나온 손이 리아를 덮친다.
"... 쉬잇. 소리 내지도 움직이지도 마십시오!"
리아의 입을 막은 사내.. 잠깐, 그는 바로 무라이다..? 놀란 마음 진정시킬 틈도 없이, 맞은 편의 기둥 뒤에서 선비 셋이 나타난다.
"무라이님!"
"쳇! 재빠르기가 생쥐로군."
"이러시면 저희가 곤란해집니다!"
"몇 번씩 말하지 않았나! 이곳에 내 환영갑이 있다고!!"
"이런 곳에 그런 유물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여간 선비들 고지식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냥 벌점 좀 받고 넘어가면 될 것을.."
"아밈님의 마음을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그 몸으론 무리십니다!"
그렇다. 무라이는 아밈의 명에 불복하고 푸른궤에서 뛰쳐나와, 몸소 마라흔산에 가기로 결심한 것! 무라이와 선비들의 대화를 들은 리아는, 대궁전에서 보았던 그를 기억해낸다.
'무라이? 무라이라면 아까 그.. 울림선비?'
"모시겠습니다. 부디 선힘을 쓰지 않게 해주십시오."
"선힘을 아무 데서나 뇌까리다니.. 당돌한 것이 으뜸선비들답군..!!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시게! 하지만 조심해야 할 거야.. 잘못해서 아기장궁에게 생채기라도 내는 날엔 불뚱이 대모장려님께서 가만 계시지 않을 테니.."
리아는 무라이의 품에 갇혀 꼼짝을 못한다. 리아의 마음이 몹시 불안해진다.
'이, 이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도 충분히 노하실 상황 같습니다만.. 정 그러시다면 저흰 그럼 아밈님의 명령보다 좀 더 가벼운 대모님의 불호령을 택하겠습니다."
선비들의 손 언저리에서 선힘이 돌기 시작한다.
"... 그래서 해보겠다는 건가? 날 상대로?"
"큭.."
그 말을 들은 선비들은 멈칫한다.
* * *
* * *
'미치겠군! 대항하자니 일이 커질 것 같고 가만 있자니 말려들 것 같은데.. 안 되겠다, 다른 선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삐대보는 수밖에..'
선비들은 무라이에게 도발하며, 시간을 끌어보기로 한다.
"... 실망입니다. 저희 하나 어쩌지 못해 인질이라니.."
무라이는 가소롭다는 듯 그들을 쳐다본다.
"으뜸선비들의 수준도 많이 하향됐군.. 잘 보시게, 내가 잡은게 인질인지 기회인지!"
무라이의 전신에서 선힘이 일렁인다.
"서, 선술!?"
무라이의 선힘이 리아의 몸을 감싼다. 이윽고.. 리아의 옷이.. 터진다..?
"저건 선술이 아니잖아!!"
선비들이 황당해 하는 사이, 무라이는 선비들의 머리 위로 높이 뛰어오른다. 그리고, 그가 던진 침들은 정확하게 선비들의 목 옆에 꽂혀든다. 그들의 뒷편에 사뿐 착지하는 무라이.. 선비들은 머지않아 기절하고 만다. 그러나, 리아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나,나,나,나 알몸?!?! 그보다, 몸이...! 몸이 말을 안들어!!'
리아의 얼굴이 시뻘겋다. 무라이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살포시 덮어 주며, 리아에게 사과한다.
"속박을 풀어드리지요. 장려님께 결례를 범했습니다. 지금의 저로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무라이는 리아에게 바짝 붙어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리아는 수치심에 눈물을 글썽인다.
"속박이 풀리면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릴 지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리아는 힘이 풀려 주저 앉는다.
"무슨, 이런!! 제게 평생 잊지 못할 수치심을 안겨주신 것도 모자라 소리 지르지도 말라고요?!"
그런데.. 무라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는 비틀거리더니 벽에 부딪힌다.
"선비님!!"
무라이는 거친 숨을 내쉰다.
"이곳에.. 갑주가 있습니다.."
"계속 갑주 갑주...! 그보다 푸른 궤로 돌아가셔야 할 것.."
"... 갑주만 찾으면 힘 같은 건 금방 회복됩니다.."
무라이는 비틀거리면서 계속 걸음을 고집한다.
"아니.. 그런 물건이 이곳에 정말 있긴 한 거예요?"
무라이는 책장에서 책 몇 권을 꺼내들며 답한다.
"... 장려님께 모든 걸 설명드릴 순 없으나...제가 비자수리가 되던 날 선비들과 맺은 몇가지 약속이 있었지요.. 갑주를 가져가면 약속을 저버리는 것과 동시에 나랑고스까지 배신하는 꼴이 되겠지만.."
"배신이라면..!? ... 설마 이중첩자?"
자신을 의심하는 리아의 앞에, 무라이는 꺼내든 책들을 무심하게 던져놓는다.
"장려님께서 말씀하고 싶으신 건 그냥 '첩자'겠지요. ... 그리고 전 첩자 같은 게 아닙니다.."
"말은 다들 그렇게 하죠!"
리아는 계속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보다,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태도를 바꾼다.
"... 어쨌든, 지금은 장려이나 곧 선비가 될 몸! 오늘 진 빚은 나중에 받기로 하죠. 저를 도와주시는 거로요!"
무라이는 당황스럽다. 그래,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을 터이다! 하지만, 무라이는 곧잘 장단을 맞춰 답해준다.
"정말로 선비님이 되신다면.. 한 번쯤은.."
"한 번쯤이라뇨!! 평생 쭈욱~ 도와주지 않으시면!!"
무라이는 아랑곳 않고 선힘으로 불을 피워, 종이 쪼가리 하나를 태운다. 리아는 다급해진다.
"잠깐! 채, 책들을 태우시려고요?!!"
"이것들은 대모장려님의 '봉인서'.. 서고에 등재되지 않은 숨겨진 책들이지요."
무라이가 골라둔 책들에 화륵, 불이 붙는다. 잘 타는구만.
"!"
책들에 불이 붙기가 무섭게, 갑자기 서고의 돌벽 틈새에서 안개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드르르륵, 숨겨진 문이 열린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저게 바로.. '잿빛 늑대의 환영갑주'입니다."
* * *
그렇게, 무라이는 환영갑을 갖춰 입고 무덤겁에 맞서게 된 것이다! 무라이는 아주와 다이라에게 뒤를 부탁한다.
"남은 선비들을 무사히 나랑고스로 데려가 주십시오."
무덤겁이 무수히 많은 광선 포를 내뿜는다. 무라이는 잠자코 보고 있다가, 땅을 들어올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막아낸다. 그가 맹렬히 싸우는 동안, 아주는 다이라와 함께 자리를 뜬다. 이어, 무덤겁은 두꺼운 촉수들을 꿀렁이기 시작한다.
이에, 무라이는 선검을 한번 크게 휘두른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하얀 섬광이 잔상으로 남는다. 조용히 퍼지는 안개.. 그리고, 안개는 늑대 무리의 형상으로 변하여 무덤겁에게 달려든다. 늑대들을 쳐다보던 무라이는, 갑자기 피를 토한다. 그의 손을 흥건히 적신 핏물에, 무라이는 오묘한 표정으로 무덤겁을 올려다본다.
무덤겁은 촉수 공격을 감행한다. 하지만 각성 상태의 무라이에게 통할 리가 없었고.. 흥분한 무덤겁은 아예 그가 서있던 지반을 들어올려 날려버린다. 또 한번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무라이.. 그는, 자신을 따랐던 전우와 부하들을 추억한다. 슬픈 최후를 맞이한 그들을.
* * *
"힘들면 후방내로 빠져도 좋을 텐데?"
"그럴 순 없어요! 어떻게 해서 따낸 자린데요!"
여나비패 선비의 말에, 햇병아리 같은 땅머리패 선비는 기세등등하게 답했다.
그리고,
땅머리패 선비는 자신을 지키려던 여나비패 선비의 품안에 안겨 눈을 감았다.
* * *
"선승님 뒤는 제가 봐드릴게요!"
"말끝마다 선승, 선승.. 같은 동인끼리 뭔 선승이야?!"
"한번 선승은 영원한 선승이라잖아요!"
어느덧 장성한 제자와 함께한 선승은 조금 불만인지 애꿎은 소리만 되뇌인다.
그리고,
선승은 가락지로 예쁘게 치장한, 그 풋풋하고 고운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뒀다.
* * *
무라이는 고통스러워하며 검에게 기도한다.
''''보르앙고스의 잿빛 검이시여.. 제게 힘을 주소서!!''''
이를 꽉 앙다문 무라이의 입이 점점 뒤틀려, 맹수의 주둥이로 변해간다. 마치.. 늑대와도 같이! 크르르르르.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무라이는 눈을 뜬다. 그리고.. 무라이는 마침내, 한 마리의 거대한 잿빛 늑대가 되어, 그 하얀 눈을 밝게 빛낸다.
2. 61. 탈출
타다다닷. 저 멀리, 달려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아주님! 이쪽입니다!"
아주의 얼굴에 작은 흉이 여기저기 들어있다. 어쨌든. 아주와 다이라는 선비들과 합류한다. 선비들은, 동굴의 통로가 세 갈래로 나눠지는 지점에서 논의한다.
"... 여기서 통로가 세 갈래로 갈립니다. 오른쪽 통로는 출구와 가깝긴 하나, 적잖은 수의 겁들이 몰려있고.. 왼쪽은 조용하지만 지형이 거칠고 거리까지 멀어 선힘 소모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출구도 가깝고 겁들의 기운도 덜 느껴지는 중앙이 그나마 수월해 보이긴 하는데.."
아주는 선비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챈다.
"함정일지 모른다.."
"예, 여러 가지로 석연찮은 게.."
또 다른 선비가 그에게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려는지요."
아주는 잠시 눈을 감더니 끝내 결단한다.
"모두 마지막 선약을 꺼내라."
* * *
* * *
"석연찮은 건 통로만이 아니다. 선비들이 정말로 겁들에게 당한 게 아니라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놈들일 수 있다.. 쉬운 곳은 없다. 그렇다면.."
아주는 생각을 정리한 후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중앙이다. 중앙으로 간다."
아주의 말에 선비들이 술렁술렁, 웅성거린다. 다이라조차 아주의 선택에 반대한다.
"생사의 기로에선 선택처럼 중요한 것도 없죠. 선비들을 사지에 몰아넣는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최소의 힘으로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는 거야. 목표는 '나랑고스로의 무사 귀환'이지 '동굴 탈출'이 아니니까."
역시나. 아주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집에 갈 힘은 있어야지.. 때론 단순한 게 먹힐 때도 있다. 놈들이 뻔한 술책을 쓸때는 뻔한 술책을 쓰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라면.. 달왕인 아버지께서도 왠지 이렇게 하셨을 거란 말이지."
아주는 아밈 얘기까지 덧붙이며 주장에 박차를 가한다.
"아주님의 감이 그러시다면야.."
"... 설명이 아니라 감에 설득당한 거냐?"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설사 그곳이 사지라 해도 아주님과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다면 저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걱정 마, 여기가 마지막이 되진 않을 테니까."
아주는 용장이요 지장이자 덕장이라! 선비들은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전의를 다진다.
"그럼 가볼까?!"
* * *
동굴 안에서 물이 똑, 또독 떨어진다. 고인 물 위로 거친 발자욱들이 남겨진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선비들.
"!"
아주는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다른 선비들도 마찬가지. 선비들이 멈춰선다.
"역시 그랬군! 놈들이 뻔한 수를 쓴 데는 이유가 있었어."
그렇다. 출구를 코앞에 두고, 커다란 호수가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매복이 힘든 개방형 지형.. 거기다 물을 기피하는 겁들에겐 최악의 위치였겠지요."
그때! 다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주님! 뒤쪽에서 겁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 갑자기 쿵, 울려오는 굉음..!!
"아, 앞쪽! '''두령급 겁 출현!!!"'''
거대한 암석거인의 외형.. 게다가 둘씩이나 등장하다니! 아주는 선검을 빼어든다.
"뒤는 없다! 뚫고 나간다!!"
아주를 필두로, 겁두령들에게 달려드는 선비들! 겁두령은 주먹을 힘차게 내리쳐 선비들을 노린다. 이에, 한발 물러섬도 없이, 선힘을 쏘아 겁두령에게 대항하는 선비들. 그리고, 아주와 다이라는 한순간에 뛰쳐나가, 각각 한놈씩 맡아 겁두령들을 공격한다. 하지만..
"아, 아주님과 다이라님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아!"
"먹히지 않는 게 아니야! 잘 봐! 공격에 큰 힘이 실려있지 않잖아!"
그렇다.
"두 분이 노리시는 건!!"
눈을 맞추는 둘.. 겁두령들의 육중한 주먹이 그들에게 날아오고.. 둘은 공중에서 발바닥을 맞춘 채, 서로에게 의지해 발을 힘차게 박찬다. 그렇게, 자리에서 벗어난 아주와 다이라. 그리고..
쿵!
둘이 펼친 교란 작전에, 결국 겁두령들은 자멸하고야 만다!
3. 62. 무라이
* * *
"보고도 몰라? 반목이잖아!!"
아주와 다이라의 현란한 활약에 부하들이 감탄한다.
"선힘을 소모하지 않으면서 타격을 주는 게 진짜 용병술! 막강한 겁두령이라도 허점은 있기 마련이고 작전 여하에 따라 승패도 달라지는 거지. 놈들을 봐, 두 분의 교란 작전에 누가 적인지 편인지도 모르고 서로 치받는 거."
선비는 연신 감탄 연발이다.
"선힘으로 서로의 거리나 위치를 파악할 순 있다지만 두 분은 선검으로 작전을 교시한 것도 아니야.. 이건.. 이건 뭐랄까, 환상의 합술을 보는 것 같은 게.. 전설 속 비렴과 기..?!"
"그래도 그렇지 과장이 심하잖아! 두 분 합 잘 맞는 거야 둥우리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 ... 그보다! 우리에겐 지금이 적기라고!!"
선비들은 아주와 다이라 쪽으로 달려나간다.
"만약 전설 속의 비렴이 정말로 환생한 거라면.. 에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선비는,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판단했는지 금방 생각을 접어버린다. 하지만, 잡념은 뿌리치려 해봐도 잘 떨어지질 않는다.
"... 아니지? 두 분이 붙어 다닌 게 버금선비 때라곤 하지만 합을 맞추기 시작한 건 고작해야 달포.. 두 분에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어쨌든지 간에, 아주의 주위로 집결하는 선비들. 아주는 겁두령들이 막아버린 출구를 선힘을 사용해 뚫어버리고, 선비들은 모두 무사히 동굴을 빠져나온다. 안도하는 다이라..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군요.."
하지만 것도 잠시, 갑자기 선비들을 뒤덮은 거대한 그림자. 다이라는 이상해하며 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림자의 주인공은 바로..
"테라! 테라부락?!!"
테라부락의 거대 풍뎅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선비들은 긴장하며 선검을 빼어든다. 그런데.. 풍뎅이에서 내리는 누군가.
"!"
'''"아, 아밈님?!!"'''
평소와 다르게, 몹시 화려한 의복을 갖추고 등장한 아밈.. 그는, 자신을 보고 놀라는 선비들에게 담담한 어투로 말을 건넨다.
"고생들.. 많았네.."
그때, 아밈과 동행한 테라부락민이 언질을 준다.
"···∵∈∠∃∑∀∏£!"
아밈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날겁들이 눈치를 챈 것 같군. 어서들 서두르게!"
"아버님.. 무라이님께서 아직.."
"알고 있으니 오르거라. 그는 더 이상 우리와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밈은 이미 그의 희생을 직감하고 결단을 내린 후다.
"무라이님의 일에 대해선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가 비록 서약을 깼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선비들을 위한 궁여지책.."
"아니! 넌 그에 대해 몰라.. 설사 그가 살아남는다 해도 지금까지의 기억은 어떤 것도.. 전부 잃게 돼있어.."
"예?"
"그가 가져간 환영갑주는 잿빛검의 유물이었다.. 만약 그가 검오름에 성공한다면 잿빛검의 후계자가 될 공산이 크다. 불행하게도 잿빛검은.."
아밈은 잠시 뜸들인다.
"... 동족에 대한 광적인 애착심으로 인해 뒤틀려버린 흉포한 ''''살육검''''". 지금껏 잿빛검으로 올랐던 계승자들 모두 그 잔악함에 물들어 똑같은 살육검이 되었지. 살육검이 된 그들은 결국 자신의 후계자에 의해 최후를 맞는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해오고 있어.."
잿빛 검! 이름대로 잿빛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는, 흉포한 붉은 눈을 밝히며 그 날카로운 이빨로 적을 물어뜯는다. 그리고, 그 계승자들 역시, 날카로운 쇠붙이 끝으로 서로를 겨누기에 이른다.
"무라이는.. 그 오욕의 연속성을 막고자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던.. 유일한 잿빛 검의 계승자였다.."
* * *
무라이와의 짧은 만남 이후, 서고에 남은 리아는 그의 외투를 걸치고 그의 선검을 쥔 채, 얼굴을 붉히며 그를 떠올린다.
"이건.."
"약속의 징표로 드리는 제 선검입니다. 생긴 건 투박해도 아주 신비한 검이지요. 나르달나무로 만든 비자수리들의 선검은 주인의 선힘에 따라 나뭇결이 변하며 특별한 능력이 담기기도 한답니다.."
"그, 그렇게 중요한 건 선비님이 쓰셔야.."
허둥지둥하는 리아. 무라이는, 제가 기절시킨 으뜸선비 하나의 수리탈과 선검을 탈취한다.
"전 이 녀석들 걸 쓰면 됩니다!"
무라이는 리아에게 가볍게 웃어보이며 답한다. 그리고..
"그리고 제겐 환영갑주가 있으니.."
"... 그, 그럼 돌아오실 때까지.. 제가 잘 간수하고 있을게요.."
리아는 얼굴을 붉힌다. 무라이는 능청스레 한쪽 눈을 깜빡인다.
"선검도 분명 기뻐할 겁니다! 리아님 같은 미인이 맡아주신다면.."
리아는 얼굴이 시뻘게진다. 열이 후끈후끈, 김이 푹푹 난다. 리아는 선검을 붕붕 휘두른다. 물론, 칼집에 넣어둔 상태로.
"노, 놀리지 마세요!"
"하하, 그럴리가요!"
무라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맞장구 쳐주더니, 금세 진지한 얼굴로 리아를 바라본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 선비님들을 꼭 구해주세요."
그리고.. 무라이는 이렇게 답했다.
"구할 겁니다. 제 목숨과 바꿔서라도요!"
4. 63. 우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창공을 가득 메운 먹구름에 온 땅이 어둑하다. 오로지 마른 가지들만이, 제 목 축여줄 빗방울들을 반긴다. 많은 인파가 몰린 넓은 터.. 그 테두리엔 제각각의 모양새를 한 사당들이 둥글게 서서 자리를 지킨다. 드높게 고개를 치솟은 것, 빼꼼하고 살짝 고개 내민 것, 길쭉하게 쭉 뻗은 것, 너른 품 활짝 벌린 것.. 터의 가운데 즈음에 불 두 개가 간신히 빛을 비춘다.
비는 하렴없이 내려, 각지게 깎아낸 검은 비석을 적신다. 그리고 집정자 달 미르는 검은 면류관을 쓰고 검은 정복을 입은 채 엄숙한 표정으로 그 앞에 서서, 내리는 비를 모두 받아낸다. 그 자리에 함께 한 다이라와 아주 역시도 우산을 받쳐 들고 섰으며, 공용도와 연도 얼굴을 비춘다. 달 미르의 얼굴에 빗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면류관에 꿰어 매단 구슬 줄 끝에 방울이 작게 맺힌다.
그렇게, 그들은 숨을 거둔 선비들의 넋을 기렸다.
* * *
번쩍 들어올려지는 수많은 손들. 집정자 달 미르는, 고등 선인들을 모아 모종의 사항에 대한 거수투표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그의 행적을 보아, 이는 분명 칼리그 무리의 나랑고스 입국에 관한 사항이리라. 그는, 정당한 입성이라 못 박을 작정인 것이다. 결과는 만장일치가 나오고야 말았고.. 결국, 달 미르는 고등 선인들을 거느리고 아밈에게로 향한다.
아밈에게 도착한 무리들.. 달 미르의 시종은, 품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아밈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잔뜩 날이 선 아밈의 눈. 아직도 그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달 미르는 태연하게, 아니, 사람의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도, 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 * *
비는 여전히 계속 내린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은 짖어댄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들의 수련은 멈추지 않았으니..
힘차게 내질러진 공용도의 왼손. 선힘이 울렁이고, 뮤울은 그의 선힘을 막아낸다. 그리고,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마고. 뮤울은 어느 정도 선힘을 막아내는 듯하다가, 이내 붕괴된 수호진에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버린다. 그 영향으로 다 찢어져 흩날리고 휘날리는 상의.. 공용도가 힘을 거두자, 뮤울은 얼마 안 있어 힘없이 주저앉는다.
"보잘것없는 녀석.."
공용도는 쓴소리를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이만 돌아들 가거라!"
"선승님!!"
마고는 공용도를 불러 세운다.
"?"
"아직,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마고는 두 손 불끈 쥐고 다리를 척 벌린 채 자세를 잡고는 전의를 불태운다.
"꽤나 기쁜 소리를 하는구나. ... 뮤울! 마고가 널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네가 마고를 보고 배우게 생겼잖느냐!"
뮤울은 주먹으로 땅을 짚고 일어난다. 그의 젖은 머리가 납작하다. 날아가버린 옷가지에 웃통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맨몸.. 행여 고뿔이라도 걸리지 않을까 심려되는 모습이다.
"어쩌다 흐름을 놓쳤을 뿐입니다. 계속하시지요.."
"눈치 없는 것! 이젠 나도 지쳤다! 쓸데없이 선력을 낭비하게 하다니.. 정말이지 볼품없는 녀석이라니까.."
공용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휘젓는다.
"... 오늘은 돌아가 쉬자꾸나. 잘 쉬는 것도 훈련의 하나이니."
* * *
마고는 숙소에 돌아가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해준다.
"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야..!?"
"으, 으응.."
"그 공선승님이?!"
"으, 으응..."
시아는 흥분한다.
"우리한텐 맨날.. '너흰 쉴 자격도 없다, 냄새 나는 멍청이들.' ...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떻게..!!"
"시아, 그런 거로 동요돼선 으뜸선비가 될 수 없어!"
"없긴 왜 없어? 그런 거로 동요돼서 깝죽거리는 으뜸선비들 한 둘이 아니던데."
하랑은 시아를 다그친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시아가 아니다.
"진짜 으뜸선비라면 그렇지 않다는 거 너도 알잖아!"
"에헤~ 오빠도 동요된 거야?"
오히려 역습 당하는 하랑이다.. 마고는 말을 이어나간다.
"... 나쁜 분인지 좋은 분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거짓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 같진 않았어. 말씀을 좀 어렵거나 거칠게 하셔서 그렇지.."
예를 들자면,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우거라." 같은..? 어쨌든, 하랑은 주제를 바꿔 아이들의 관심을 돌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늬둘 혹시 들었냐? 나랑고스에 칼리그 무리가 들어온다는 거? 비자둥우리에도 어린 칼리그 술사들이 들어올 거라는데."
시우의 눈이 유독 초롱초롱하다. 하지만, 마고는 그 소문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 마고는 턱 밑에 베개를 괴고 엎드린 채, 손의 반지를 좋다는 듯이 본다. 이게 왠 반지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쌩 난리다. 사실, 이 반지는..
"받아! 내가 주는 선물이야!"
그렇다. 사실 이 반지는 바로 뮤울이 선물한 것이었다.
"여기다 선힘을 빠르게 세 번 흘려 넣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와 이야기할 수 있어."
"저, 정말?!"
마고의 눈이 세상 초롱초롱, 침도 죌죌 흘려댄다. 뮤울은 턱을 매만진다.
"사실은 내가 마고 근처에 있을 때만 가능한 거긴 하지만... 뭐, 언제든 난 마고 곁에 있을 거니까!"
"울이 형.."
마고는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다. 뮤울은 괜히 쑥쓰러워 시선을 피한다.
"고마워!! 울이 형!!!"
뮤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와락 감싸 안는 마고.
"자, 잠깐! 주의 사항을 마저.."
* * *
"누군가로부터 뭘 받는다는 거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지금 한 번 해볼까...?"
마고는, 뮤울의 작은 선물 하나에도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낀다. 근데, 온 신경이 반지에 쏠려있었던 탓일까, 바로 옆에 찰싹 붙은 쉬라를 뒤늦게서야 알아채는 마고. 쉬라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검지로 반지를 가리키며 묻는다.
"... 그, 그 반지.. 누구한테 받은 거야?"
"쉬, 쉬라! 언제 내 옆에..!!"
쉬라의 귀여운 질투. 쉬라가 온 지도 모르고 있던 마고는, 너무 놀라 침대에서 벌러덩 굴러 떨어진다.
"?"
하랑은 뭔일인가 싶어 마고 쪽을 바라본다. 허둥지둥, 도망을 시도하는 마고. 쉬라는 집요하게 쫒는다.
"그 반지! 누구한테 받은 거냐니까?"
시아는 쉬라의 허리를 꽉 껴안고 애써 말려본다.
"이, 이번엔 쉬라언니 눈에 딱정벌레가?!"
"이, 이건 첨부터 갖고 있었던..!!"
"처음 왔을 땐 반지 같은 거 안 끼고 있었잖아!"
마고의 뻔한 거짓말에, 쉬라는 노발대발.. 그래, 마고와 처음 만나고서부터, 오로지 마고만을 쳐다보며 지내온 쉬라다. 그런 쉬라에게, 그 따위 거짓말이 먹혀들리가 있겠는가! 하랑은 나름대로 추리력을 발휘한다. 여유롭게 턱을 괴고 눈을 감는 하랑.
"진정해! 그 반지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니까!"
"하람이는 그걸 어떻게 알아!"
"람이 아니라 랑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내가 다 미안하구먼..
"아밈님과 왔달 때부터 이상하다 생각했지! 그러다 함선비님께서 널 우리 방에 데려오는 순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더라. 아니나 달라 제대로 저질러 주시더군.."
하긴, 공용도의 선힘 수업에서 검의 힘을 발현했던 때는 정말 어마무시하긴 했었지. 수업을 듣던 모든 버금선비들이 나무덩굴에 꽁꽁 묶였었으니. 조용히 듣고 있던 시우는 혼자 생각한다.
'사실 그 전에도.. 너흰 기억 못하겠지만..'
푸른블미르에 다른 이들 모두가 기절했었을 때를 떠올리며. 이상하게도 시우는 멀쩡했었던, 바로 그 날을 떠올리며. 그리고, 마고가 손댄 걸음나무가 하얀 백목으로 다시 태어난 그 아름다운 광경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건 그렇고, 하랑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린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추론쯤 어려울 것도 없지. 모르긴 해도 그 반지는 울림선비들께서 마고의 신비한 선힘을 구속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봉인 반지가 틀림없어.. 아냐?"
오호라, 꽤나 그럴싸한 가설이로다.. 물론, 그런 거창한 건 아니다만은.
"너 그거 준 사람이 자기가 줬단 말도 하지 말라고 했지?"
"으, 으응?"
"얼어붙는 거 하며 얼버무리는 거 하며 땡고란 동공까지, 틀림없네! 쉬라 너도 봤지?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
뮤울은, 천장에 숨어서 아이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속으로 칭찬한다.
'하랑이 녀석, 역시 제법인 걸..? 그런 용도의 반지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 어마무시한 선술로 찜질당한 이 시점에도 사랑 고백씩 할 선비 쉬라 말곤.."
아차, 실수다.
"!"
"살기?"
쿵! 하랑의 배에, 쉬라는 힘차게 무릎팍을 꽂아넣는다. 아주 지대로 들어갔구만! 하랑은 배를 부여잡고 털썩 쓰러진다. 쉬라는 부끄러워하며 한마디 덧붙인다.
"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아무튼.. 우리 방엔.. 종잡을 수 없는 녀석들 뿐이라니까.."
5. 64. 촉각
위로는 돌벽과 기와지붕 틈새로 비가 내리고 아래로는 작은 배가 물 따라 노 젓는 이곳, 비자둥우리.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선비들은 바삐 발을 놀린다. 그 중에는, 한아름 대나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선비도 있다. 그리고.. 요놈들도 있고.
"으으, 배불러!"
시아가 쾡한 얼굴로 한마디한다. 마고, 쉬라와 함께, 이제 막 에졍지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툭!
"꺅!"
시아는 의도치 않게, 마주 오던 선비와 어깨를 부닥친다. 방금 바로 그 선비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책들을 후두둑 떨어뜨리고는 털썩 넘어지기까지 한다.
"!"
"아, 미안!"
시아는 고개만 살짝 돌리고서는, 사과답지 않은 사과를 하고선 그냥 제 갈 길을 가려 한다. 선비의 친구는 넘어진 그녀를 부축한다. 그때.. 그녀의 대나무 책을 주워드는 누군가.
"저.. 이, 이거.."
마고는 그녀의 책을 주워 건넨다. 그런데.. 선비의 표정이 심상찮다. 그렇다. 그녀는 바로 마고와 함께 선힘 수업을 들었던 수많은 선비들 중 하나! 다시 말해서, 마고의 폭주에 휘말렸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뇌리에, 마고란 그저..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을 뿐. 선비는 약간 두려워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미, 미안!!"
그렇게 선비는 부리나케 달아나고, 그 뒷모습을 보는 마고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
갑작스런 소동에, 주변에 있던 다른 선비들의 시선이 마고에게 집중된다. 그리곤, 마고를 알아본 선비들은 으익, 급히 도망친다. 마고의 눈이 다소 슬퍼보이는 것은 과연 기분 탓일까?
"하나 같이 퍼렇게 질려서는.."
마고의 어깨에 텁, 올려진 손. 시아는 마고를 위로한다.
"오빠가 이해해..!! 그런 선법을 본 적이 없었으니 겁먹을 만도 하지.."
그때, 아이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오~ 시아는 겁먹지 않았었나 봐?"
시아는 목소리를 듣기만하고 그 주인공을 알아챈다. 뒤를 홱 돌아보는 시아.
"뮤울 오빠! 장난해?! 그깟 나무 콱! 내 힘으로 충분히 부러뜨릴 수 있었다구!"
항변하는 시아의 얼굴이 발가스레하다.
"... 뿌리에 휘감겨 상당히 버둥댔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야.. 워낙 갑작스러워서.."
"그래, 그래."
뮤울은 그런 시아가 마냥 귀엽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
무언갈 느낀 뮤울. 커다란 발 하나가 시끄무레한 흙먼지를 날리며 나타난다. 그렇게, 갑자기 등장한거한.. 머리는 민머리에 턱에는 상처가 하나. 투박하게 생긴 겉모습인데.. 으뜸선비 옷을 입고 있다? 거한은, 씨익 웃으며 상어 이빨을 한번 뽐내준다.
뮤울은 급히 뒤를 막아보지만, 거한은 괴력으로 그를 쳐서 날려버린다.
"뮤울 오빠!!"
시아는 거한에게 외친다.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야!!"'''
시아는 잠보에게 맞서보려 하지만.. 왠 사내아이 둘이 시아의 양팔을 붙잡는다.
"너, 너희들은?!"
잠깐, 어디서 봤더라? ... 그래 옳지, 애기네 패거리의 쌍둥이 선비들이로군.
"저 녀석 근처에 있다간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일단 일로와! 애기가 선승님들 모시러 갔으니까!"
선비들은 시아를 말리며 거한에 대해 설명해준다.
"보호소에서 나오자마자 마고 얘길 들었나 봐. 그때부터 저렇게 또 폭주 상태야!"
거한은 마고와 대면한다.
"네가.. 선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라 들었다. 그 공포.. 내게도 나눠주지 않으련?"
거한의 두 눈이 하얗게 빛난다. 거한의 눈은 마고를 감싸고 있는 힘을 감지한다.
"호오.."
한편, 시아는 버둥거린다.
"놓으라고 이 바보 멍청이들아!"
"잠보가 해먹은 선승들만 몇명인 줄 알아?"
"내가 알게 뭐야!"
그때.
"!?"
훙, 훙, 훙, 훙. 길가의 가로등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한다.
"... 싫어.."
마고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앙?"
'''"싫다고!!!"'''
아니 이럴수가. 지금껏 그토록 나긋나긋하고 온순하던 마고가 버럭질이라니. 마음 고생 여간한 게 아니로구나.
"험상궂은 네 표정도 싫고! 괴물 같은 내 선힘도 싫고!!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는 것도 싫어!!!"
마고는 눈을 부릅뜨고 꽤나 매섭게 거한 잠보를 노려본다.
"울이 형, 왜 때린 거야?"
잠보는 눈이 땡그래지더니, 잠시 생각회로를 멈추고 멍하니 마고의 얼굴을 쳐다본다.
'저 표정.. 아.. 너무 달콤해!'
잠보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희열을 만끽한다. 그런데 그때.. 우둑, 목재 가로등의 허리가 부러진다. 나무 잔해에 깔려 있던 뮤울이 그것을 발견한다.
"마고야 위험해!!"
잠보가 두 팔을 엇갈리자 꺾인 가로등 기둥들이 마고에게 날라온다. 촘촘히 박혀드는 기둥들. 마고는 꼿꼿하게 선 상태로 땀을 뚝뚝 흘린다. 동물적 감각으로 피한 것인가 싶었지만..
"마고야!!!"
"오빠!!"
시아와 쉬라는 마고를 외쳐부른다.
"벌써 기절해버리면 안 되지 안 돼.. 무시무시하다는 공포, 난 아직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잠보는 마고의 얼굴을 움켜쥔다.
"생긴 건 꼭 계집애처럼 생겨가지고 말이야.."
마고는, 뮤울이 선물해준 반지를 써먹는다.
'걱정마세요 형.. 절 해치진 않을 거예요. 단지 제 힘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 테니.. 이런 일로 형의 정체를 드러낼 순 없잖아요. ... 맡겨주세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6. 65. 꽃길
"조금 있음 환영식인데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서, 선승님!! 크, 큰일났어요!!!"
애기는 선승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 * *
* * *
마고와 잠보를 내려다보는 누군가. 모자를 보아하니 선승인데.. 아하, 공용도로구나! ... 잠깐, 지금 제자가 저런 꼴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 있는단 말인가?
"야! 덩치! 선힘대결 아무데서나 벌이면 안 된다는 거 모르냐?"
시아는 겁없이 외친다. 쌍둥이 선비 중 하나가 울먹인다.
"너 바보냐?! 알면서 저러니 보호소를 밥 먹듯 드나들었지!!"
한편, 마고는..
'맡겨주세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까요!'
뮤울은 꿀꺽 침을 삼킨다. 잠보는 기분나쁜 웃음을 짓는다. 그의 주위로 선힘이 치직거린다.
"버금선비 전원을 단번에 제압했다던 네가 아니냐! 실력을 보여라!!"
그의 두눈이 빛난다. 잠보는 마고의 목으로 손을 옮긴다. 무자비하게 선힘을 가하는 잠보.
"누, 누가 좀 말려봐!"
"미쳤어? 저걸 어떻게 말려?!"
마고는 숨이 막혀 괴로워한다. 게다가, 마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검의 힘이 스믈스믈 기어나와, 가로등에서 가지가 솟는다. 하지만 마고의 정신력은 보기보다 굳건했으니.. 마고는 얼마 전 폭주했던 걸 떠올리곤 눈을 질끈 감는다.
'다신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아!!'
마고는 자세를 잡고는 공용도와의 훈련을 떠올린다. 공용도는 마고가 자신의 선힘을 막다 지쳐 쓰러지자 또다시 쓴소리를 한다.
"어리석기는.. 그런 식으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모든 힘을 막으라 하지 않았다. 네게 집중되는 힘만 막으면 그걸로 충분해!"
"하지만.. 그러면 제 친구들을 지킬 수가 없는 걸요."
그렇게 대답하는 마고의 뒷편엔..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솟아있었다..''' 공용도는 눈을 감는다.
"네 친구들을 위한 훈련이 아니다. 네 힘으로부터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훈련이지. 자신의 선힘이 아닌 타인의 힘으로 태곳적 힘을 다스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검의 힘으로 선법을 발현한다 해도 불안정한 선술은 되려 자기 자신에게 피해를 주게 되지."
공용도의 턱수염 끝에 조롱조롱 물방울이 매달린다.
"한계를 인정해라! 배움의 첫걸음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 * *
'그래! 지금의 나로선 울이 형처럼 힘을 막을 수도, 다스릴 수도 없어! 그렇다면!!'
마고는 두 손을 모아 잠보의 선힘을 끌어모은다. 지켜보던 다른 선비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이, 이 녀석!! 내 힘을!!!'
잠보는 자신의 힘이 흡수당하자 당황한다. 그리고, 마고는 반격을 시작한다. 잠보의 옷에서 꽃봉오리 가지가 피어오르고, 꽃봉오리 가지는 가로등과 다른 선인들의 옷에서도, 그리고 건물에서도 무성하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비자둥우리는 꽃으로 가득찬다!
"우으.. 마고! 이 녀석!!"
그때, 날아드는 박쥐 떼. 박쥐 한 마리가 잠보의 목을 물어 그를 쓰러뜨린다. 하나로 뭉치는 박쥐 떼.. 그렇게, 선승 연이 나타난다.
"모두 정렬해라.. 손님이 오셨다."
연이 손가락을 맞부딪히자 다시금 가로등 불이 켜진다. 그리고.. 비자둥우리에 들어서는, 하얀 무리들.. 그들은 제 옷 색깔에 걸맞는 흰 꽃비를 맞으며 등장한다. 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술사가 입을 연다.
"뜻밖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칼라리아 수련술사 오십 외 지도술사 한 명, 인사 올립니다..!!"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6장 完'''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完'''
7. 1부 후기
쏙, 누군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그랬다 이내 쇽 다시 모습을 숨긴다.
"음음.."
목을 가다듬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자신을 소개한다.
"반갑습네다. 동토의 여명을 만들고 있는 김정휘라고 합네다."
그는 싱긋 웃다가 갑자기 급 정색한다.
"그럼 바로 후기를 시작해보갔어."
그는 북조선 설정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 * *
그는 입체적으로 커다랗게 쓰인 'QnA' 글자 위에 팔을 괴고 기대어 선다.
"QnA부터 가볼까?"
* * *
* * *
그는 1부를 마친 소감을 밝히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 * *
* * *
ps. 캘리그라피 선물을 보내주신 '수수캘리'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고 팬아트?를 그려 봤습니다. 감사해요!
8. 핵심 요약 및 여담
「1부, 막을 내리다」
에피소드 가이드 1부 6장에 해당하는 60화~65화는 1부의 결말 부분으로서, 마라흔산 출격작전의 종결과 슬픈 마무리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오랜만에 등장한 마고에게는 또다른 위협이 찾아오고, 마고는 자신다운 방법으로 역경을 헤쳐나간다. 또한 칼리그 무리가 공식적으로 나랑고스와 비자둥우리에 입성함으로써,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60. 잿빛늑대[1]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리아, 무라이, 아밈, 대모장려, 아주, 다이라
61. 탈출[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아밈
62. 무라이[3]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아밈, 무라이, 리아
아주와 다이라의 합에 감탄하는 선비의 대사 중, "비렴과 기"라는 전설적인 존재들이 언급되는데.. 비렴飛廉은 바람을 주관하는 신으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풍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비렴 문서를 참고
달포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을 말한다. 즉, 아주와 다이라가 합을 맞추기 시작한 건 고작 그정도 밖에 되지 않았단 것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룬 문자 같은 걸 쓰려고 했으나 폰트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63. 우기[4]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달 미르, 다이라, 아주, 공용도, 연, 아밈, 뮤울, 마고, 진시아, 하랑, 진시우, 쉬라, 함
이번 화에서 달 미르가 쓰고 나온 면류관의 유[5] 의 수는 5류[6] , 구슬은 굉[7] 마다 19개이다. 역사 상, 송나라 이전까지는 천자는 12류, 제후는 9류, 상대부는 7류, 하대부는 5류의 면류관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나랑고스 왕국의 수장인 집정자가 5류를 쓰는 것은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굉에 꿴 구슬의 경우에도, 애매한 갯수인 19개인지라 조금 아쉬운 부분. 물론 어디까지나, 본작의 세계관은 실제 역사에서 어느 정도 모티브를 가지고 왔을 뿐, 그 자체로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실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초반부에 묘사된, 희생당한 선비들의 장례를 치르는 장면, 달 미르가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장면 등등은 아무런 대사 없이 연출되었다. 특히, 그 흔한 효과음마저도 '쏴아아아', 비 내리는 소리 하나 밖에 없다.
팬서비스성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은 바로 교복을 입은 아란.
숙소에서, 시아와 하랑의 대화 중 하랑의 대사에 오타가 있다. (으뜸'''서'''비)
64. 촉각[8]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진시아, 마고, 쉬라, 뮤울, 잠보, 애드가 애기
65. 꽃길[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애드가 애기, 마고, 잠보, 공용도, 진시아, 뮤울, 쉬라, 지도술사
마고가 공용도의 가르침을 떠올린 후, 두 손을 모으는 장면에서, 왼손이 오른손으로 그려져있다.
지도술사의 대사에 따르면 비자둥우리에 들어온 술사는 수련술사 50명과 지도술사 1명으로 총 51명이지만, 해당 컷을 보면 61명이 그려져 있다.[10]
1부 후기
동토의 여명의 첫 후기이다.
김정휘 작가의 오너캐가 첫 등장한 회차이다.
그동안에 선승 공용도의 교육법이 세베루스 스네이프 교수의 방식과 비슷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QnA에서 해리 포터가 언급되면서 김정휘 작가가 스네이프에게 따온 것임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후반부의 소감문에 배경으로 들어간 만화는 본작의 초기판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