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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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부 일부를 중심으로 유지된 위구르인의 독립 정권이었다. 4.12 디화 정변을 통해 진수런이 실각한 혼란을 틈타 하미 칸의 전임 재상이었던 니야스 호자는 중국인 군벌 성스차이의 지원을 받아 카슈가르를 근거지로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세워 독립을 선언한다.
냉정하게 말하지면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은 사실상 신장성을 장악한 군벌 성스차이의 지배를 받는 괴뢰 정권이나 다름없었다. 성스차이는 호자 니야즈를 신강성 정부 부주석으로 임명하면서 한동안 위구르족과 한족의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하였으나 1933년 6월부터는 동튀르키스탄 정부는 진수런의 학정으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불러온 회족 군벌 마중잉과 싸웠다. 마중잉의 회족 군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카슈가르에서 위구르인 4,500명을 학살했고 결국에는 1934년 회족 출신 군벌 마중잉의 공격으로 정권이 해체되었다.[1]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멸망시킨 마중잉은 이후 소련에 투항했다가 얼마 안가 소리소문없이 증발했으며 1937년 스탈린의 꼬봉 노릇을 하던 성스차이는 호자 니야즈를 비롯한 위구르 민족주의자 5~8만여 명을 반란 혐의로 숙청하면서,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과 그 주도 세력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였다.
2. 긍정적 평가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서는 호자 니야즈처럼 부패한 사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1910~1920년대 당시 카슈가르를 중심으로 터키인, 볼가 타타르인[2] 교사들이 초빙되어 신장의 부유층 자제들에게 서구 학문과 이슬람 신학을 병행하여 가르친 덕분에, 1930년대 동튀르키스탄 공화국을 지도하던 위구르인들은 헌법과 민주주의, 교육을 중시했다. 이들은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실권이 별로 없었으나, '''1년여간의 짧은 기간동안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위구르인의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