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
1. 개요
터키어: Türkler (튀르클레르) - 복수형, 단수는 Türk
터키공화국의 헌법에 의하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터키내에 거주하면서 터키어를 사용하는 튀르크계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거 오스만 제국 시기의 유산으로 아직도 그리스,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조지아, 시리아, 이라크 등에 거주하는 터키어를 모어로 하는 소수민족들도 수십만 단위로 있는데, 터키에서는 이들 또한 해외 터키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아울러 2차 대전 이후 터키인이 많이 건너간 독일에만 해도 터키계 독일인들이 400만 가까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타 유럽 국가들을 모두 포함하는 국외 터키인의 수까지 합치면 거의 7,800만에 육박한다고 추정된다. 터키 공화국 건국 이후 급격한 언어 변화 및 현지 언어의 영향으로 본토의 언어와 비교적 차이가 있다. 그나마 가까운 불가리아와 그리스에 속하는 서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터키인의 언어는 에디르네 일대에서 통용되는 발칸 방언과 비슷하다.
2.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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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의 전통 주택, 한국 관광객들도 꽤 다녀가는 사프란볼루 (Safranbolu) 마을의 사진으로 터키 전통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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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하던 튀르크 사회에서 터키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카라만오을루 메흐메트 베이(Karamanoğlu Mehmet Bey)[1] 의 동상. 동상에 쓰여진 문구는 '''"오늘 이후로 궁정에서, 데르갸흐(수피 수도사들의 숙소)에서, 집에서, 의회에서, 그리고 광장에서도 터키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1277년 5월 13일"'''(Bugünden sonra Divanda, Dergâh da, Bargâh da, Mecliste ve Meydanda türkçeden başka dil kullanılmayacakdır.)라는 당시의 칙령을 적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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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전통 그림자 인형극인 '카라괴즈(Karagöz)'의 두 등장인물인 카라괴즈(오른쪽)와 하지바트(왼쪽)[2] 의 모습.
터키인의 대다수는 인종적으로 코카소이드이다. 서아시아의 코카서스 인종이나 혼혈이 많기 때문에 남,동부 유럽인의 외모도 보인다. 외모를 살펴보면 그리스인, 라틴인, 슬라브인, 알바니아인, 조지아인처럼 보이는 유럽 백인 비슷한 외모 및 반대로 아랍인, 페르시아인과 비슷한 외모[3] 가 섞여있다. 오스만 제국이 오랫동안 동서양 여러 곳을 지배해 혼혈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혼혈화는 오스만 제국 전역의 모든 계층에서 활발했고 터키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의 최고 권력자라는 술탄조차 다양한 인종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술탄의 모후는 반드시 하렘의 노예이기 마련인데, 무슬림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 술탄의 모후는 거의 대부분 원래 무슬림 출신이 아닌, 비튀르크(비아랍)계 유럽인이었다. 오스만 제국 황가인 오스만오울루 가문의 후손들 역시 유럽 여성들과 결혼한 선대와 마찬가지로 영국인과의 결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흔히 생각하는 "아랍풍" 외모와는 차이가 있다.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도 어머니가 백인 노예였으며, 그도 백인 노예를 사랑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다. 셀림 2세 역시 슬라브계 어머니 때문에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금발의 셀림(Sarı Selim)이라고 불렸다. 오스만 제국 황제들은 대개 슬라브 여자들을 이뻐해서 노비 출신임에도 상당수의 슬라브족 여인들이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터키 남자들은 지나칠 정도로 금발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오스만 황실의 여인 중 유럽인의 비중이 높아지자 민간에서도 금발벽안 여인을 미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터키 전설이나 동화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오스만 이전의 튀르크인들은 풍만하고 몽골인과 중국인처럼 찢어진 눈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여인을 미인으로 선호했다.[4]
터키에서도 이 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여러 우스개가 많으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걸 많이 언급한다. 한 서구적 복장 차림의 백인 여성과 히잡을 쓴 아랍계 여성이 이스탄불에서 우연히 만나 영어로 서로 대화를 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에서야 서로 국적을 묻자 서로 똑같이 터키인이라고 말하면서 둘 다 멍을 때렸다는 일이라든지 길거리 농구장에서 유달리 농구를 잘해보이는 아랍계 남성을 보며 백인계 남성이 환호하면서 "아랍에서 온 건가요? 잘하는데요!" 라고 묻자 그 아랍계 남성은 멈추더니 "그런 댁은 북미요? 유럽 다른 곳에서 오셨소? (터키에선 스스로를 유럽으로 여긴다.[5] )" 질문하였다. 그리고 둘 다 서로 터키인이라고 답변하고 잠깐 멍때렸다는 일도 오래 전부터 실화라고 전해진다.
"유럽 백인 비슷한 외모의 터키인"은 인구 밀집지역인 서부 지역에 많이 보이며 흑해 연안 지역에도 많이 거주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결혼 상대로 오스만 제국이 다스리던 영토의 유럽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신랑감으로는 그리스인. 신부감으로는 슬라브인이 선호되었다. 현재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성과 터키 남성간의 국제결혼이 상당히 많다. 소수이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터키에 정착한 이탈리아인 등 서유럽 출신 이주민의 후손들이 현대에도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서부 지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그 외에도 서부 도시들은 건축 양식부터 유럽 스타일에 가깝다.
한편 샨르우르파, 가지안텝 등 터키 남동부 지역은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아랍의 영량을 많이 받아 터키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아랍풍 분위기가 난다. 해당 지역 주민들 중에서는 아랍인의 후손도 보이는 편. 샨르우르파 지역 등지에서는 아랍풍 복장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특히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두건 모자인 카피예를 쓴 주민들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갈수록 쿠르드족이 많이 살아서인지 아랍인, 페르시아인 비슷한 외모가 많다.(쿠르드족은 넓은 범위로 보면 페르시아계) 심지어 동부 지역에는 타타르(Tatar)라 불리는 몽골-튀르크계 소수민족들까지 거주하기 때문에 동아시아인처럼 생긴 터키인도 극소수 존재한다.
흑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빼면 가히 인종의 용광로라 할 수 있을 지경인데, 사실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흑인도 있었다.''' 가장 유명한 예가 하렘의 흑인 환관들이다.
이런 다양한 혼혈과 인종적 문제 때문에 건국 초기 터키는 상당한 딜레마에 시달렸다. 삼대륙에 걸친 제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시절은 몰라도 민족국가를 주창하며 아나톨리아에 세워진 터키에게는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아타튀르크는
라는 정의를 내렸다. 터키에서 교과서로 쓰는 그의 어록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6] 그래서 터키는 오랫동안 소수민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분리 독립 문제로 터키 정부와 갈등을 겪는 쿠르드족도 오랫동안 정식 명칭은 '''산악 터키인'''(Dağ Türkler)이'''었'''다.
터키인의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동쪽과 서쪽이 절묘하게 섞여있다. 정서적으로는 매우 동양적인데, 특히 정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에 방문할 경우 가게 주인은 으레 터키 특유의 달콤한 차이라는 터키식 특유의 홍차를 권하기 마련인데, 터키에서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심지어 주인이 식사 중일 때는 음식까지 함께 권하기도 한다. 여행 도중에 만난 터키인과 친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 또한 매우 외향적이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말을 건낸다. 또한 한번 친구가 되면, 극단적으로 갈라져서 척을 지지 않는 이상 평생가는게 보통이다.
원래 오늘날 터키인들의 선조라는 튀르크는 아나톨리아 출신이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민족이었고, 아나톨리아는 어마어마하게 긴 역사속에서 오만 민족들이 각축을 벌이던 땅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다문화는 필연적인 일이었다. 튀르크족이 밀려오던 시절에는 이곳에 이주 그리스인과 그리스화한 아나톨리아인, 페르시아인, 쿠르드족, 아랍인 등의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오스만 제국의 통치기를 거쳐서 터키화되거나 혹은 터키인들이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터키인의 문화는 유럽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시아적이다. 괜히 유럽과 아시아의 다리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2010년에 이스탄불시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유럽 문화의 중심지(Avrupa kültürün başkenti)로 지정되었는데, 그때의 이유는 "동서 문화의 교차점"으로서의 이국적이고도 다채로운 문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러한 이유 때문에 터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터키인은 하나의 민족이다!''' 라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존의 다양한 문화들을 융합해낸 다문화 사회라는 정체성 또한 인정하는 (외국인의 기준으로서는 다소) 모순적인 모습 또한 보인다.
가령 이슬람교는 터키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사회, 문화적 장치라 할 수 있는데 98%의 터키인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나머지 2% 정도는 정교회나 가톨릭을 믿는 터키인이며, 이슬람교 내에서도 비록 수니파가 주류기는 하지만, 시아파도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며, 이슬람 전체에서 봤을땐 시아파보다도 소수인 알레비파를 믿는 무슬림도 1,000여만 명[7] 에 달할 만큼 많다.
2.1. 인종
레반트, 북아프리카 아랍인, 베르베르인들과 이란인, 중동, 서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처럼 인종학적으로 백인이다.
흔히 터키인들을 아시아 몽골계통의 민족으로 분류하거나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현재 터키, 헝가리, 핀란드, 아제르바이잔 등의 나라들은 아시아 민족이 조상이지만 코카소이드 백인종에 흡수, 동화되어 현재는 몽골계가 아니다.[8] 고대부터 아나톨리아에 살고있었던 아니톨리아인은 아리아인에 속했고 리디아, 히타이트등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국가들이 있던 곳이다. 그 후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까지 서방세력이 앞다투어 진출했던 지역인 만큼 백인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었고, 동로마와 아나톨리아를 두고 패권을 다툰 사산 왕조의 아제르바이잔이 그러했듯, 페르시아의 동방에서 권력 공백지역으로 들어온 터키인들은 그 지역에 많이 살고 있던 다수의 백인들에 의해 인종적으론 백인에 동화되었고, 백인들은 문화적으로 튀르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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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중앙일보 계열에서 운영했던 케이블 방송사 Q채널[9] 에서 방송된 <아시아 음식문화 기행>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터키 여성. 이 방송에서 나온 터키 여인은 흔히 전형적인 중동권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아랍인 같은 중동의 코카소이드들보다는 오히려 그리스인이나 하다못해 발칸반도의 슬라브족계 민족들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 마케도니아인 등 동유럽 발칸반도 지역의 백인 코카소이드 사람들과 생김새가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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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in 같은 곳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정경. 심지어 편견을 바로잡는 답변이 아니라 저런 식의 글이 채택을 받기도 한다.[10]
위의 답변들은 인종과 민족을 구분하지 못하는 매우 무식한 답변들이다. 사실 인종은 유전적인 측면을 보는 것이고, 민족은 문화적인 측면 즉 삶의 방식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백인이 터키에서 태어나 터키어를 쓰고 터키 음식을 먹고 주변 이웃들과 동화되어 2~ 3 세대가 지났다면 그 후손들은 터키인으로 받아들여질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심지어 2~3세대가 지나는 동안에도 순수 백인 인종들하고만 혼인관계로 이어졌다 할 지라도 그 후손은 터키인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것이 민족의 개념이다.
튀르크인의 선조는 원래 인종학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투바, 카자흐, 사하 등과 유사성을 갖는 투르크계통의 황인종 즉, 몽골로이드였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현 소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해오는 과정과 수백년간 유럽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시절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혼혈화가 이루어졌고[11] 오늘날 대다수의 터키인들은 백인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인종의 분류에서도 백인으로 분류된다. 이는 헝가리와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민족들이 거쳤던 역사적 과정과 유사하다. 특히 우랄어계 마자르족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형성된 헝가리도 현 시점에서 대부분의 헝가리인들이 외형상 인근의 게르만, 슬라브인들과 외형상 별 차이점이 없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 아나톨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터키인들은 유전적으로 원래 고향인 중앙아시아 사람들 보다는 차라리 레반트지역이나 발칸 반도 주민들과 더 가깝다고 한다
하플로그룹 조사에 따르면 터키인에게서 지중해 인종들과 캅카스, 남유럽, 서아시아의 특징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12] 역사적으로 봐도 한창 때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며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동유럽까지 지배해서인지 꽤나 다양한 혼혈이 이뤄졌다. 오스만 제국의 최대 강역은 전성기 때 수단 및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의 뿔로부터 도나우 강 유역, 크림 반도, 우크라이나 남부, 아라비아 반도, 튀르크메니스탄까지 이른 말 그대로 동서양을 통합한 제국이었다.[13]
따라서 터키 사람들중에는 유럽 백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있는건 당연하다. [14]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나 뒤를 이은 이스메트 이뇌뉘, 아드난 멘데레스 등의 사진을 보면 대체적으로 백인계에 가깝다. 뿐만 아니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 등 근래의 정치가들이나, 소설가 오르한 파묵, 배우 시넴 코발,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방한한 터키 국대 선수들을 봐도 하산 사슈, 알파이 외잘란, 일한 만시즈 같은 선수들에게선 아랍계의 인상을 받기 힘들다. 워터 디바이너에서 우크라이나계인 올가 쿠릴렌코가 터키인 여성역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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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치인 보리스 존슨 증조할아버지인 터키인이던 알리 케말 베이 사진을 보자. 저 사진을 보면 터키인인지 유럽 다른 나라 백인인지 구별이 가는가? 그럼 케말 베이가 페스를 쓴 모습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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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사진같은 경우처럼 옷차림을 바꾸면 유럽인과 구별이 안 간다. 아니 이 사진에서 페스를 벗고 중절모를 쓰면 그냥 유럽 백인과 그리 차이가 없다....실제로 오스만 제국은 유럽 열강과의 전쟁에서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하는 자국인을 옷차림만 바꾸고 유럽으로 보내 스파이로 썼다. 물론 유럽 열강들도 오스만 측에 터키어를 잘하는 스파이를 보내게 했지만.
터키인과 이란인은 다른 역사와 언어 계통에 속해서 아랍인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랍인과는 민족이 당연히 다르다. 그래서 당연히 터키인보고 아랍인 이런 말 하다간 터키인, 아랍인 모두 굉장히 화낸다. 민족 대부분은 유럽 백인과 중동 백인들이 혼합된 경우가 대부분 이며 터키내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은 터키 바로 근처인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건너온 레반트 출신이 대부분이다. 참고로 레반트 지역의 아랍인들은 지중해 계열 백인들(Mediterranid)과 외형적으로 흡사한 외모를 가지고있으며 따라서 터키 내의 아랍인 후손들도 여느 유럽계 백인들처럼 남유럽 백인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 아랍인이라고 다 같은 인종이 아니며 수단이나 소말리아 등의 흑인 아랍인은 하플로그룹 E(서아프리카인 및 남부 아랍인과 유사)계열이고 베두인 등 북부 아랍인은 하플로그룹 J에 약간의 R이 섞여서 나타난다. 물론 아라비아 반도 자체가 워낙 난장판으로 혼혈이 이루어진 곳이고 해서 같은 나라 사람도 동네에 따라 인종이 바뀌는 경우도 많기는 하다. 어쨌든 터키인은 아랍인이 아니다. 참고로 터키인과 아랍인은 역사적으로 사이는 썩 좋지는 않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고관대작[16] 자리를 꿰어찬 유럽인들[17] 과 페르시아인들에 비해 대접을 못받았으며 아랍인들은 오스만 제국에 이를 갈아 반란을 일으킨 역사가 있다. 지금도 이런 가슴아픈 역사들때문에 아랍인들중에는 페르시아, 유태인과 더불어 질색인 민족이라고 터키인들을 질색한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터키군을 끌어들이려고 하자 친미 이라크 정부 수반들도 결사반대하고 심지어 "정 그렇게 고집부린다면 '반미 저항을 벌이는 세력에게 튀르크놈들이 또 쳐들어와 우리 땅을 먹겠다고 한다오! 우리 다같이 손잡아 놈들부터 몰아내는 게 어떻소?' 라고 하면 군말없이 그들도 우리와 손잡을 것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반발해 미국이 포기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슬람이 대다수라고 터키를 보통 아랍계로 여기는 게 많아서, 90년대 중순 대한항공 여객기 기내지에서 터키 관련 정보로 아랍 사막과 아랍인 차림 유목민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여기가 터키라는 짓을 벌였다가 터키 대사관 항의로 전면 수정했던 일도 있다.[18] 당연히 터키인들은 이런 경향을 매우 싫어한다.
서구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터키와 이란을 종교적으로 동일한 이슬람권이라 아랍권으로 여기는건 마찬가지라 터키인을 아랍인과 동일하게 여기는 편견이 없는 건 아니다. 이런 편견 때문에 서유럽인들 역시 전형적인 유럽 백인처럼 생긴 터키인, 특히 금발을 가진 터키 여성을 만나면 그 터키인이 자신의 국적을 밝히기 전에는 터키인이라는 걸 눈치 못채는 경우가 제법 많다. 터키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유럽인들 역시 놀라워 하는 편.[19]
이는 서구권과 북미 지역 등을 포함한 비중동권 지역이 백인을 '유럽의 기독교 믿는 국가 나라의 원주민'으로 한정해 다른 수단계 아랍인을 제외한 아랍인, 페르시아인, 파슈툰족 등 구미권 국가가 아닌 코카소이드들을 백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더불어 아랍과 종교적으로 유사하다 보니 막연하게 터키=아랍일 거라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근데 사실 터키 연예계에서는 알게 모르게 서양풍 외모를 가진 배우들을 선호한다.[20] 특히 금발 여성들의 인기가 높다. 그래서 혼혈 연예인들도 많이 보인다.[21] 가령 오스만 제국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터키 사극등에서 등장하는 유럽인 배역들은 죄다 터키인 배우들이 유럽 복식을 입고 출연하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을 지경.[22]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더 이상 "한 제국의 신민"이라는 정체성이 적용되지 않게 되자 터키인들 본인부터 새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나서면서 단순히 튀르크라는 분류에서 벗어난 터키인만의 정체성이 생겼다.
현대 공화국 터키로 들어와서 민족 국가 터키의 민족적 정체성을 새로 재창조하고 의도적으로 오스만 문화의 다국적인 색체를 빼느라 이제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기나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그리스와 터키는 동로마 제국과 튀르크족의 아나톨리아 대 이주 이후 동로마~오스만 제국으로 내려오는 동일하고 서로 공유하는 문명에서 나왔다. 오히려 그만큼 서로 유사하고, 많은 역사를 같이 했음에도 차이점 또한 명확하고, 19세기 민족주의의 광풍과 20세기 제국 해체와 전체주의의 시절을 겪으며 단절 또한 과격했기에 아직까지도 악감정이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서로 그만큼 치고박고 싸워도 대중적 차원에서는 터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고, 뻔히 아티나(아테네), 이즈미르(스미르나), 셀라니크(테살로니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 트라브존(트레비존드) 같은 양국의 대도시의 구시가지들을 걸으면 양식도 서로 유사한[23] 동로마의 교회와 오스만 조의 모스크들이 나란히 서 있는 것만 봐도 서로 공유한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도 터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이나 서로 싸우는 만큼 그 중에서도 그리 과격하게 국수주의적이지 않거나 생각이 좀 개방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느끼며, 그리스 안에 있는 오스만 제국의 유산을, 터키 안에 있는 동로마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재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 지역은 튀르크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무주공산인 곳이 아니었다. 일찍이 히타이트가 있었고 그리스의 도시들이 있던곳이 소아시아이다. 소아시아는 헬레니즘 시대 이래로 가장 그리스화가 잘 된, 그리스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지금처럼 발칸 반도 남쪽 끄트머리에서만 사는 게 아니었다. 상당수의 터키인은 그리스화된 아나톨리아인이 다시 튀르크화된 경우이다. 그리스인들 중에도 그 반대로 그리스화된 튀르크인들이 있다.[24] 즉 터키인이 백인이 아니라는 소리는 터키인과 외형상 비슷한 점이 있는 그리스인도 백인이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25]
터키에도 유럽 국가들보다는 비율이 낮지만 당연히 금발과 벽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둘 다 가진 금발벽안도 당연히 있다. 그 예시로 터키 작가 엘리프 샤팍[26] 과 배우 시넴 코발등이 금발이다. '''아니 애초에 국부인 아타튀르크부터가 금발벽안이다.''' 그리고 이스탄불 등 서부 지역에 살거나 동유럽 출신 이주민 후손, 서구식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터키 여성들은 염색을 많이 하는데 화장과 머리카락 염색, 히잡 착용유무 만으로도 전형적 중동풍 외모와 금발의 서유럽풍 외모를 오고 가는 게 가능하다.
대략적인 터키인들의 외양을 알고 싶다면 이스탄불 시민들의 거리 패션을 참조해보자. 혹은 뮤직뱅크 이스탄불 당시 관객들을 유심히 살펴봐도 좋다.
금발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터키에서는 금발벽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래 금발이 아닌데 금발로 염색한 사람들도 보인다.[27] 금발 역시 이즈미르 같은 서쪽 도시나 흑해쪽으로 갈수록 많이 보이고 동남쪽에서는 드문 경향이 있다.
동부 지역으로 가면 전술한 것처럼 몽골-튀르크계 혈통을 가진 타타르인이나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카자흐, 키르기즈 등 전형적인 북방 황인종에 속하는 중앙아시아계 터키인이 있다. 우즈벡이나 위구르, 튀르크멘은 페르시아인과 혼혈되었으나 그래도 몽골 형질이 우세하다. 아랍인이 언어, 유대인이 종교로 정체성을 갖듯이 터키인도 결국 사는 땅과 사용하는 언어로 정체성을 갖는 셈이다.
터키인들의 백인우월주의, 유럽 선망, 유럽 중심주의는 터키 내외에서도 자주 논란이 되는 떡밥이다. 터키인들 내부에서도 그런 사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상기했듯 금발 벽안이 아주 드물지는 않지만 아주 흔하지도 않고 약간 적은 정도인데, 금발로 염색을 하는 여성이 무척 많은데다가 연예계 활동을 하는 인물 중 매우 많은 수가 금발벽안이거나 금발로 염색을 한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출처
터키계 미국인 역시 미국에서는 미국 백인에 포함되는 등 백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출처 출처2 러시아계 미국인에 독일계 러시아인 혈통이 포함되는 것처럼 엘리아 카잔처럼 선대가 그리스 혈통인 사람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지리적으로는 아시아로 분류된다고 하나, 인종적, 역사적, 문화적으로 모두 유럽적 정체성이 강한 터키가 아시아적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간주되는 가장 큰 원인은 종교가 이슬람교라서, 둘째로는 터키 공화국의 국명이 터키, 즉 대놓고 튀르크라서 생기는 일이다. 터키 공화국 사람들은 유전적, 그리고 일부 문화적으로도 과거 동로마 제국에 가까운 면이 크지만 국명 자체가 마치 모든 튀르크 제족을 대표하는 것처럼 대놓고 '터키'라고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2.2. 신체
대체로 중동이나 유럽계 백인들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터키인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광대뼈와 대머리에 있다. 의외로 많은 터키인들이 순혈 동양인만큼은 아니지만 뚜렷한 광대뼈를 갖고 있다. 광대뼈는 이들의 조상인 몽골계 유목민족 튀르크인의 흔적이다. 대머리의 경우도 매우 흔한데, 아랍인들이 터키인 까는 주된 레퍼토리가 "우린 원래 대머리 없었는데, 터키인 유전자가 섞여서 대머리가 생기는거임 ㅇㅇ"이다(...)[28] 남자들은 높은확률로 30-40대가 되면 슬슬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며, 50대쯤 되면 대머리 아닌사람 찾기가 더 어렵다. 또한 눈이 동양인만큼은 아니지만 째진 터키인도 많이 있다. 그 외의 특징들로는 전혀 구분하기 힘든편인데, 눈동자만 하더라도 터키인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갈색 눈동자 외에도, 파란색, 짙은 파란색(터키어로 라지베르트 lacivert 라고 부른다), 초록색, 회색 등등 다양하다. 머리카락의 색깔도 다수의 터키인들은 약간 갈색을 띄는 흑발을 갖고 있지만, 금발도 간혹 볼 수 있고[29] , 붉은 머리도 볼 수 있다.
키는 한국인과 비슷한 편인데, 키 큰 사람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며, 특히 슬라브계가 많이 거주하는 서부지방에서는 슈퍼모델급의 키를 자랑하는 여성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터키 여성들은 쉽게 노화하지 않는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이스탄불같이 사람 많은데를 돌아다니다보면 백발 노인과 상당히 젊어보이는 여성 커플을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나이는 비슷한 부부 사이이다. 터키인들은 남녀의 나이차가 적은 것을 더 선호하며, 연애가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고등학교나 대학커플이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순수 혈통 백인들이 노화 속도가 굉장이 빠른 것과는 다르다.
체급은 터키인쪽이 우월하게 좋은 편이다. 좋게 말하면 건강한거고, 나쁘게 말하면 뚱뚱한거고(...) 통통한 체형의 여성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보통 처녀 당시의 몸매가 나이들어서까지 유지되는 편이다.
아랍인, 페르시아인 등 중동의 다른 민족들에 비해 피부색이 밝은 편이다. 폰 루샨(Von Luschan)의 피부색 척도 지도 참조. 해당 지도에서 터키인의 평균적인 피부색은 아랍인들과 이란인들보다 더 밝은 편이고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민족들 및 캅카스 지역 민족들과 밝기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30][31] 물론 아랍인, 페르시아인들도 개개인에 따라 남유럽 수준의 피부색을 가진 경우가 허다하지만 터키인, 특히 이스탄불 등 서부 지중해 연안 지역, 흑해 연안의 경우 더욱 도드라진 편.
3. 터키인을 구성하는 민족들
튀르크(Türkler)라고 대표되는 터키인의 혈통은 단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다. 터키내에는 수십여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크게 10여 계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는 민족간의 혼혈과 튀르크화,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각 민족에 따라 구분해서 인구조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터키 법으로 인해 정확한 숫자파악도 불가능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민족들을 몇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그리스계 터키인: 오스만 제국 이전부터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에 거주했던 민족들로, 그 중 오스만 제국 시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하거나, 정교회 신앙을 간직하되 이스탄불에 거주함으로서 1923년 인구교환에서 제외된 그리스계를 의미한다. 크레타섬에 거주하다가 1896년 크레타 전쟁으로 인해 섬에서 추방당한 무슬림 그리스인들은 크레타인(Giritli)이라고 부르며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그리스계 터키인과 별개민족으로 보고 있다. 수백년의 세월에 걸쳐 터키에 동화되어 본인이 그리스계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계 터키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 라즈계 터키인: 조지아계 민족으로 현재는 트라브존과 리제를 중심으로 약 5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대다수는 무슬림이며, 라즈어라는 고유 언어가 있지만 1990년대 들어 화자가 극도로 줄어 일상언어로서는 사실상 사어화 되었다. 리제 지방의 라즈인들은 라즈어가 아니라 조지아어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 참고로 코가 크기로 유명한데, 코가 클 수록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는 터키인들은 유별나게 고집 센 사람에게 '라즈인의 코(Laz burunu)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 보슈냐크계 터키인: 보슈냐크인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거주하는 남슬라브계 무슬림 민족이다. 발칸 전쟁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온 보슈냐크인과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피난온 보슈냐크인 두 부류로 나뉘며, 주로 터키 서부지방에 정착해 거주하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 당시 피난온 보슈냐크인 10만여 명은 이제 겨우 1, 2세대이기 때문에 여전히 보슈냐크인으로서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불가리아계 터키인보다 수가 적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터키에서 보슈냐크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이주자들을 포함해 200만명에 달한다고 보기도 한다.
- 불가리아계 터키인 : 튀르크-러시아 전쟁과 발칸 전쟁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피난온 불가리아 지방 무슬림들의 후손으로 이스탄불과 에디르네,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방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일부는 불가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튀르크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불가리아와 터키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많이 있다. 참고로 터키 서부지방에 거주하는 슬라브계 터키인들 가운데 가장 수가 많다. 원래 불가리아계 터키인들은 발칸 방언을 모국어로 사용했으나 현재 발칸 방언은 터키 바깥에 일부 남아있는 정도이다.
- 세파르딤 터키인: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의 후손으로 이들은 당시 오스만 제국에 정착해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과 더불어 장사로 번영했다[32] . 이후로도 계속해서 터키에 거주하고 있으며, 종교는 유대교를 간직하고 있으나 일상 언어로 라디노어(중세 스페인어에서 바탕한 세파르딤의 언어)를 사용하는 세파르딤의 수는 줄고있다.
- 시리아계 터키인: 마르딘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아랍계 시리아 정교회인(Hıristiyan Süryaniler)을 의미하며, 오늘날에도 마르딘을 중심으로 정체성은 튀르크화되었지만 고유의 신앙과 고유의 언어를 지키며 거주하고 있다.
- 아르메니아계 터키인: 이스탄불과 카이세리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민족으로 아나톨리아 동북부의 헴신인들의 경우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기독교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터키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아르메니아 교회일 정도로. 다만 아르메니아어는 예배언어로서만 사용하며 일상생활에서는 터키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경우 아르메니아 병원, 아르메니아 학교도 있다.
- 아랍계 터키인: 샨르우르파, 하타이를 비롯한 터키 남동부 지방에 주로 거주하며, 오늘날에는 튀르크화되어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은커녕 아랍어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 알바니아계 터키인: 알바니아 독립전쟁과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오늘날의 터키로 건너온 알바니아인의 후손들이다. 알바니아인들은 최후까지도 오스만 제국에 충성했던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당시 군대에서 주로 활약했다. 하지만 공화국 시대 이후 튀르크화되어 알바니아계에 대한 정체성은 터키 내의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희박하다.
- 우비흐계 터키인: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의해 거의 대부분 오스만 제국으로 추방되면서 터키인들에 동화되었다. 우비흐인들은 터키인으로 동화되었지만, 터키내 우비흐인들을 중심으로 우비흐어를 부활시킬려는 움직임이 있다.
- 자자계 터키인: 쿠르드계 소수민족인 자자족으로 툰젤리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자자어라는 쿠르드어와 다른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종교적으로 다수의 자자인들이 알레비파를 믿는다는 점도 특이한 일이다. 현재 터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의 총재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Kemal Kılıçdaroğlu)가 자자계이며 알레비파를 믿는다.
- 체르케스계 터키인: 체르케스인은 캅카스 지방의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후기에 러시아 제국의 침략으로 아나톨리아로 들어와 정착했다. 전통적으로 불가리아계 터키인과 더불어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민족으로 가수 하디세가 체르케스계 터키인이다.
- 튀르크멘계 터키인: 과거 튀르크멘은 튀르크계 민족중에서도 유목을 하는 부족들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터키 남동부, 시리아, 이라크에 거주하는 튀르크계 민족들을 의미한다. 가지안텝의 경우 특히 튀르크멘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튀르크멘어라는 터키어와 비슷하지만 고유의 문법과 어휘를 가진 별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다만 터키에 거주하는 튀르크멘들은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메니스탄 방면보다는 시리아, 이라크 일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주류이다.
- 쿠르만지계 터키인: 쿠르드족 중에서도 쿠르만지어(Kurmancî , 터키어 표현은 Kurmançça 혹은 Kuzey Kürtçe)를 사용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오스만 제국 이전부터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한 터키 남동부 지방에 주로 거주해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상당수가 모어로 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다.
- 크림 타타르계 터키인: 크림 한국 붕괴 이후 오스만 제국으로 들어온 타타르인들의 후손으로, 현재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다. 원래 크림 타타르어는 터키어와 매우 유사한 언어이며 종교도 터키와 같아서 그런지 고유의 정체성은 남아있지 않으며 단지 혈통으로만 전해온다.
- 아프리카계 터키인: 오스만 제국 시절 노예 무역을 통해 들여 온 흑인 노예들의 후손은 생각보다 드물고 대부분은 오늘날에 난민으로 유입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들이다. 오스만 제국으로 들어온 흑인 노예들은 주로 궁정의 환관이나 군인으로 일했으며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같은 대도시에는 이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까지 존재했다. 현재 이들의 후손들인 아프리카계 터키인들은 주로 이즈미르, 아이딘, 무을라 등 에게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 구소련계 터키인: 소련붕괴 이후 터키로 넘어온 모국이 구소련 공화국들인 사람들을 퉁쳐서 이렇게 말한다. 민족적으로는 튀르크계인 타타르, 바시키르인, 카라차이인 등이 있기도 하고, 동슬라브계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도 있고 아무튼 다양하다. 소련붕괴 직후 경제난으로 돈벌러 왔다가 터키인과 결혼해서 정착한 경우와 국제결혼으로 터키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 여성)로 나뉠 수 있는데, 예시로 터키 가수 알레이나 틸키는 아버지쪽이 러시아계라고 한다. 이들이 많이 사는 이스탄불 악사라이 지역이나 안탈리아, 페티예 같은 곳에선 러시아어도 일상어로 쓰이고 있으며 관광지인 안탈리아, 페티예에서는 특히 현지에서 거주하는 구소련계 터키인들이 여행온 러시아권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숫자도 만만치 않아서 정확한 파악은 어려우나 구소련 공화국 국적과 터키국적을 모두 보유한 이중국적자 숫자가 수십만에 이른다.
- 집시계 터키인: 약 50만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4. 정체성
위의 글과 같이 터키인의 정체성은 무언가 하나로 딱 찝어서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터키의 사회학자 보즈쿠르트 귀벤치(Bozkurt Güvenç) 교수는 터키인의 정체성을 때문에 3차원으로 나눠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차원들을 설정했다."Biz Türkler
Asyalı mıyız, Avrupalı mı?
Şaman mı, Müslüman mı, laik mi?
Yerleşik köylü müyüz, göçebe Türkmen mi?
Fatih'in torunları mı, Ata'nın çocukları mı?
İslam'ın kılıcı mı, Hıristiyanlığın cezası mı?
Osmanlı yetimi mi, TC vatandaşı mı?
Fatih miyiz, fethedilmişlerden mi?
Savaşçı asker miyiz, barışçı siviller mi?
Ordu muyuz, millet miyiz, ulus mu?
Batılı mıyız, Batı'nın '''koruyucusu''' mu?
Çağdaş toplum mu, tarihi bir köprü mü?
Doğulu mu, Anadolulu mu, Batılı mı?
Kimiz biz?"
우리는 아시아인인가, 유럽인인가?
샤머니스트인가, 무슬림인가, 세속주의자인가?
우리는 정주민인가, 유목하는 튀르크멘인가?
정복자의 자손들인가, 아타튀르크의 아이들인가?
이슬람의 칼인가, 그리스도교의 벌인가?
오스만의 고아인가, 터키공화국의 시민인가?
정복자인가, 정복당한 이들인가?
전사인가, 평화로운 시민들인가?
우리는 군단인가, 민족인가, 국가인가?
우리는 서양인인가, 서양의 '''지킴이'''인가?
현대의 총체인가, 역사의 한 교두보인가?
동양인인가, 아나톨리아인인가, 서양인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1차원. 민족(문화)적, 혹은 언어적 정체성 (튀르크, 쿠르드, 아르메니아, 라즈, 그리스, 튀르크멘, 불가리아계 튀르크 등등)
2차원. 종교적 정체성 (순니, 알레비, 세속주의자 등등)
3차원. 준거집단적 정체성 (유럽 지향, 중동 지향[34] )
모든 터키인들은 이 3차원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정하거나, 그가 속해있는 집단의 정체성을 영향을 받고 자라나기 때문에 터키인의 정체성은 딱 잘라서 말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때문에 종교적이고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쿠르드인(+언어)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사람과 세속주의자 집안에서 아타튀르크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난 사람의 정체성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특히나 터키의 경우 워낙 많은 민족들이 거주하다보니 지방마다 문화와 풍습이 상당히 다른데, 이를테면 이스탄불, 에게 해 서부지방은 그리스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부 지방은 쿠르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남부 지방은 아랍, 아르메니아인의 영향을 받아 저마다 색다른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형제국 드립이 널리 퍼져 있는데 극단적인 투란주의자들이나 터키 민족주의자들중에 한국인을 튀르크의 별종(...)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터키인들 중에서는 west coast라며 동양인과의 형제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터키인들 중에는 고구려와 돌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많고 확실히 역사를 더 길게 하기 위해 동돌궐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켰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고 인종적으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터키인들한테 한국은 일본과 같은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 국가라는 인식이 더 크다.
5. 민족관
위의 터키인의 정체성과도 관련있는 부분이다. 상당히 많은 터키인들이 자신들의 민족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특히 공화국 성립 이후 눈부신 서구화와 터키 독립전쟁에서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치고 국가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과거에는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였지만, 여전히 종교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아랍인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 터키어로 흔히 'Pis araplar'(더러운 아랍인들)이라는 관용구를 쓰는데, 다르게 말하면 한국인들이 중국인에 대해 갖는 감정인 "중국인들은 우리보다 문명하지 못해."와 비슷한 느낌이다. 근대화를 겪으면서 과거의 행태에 젖어있는 다른 민족들을 야만적으로 여기는 풍조는 역사를 통틀어 상당히 흔한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이슬람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민족이라고 본다. 과거에는 다스리는 지역의 형제들이었고, 현재도 같은 종교를 믿는 형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아랍인들의 배신'으로 여겨서 아랍인들에게 적대적인 이슬람주의자들도 있긴 하다.
주변의 민족들과 사이가 나쁜 편인데, 우선 불구대천의 원수인 러시아인 - 소련 붕괴 이후에는 불법체류하는 구소련 출신 러시아인들도 많아져서 갈등이 더 심해졌다. 아르메니아인, 잘난 척 하는 이란인 등과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의외로 그리스인이나 불가리아인에 대해선 이 정도까지 비하 발언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체급 자체가 게임이 안 되는 그리스, 불가리아 등은 오스만의 피지배 민족으로 살아 왔지만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이 본격적으로 유럽에 깊숙히 진출한 16세기 이후 동유럽-유라시아 스텦-흑해-동지중해-카프카스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두고 피 말리는 혈전을 벌여왔던 경쟁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망한 이후 역시 같은 선상에서 비교 하기 힘든 약소국 신세로 전락 했지만, 아직도 크림 반도의 타타르족 문제, 카프카스 국가들 사이의 알력 다툼 등을 두고 갈등이 있고, 러시아는 러시아 나름대로 냉전 시절 문화적, 사회적으로는 서방도 아니면서 나토가 소련의 턱 밑에 박아 둔 단검 역할을 했던 터키를 아니꼽게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시리아 내전이후 몰려온 시리아인들이 노상에서 벌이는 구걸행위, 소매치기, 강도, 집단 패싸움 등을 이유로 시리아인과 사이가 나빠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 터키 정부는 국경을 열어 시리아 피난민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터키-시리아 국경선의 길이도 길이거니와 대부분의 경계는 그저 황무지나 밭 한복판에 철책 놓고 뜨문뜨문 경비초소가 있는 식으로 허술했기 때문에 시리아 전쟁 이전부터 시리아와 터키를 오가는 밀수꾼들이 많았고, 터키 정부가 발급한 난민증을 갖고 난민생활시설에 수용된 난민 수, 즉 터키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피난민 숫자보다 더 많은(...) 시리아인들이 국경을 넘었다. 2020년의 비공식 통계에 의하면 터키에 있는 시리아인 불법체류자의 숫자는 거의 450만(...)에 달한다. 헌데 급히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인들이 터키어를 알 리가 없고,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먹고 살 방법이라고 해봐야 구걸과 소매치기 뿐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과거에 터키를 오가고, 돈 좀 많은 시리아인들은 관광지에 자기 가게(물론 불법이다.)를 내서 같은 아랍권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터키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사이에서도 갈등이 심한 편이다.
이란인들과 아랍인들은 터키내에서 대우가 영 좋지 않다. 한국인들이 동남아인,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하게 바라본다.
6. 민족기질
터키인은 전체적으로 뭉뚱그려서 딱 이렇다라고 하기 힘들다. 지방마다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 대체로 그리스인처럼 낙천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는데 전형적인 남유럽인의 기질과는 달리 이슬람적인 운명론에 따라 한편으로는 매우 진지한 성격이기도 하다. 나무위키 그리스 항목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인들은 쉽게 흥분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지중해 민족의 특유의 다혈질과 함께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의연하고 침착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의 주어를 터키인으로만 바꿔도 말이 된다. 터키인의 언어습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샬라(알라께서 원하신다면, İnşallah), 마샬라(알라께서 지켜주시길, Maşallah)같은 표현들을 봐도 그렇다.
폴란드볼로 표현된 터키인의 지역 스테레오타입 [35]
터키인들은 지방마다 사람들의 기질이 다르다고들 하는데, 에게 해 지방 사람들은 허세부리는 경향이 있고, 흑해 지방 사람들은 고집만 세고, 동부 지방 사람들은 싸울 때는 목소리가 크고 호전적이지만 정이 많고, 중부 지방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차갑고 무뚝뚝한데다 장사속만 밝힌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런 편견을 가지고 지역드립에 써먹는다(...) 관광온 외국인들은 알 길이 없지만, 터키인들과 친해지면 무지막지한 지역드립의 향연을 들을 수 있다(...) 아랫 문단에서 설명하겠지만, 현재는 터키인이라고 묶여있지만 마치 이탈리아인들처럼 근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서로 소속감 없는 사람들이었다.
7. 행동양식
[image]
'''터키인이란'''
운전학원에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이지
운전 중 아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앞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이고
되네르케밥과 아이란을 먹으면서 동시에 끝내는 것이고(뭐 하나가 먼저 안 끝나도록)
범퍼카에 타서는 다른 차와 충돌하지 않는 것이지
책의 서문은 읽지 않고,
기스난 CD 뒷면에다 콜로냐를 뿌리는 것이고,
가스레인지를 라이터를 가지고 켜는 것이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터키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지.
- 웃어른을 보면 손등에 키스하는 인사를 한다. 특히 손등에 키스하고나서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대는 것은 그야말로 최고의 경의를 담은 인사법이다. 한국에서 하는 목례는 하지 않는데, 이유는 이슬람교의 교리에 따라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목례나 절은 오로지 신에게만 드릴 수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36] 그리고 친근한 사이에는 양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거나 볼과 볼을 왼쪽, 오른쪽 서로 맞대는 인사를 하는데 여기에는 동성, 이성을 가리지 않는다. 목례 인사법도 있기는 한데, 한국과는 달리 머리를 살짝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낮게 숙이는 인사로 상대방이 나보다 높은 사람인지 낮은 사람인지 알 수 없을때 하는 아주 조심스러운 인사법이다. 처음 한두번이라면 모를까, 계속 목례인사만 고집한다면 소심하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다.
- 집에 들어가면 신발을 벗는다. 다만 신발을 벗어놓는 곳은 따로 없어서 보통은 신발을 한쪽 구석에 놓아둔다.
- 유목민의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인지 고인 물을 더럽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터키의 화장실 세면대에는 물을 막아놓는 마개가 없으며, 수도꼭지에서 세면대 바닥까지 높이도 물이 떨어지는 동안 손으로 물을 받은다음 세수하기 편하도록 상당히 높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때문에 일반적으로 집에 욕조도 없다. 샤워할때 물이 바닥에 튀지 않도록 일종의 작은 욕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물 막는 마개또한 없고.
-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한다. 터키인의 생각에서 남자다움이란 '당당하고, 자신있고, 술과 담배를 자주 하며, 싸워야 할 상황이면 물러서지 않는'데에 있으며, '여자다움'이란 '집안에서 모든 일을 다 책임지며, 얌전하고 조신한 몸가짐을 보이는'데에 있다. 때문에 데이트를 할때도 항상 남자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짊어지고 가게 된다. 여자는 못이기는 척 OK만 하면 될 뿐. 심지어 결혼할때에도 집과 혼수 모두 남자측에서 장만하는게 보통일정도. 반대로 집안에서는 여자가 모든 집안일을 짊어지고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데, 대부분의 터키 남자들은 자기 집에서 양말이 어디있는지조차 모른다고 한다.[37] 특이한 점은 가부장제 정서가 짙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잠자리'도 여자의 권한에 포함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여자가 주도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성관계 자체를 집 안의 평화와 가정을 이루는 여성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 그럼에도 매우 감정적이다. 터키인의 장례식장에 갈 일이 있다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텐데, 이런 일이 있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새벽 3시쯤에 갑자기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3년간 암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사망한 한 노인의 임종판정을 들은 친척들이 일시에 통곡을 한건데, 이를 지켜본 독일인 간호사는 표정 하나 안변하고 단호하게 'Ruhe! (조용하세요!)' 한마디만 말했다.(...) 터키에는 '남자는 평생 세번 운다'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게 자연스럽다고 여기기 때문.
- 학생, 군인이라는 것에 꽤 큰 가치를 부여한다. 특히 터키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알바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집에서 용돈 받아서 생활하고, 그나마도 거의 대부분이 절대빈곤층 수준으로(...) 헐벗고 지내기 때문에 학생에 대한 배려심이 높다. 단지 학생이라고 해도 식당에서 서비스를 주거나, 돈을 깎아주거나, 심지어 받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학생신분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대중교통이나 박물관, 문화유적, 극장 등지에서 파격적인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현역군인이거나 참전용사에게도 상당한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연애관계에서도 학생커플의 경우, 어느정도 더치페이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차피 돈 없기는 남자나 여자나 매한가지니까(...) 학생들끼리 모일때에도 기본적으로 더치페이가 원칙이며, 학생 모임중 누군가가 취직을 하거나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이상은(...) 더치페이는 계속된다.
-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80년대에만 해도 터키에선 안전벨트 착용 의무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교통사고가 많이 나자 정부에서 안전벨트착용 의무를 때렸는데, 그러자 '안전벨트가 그려진 티셔츠'가 히트를 쳤다(...) 멀리서 보면 안전벨트를 맸는지 안맸는지 알 수 없으니까. 담배를 피울때에도 터키인들은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터키에서 무단흡연 벌금은 지금은 터키 환율이 떨어져서 한국에 비해 싸다는 느낌이 들지만 (2020년 현재 96리라=약 14000원) 쇠고기 1.5킬로그램 정도의 가치가 있다. 금연표지판 앞에서 담배피우고 인증샷 찍는게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당당히 벌금내는것도 '남자다움'으로 여겨질 정도(...) 하기사 남성의 96%가 흡연자인 나라에서 금연제도 확대가 가능키나 한 일이냐마는(...)
- 이 나라를 가보면, 정말로 어마어마한 청소용품 광고에 놀랄지도 모른다. 터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를 가졌고,[38] 때문에 손님을 맞이하는 가정주부의 능력은 그 집안의 정리상태로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터키의 주부들은 오늘도 청소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집 밖에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들어오지 않으면 집 대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주부도 있을 정도. 하지만 남의 집의 사정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탓인지, 베란다에서 빵부스러기가 묻은 식탁보를 털다가 빵부스러기가 아랫층 베란다에 고스란히 떨어져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 이 나라에서는 패스트푸드가 일종의 고급음식으로 당당히 대접을 받는다. 길거리에서 파는 케밥이나 괴즐레메같은 음식들에 비하면 적어도 1.5배는 더 비싼데, 때문에 터키의 맥도날드나 KFC, 피자헛 등에서는 음식을 먹고나서 트레이를 따로 가져가서 버릴 필요가 없다. 가만히 냅두면 직원이 알아서 치워주기 때문.[39]
- 음식을 불어먹는 것이 무례한 행위로 통한다. 애초에 터키음식은 한국과 달리 국종류조차도 미지근하게 나오는 경우가 보통이라 불 일도 없을뿐더러, 음식을 불면 음식 속에 들어있는 동물, 혹은 식물의 정령이 빠져나간다는 옛 유목민시절의 미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식인 빵을 숭상하기 때문에, 식사후에 빵을 남겨선 안된다. 터키인들은 피치못할 이유로 빵을 남길경우 그 다음 식사때 남긴 빵을 계속 먹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처리한다. 심지어 빵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거나해서 못먹게 되어버려도 빵에 키스를 하고 이마에 갖다대어 경의를 표한 다음에 동물먹이로 준다.
- 프랑스식 예법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을 먹을때 후루룩하고 마시거나 쩝쩝거리는 소리, 트림, 접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촌스럽다고 여긴다.[40][41] 물론 손님대접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만연하기도 하고, 괜히 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 하지 않기때문에 목전에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지만 나중에 뒷담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하는 편이 낫다. 자세한건 식사예절의 터키항목을 참고할것.
-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한국인들도 한국에서 일하는 터키인(주로 식당 직원이나 아이스크림 상인)과 담배피다가 친해지기도 한다(...)
8. 전통복장
터키인의 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조끼와 자켓이다. 터키의 전통복장은 각 지역마다 전혀 다른 민족이라 싶을만큼 이질적인 패션을 자랑하지만 이 조끼만큼은 어딜가나 전통복장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 조끼는 말타기 편하도록 개량된 유목민족의 전통복식인데다 터키를 통해서 유럽에 전래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카프탄'이라고 부르는 옷 아랫단의 앞뒤로 틔여진 긴 자켓도 터키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럽에서 로컬라이징을 거쳐 트렌치 코트같은 다양한 형태의 옷으로 발전한다. 또한 파자마처럼 넓은 통을 가진 바지도 터키의 전통복장으로 활동성이 매우 좋기때문에 19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잠옷, 혹은 주아브부대처럼 군복으로 사용했다.
전통적으로 터키인 남성은 머리를 박박 밀었기 때문에 모자또한 터키 전통복식에 있어 필수요소이다. 전통복식을 보면 터키 여성은 히잡과 니캅, 차도르를 하지않는것을 알수 있다. 물론 투르크인이 이슬람교를 믿게되면서 여성들은 히잡을 쓰게 된것이다. 오스만 제국중기때만 해도 보통 남자들은 터번을 하고, 여자들은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가렸지만 마흐무트 2세의 명으로 1825년부터 제국 관료들부터 페스(fes)라는 꼭대기가 평평한 원통형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이 모자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착용을 금지한 1925년까지 널리 착용되었는데, 이때의 풍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오늘날에도 터키인들은 모자를 자주 착용한다. 특히 인기있는 모자는 비니와 베레모인데 1980년대 독일에서 긴 자켓에 베레모는 터키인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었다.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나오는 에피소드인데, 터키계 독일인에 대한 독일 내 차별을 설명하면서 한 콧수염 기른 신문기자가 터키인들이 즐겨입는 긴 자켓과 베레모를 하고 맥주집에 들어가서 "남들은 바로바로 맥주 주는데 왜 나는 안줌?" 하고 따지자 가게 주인이 내쫓았다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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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서부 에디르네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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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남동부 가지안텝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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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부 엘라즈으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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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카르스 지방의 민속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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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시대 얄로바 항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가지각색의 사람들 중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노인과 서구식 양복 위에 페스(Fes)를 쓴 신사가 보인다.
9. 종교
무신론자 비율은 확실하지 않은 상태지만, 스스로를 '무슬림'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무신론자이거나 무교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2010년대 이전까지 터키의 주민등록증에서는 '종교'를 명시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막기 위해 실제로는 종교를 믿지 않거나, 심지어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이고, 고학력자이고, 세속적일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터키도 여느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다.
아무튼 통계적으로 봤을때 터키인의 98.5%는 이슬람을 믿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신교인들이 누구는 장로회, 누구는 감리교, 누구는 침례회 교회를 다니는 식으로 서로 다른 종파를 믿듯이 '''터키에서의 이슬람도 단 하나의 종파가 아니다.''' 정부의 공식적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터키내 시민단체들의 통계에 따르면 대략 15~20%정도가 시아파의 일종인 알레비파를 믿으며, 순니파내에서도 학파(터키어로는 메즈헵 mezhep)에 따라, 세속주의적 성향에 따라, 따르는 종단에 따라 또 달라진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알레비파를 아예 다른 종교 보듯 하며(...) 터키내 수니파 무슬림들은 대부분이 하나피파(Hanefilik)를 따르지만 쿠르드가 많은 지역에서는 샤피파(Şafilik)를 따르는 신자들도 많다. 나머지 학파인 말리키파와 한발리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와하브파는 극소수이며 아제르바이잔, 이란계 터키인들 중에는 여전히 시아파를 따르는 무슬림도 존재한다.
역사적으로는 칼리파제가 소멸된 이후 터키 공화국 정부에서 설치한 종교부(T.C. Diyanet İşleri Başkanlığı)에서 터키 내 이슬람 종단들을 관리하며, 이 부서의 권한은 상당히 막강해서 모스크를 세우거나 허무는 일, 이맘과 사원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선출하고 퇴출하고 발령내는 일, 터키인의 메카 순례자를 받고 선정하는 일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덕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모스크를 짓거나 기존의 모스크에 들어와 원리주의적 설교를 하는 일은 없다. 금요예배 설교 방침 같은 것도 종교부에서 다 짜여서 나온다. 그러나 터키 공화국 종교부는 어디까지나 수니파 무슬림들만을 관여하며, 알레비파나 터키 내에 소수 존재하는 기독교 종파들에 대해서는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상태다. 가장 최근(2013년)에 트라브존에 위치한 수멜라 수도원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구에 돌려줘서 다시 수도원으로 개장하게 한 일 정도가 전부라 당시에 어마어마하게 뉴스에 실린 적이 있다.
그래도 극단주의가 없지는 않는데, 쿠르드인이 사는 동부 지역이 특히나 극단적인 이슬람이 퍼져있는 곳으로 이유는 시리아와 이라크 등 아랍 국가와 접하고 있고, 전통적으로 발전된 서부에 비해 낙후되고 소외되어 있어 종교로 한을 풀려는 성향 때문이다. 반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카자흐나 키르기스, 우즈벡, 튀르크멘 등의 중앙아시아계 터키인에게는 이슬람이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극단주의도 적다.
터키내 비 무슬림들은 공식적인 통계로는 1.5% 정도이며 의외로 그중 다수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들이다. 그리스인은 터키 독립전쟁과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으로 거의 다수가 추방되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가 된 것이다.(...) 그 외 이스탄불에 가톨릭 신자들이 소수 있으며, 남동부 지방에는 쉬리야니(Süryani, '시리아인'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도 있다. 특히 마르딘(Mardin) 지역은 인구의 절반이 쉬리야니들이며 이들은 고대 아람어를 여전히 전례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터키에는 종교적 자유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이들의 전례는 허용되지만 철저한 세속주의적 원칙으로 인해 다른 종교처럼 제의를 입고 교회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종교행사 때를 제외하고는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터키계 유대인들도 있다.
10. 정치
한편 지역감정 내지 정치갈등으로 인해 터키인들끼리도 '흰 터키인'(Beyaz Türk)과 '검은 터키인'(Kara Türk)라고 자기들끼리 나누고 대립하기도 한다. 여기서 흰 터키인이든 검은 터키인이든 인종으로 분류하는건 아니고, 세속주의적이고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 성향을 지지하는 도시거주민들, 군인, 공무원, 기타 엘리트증을 흰 터키인이라고 하고, 반대로 종교적이고 이슬람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하며 보수, 수구성향을 지지하는 시골거주민들을 검은 터키인이라고 분류한다. 혹은 '''비하적인 의미로 검은 터키인을 아시아 터키인(Asya Tür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시아 항목을 가보면 알 수 있지만 터키에서도 아시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건 진짜 빼도박도 못할 비하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용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갈등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스로 검은 터키인이라고 어필하는 발언을 자주 하며, 반서구성향의 정치인들도 흰 터키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자주 한다. 물론 반대로 세속주의 정당의 정치인들이나 전통적인 엘리트들도 검은 터키인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문제되는 경우가 있다. 이밖에도 회색 터키인(Gri Türk)이라는 분류도 있는데,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서구문화를 향유하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없지만 이슬람의 전통만은 고수하는 흰 터키인과 검은 터키인의 중간에 위치한 일부 도시거주민들을 일컫는다.
11. 인물
※ 역사적, 사회적 중요 인물은 볼드체로 기재 및 요약 설명.
※ 오스만 제국 시절을 포함한다.
11.1. 왕가 및 정치인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터키 공화국 현직 대통령
- 나크시딜 술탄 - 오스만 제국의 태후. 프랑스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 무근으로 밝혀진 지 오래.
- 메흐메트 1세 - 바예지드 1세 사후에 벌어진 내전을 거의 수습하는 데 성공하여, 제국의 두 번째 창건자라고도 불리는 황제.
- 메흐메트 2세 오스만 제국의 제7대 술탄이자 이전까지 투르크계 관료들에 의해 주도되던 오스만 투르크 왕국을 다민족, 다종교 전제군주국으로 나아가게 한 황제.
- 무라트 1세 - 오스만 제국의 제 3대 술탄이자 여러 관직을 창설하고 법을 만들어 단순한 유목부족 전사 집단이었던 오스만을 나라다운 나라로 발전시킨 인물.
- 무라트 2세 - 메메드 1세의 뒤를 이어 내전으로 인한 피해를 완전히 수습하는 데 성공함은 물론,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비롯한 여러 업적들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 황제.
- 무라트 4세 - 오스만 제국의 17대 황제이자 혐연가로 유명하지만 사파비 제국의 침공을 격퇴하고 무너져가는 황권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등 오스만의 쇠퇴기인 17세기에 몇 안 되는 명군.
- 바예지드 1세 - 오스만 제국의 4대 술탄으로 티무르와의 앙카라 전투에서 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메메드 2세 이전까지의 초창기 팽창기 중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술탄.
- 바예지드 2세 - 오스만 제국의 8대 황제로 치세 30여년 동안 내정에 힘을 기울여 메메드 2세가 해마다 군사 원정을 벌이느라 어려워진 재정을 안정화한 인물.
- 셀림 1세 - 오스만 제국의 9대 황제로 사파비 제국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인물. 특히 맘루크가 보호하던 칼리프에게서 칼리프 자리를 양보받아(혹은 빼앗아) 셀림 이후 오스만의 황제들은 칼리프도 겸하게 된다.
- 셀림 2세 - 오스만 제국의 11대 황제이자 오스만 역사상 최초의 암군.
- 셀림 3세 - 오스만의 개혁 군주 가운데 하나로, 니자뫼 제디드를 창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 쉴레이만 대제 - 오스만 제국의 10대 황제이자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인물.
- 아흐메트 1세 - 오스만 제국의 14대 황제. 황위 계승법을 바꾼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 오스만 1세 - 오스만 제국의 창건자.
- 오스만 2세 - 오스만 제국의 16대 황제. 폴란드와의 전쟁을 계기로 예니체리를 대신할 새로운 부대를 창설하려다가 오히려 시해당했는데, 이로써 예니체리에게 시해당한 최초의 황제가 된다.
- 이브라힘 파샤 - 쉴레이만 대제 때의 재상. 다만 오스만 역사상 다른 '이브라힘 파샤' 들도 많기 때문에, '파르갈르' 나 '다마트' 등의 칭호를 앞에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이스메트 이뇌뉘 - 아타튀르크의 동지이자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 케난 에브렌 - 터키 공화국의 제8대 대통령이자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 쾨셈 술탄 - 오스만 제국의 태후. 오스만 제국의 역대 태후들 가운데 최고의 권세를 누렸던 인물이다.
- 펫훌라흐 귈렌 - 성직자이기도 하지만 정치 비중이 많다.
- 휴렘 술탄 - 쉴레이만 1세의 황후. 쉴레이만과의 연애 이야기가 유명하며, 그녀를 시작으로 오스만 제국은 쾨셈 술탄에 이르기까지 황제의 애첩이나 모후가 황제 대신 정권을 장악하는 '여자 술탄 시대' 로 접어든다.
-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 - 셀림 2세 시기의 대재상
11.2. 군인
- 피리 레이스 - 16세기의 대제독 겸 지리학자
- 오스만 누리파샤 - 1877~1878년에 벌어진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 당시, 요충지인 플레브네를 몇 달 동안 방어해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유명해진 인물.
- 이스마일 엔베르 - 청년 투르크당 소속으로, 오스만 제국 최후의 전제군주인 압뒬하미드 2세를 폐하고 꼭두각시 황제인 메메드 5세를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로써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지위에 올라 제국을 좌지우지하며, 독일과 동맹을 맺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결과는...
- 타흐신 야즈즈 - 6.25 전쟁 직후 전역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비중은 군 시절에 비해 미비하다.
11.3. 방송 및 예술계
- 네스린 자바드자데[42]
- 누르 페타홀루
- 누스레트 고체 - 고기를 칼으로 간지나게 썬뒤 소금이나 향신료를 팔꿈치에 흘러내리게 뿌리는 영상들로 화제인 SNS 스타
- 메리옘 우제를리
- 베르귀자르 코렐
- 세르타브 에레네르
- 알레이나 틸키
- 알파고 - 기자.
- 에네스 카야
- 에제 시치킨
- 엘리프 샤팍
- 엘친 산구
- 오르한 파묵
- 슬라 샤힌
- 파라 제이넵 압둘라
- 하디세(Hadise)
- 하잘 카야
- 알파고 시나씨
11.4. 스포츠계
- 구라이 부랄
- 괴칸 퇴레
- 괴칸 인러
- 누리 사힌
- 뤼쉬튀 레츠베르
- 메수트 외질[43]
- 세뇰 귀네슈
- 아르다 투란
- 아흐메드 쿠투주
- 알파이 외잘란
- 일한 만시즈
- 하밋 알틴톱
- 하칸 쉬퀴르
- 하칸 찰하노을루
- 일카이 귄도안[44]
- 젠기즈 윈데르
- 찰라르 쇠윈쥐
- 오잔 카바크
- 엠레 찬
- 엠레 모르
- 파티흐 테림
- 지미 두르마즈
- 젠크 토순
- 제이훈 에리슈
- 자네르 에르킨
- 타릭 셀릭
- [45]
11.5. 성직자
12. 터키인 캐릭터
※ 해당국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 닥터 포이즌 - 원더우먼
- 발드 불 - 펀치 아웃! 시리즈
- 브란도 - 철완 아톰, PLUTO
- 보물찾기 시리즈 - 누리
- 사힌[47]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 세이트 규젤 - 기동무투전 G건담
- 쉴레이만 1세, 하티제 술탄 - 꿈의 물방울, 황금의 새장
- 안젤리카 - 사무라이 스피리츠 섬
- 알 베자스 - 대항해시대 2
- Ellis - 투신전
- 아흐메트 왕자, 유수프 타짐, 피리 레이스 - 어쌔신 크리드 : 레벨레이션
- 에르샤 -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 하칸 - 슈퍼 스트리트 파이터 4
- 일라이다 만 - 여신의 키스
- 이브라힘 도울 , 발렌타인(메리엠 자나) , 지젤 아쟈니(우즈렘 자나) -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
- 헤일로 시리즈 - 세린 오스만
- 게임 Dying Light에 등장하는 다수의 NPC[48] - 카디르 술레이만, 라힘, 바히르, 카림, 타히르, 젱크, 오스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