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자

 

쿨자
قۇلجا Qulja


1. 개요
2. 역사
3. 여담


1. 개요


중국어로 이닝이라고 부르는 쿨자 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서부의 현급시로 일리 강에 접하는 일리 카자흐 자치주의 중심지이자,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 인구는 54만여 명이며, 도시 인구는 한족, 카자흐인, 위구르인, 회족, 시버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처에 중세 카를룩카라한 칸국의 도시 알말리크 유적지가 있다.

2. 역사


카라한 칸국의 주요 도시였던 알말리크는 차가타이 칸국의 수도이자 주요 이슬람 도시 중의 하나로, 도시에는 많은 무슬림과 기독교인 주민들에 거주하였다. 모굴리스탄 칸국 시기까지 만연하던 알말리크는 오이라트인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오이라트인들은 알말리크 동안에 새로운 농업 식민지 겸 요새를 건설했다.
쿨자는 알말리크 인근 준가르 칸국의 농경식민지가 있던 곳으로, 준가르족에게 전쟁 포로로 잡힌 카자흐인들과 키르기스인, 위구르인들이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다. 청나라가 준가르 칸국을 정복한 이후 이 지역 구시가지 근처에 새로 신 시가지를 만들고 만주 팔기군과 시버족을 이주시켰다. 이 지역은 신장 북부에 해당하는 천산북로의 중심지였다.
1864년 야쿱 벡이 신장을 점령하는 동안 회족과 타란치[1] 봉기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871년 러시아 제국 군대가 일리 강 서북부 일대를 장악하고 188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러시아 제국이 1871년 접수한 영토를 청나라에 반환하지 않기로 확인을 받으면서, 일리 강 유역에 위치한 쿨자 시는 중심지 기능을 디화에 넘겨주었다. 대신 쿨자는 전방 군 기지 겸 러시아 제국과의 무역 요충지로 새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42년 중국 국민당[2]에 학정에 분개한 카자흐인들이 봉기하여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이 설립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은 소련의 방관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통합되었다. 이후 문화대혁명대약진운동의 혼란상 동안 카자흐인과 위구르인 상당수가 쿨자를 통해 소련 영토로 탈주하면서 동투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영향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3. 여담


[image]
적백내전 이후 피신 온 러시아계 중국인 공동체가 아직 남아있다. 정교회 성당도 있으나 러시아계 중국인 커뮤니티가 다른 민족들과 통혼이 많이 진행되고 러시아 본토보다 더 세속화된 이유애송이니,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이거나 러시아에서 사업차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1] 준가르 칸국에 포로로 잡힌 무슬림 포로 농노들의 후손, 오늘날에는 위구르인에 편입됨[2] 당시 중국 국민당의 소수민족 정책은 공산당보다도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