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드너 SC

 


[image]
'''드레스드너 SC'''
'''Dresdner SC'''
'''정식 명칭'''
Dresdner Sportclub 1898 e.V.
'''창단'''
1843년 12월 11일 / 1898년 4월 30일
'''소속 리그'''
작센 란데스클라세 오스트[1] (Sachsen Landesklasse Ost)
'''연고지'''
독일 작센드레스덴 (Dresden)
'''홈 구장'''
하인츠 슈타이어 슈타디온 (Heinz-Steyer-Stadion)
(5,000 좌석)
'''회장'''
귄터 레티흐(Günther Rettich)
'''감독'''
?
'''공식 웹 사이트'''

'''우승 기록 '''
''''''
'''독일 챔피언십 (1부)'''
(2회)
1943, 1944
'''중부 독일 챔피언십 (1부)'''[2]
(6회)
1905, 1926, 1929, 1930, 1931, 1933
'''가우리가 작센 (1부)'''[3]
(6회 / 최다 우승)
1934, 1939, 1940, 1941, 1943, 1944
'''DFB-포칼'''
(2회)
1940, 1941
'''FDGB-포칼'''
(1회)
1958
1. 개요
2. 역사
2.1. 舊 드레스드너 SC
2.2. SG 프리드리히슈타트
2.3. 新 드레스드너 SC
3. 유명 선수


1. 개요


드레스드너 SC는 독일 작센 주 드레스덴을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2. 역사



2.1. 舊 드레스드너 SC


1843년 ATV 드레스덴이란 이름으로 창립되었다가 1874년에는 드레스덴 잉글리시 풋볼 클럽(Dresden English Football Club)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으며 이는 영국 이외의 세계 최초의 스포츠 클럽이었다. 그리고 1898년 "슈타트 코블렌츠"라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드레스드너 SC가 창단되었다.
1901년 시작된 중부 독일 챔피언십에 참가했으며 그때당시엔 VfB 라이프치히와 함께 거의 리그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상위권을 맴돌았으며 1934년 가우리가로 바뀌기 전까지 1905, 1926, 1929, 1930, 1931, 1933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가우리가로 바뀐 뒤에도 1934, 1939, 1940, 1941, 1943, 1944년에도 우승을 차지했고1940, 1941년엔 DFB-포칼의 전신이었던 참머포칼에서 우승하고 1943, 1944년에는 독일 챔피언까지 달성했다. 특히 42-43시즌엔 '''23경기에서 152골 16실점'''이라는 믿을수 없는 성적도 이루어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독일 챔피언십 우승자였기 때문에 그때당시 독일축구의 패권을 상징했던 빅토리아 트로피를 영구 소장하게 된다.[4]

2.2. SG 프리드리히슈타트


1945시즌 도중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클럽이 해산되었다가 1946년 '''SG 프리드리히슈타트'''라는 이름으로 재창단되었다. 재창단 이후에도 엄청난 인기팀이었으며 당시 리그 평균 관중의 세배 이상이 경기를 보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 1949-50시즌 DDR 오버리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점 동률로 우승을 다투던 FSV 츠비카우와 만나게 된다. 이때 당시 츠비카우를 후원하던 소련이 공산주의였던 동독 권력자들과함께 프리드리히슈타트를 부르주아들의 팀으로 몰았고 프리드리히슈타트는 이에 반항하며 저항했다. 결국 동독 고위 정치인들이 심판과 츠비카우 선수들을 매수하여 비정상적으로 경기가 흘러가게된다.
츠비카우의 선수들은 굉장히 과격하게 게임을 했고 프리드리히슈타트 선수들이 부상당해서 교체요청을 할때마다 심판은 교체 요청을 무시하는 등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프리드리히슈타트는 5대1로 패했고 프리드리히슈타트의 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에 난입해 폭동이 일어나 경찰이 나서서 진압하게 된다.[5]
결국 슈타지에서 클럽 해체 명령을 받은 프리드리히슈타트는 몇주 뒤 SC 아인하이트 드레스덴이라는 팀에 매각되었고[6] , 선수들은 이때 창단된 폴크스폴리차이 드레스덴[7]헤르타 BSC로 흩어졌다.[8]
흩어져 디나모 드레스덴으로 갔던 선수들은 디나모 드레스덴을 동독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어버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나모 드레스덴 문서에도 잘 나와 있듯이 슈타지 회장 에리히 밀케에 의해 모두 드레스덴을 해체시켰던 슈타지가 후원하던 BFC 디나모로 강제이적당해서 BFC 디나모를 동독내에서 최고의 클럽을 만들었다.
'''이렇게 마지막 독일 챔피언이자 중부 독일의 최강자였던 드레스드너 SC는 공산주의 정권앞에 무릎꿇으며 사라지게 된다.'''

2.3. 新 드레스드너 SC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독일에서 공산주의정권이 물러나자, 창단되었다. 4부리그에서 시작한 드레스드너는 1992년 승격해 가장 높은 아마추어리그였던 3부리그까지 승격했지만, 다시 강등당하고 만다. 그리고 클럽 창단 100주년인 1998년 다시 3부리그로 승격에 성공했지만 같은해 12월 클럽이 파산하는 악재속에서 버티며 1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과거 자신들의 유산이었던 디나모 드레스덴을 40년만에 넘어서며 드레스덴의 1인자를 차지하는가 했으나, 2002-03시즌 강등당했고, 또다시 클럽이 파산하며,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다 2018년 7부리그에서 강등당해 현재 8부리그에 소속되어 있다.

3. 유명 선수


[1] 7부 리그이다.[2]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3]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4] 현재도 드레스드너 SC 서포터의 은행 금고에 있다고 한다.[5] 하지만 이런 일은 동독에선 흔한 일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BFC 디나모.[6] 위의 FDGB-포칼우승은 이 팀의 성적이다.[7] 현재의 디나모 드레스덴.[8] 이때 헤르타 베를린으로 가기 위해 헬무트 쇤의 주도로 동독 선수들이 서독으로 많이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