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C 디나모
1. 개요
BFC 디나모는 독일의 축구클럽이며 현재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에 소속되어 있다.
후술할 조작으로 인해 독일내에서 그렇게 좋은 시선으로 보이지 않는 클럽이다.
2. 역사
2.1. 동독 시절
1954년 슈타지 회장 에리히 밀케에 의해 SG 디나모 드레스덴 1군팀의 연고지를 베를린으로 옮겨 창단시킨 종합스포츠 클럽인 SC 디나모 베를린이 원조인데, 이 디나모 베를린에서 1966년 축구클럽을 따로 창단한것이 BFC 디나모이다.
1955년 BFC 디나모가 창단되기전부터 SC 디나모 베를린이라는 이름으로 리그에 참가했는데, 당시 베를린에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헤르타 BSC, SpVgg 블라우바이스 1890 베를린등 강력한 팀들이 많았기에 성적이 좋지 않자 강제로 디나모 드레스덴선수들을 통째로 이적시켰다.[1]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리그 7위에 그쳤고 2부리그 강등도 경험하게 된다. 이후 61-62시즌부터 리그가 개정되었는데 이때부터 SV 디나모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11개의 클럽이 창단되었고,[2] 이후 1966년 BFC 디나모가 창단된다.
BFC 디나모는 동독내 최고의 엘리트 클럽이었으며 선수들은 사회주의의 영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당시 동독내 최고의 코치진, 훈련시설및 장비등과 함께 훈련했다. 여기에 다른팀 선수들까지 강제로 이적시키며 동독 최고의 클럽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항상 강제이적이 성공적이지는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1965년 SC 디나모 슈베린. 이팀에서 3명의 선수를 이적시키려다 당시 동독 집권당이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의원들까지 끌어들이는 격한 싸움끝에 이적에 실패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로인해 두팀간의 사이는 엄청나게 나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1966-67시즌엔 2부리그로 강등당하며 끝났다. 이 2부리그엔 앞에 설명했던 SC 디나모 슈베린이 있었는데 이 둘간의 경기의 심판을 매수하며 엄청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우승해 1968-69시즌에 다시 1부리그로 복귀한다. 하지만 이전에 선수들을 전원 이적시켜서 4부리그까지 강등되었던 디나모 드레스덴이 다시 돌아오며 다시 강팀에 군림했고 거기다 1. FC 마그데부르크, 그리고 가장 강적이었던 동독 군대에게 후원받는 포어베르츠 베를린이 버티고있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슈타지와 동독 군대간의 싸움이 있었는데 슈타지가 승리하며 포어베르츠 베를린을 강제로 프랑크푸르트 오데르로 연고이전시켜버렸다. 하지만 디나모 드레스덴과 마그데부르크에겐 별로 손을 써보지 못했고, 이 두 클럽에게 우승 문턱에서 번번히 막히고 만다.
그러던 1978년 77-78시즌 우승팀이었던 디나모 드레스덴의 라커룸에 에리히 밀케가 들어가서
라는 말을 남긴뒤, 다음 시즌이었던 78-79시즌부터 87-88시즌까지 위르겐 보그스 감독의 지휘 하에 거짓말처럼 10시즌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수도에 챔피언이 필요하다. 너희는 이해해야만 한다!'''
'''"You must understand, the capital city needs a champion!"'''
하지만 이 대기록은 각종 조작과 협박, 라이벌 구단에서의 선수빼오기로 달성했기에 별로 독일내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2. 통일 이후
통일되기 직전 몇시즌동안 급격하게 성적이 나빠지더니 통일이후 3부리그였던 NOFV-오버리가로 편입되었다. 당연히 강제로 이적시켰던 국대급 선수들은 죄다 서독으로 빠져나갔고, 성적은 더욱 곤두박질쳤다.
통일 직후 동독경찰 후원 사실을 숨기기 위해 팀명을 FC 베를린으로 바꾸었으나 팬들을 끌어들이는 데 별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1999년 남아 있는 팬들의 요구로 팀명에 '디나모'가 돌아왔다. 동독 경찰의 이미지가 좋을 리가 없으니 팀 자체의 인기도 떨어져서 동베를린 대표 입지도 우니온 베를린에게 빼앗기고 5부리그까지 강등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3-14시즌 NOFV-오버리가 노르트에서 우승하며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로 승격했다.
3. 최근 시즌
3.1. 2020-21 시즌
2020-21시즌 7라운드가 끝난 현재 4승 1무 2패로 3위에 올라있다.
4. 울트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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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시절 최초로 팬클럽이 생긴 구단중 하나였으며, 당시 슈타지 회장이었던 에리히 밀케가 지원한다는 사실에 젊은 팬들이 많이 지지했다. 따라서 동독 울트라스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울트라스중 하나였다. 동독에서 가장 팬층이 두터웠던 1. FC 우니온 베를린[3] , BSG 헤미 라이프치히 울트라즈들과 엄청나게 싸웠으며, 특히 같은 동베를린을 연고로하던 우니온과 강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어있었다.
하지만 통일후 선수들이 서독 클럽들로 팔려나갔고, 동시에 동독 사람들의 경제도 파탄이 나면서 서포터층이 붕괴되었다. 결국 젊은 스킨헤드 등 극우파나 구 동독 지지 성향의 극좌파만 남았으며 온건한 팬들은 모두 우니온 팬덤에 흡수되었다. 이후 서방 세계에 만연했던 훌리건이 동독 축구계를 강타했고, 디나모 베를린 울트라스들 역시 훌리건행위를 시작했다. 가장 심했던 시기가 마지막 DDR 오버리가시즌이었던 1990-91시즌. FC 카를 차이스 예나 원정에서는 훌리건들이 도시에서 난동을 부리며 가게의 유리를 깨며 다녔고, 1. FC 우니온 베를린 원정에서는 막대기를 들고 서포터즈석에 들어가 우니온 팬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FC 작센 라이프치히 원정에서 최고조에 달했는데, 당시 두 팀의 서포터즈들이 충돌할것을 우려해 작센 라이프치히 홈구장에 디나모 베를린 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고, 이들이 라이프치히 S반 역으로 몰려가 폭동을 일으켰다. 이때 진압경찰의 총을 맞고 마이크 폴리(Mike Polley)라는 팬이 사망하기도 했다.
현재 팬들은 과거보다는 덜 폭력적이며,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2001년 클럽이 파산 위기에 닥쳤을때 모금활동으로 클럽을 구해내기도 했다.
5. 소속 선수
6. 유명 선수
사실상 동독 국대 베스트 11이 거의 소속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