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이르
백년 전쟁에서 활약한 프랑스의 귀족이자 군인이다.
1. 개요
본명은 에티엔 드 비뇰(Etienne de Vignolles), 라 이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졌다.[1] 중세 프랑스의 귀족이자 군인. '오를레앙의 성녀 ' 잔 다르크의 전우로 유명하다.
성격이 상당히 포악하였다고 한다.[2] 그런 성격을 지닌 탓인지 전장에서는 선봉이 나서는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2. 일대기
그는 1418년 샤를 7세의 군에 참가하여 부르고뉴파와의 전투를 통해 이름을 알린다.
1421년 그는 보제전투에 참전하여 프랑스-스코틀랜드 연합군을 이끌고 잉글랜드군을 물리친다.
그러나 이후에 크라방 전투나 베르뇌유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잉글랜드군에게 대패하고 수많은 프랑스 지휘관들이 전사하는 등 프랑스는 위기를 맞게되고 루아르강 이북이 잉글랜드에게 점령당하고 오를레앙이 포위당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던 1429년 그는 잔 다르크와 함께 전장에 나서는 4명의 기사중 1명으로 꼽히고 오를레앙전투에서 활약하며 잉글랜드군을 격퇴시킨다.
그는 오를레앙 전투 이후 잔 다르크와 함께 전투를 나서며 리슈몽과 합류하게 되고 파타이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잉글랜드군을 궤멸시키는 활약을 펼치며 백년전쟁을 통틀어 프랑스군 최대승리를 이끌게 된다.[3]
하지만 1431년 잔 다르크가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게 되자 그는 루앙에 잡혀있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구원군을 지휘하나 실패하여 잉글랜드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잔 다르크는 화형을 당하게 된다.
해방 이후 그는 리슈몽 공작의 지휘 아래 프랑스의 주요 핵심 장수로 활약하였고 1435년 주르브보이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1443년 그는 몬토반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상처가 악화되어 죽음을 맞게된다.
3. 대중문화 속의 라 이르
성격이 포악했다는 묘사가 있어서인지 상당히 험악하거나 거대하고 힘쎈 인물로 그려진다.
- 게임 JEANNE D'ARC에서는 배경에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서 사자 수인으로 나온다.
- 게임 Joan of Arc에서 거구의 둔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에 캠페인 3번째 미션에서 챔피언 영웅으로 등장하며 시작 나레이션에서 언급할 정도로 무용을 갖췄다고 설명된다. 여담으로 외국어 판으로 하면 3인칭화를 사용한다. (예 : "라 이르. 누구든지 걸리면 죽여버리겠다.", "라 이르. 검에 피가 마르고있다.", "오오. 라 이르의 칼은 아직도 피에 굶주려 있다.") 3번째 미션의 진행년도는 라 이르가 죽기 한첨 전인 1429년이기 때문에 잔 다르크와 달리 생사가 미선 패배에 영향을 주지 않고 체력이 다해 쓰러져도 사망이 아니라 부상을 입었다고 나온다.
- 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 The Legend of Jeanne d'Arc에서는 멜리사 드 비뇰의 아버지로 나온다.
- 영화 잔 다르크(1999)에서는 거친 욕쟁이로 등장한다.
잔이 공성전 중 다쳐서 치료를 받을 때 주님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그녀를 살려주신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욕하지 않겠다고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지만 - 이어서 '주님 안 고쳐주시면 그냥 @#$%&*!' 하며 쌍욕이 섞인 기도를 하려하자 정신을 차린 잔에게 제지당하는 등 약간의 개그씬을 담당했다.
- 라이트노벨 및 애니메이션 율리시스: 잔 다르크와 연금의 기사에서 그를 모티브로 한 라이르가 등장하는데 TS되었다.
- 아머드 코어 포 앤서의 등장부품 중 외장 시리즈로 이 인물에서 이름을 따온 TYPE-LAHIRE가 있다. 기동전에 특화된 고성능 부품군.
[1] 영문 위키피디아의 La Hire 항목에 의하면 이 별명의 유래에 대해 2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잉글랜드군이 그에게 라틴어의 'Ira dei' 즉 '신의 분노'로 해석할 수 있는 'Hire-god'라는 별명을 붙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화를 잘 내는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여서 그 성정을 고슴도치에 비유, 불어로 고슴도치를 뜻하는 hérisso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라 이르는 성격이 포악했다고 전해진다.[2] 프랑스 왕정이 잔 다르크에게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에 문제아들이나 잉여 병력만 주어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3] 기록에 따르면 파타이 전투는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을 크게 물리쳤던 아쟁쿠르 전투와 흡사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