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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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대 하드리아노 1세

'''제96대 성 레오 3세'''

제97대 스테파노 4세
  • 생몰년: 750년 ~ 816년 6월 12일
  • 재위 기간: 795년 12월 27일 ~ 816년 6월 12일
제96대 교황. 레오 3세는 전임 하드리아노 1세가 사망한 후 치뤄진 장례식에서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정황상 프랑크 왕국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이처럼 빠른 교황 선출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레오 3세는 교황좌에 착좌한 직후 '베드로의 열쇠'와 '로마의 기(旗)'를 카롤루스에게 보내어 일종의 충성 서약을 한다. 하지만 교회 내부에서는 이러한 교황의 저자세를 비판적으로 보는 세력들이 있었고, 특히 전임 교황의 추종자들은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결국 799년 4월 전임 교황 하드리아노 1세의 조카를 영접하는 도중 레오 3세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암살은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교황의 신변에 심각한 위협이 있음이 증명되었고, 교황은 거처를 파더보른으로 옮긴다.
당시 파더보른은 카롤루스의 야영지였기 때문에 교황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다. 교황이 자리를 비우자 그를 갖은 항목으로 비난하고 고소하는 일이 이어졌다. 일련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카롤루스는 교황의 위법성을 증명할 증인은 파더보른으로 와서 교황의 죄를 증명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800년 12월 1일 카롤루스는 교황이 로마에 가서 교회회의를 열어 무죄를 증명하도록 했으며 레오 3세를 호위할 병사들을 딸려보냈다. 이 회의에서 레오 3세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으며 결국 무죄를 입증했다.
그 후, 800년 12월 25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카롤루스 대제는 자신의 아들을 위한 도유식[1]을 행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데, 레오 3세가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준 것이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300여 년 만에 부활하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이로서 '성화상 공경 문제'로 소원해졌음에도 상징적으로나마 종주권을 쥐고 있던 동로마 제국과의 결별이 확실해졌다. 이후 확실한 후견자를 확보한 레오 3세와 서로마 황제이자 서유럽의 패자로 자리매김한 카롤루스는 정치와 종교에서 각각 확고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레오 3세는 이러한 안정적 배경을 바탕으로 많은 성당을 세우는 한편, 잉글랜드를 비롯한 서유럽 전역에서 종교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레오 3세는 816년 6월 13일에 선종하였고, 유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6월 12일이다.
[1]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사로 왕위 장차 왕위에 오를 것임을 나타내는 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