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피초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비판
4.1. 기자 암살 논란


1. 개요


Robert Fico, 1964.9.15 ~
슬로바키아의 정치인이자, 현재 사회민주당의 당수.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적이 있다.

2. 생애


토폴차니에서 태어났으며, 브라티슬라바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젊은 시절 정치인과 고고학자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후술하듯이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3. 정치 활동


1987년 당시 유일 합법 여당이던 공산당에 입당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후에 개편된 민주좌파당(이하 민좌당)에 합류했다. 1992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처음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했으나, 너무 어린 나이 탓에 당 내부에서도 배척받는 분위기였고, 결국 1999년 민좌당을 탈당하고 방향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좌파의 분열로 방향당은 2002년 총선에서 부진하게 되었고, 이에 쇄신 차원으로 "방향당 (제3의 길)"이라고 당명도 바꿔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민좌당을 포함한 군소 좌파 정당들을 죄다 흡수해 지금의 사민당으로 재창당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처음으로 총리가 되었다.
다만 2010년 사민당은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하고도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물론 2년 만에 도로 재집권했으며, 이후 2018년까지 총리직을 다시 지냈다.

4. 비판


피초의 행보들은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며, 특히 2012년 재집권 이후로 은근슬쩍 공안정국을 조장하기 시작하며 재야 세력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사실 이러한 태도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드러난 것은 아니고, 진작부터 드러나 있었다. 과거 민좌당 시절이던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 인권 재판소의 변호사를 지낸 적이 있었는데, 이 때 그가 맡았던 소송들이 전패(...)하는 등 미리 싹수가 보이기도 했다.
구 공산권 국가의 사민당이 늘 그렇듯이 각종 공세를 피하지 못하는 편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슬로바키아의 사민당은 진짜로 사민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정당들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반난민, 반동성애 등의 정책들은 오히려 극우 정당들이 주장하지, 중도좌파 정당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일부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당과의 연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지만,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주장은 아니다. 언급했다시피 슬로바키아는 과거 공산 국가였는데, 공산당들은 초기에는 자본주의와 보수주의에 반대하며 집권했지만, 이후 국가자본주의·극우로 변절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피초는 그 시절의 사고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국민당과 손을 잡았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고.[1]

4.1. 기자 암살 논란


2018년 2월 얀 쿠치악이라는 기자가 피초의 부패상을 폭로했는데, 얼마 못 가 여자친구와 함께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에 피초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짙게 받았고, 결국 피초와 사민당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에 3월 총리직을 사퇴하고 페테르 펠레그리니에게 인수했지만, 문제는 2019년 현재까지도 당수직은 유지하고 있는 상황. 즉 펠레그리니는 피초의 얼굴마담이고, 아직도 실질적인 총리는 피초인 셈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로 숱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 여파로 2019년 들어서 사민당의 지지율이 20%대가 붕괴되는 등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선에서도 사민당이 밀어준 마로슈 셰프초비치 후보가 주자나 차푸토바[2]에게 큰 표차로 낙선한 것은 덤.[3]
[1] 실제 이 때문에 유럽 사회당 회원 자격을 정지당한 적이 있었다.[2] 언급한 사건에 항의하며 정계에 진출한 진보 성향의 여성 정치인.[3] 피초 본인도 2014년 대선에 도전했다가 무소속 아웃사이더인 안드레이 키스카에 밀려 낙선했다. 이미 이 때부터 둘의 사이는 매우 나빴고, 이후 키스카는 피초의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다가 차푸토바를 지지하며 피초에게 제대로 빅엿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