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의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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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疑惑事件, (일본어)ロス疑惑
1. 개요
1981년부터 1982년 사이 미국 LA에서 일어난 총격 상해사건으로, 1979년에 일어난 제인 도(Jane Doe)[1] 88사건도 여기에 포함시킨다. 'LA에서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는 의미를 담아 로스엔젤레스의 일어 표기 첫머리인 ロス를 따 편의상 '로스 의혹사건'이라고 부른다.
1981년 8월 31일 일본의 수입 잡화상 미우라 카즈요시와 아내 카즈미는 미국 LA에서 여행을 하던 중 뉴 오타니 호텔에 묵었다. 이때 아내 혼자 남아있었는데 아시아계 여자가 침입해 아내 카즈미를 둔기로 구타해 상해를 입혔다.
그리고 11월 18일 오전 11시 5분 미우라 부부는 시내 주차장에서 2인조 남성들에게 총격을 받아 미우라는 다리에 경상을 입었고 아내는 머리에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졌다. 미우라는 사건 직후 경찰에게 자신들에게 총격을 가한 범인은 2인조 히스패닉계 남성들로 한 명은 긴 머리를 묶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1982년 1월 미우라는 비극의 남편으로 언론에 알려졌고, 아내 카즈미는 일본으로 이송되어 카나가와현 도카이대 부속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11월 30일에 숨졌다. 이 사고로 남편 미우라는 보험사 3곳으로부터 보험금 총 1억 5500만 엔을 지급받았다.
2.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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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주간문춘은 '의혹의 총탄'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 사건이 '보험금을 노린 미우라의 범행'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가 나오자 언론들은 앞 다투어 마녀사냥식 보도를 일삼았고 심지어 미우라의 집에 무단침입하는 짓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1985년 미우라의 옛 애인이라는 여인 A가 1981년 8월에 있었던 뉴 오타니 호텔 상해 사건의 진범이라는 글이 산케이 신문에 익명으로 도착했다.
1985년 9월 11일 일본 경시청은 미우라를 아내 카즈미 상해사건 혐의로 체포하였고, 12일에는 A도 같은 혐의로 체포한다. 미우라와 A는 유죄가 인정되어 미우라는 징역 6년, A는 징역 2년 6개월형이 확정되었다. 상해사건이 공판 중에 있던 1988년 10월 20일, 미우라 부부 총격 사건에 대한 살인 공모 혐의로 LA에서 주차장을 경영하던 B가 체포되어 살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B에 대하여 범행 당일 전날 목격된 차량과 유사한 백색 차량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며 미우라와 공모할 기회가 없었다는 유리한 증거들 때문에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했다.[2] 미우라에 대해서는 '물증은 없지만 여러 가지 상황 증거상 성명 미상인 자와 아내를 살해하기로 공모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미우라는 도쿄 고등법원에 항소했는데, 항소심에서는 실행범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에 반발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총 21년에 걸친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3월 5일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 뒤 보험회사 3곳이 보험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였다. 미우라는 이 재판에서 패소해 2곳에는 총 8천만 엔을 반환했고 1곳과는 화해했다.[3]
3. 또다른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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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로스 의혹 사건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런데 미우라가 2008년 2월 22일 미국령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가다 미국 LA 경찰들에게 살인 혐의로 체포당했다.[4] 미우라는 일본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을 근거로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LA로 이송되기를 거부하고 반발했다. 결국 9월 26일 법원은 살인 혐의에 대해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무효, 살인공모 혐의에 대해선 일본에서 재판하기로 결정하고 미우라도 LA로 신병 이송에 찬성했다. 이것으로 미우라가 잃어버린 시간은 무려 27년. 10월 10일 미우라는 사이판에서 LA로 이송되었는데, 바로 그날 유치소에서 목을 매어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숨졌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으나 변호인 측은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Jane Doe 88 사건은 1979년 5월 4일 미국 LA 근교에서 정체 불명의 아시아계 여성의 시체가 미라화되어 발견된 사건이다. 1984년 3월 29일 신원확인 결과 34세 일본인 여성 C라고 밝혀졌다.[5] C는 남편이 있으면서도 1977년부터 몰래 미우라와 바람을 피다가 1978년 미우라의 회사에 이사로 취직했고 6월부터는 동거했다. 마침내 C는 1979년 3월 남편과 이혼하고 홋카이도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 3월 29일 LA 입국 기록이 있고 한 호텔에서 숙박했다는 게 밝혀졌다.
조사 결과 미우라가 C의 계좌에서 5월 18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42회에 걸쳐 돈을 인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미우라는 C에게 돈을 빌려줬으며 그의 현금 카드로 빌려준 돈을 인출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에선 '또다른 로스 의혹 사건'이라며 주장하나 증거 불충분으로 미우라는 기소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에선 C의 도미 이유가 미우라를 만나기 위해서고 미우라가 42회에 걸쳐 5백여만 엔을 인출한 것을 증거로 1급 살인 및 절도 혐의로 기소방침할 예정이었다.[6] 그리고 미우라 사망 직후 LA경찰은 Jane Doe 88사건의 범인이 미우라라고 발표했다.
4. 여담
참고로 경찰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옷으로 가리고 언론에선 수갑을 차고 있는 경우 모자이크나 흐리게 처리해주는데, 미우라가 처음 체포되었을 때 언론에서 그의 얼굴을 마구 찍어댔다. 이후 미우라는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피의자 얼굴을 함부로 찍은 건 명예훼손이라며 재판을 걸어 승소했다.[7]
그런데 미우라의 얼굴을 찍어 고소된 카메라맨은 나중에 1992년 이치카와 4인가족 살해사건에 휘말려 살해당했다.[8]
사실 미국에서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1989년에 이 사건과 흡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보스턴에서 일어난 찰스 스튜어트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1] 미국에서는 신원미상의 남자를 '존 도(John Doe)', 여자를 '제인 도(Jane Doe)'라 부르는 관습이 있다.[2] 다만 B는 총기법률 위반에 대해서 유죄가 인정되어 1년 6개월 형이 확정되었다.[3] 화해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4] 미국에서는 이 사건이 현재진행 중이었고 미우라는 해외로 도피했다고 간주했다.[5] 실화극장 죄와 벌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는데, C가 '의혹의 총탄' 기사를 쓴 주간 분슌 기자의 언니고, 기자가 해당 기사를 쓴 이유도 미우라가 자신의 언니를 죽였다 여기고 복수심에 기사를 썼다고 설정했다.[6] 그러나 결국 미우라의 죽음으로 실제 기소하진 못했다.[7] 미우라는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재판 476건을 걸어 80% 승소했다고 한다.[8] 피살 된 4인 가족 중 아버지가 카메라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