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1세
프랑스 왕국의 국왕. 발루아 왕조의 6대 왕이며 샤를 7세의 아들이다.
샤를 7세가 쫓겨다니던 시절에 태어난 왕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못해 급기야 아버지의 애첩인 아네스 소렐에게 칼부림했을 정도로 사이가 몹시 나빴다. 1440년 17세의 나이 때 귀족들의 반란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여 이후 17년동안 유배 당하게 된다. 유배에 풀려난 이후에도 역시 음모에 가담하여[1] 1456년 부르고뉴 공국으로 도망가 7촌 아저씨 되는[2] 부르고뉴 선량공 필리프 3세의 비호를 받았다.[3] 그후 아버지인 샤를 7세와는 평생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샤를 7세가 1461년 죽자 루이 11세는 프랑스로 돌아가 왕위에 올라 아버지 측근세력을 일소하고 제후세력들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자 1465년 불평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콩플랑 및 상모르양 조약으로 일부 왕령을 동생에게 넘기는 조치를 취했으나, 1477년 반란을 주도하던 부르고뉴 공국 군주 용담공 샤를 1세[4] 가 스위스 용병과의 싸움에서 죽게 되자 본격적으로 제후들에게 공세를 펼쳤고, 1480년 왕국 내 봉건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리게 되었다. 1475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4세와 피키니 조약을 체결하여 백년전쟁을 완전히 종결시켰다. 훗날 우편제도의 창설, 민병제도의 확충 그리고 상공업 육성 등의 정책을 통해 중앙집권적 요소를 확립시켜 후의 프랑스의 절대왕권의 기반을 닦는다.
참고로 백년전쟁때 로슈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도중 잔 다르크를 만났던 적이 있었다. 후일 프랑스를 구원한 잔 다르크에게 프랑스 왕족들 중 유일하게 고마움을 표했으며 자신의 딸 두명에게 잔느라는 이름을 붙여 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