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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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Françoise de La Baume Le Blanc de La Vallière, Duchess of La Vallière and Vaujours
1644년 08월 06일 ~ 1710년 06월 07일
루이 14세애첩 중 하나. 원래는 루이 14세의 제수인 오를레앙 공작부인 앙리에트 안(영어명은 헨리에타 앤)[1]의 시녀였다. 루이 14세와 불륜관계였던 앙리에트가 이를 눈속임하기 위해 라 발리에르를 들이밀어 애첩이 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정말로 그녀에게 빠지는 바람에(...) 앙리에타가 밀려나고 그녀가 애첩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신앙심이 강하고 심약한 성격이었으며,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긴 했으나 성격상 궁중암투에 약했다. 그렇다보니 왕의 총애를 입고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몽테스팡 후작부인 등 좀 더 욕심 많은 다른 애첩들에게 밀려나게 되었다. 이후에 몽테스팡 후작부인은 물론 그녀와 짝짜꿍이 맞은 루이 14세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다가 궁정을 떠나 수녀가 되어 왕과의 '간통행위'를 회개하고 자신의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평소 궁정에서 그녀를 미워하던 루이 14세의 왕비 마리 테레즈가 후에 그녀가 수녀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그 모습을 보러갔는데, 궁정에서 화려하게 살던 그녀가 초라한 옷을 입고 발을 절뚝이면서[2] 세탁물을 널러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게다가 몽테스팡 후작부인이 루이즈를 밀어내려고 그녀가 낳은 루이 14세의 아이들이 왕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식으로 모함하는 바람에 루이즈 자신이 총애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그 자식들도 14세에게 천대받아 불우하게 살다 갔다. 사실 천대받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운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루이 14세와 5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위 셋은 유아기에 사망했다. 넷째 딸은 루이 14세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그녀에게 반한 왕족과 결혼까지 했으나, 남편이 불과 몇 년 후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10대에 과부가 되었고 남은 여생동안 재혼을 하지 않았다. 막내아들은 10대 중반에 동성애 모임에 들어갔다가 들키는 바람에, 이에 분노한 루이 14세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강제 결혼 후 군대에 보내졌는데 얼마안가 거기서 병사했다.[3] 왕의 총애를 받았던 것치고는 여러 모로 불쌍한 여인.

[1] 영국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당한 찰스 1세의 딸로, 왕정복고 후 왕위에 오른 찰스 2세의 여동생이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인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앙리에트 마리)는 루이 13세의 여동생이므로 이 둘은 사촌지간이기도 하다.[2] 한쪽 다리가 짧았기 때문에 특수 제작된 신발을 신어야 했는데,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신지 못하게 되어 절뚝이면서 걸어야 했던 것.[3] 이 소식을 들은 그녀가 한 말, "그 애(막내아들)가 죽었을 때가 아니라, 태어났을 때 울었어야 하는데"가 서구권에서 나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