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팡 후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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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Marquise de Montespan
1641.10.5 ~ 1707.5.27
본명은 프랑수아즈 아테나이 드 로슈아르 드 모르트마르. 루이 14세의 애첩으로 그의 2번째 정부였다.

2. 생애


1663년 22세의 나이로 몽테스팡 후작과 결혼했다. 남편은 군인이었으며 부부가 씀씀이가 헤퍼 빚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원정을 나가느라 별로 집에 붙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몽테스팡 부인은 결혼한 이듬해 루이 14세왕비 마리 테레즈시녀로 뽑히게 되었고, 궁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왕의 첫 번째 정부였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와 친분을 쌓은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친구를 밀어냈으며, 1667년 마침내 루이 14세의 연인이 되는 데 성공한다. 왕의 총애를 확신한 그녀는 왕과 함께 라 발리에르에게 갖은 모욕을 가했고, 결국 라 발리에르가 수녀원에 들어가 칩거하게 되자 왕의 공식적인 정부가 되었다.
유부녀였으니 그녀의 남편이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아내를 빼앗긴 몽테스팡 후작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인을 뺏긴 것에 대한 동정을 호소하고 다니는 한편, 마차에 사슴뿔을 단 채 입궁하고[1], 왕 앞에서 칼을 부러뜨리는데다[2], 멀쩡히 살아있는 아내의 장례식을 치르는 등, 온갖 기행을 벌이고 다녔다. 결국 1668년 루이 14세는 몽테스팡 후작을 기옌으로 추방해 버렸고, 두 부부는 몇년 후 이혼하게 된다.
사실 왕이 유부녀를 건드리는 사례는 꽤 있었고, 오히려 유부녀를 왕의 연애 상대로 권장하기도 했다.[3][4] 남편들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거나, 오히려 그 대가로 받는 떡고물[5] 때문에 내심 좋아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차피 남녀 할 것 없이 정략결혼해놓고 연애는 따로 하는 풍조기도 했고. 몽테스팡이 다소 특이한 경우다.
몽테스팡 부인은 루이 14세와의 사이에서 6명의 아이를 낳으며 10년 동안 사교계에서 화려하게 활약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왕의 총애를 잃을 것을 경계한 몽테스팡 부인은 미신에 매달리게 된다. 결국 1680년 경 라 부아쟁이라는 마녀가 검거당했을 때, 몽테스팡 부인이 그녀의 주요한 고객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부아쟁의 증언에 따르면 몽테스팡 부인은 그들과 함께 흑미사를 올리고, 왕의 총애를 되돌리기 위해서 가루약을 받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내역을 알게 된 루이 14세는 몽테스팡 부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총애는 몽테스팡 부인의 자식들을 돌보던 유모 맹트농 부인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왕에게 버림받은 이후에도 몽테스팡 부인은 10년이나 더 베르사유에 머물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쫓아보낸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처럼 수녀원으로 들어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가 죽었을 때 몽테스팡 부인이 루이 14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 가운데 4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왕은 자녀들이 몽테스팡 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심약한 성격의 라 발리에르와는 정반대로, 상당히 야심이 많은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라 발리에르도 꽤 괴롭혔지만 왕비인 마리 테레즈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순 시기[6]에 금육을 지키는 등 꽤 신실했던 모양인데, 미신에 빠져 인생을 말아먹었으니 참으로 안습이라 하겠다.

3. 매체에서의 등장


  • 안젤리크 : 안젤리크에서 그녀의 위치는 악역. 루이 14세의 사랑을 받는 안젤리크를 견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드라마 베르사유 : 배우는 안나 브루스터(Anna Brewster). 시즌 1에서 루이 14세에게 새롭게 총애받기 시작한 애첩으로 등장해 시즌 2에선 거의 여주인공급으로 비중이 늘어난다. 하지만 실제 역사대로 미신에 집착하면서 시즌 2 마지막에 루이 14세에게 버림받는다.
  • 장 퇼레의 소설 몽테스팡 수난기 : 남편 몽테스팡 후작이 주인공인 소설로 히로인격으로 나온다. 소설 자체는 배신당한 남편이 끝까지 그녀를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내용. 성적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인물로 처음 몇 년간은 남편하고만 불타는 사랑을 했으나, 생활고에 시달려 시녀로 취직했다가 왕의 정부가 되면서 점점 변질된다. 말년에는 자신에게 일편단심이었던 남편을 버린 걸 후회한다. 다만 여기서는 남편도 좀 갑갑하게 나오는 것이 아내 말을 끝까지 안 듣다가 ntr당한 격이라... 돈 떨어졌으니 도시 생활 그만두고 시골 성으로 가자고 했을 때도 안 듣고, 당신 죽을까봐 겁나니 전쟁 나가지 말라는데도 안 듣고 돈 벌어오겠다며 두 번이나 전쟁 나갔다가 돈만 날리고 오고, 결국 아내가 시녀로 취직하여 집을 먹여살리는데 왕이 자기에게 눈독 들이는 눈치니까 뭔 일 나기 전에 다 때려치우고 낙향하자는데도 '에이 설마 폐하께서 그러시겠어? ㅎㅎ'하며 안 듣다가 결국 아내를 빼앗긴다.[7]
[1] 서양에서는 오쟁이 졌다는 표현 대신 남편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표현을 쓴다.[2] 당시 칼은 일종의 정장이자 충성을 상징하는 증표였다. 군주가 기사 서임할 때 기사의 양 어깨에 칼을 대주기도 하고, 평민들이 왕궁 구경을 하러 입궁할 때도 칼 한 자루는 차야 입궁할 수 있었다.(그래서 왕궁 입구에서 칼 대여 장사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시대에 왕 앞에서 칼을 분지른다는 건 '''"이 개떡같은 놈아! 넌 내 군주도 아니야!"'''라는 뜻. 자신의 아내를 빼앗은 루이 14세에게 어지간히도 분노했던 듯.[3] 이는 처녀성을 중시하던 전근대적 풍조 때문이다.[4]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은 처녀 시절에 왕을 만났지만 왕의 애첩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오자 그녀의 후원자가 눈 가리고 아웅으로 자기 동생과 퐁파두르를 결혼시켜 애첩생활을 시작했다.[5] 가령 왕이 어떤 정부를 좋아해서 그 정부에게 백작부인 작위를 주려면 남편을 백작으로 만들어줘야 한다![6] 예수부활대축일 이전의 40일 동안의 시기.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시기가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 금육, 금식, 십자가의 길 기도 등 회개와 절제로 보내며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판공성사도 본다.[7] 그래도 자기를 배신한 하녀도 오죽하면 그랬겠냐며 용서해주고(이 하녀는 자기 연인이 몽테스팡과 바람났다고 믿고 질투심에 거짓 밀고를 한다. 몽테스팡은 덕분에 스페인으로 도주하는 신세가 되지만 자기도 사랑에 배신당해 봐서 그 심정 안다며 대충 넘겨준다.) 평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소탈한 인성의 소유자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