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먼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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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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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허난 성 뤄양 남쪽에 있는 석굴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중국5A급여유경구로도 지정되어있다. 중국에서는 윈강석굴과 함께 대표적인 석굴 사원으로 손꼽힌다.
2. 관광
뤄양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약 70위안 정도 든다.
중국5A급여유경구로 지정되어있어 입장료는 비수기(12월~2월) 100위안, 성수기(3월~11월) 120위안이다.
용문석굴은 북위(北魏) 효문제 때부터 수(隋), 당(唐), 송(宋)을 거쳐 400여년 동안 만들어졌다. 용문석굴은 단일 석굴이 아니라 석굴군(群)으로 크고 작은 동굴 2345개가 남북으로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곳에 분포돼 있다. 용문석굴에는 10만여개의 불상이 있있으며 가장 큰 불상은 높이가 무려 17.14미터이고 가장 작은 불상은 2센티미터에 불과하다.
3. 눈여겨볼 동(洞)
- 재불동(齎祓洞)
제1동이다. 잠계사동(潛溪寺洞)이라고도 한다. 초당, 정관15년(641), 당태종의 넷째아들인 위왕 태(魏王 泰)의 발원으로 조영되었다. 폭 9.4m, 안길이 6.7m, 거의 타원형인 평면, 원형 천정으로 높이는 10.6m이다. 본존의 좌불상과 좌우에는 협시의 나한 ∙ 보살 ∙ 신왕이 있다.
- 빈양동(賓陽洞)
제2, 3, 4동이다. 북위 선무제의 발원으로 정시2년(505)에 시작하여 중동(中洞)은 북위 말까지 10수년에 걸쳐서 만들었다. 입구의 폭 5.2m, 안길이 6m, 안벽의 폭 7.7m. 본존은 좌상대불이고, 좌우에 보살과 나한, 전좌우에 사자, 좌우벽에 삼존상(三尊像)이 있다. 원형천정에는 큰 연꽃을 둘러싼 주악비천, 앞벽 상단에 유마문수(維摩文殊)의 문답, 중단(中段)에 본생도(本生圖), 하단에 황제 황후의 예배, 요벽에 10신의 부조가 있고 마루에도 연꽃과 구갑이 조각되어 있다. 외벽 좌우에는 반육조(半肉彫)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이 있다. 남동과 북동의 본존은 좌상의 오존상. 원형 천정으로, 중동(中洞)과 닮은 장엄한 형식이며 남동(南洞)은 북제~수, 북동(北洞)은 수~초당(初唐)까지 공사를 하였다.
- 이궐불감비(伊闕佛龕碑)
빈양 중동 남쪽벽에 있는 마애비(磨崖碑). 염위의 왕태가 생모 문덕왕후를 위하여 빈양삼동을 보수, 재불동(齎祓洞)을 신조한 것이 기록되어 있음. 잠문본 찬(撰), 저수량 필(筆)의 예서를 닮은 해서체. 정관15년(641)에 새겼다.
- 경선사동(敬善寺洞)
제5동. 당초 ∙ 정관18~현경3년(644~658)의 건조. 폭 ∙ 안길이 모두 약 3.2m인 방형평면. 본존좌불과 좌우에 소보살, 좌우벽에 나한 ∙ 공양자 ∙ 보살 ∙ 신왕과 연꽃 가지 위의 소보살을 배치했다.
- 만불동(萬佛洞)
제9동. 당초 ∙ 영륭원년(680) 대감조신상과 내도장지운선사 발원의 조각명이 있고, 영륭동이라고도 함. 주실의 폭 5.8m, 안길이 6.8m. 중앙 팔각대좌상의 좌불과 반육조 협시로 된 오존불. 좌우벽에 신왕, 주위벽 전체에 1만5천체의 소불을 조각함.
- 사자동(獅子洞)
제10동. 바깥벽에 불탑의 석각이 있고 ‘탑동’이라고도 함. 초당 ∙ 상원2년(675)의 각명(刻銘)이 있다. 폭 2.4m, 안길이 2m의 사각형 평면. 본존은 네모난 좌대 위에 앉아 있고, 두발(頭髮)은 와권상(渦巻狀). 좌우에 보살, 전좌우에 사자가 있다.
- 혜간동(惠簡洞)
제11동. 남벽 동쪽 구석에 초당 ∙ 함형4년(673) 서경법해사(西京法海寺)의 승(僧) 혜간(惠簡) 발원의 각명(刻銘)이 있다. 폭 3.8m, 안길이 3m. 미륵의 상(倚像)을 중존으로 하는 5존상이 있다.
- 연화동(蓮花洞)
제13동. 북위 숙종 효명제 정광(520~525) 초년에 대략 완성하였다. 그후 좌우벽에 6비천(飛天)이 조각되었고, 상감(像龕)은 북제~초당(初唐)에 만든 것임. 입구에 화염첨공(火焰尖拱)의 선조(線彫)가 있고 동굴 내부는 폭 5.5m, 안길이 9.8m의 장방형 평면. 본존은 석가입상을 중심으로 천정에는 큰 연꽃 부조가 있다.
- 위자동(魏字洞)
제17동. 북위 말의 정광~효창(520~527)경에 만들어졌다. 폭 3.9m, 안길이 3.2m. 보단 위에 5존상이 있고, 천정에는 비천부조가 있다. 좌우벽에도 5존상의 불감이 있고 그 주위와 앞벽에 걸쳐서는 석가 ∙ 미륵 ∙ 관음의 상감(像龕)이 정연하게 늘어섰다.
- 당자동(唐字洞)
제18동. 초당경에 만들었으나 내부는 미완성 상태이다. 외벽에 목조건물을 흉내낸 처마[軒]가 조각되고, 그 밑 입구 좌우에는 많은 초당명(銘)의 상감(像龕)이 있다. 동굴 내부는 폭 4.5m, 안길이 3.5m인 방형평면.
- 봉선사동(奉先寺洞)
제19동. 서산 중앙의 산허리를 약 30m 사방으로 파헤친 대동굴. 초당 ∙ 함형3년(672) 고종의 칙명으로 건조가 시작되었고, 상원2년(675)에 낙성. 본존인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은 높이 13m, 통견(通肩)인 대불이며 중층연반(重層蓮弁) 8각대좌에 앉아 있음. 대좌의 기부는 현재 흙 속에 묻혀 있고 광배 꼭대기가 약 16m. 좌우에 나한 ∙ 보살 ∙ 역사 ∙ 신왕 등 도합 9체가 서있어 속칭 9간방(九間房)이라고 부른다.
- 약방동(薬方洞)
제20동. 문양측에 북제의 도읍사(都邑師) 도흥(道興)의 치질방(治疾方) 석조가, 외벽 좌우에는 대비천과 역사(力士)를 배치한 북제시대의 부조가 있다. 동굴내는 폭 3m, 안길이 3m의 방형평면. 본존은 보단(寶壇) 위에 좌불과 환조의 협시 보살 ∙ 나한으로 된 수나라 양식의 5존상. 좌우벽에도 수나라 식의 5존상을 봉납하는 불감이 있으며, 주위의 소상감(小像龕)에는 북위 말(北魏末)부터 당초(唐初)까지의 조상명(造像銘)이 있다.
- 고양동(古陽洞)
제21동. 속칭 노군동(老君洞)이라고도 한다. 용문 최고(最古)의 석굴. 북위 효문제 태화18년(494년) 경에 착공하여, 선무제(재위 499~515) 말년에 대충 완성하였다. 동굴내는 폭 6.75m, 안길이 13m의 마제형(馬蹄形)평면, 원형천정이며 높이는 약 11m이다. 정면의 2단 보단상(寶壇上)에 본존좌불, 후벽 좌우구석에 양협시보살의 입상, 앞쪽 좌우에 사자상 들어서있다. 주위벽의 상감(像龕) 감(龕) 중에 북위의 것은 석가좌상 24, 미륵교각상(交脚像) 29, 관음입상 11, 그외에 이불병좌상(二佛並坐像) 등이 있고 조상명(造像銘)은 용문20품을 비롯 당대(唐代)의 것을 포함하면 100여개에 달한다.
- 극남동(極南洞)
제28동. 서산 최남단에 있고 입구는 동남쪽으로 열려 있다. 정토동(浄土洞, 제26동, 본존불은 아미타불의상)과 같이 측천무후 시기(690~705)에 건조하였다. 동굴내는 폭 4.7m, 안길이 3.45m. 본존은 5존상이다.
- 간경사동(看經寺洞)
동산의 만불구(萬佛溝) 북쪽에 있다. 성당(盛唐) 초기의 조영(造營)이다. 한변이 약 11m의 방형평면이고, 높이 약 6m인 평천정(平天井)에는 대연화를 둘러싼 6비천의 부조가 있다. 본존은 통견(通肩)의 좌불이며 8각대좌 위에 앉아 있음. 좌벽의 4주요벽(四周腰璧)에는 거의 등신대의 행렬하는 나한 29체가 부조되어 있다.
- 뇌고대삼동(擂鼓坮三洞)
동산 만불구 남쪽에 있다. 남 · 중 · 북동굴 모두 남서로 면해 열려 있으며, 원래에는 성당 초기의 조영. 남동은 폭 7.7m, 안길이 5.8m, 본존은 편단우견(偏袒右肩)인 좌불상이며, 방형(方形)대좌에 앉아 있고 4벽의 연지상 천불체의 부조는 천정에까지 이른다. 중동굴은 폭 6m, 안길이 5m. 3기의 삼성보단(三成寶壇)에 본존인 수각(垂脚)미륵과 양보살을 안치함. 좌우벽과 천정에 천체불(千體佛), 4주(四周)요벽에 『25조사』를 부조하였다. 북동은 한변 3m인 방형평면이며 둥근천정. 중앙과 좌우벽에 방좌상(方座上)의 좌불을 안치하였다. 앞벽 우측의 11면 4비관음, 좌측의 6비보살은 용문에 있어서 다면다비상(多面多臂像)의 한 예이다.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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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먼석굴의 이 놀라운 석조물들에는 중국 당나라의 고도의 문화 수준과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상이 응집되어 있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예술 양식의 완전한 경지를 보여 주는, 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룽먼석굴은 북위의 황제 효문제가 수도를 뤄양으로 옮긴 493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룽먼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석굴 가운데 하나인 황보공굴(석굴사라고도 함)은 서산의 남쪽에 있는데, 비문을 보면 이 석굴이 527년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굴 앞에는 목재 구조물을 본떠 만든 지붕이 있으며, 가로대에는 7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석굴의 주벽은 실물보다 커다란 7개의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다. 당나라 고종은 서산의 남쪽 아랫부분에 봉선사동을 만들었다. 675년에 완성된 이 석굴은 룽먼에 있는 당나라 때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석굴 안에는 9개의 거대한 석상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통통한 몸집에 자애로운 얼굴을 한 비로자나불상이 압도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다른 석상들 역시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특징에 맞는 독특한 표정을 갖고 있다.
여담으로 당고종 대에 세워진 대불의 얼굴은 측천무후의 외모를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