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니아

 

[image]
1. 개요
2. 상세
3. 스웨덴령 리보니아


1. 개요


리보니아는 중세 라트비아에스토니아 일대에 동방식민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독일인들의 식민지를 말한다. 라트비아 일대에는 주로 발트어족 민족들이 거주하였고, 리보니아인은 비교적 소수였지만,(라트비아가 독일인 이주 전 폴로츠크 공국에 영향 하에 있을 당시 발트어족 민족들은 135,000여 명 리보니아인은 20,000여 명) 리가를 건설한 독일인 선교사들과 제일 먼저 동맹을 맺은 발트 현지 원주민들이 바로 리브인들이었기 때문에, 리브인의 이름을 따서 리보니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2. 상세


[image]
리보니아의 이름을 따서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구성되고 이후 기사단의 영토는 리보니아 연맹, 리보니아 공국[1] 등으로 계승되었다. 독일 식민지들은 덴마크가 장악한 에스토니아 북부 외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였고 이를 테라 마리아나라고 불렀다. 당시 리보니아는 독일인 지주와 상공업자가 사회 상류층을 차지하였으며 발트어족과 우랄어족[2]에 해당하는 여러 피정복 민족들은 피지배층 농노로 무거운 조세를 부담하였다. 독일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신분 상승은 불가능했으며, 근대 이전의 경우 교육을 받은 현지인들은 대개 독일인과 동화되었다.
명목상 이 지역은 선교를 위한 십자군 운동의 일환으로 정복되었으나, 독일인 지주들은 현지인 농노들을 착취하는데만 관심이 있었고 기독교 교리를 농노들에게 설명해주는데는 대개 무관심했다. 현지인 농노들은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고 평일에는 토속 신앙을 믿는 이중 신앙 생활을 했다. 라트비아 일대는 이런 이중 신앙 생활이 16세기에도 흔했던 걸로 기록되었고, 에스토니아 일대는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발트 십자군의 이름의 기원이 된 리보니아인의 경우는 더 심했는데 리보니아어로 성경이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였다. 이미 당시 리브어를 사용하는 리보니아인은 주변 민족과의 동화 및 억압적인 식민 지배로 인구가 많이 감소한 상황이었다.
[image]
이후 이 지역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스웨덴, 루스 차르국 등이 지배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다 결국 루스 차르국의 후신인 근대 러시아 제국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러시아 제국은 독일인 지주들의 권위를 약화시킬 목적 겸 현지인 다수를 구성하는 민족 이름을 따서 이 지역 이름을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로 개명한다.

3. 스웨덴령 리보니아


오늘날 에스토니아 북부에 해당하는 스웨덴령 에스토니아 공국과 연계되었던 스웨덴 영토로서, 1600년부터 1621년 사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의 전쟁에서 스웨덴이 에스토니아 남부 일대와 라트비아 대부분 지역을 획득한 후 1629년 설립되어 1721년까지 존속되었다.
스웨덴령 리보니아는 종교개혁 이후에도 남아있던 가톨릭의 잔재를 일소하고 루터교회를 후원했으며, 스웨덴에 점령당하지 않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영토로 보존된 라트갈레 지역은 라트비아 내 다른 지방과 다르게 가톨릭화되었다.

[1]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봉신국[2] 오늘날 에스토니아인의 기원에 해당하는 추디-에스티인 및 러시아 일대에서 잡혀온 보다인(Votes)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