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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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언어
3. 기원
3.1. 핀인과의 차이
3.2. 세투인과의 차이
4. 무신론
5. 문화
6. 기타
7. 에스토니아인 인물


1. 개요


'''에스토니아인'''이란 우랄어족 핀-우그르어계 에스토니아어를 쓰는 민족을 말한다. 에스토니아인과 핀인카렐인, 벱스인[1], 이조레츠인[2] 리보니아인[3] 보디인 등과 함께 발트-핀족에 속한다.
에스토니아에 90만여 명이 거주하며, 핀란드에 거주하는 에스토니아인은 5만명 이상, 스웨덴에 2만 5천여 명, 캐나다에 2만 4천여 명 정도가 거주한다. 미국에도 에스토니아 혈통 후손에 2만 7천여 명 거주한다. 그리고 러시아에도 소수의 에스토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역사적인 이유로 지식인 층이 발트 독일인으로 흡수되거나 아니면 훨씬 더 대우가 좋았던 핀란드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민족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 못했다.

2. 언어


에스토니아인들의 모국어는 에스토니아어이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매우 가까운 언어로 핀란드어 화자와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는 편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고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를 할 줄 아는 에스토니아인들도 많은 편이다.

3. 기원


과거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우랄어족에 속한 여러 부족들을 추디-에스티인이라 불렀다. 오늘날 타르투에 해당하는 지역에 키예프 공국 도시 유리예프가 들어서기도 했으나,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이 지역을 정복 후 현지인들을 농노화하면서 에스토니아인들은 이웃 친척 민족들과 다르게 독일화되었다.

3.1. 핀인과의 차이


이를테면 핀인카렐인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었는데, 스웨덴의 핀족 농민은 거의 자영농이었으며, 후에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 영토가 된 이후에도 높은 자치와 가벼운 조세 부담 등 특혜를 누린 반면, 에스토니아인들은 중세 내내 가혹하고 혹독한 농노제로 고통 받았다.

3.2. 세투인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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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공국 시절 유리예프에 거주하던 에스토니아인들은 십자군의 침략 이후 노브고로드 공화국 영토로 이주하여 세투인이 되었다. 이후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점령당하고 당시에도 아직 기독교 대신 토속 신앙을 믿고 있었다 하며 결국 이반 4세 시절 정교회로 강제 개종이 이루어졌다. 에스토니아의 에스토니아인들은 가톨릭-개신교-무신론 테크를 탄 것과 다르게 세투인들은 오늘날에도 대부분 정교회 신자이다.

4. 무신론


에스토니아인들 대다수는 핍박 받는 농노의 입장이었고 독일인 지주들은 이들을 명목상 개종시키는 데 만족했기 때문에 에스토니아어로의 성경 번역은 매우 더디고 성의없이 진행되었다. 에스토니아인들 입장에서 기독교는 외국인 지주들이 외국어로 제사지내는 문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러시아 제국 시절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은 무늬만 기독교도인 토속 신앙 신봉자로 간주되곤 했다.'''
소련의 무신론 강요 이후 개신교 뿐만 아니라 토속 신앙까지 뿌리뽑히고 러시아 제국 시절에 정교회로 개종한 일부 에스토니아인들조차 무신론자가 되면서 오늘날 에스토니아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이고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민족으로 꼽히게 되었다. 러시아계 에스토니아인과 결혼하여 정교회 신자가 되거나, 타타르계 에스토니아인과 결혼하여 무슬림이 되거나, 종교를 믿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그 외국인 배우자의 종교를 믿게 되는 등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토착 에스토니아인들은 무신론이 매우 보편적이다.[4]

5. 문화


에스토니아인들은 실용주의 문화가 강하며 평균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평균적으로 3개 국어가 구사 가능하다. 에스토니아가 과거 구소련 출신 국가들 중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윤택한 국가가 된 것도 에스토니아인의 실용주의와 교육열 덕이 크다.
19세기 밀 에스토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에스토니아어와 민족주의를 부흥시키기 위해 에스토니아 민중들에게 에스토니아어 노래를 합창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이 전통은 에스토니아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 노래 혁명으로도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에스토니아인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화음을 넣어 합창할 수 있다고 하며, 타르투에서는 매해 정기적으로 사실상 국가 독립을 기념하는 페스티벌 라울루피두(Laulupidu)가 열린다.

6. 기타


미녀가 많은걸로 알려진 민족이다. 이 점은 동족 핀인 및 발트 3국 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7. 에스토니아인 인물






[1] 라도가 호수 근처에 살던 민족[2] 상트 페테르부르크 근교의 원주민. 2차 대전 직후 인구 조사 때만 해도 2만여 명 가까이 되었으나 이후 거의 레닌그라드로 이주 후 러시아인과 통혼하면서 러시아인과 동화되고 소련 붕괴 즈음에는 천여 명만 남았다.[3] 고대 라트비아의 우랄어족 원주민으로 이웃 발트어족 민족들과 동화되며 오늘날의 라트비아인의 기원을 이룸. 리보니아의 어원이 된 민족으로 리브어가 가능한 사람들이 라트비아 내 수백여 명 남짓 남아있음[4] 에스토니아인 못지않게 무신론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되는 체코인들조차 문화적으로나마 가톨릭과 후스파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