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터 R-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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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R-23 기관포(Рихтер Р-23)'''
소련 시절에는 '''KB-261P(КБ — 261П)''', 또는 간단히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리히터 23mm라고 불렸던 이 구경 23mm 기관포는 오데사 출신의 총기 설계자인 '''아론 아브라모비치 리히터'''(Арон Абрамович Рихтер : 1918~1988)에 의해 1957년 초부터 개발되었다.
구경 23mm의 R-23 기관포는 당시 서방측 항공 기관포에서는 일반화된 리볼버 약실을 가진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개발 용도는 그 무렵 투폴레프 설계국의 주도로 차세대 초음속 폭격기로 준비되고 있던 Tu-22의 방어화기로 쓰이기 위해서였다. 제16실험설계국(ОКБ-16)의 주임 엔지니어를 맡고 있던 아론 A. 리히터는 이 무기를 쏘게 되는 Tu-22도 초음속이며 방어하게 될 적 요격기 또한 초음속으로 비행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위력 보다는 연사속도에 더 촛점을 맞추고 설계에 임했다. 사용 탄종도 기존 Vya-23 기관포에 쓰이고 있던 23×152mmB 대신 더 위력이 커진 23×260 mm 포탄을 이용하는 한편 리볼버 약실을 도입하여 1957년 말엽에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먼저 지상 테스트를 받기 시작한 R-23 기관포는 1959년에 국가 시험을 통과했고,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비행 실사격 테스트를 거쳤다.
이 기관포의 총몸 안에는 3개의 가스 활대가 움직이며 4개의 약실은 신속한 탄피 배출을 돕도록 폴리고널 가공이 되어 있다. 장전된 포탄은 전기 격발식이므로 뜨거워진 약실에 의한 오발[1] 이 나지 않으며 불발탄이 생겨나면 자동으로 배출하고 차탄을 장전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 힘입어 R-23 기관포의 연사속도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모든 소련제 기관포를 훨씬 능가하는 분당 2,500발에 달했다.
이 작동 방식 때문에 1문의 P-23에는 반드시 전기 격발과 작동을 보조하는 장치인 DK-20(ДК-20)이 필수적이었는데, 이 장치는 빔펠 설계국(ОКБ Вымпел)에서 따로 개발되었다. 또한 DK-20에는 조준기도 통합되어 있었는데, 사수가 리플렉터식 조준기로 목표에 일치시키면 포신이 자동으로 사선을 일치시키는 당시 소련으로서는 첨단 기능을 제공했고 나중에는 포탑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이 기관포의 조작은 사수가 직접 하는 대신 원격 조작되며, Tu-22의 경우는 조준을 위해 TSP-1(ТСП-1) TV 카메라와 레이더 조준 장비인 PRS-3 아르곤(ПРС-3 Аргон)이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사수는 조종사와 항법사가 앉아있는 캐빈 안에서 후방으로 접근하는 요격기에 대해 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실제 폭격기에 장비된 후 이 무기를 다들 첨단 장비라며 좋아했지만, 폭격기 승무원들은 얼마 안가 이 신무기가 그리 믿을만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별 것 아닌 오작동 문제라도 생기면 이전 같으면 사수가 대응할 수 있었지만 리모콘 포탑은 그것이 애초에 불가능했고, 설치된 조준용 카메라는 설원처럼 밝은 배경을 둔 목표는 화질이 열악해져 조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백업으로 추가된 아르곤 레이다는 구형 Tu-16 폭격기에서 쓰던 것이어서 정밀한 사격을 하기에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런 문제 때문에 Tu-22는 개량형에 와서는 이 무기를 내리고 대안으로 GSh-23L 기관포과 크립톤 레이다가 실리게 된다.
서방측에 이 신형 기관포와 탄약이 처음 알려진 것은 매우 늦었는데, 기존의 23mm와 다름없는 무기로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 실체가 정확히 알려진 것은 1987년에 한창이던 리비아-차드 분쟁에서 차드 민병대를 폭격하던 리비아 공군의 Tu-22가 대공 사격에 격추되면서 그 잔해를 조사한 서방 정보기관에 의해서였다.
'''리히터 R-23 기관포(Рихтер Р-23)'''
1. 제원
2. 폭격기 방어화기로 탄생
소련 시절에는 '''KB-261P(КБ — 261П)''', 또는 간단히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리히터 23mm라고 불렸던 이 구경 23mm 기관포는 오데사 출신의 총기 설계자인 '''아론 아브라모비치 리히터'''(Арон Абрамович Рихтер : 1918~1988)에 의해 1957년 초부터 개발되었다.
구경 23mm의 R-23 기관포는 당시 서방측 항공 기관포에서는 일반화된 리볼버 약실을 가진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개발 용도는 그 무렵 투폴레프 설계국의 주도로 차세대 초음속 폭격기로 준비되고 있던 Tu-22의 방어화기로 쓰이기 위해서였다. 제16실험설계국(ОКБ-16)의 주임 엔지니어를 맡고 있던 아론 A. 리히터는 이 무기를 쏘게 되는 Tu-22도 초음속이며 방어하게 될 적 요격기 또한 초음속으로 비행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위력 보다는 연사속도에 더 촛점을 맞추고 설계에 임했다. 사용 탄종도 기존 Vya-23 기관포에 쓰이고 있던 23×152mmB 대신 더 위력이 커진 23×260 mm 포탄을 이용하는 한편 리볼버 약실을 도입하여 1957년 말엽에 시제품이 완성되었다.
먼저 지상 테스트를 받기 시작한 R-23 기관포는 1959년에 국가 시험을 통과했고,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비행 실사격 테스트를 거쳤다.
3. 작동 방식
이 기관포의 총몸 안에는 3개의 가스 활대가 움직이며 4개의 약실은 신속한 탄피 배출을 돕도록 폴리고널 가공이 되어 있다. 장전된 포탄은 전기 격발식이므로 뜨거워진 약실에 의한 오발[1] 이 나지 않으며 불발탄이 생겨나면 자동으로 배출하고 차탄을 장전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 힘입어 R-23 기관포의 연사속도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모든 소련제 기관포를 훨씬 능가하는 분당 2,500발에 달했다.
이 작동 방식 때문에 1문의 P-23에는 반드시 전기 격발과 작동을 보조하는 장치인 DK-20(ДК-20)이 필수적이었는데, 이 장치는 빔펠 설계국(ОКБ Вымпел)에서 따로 개발되었다. 또한 DK-20에는 조준기도 통합되어 있었는데, 사수가 리플렉터식 조준기로 목표에 일치시키면 포신이 자동으로 사선을 일치시키는 당시 소련으로서는 첨단 기능을 제공했고 나중에는 포탑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이 기관포의 조작은 사수가 직접 하는 대신 원격 조작되며, Tu-22의 경우는 조준을 위해 TSP-1(ТСП-1) TV 카메라와 레이더 조준 장비인 PRS-3 아르곤(ПРС-3 Аргон)이 설치되었다. 그러므로 사수는 조종사와 항법사가 앉아있는 캐빈 안에서 후방으로 접근하는 요격기에 대해 사격을 가할 수 있었다.
4. 평가
실제 폭격기에 장비된 후 이 무기를 다들 첨단 장비라며 좋아했지만, 폭격기 승무원들은 얼마 안가 이 신무기가 그리 믿을만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별 것 아닌 오작동 문제라도 생기면 이전 같으면 사수가 대응할 수 있었지만 리모콘 포탑은 그것이 애초에 불가능했고, 설치된 조준용 카메라는 설원처럼 밝은 배경을 둔 목표는 화질이 열악해져 조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백업으로 추가된 아르곤 레이다는 구형 Tu-16 폭격기에서 쓰던 것이어서 정밀한 사격을 하기에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이런 문제 때문에 Tu-22는 개량형에 와서는 이 무기를 내리고 대안으로 GSh-23L 기관포과 크립톤 레이다가 실리게 된다.
서방측에 이 신형 기관포와 탄약이 처음 알려진 것은 매우 늦었는데, 기존의 23mm와 다름없는 무기로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 실체가 정확히 알려진 것은 1987년에 한창이던 리비아-차드 분쟁에서 차드 민병대를 폭격하던 리비아 공군의 Tu-22가 대공 사격에 격추되면서 그 잔해를 조사한 서방 정보기관에 의해서였다.
[1] Cook-off 현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