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모니데스
1. 개요
중세 유대교 철학자, 신학자, 의학자.
2. 생애
12세기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13살이 되던 해에 알모하드(Almohad) 왕조의 종교적 탄압을 피해 망명길에 오르며, 10여년을 돌아다니다가 20대 중반에 이집트 카이로로 넘어가서, 후에 카이로 유대교도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47살에 이집트를 다스리던 아유비드(Ayyubid) 왕조의 2인자였던 알파딜(Al-Fadil)의 주치의로 편안한 궁정생활을 하면서 연구과 집필에 매진하였고, 이러한 성실함으로 그는 유대교를 넘어 기독교 세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신학자로 거듭났다.
3. 사상
초기 교부 철학이 테르툴리아누스 이래 지속된 ‘아테네와 예루살렘’이라는 구분, 즉 ‘이성’을 대변하는 그리스 철학과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긴장에 포커스를 둔 것에 비해서, 마이모니데스는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이 ‘신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율법’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법과 철학은 필연적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것이며, 철학의 고유한 목적은 율법에 합리적인 확증을 주는 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하여 구약성서와 쿠란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였다.
마이모니데스는 한편으로는 ‘계명’에 대한 이성적 ‘추론’으로 ‘율법’의 법적 지위를 확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전된 ‘율법’의 타당성을 ‘계시’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으로부터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이성적 판단'으로 성경의 말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성경 속 '계시'의 불명확한 점을 '이성적 판단'으로 채워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는 경전에 표현된 신에 대한 묘사가 인간의 언어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해석을 하려는 시도 때문에, 한 때 유대교 신학자들로부터 이단으로 몰렸었다.
하지만 계시에 대한 해석학적 방법론은, '이성'을 통하여 성경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후대의 유대인 역사가들은 중세철학에 끼친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아베로에스와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4. 저서
- 미쉬나 토라 (Mishnah Torah)
-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The Guide for the Perplexed)
- 기질론
5. 여담
- 한 때 이스라엘 지폐에 마이모니데스를 넣었을 정도로, 유대사회에서 그가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 그는 치질은 변비에서부터 생긴다고 하여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가벼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