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븐 루시드
1. 개요
'''Commentor(주석가)'''[1]종교와 철학은 진리 추구라는 공통된 목적이 있음으로 서로 모순되지 아니한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재발굴 해내어 중세 학문에 경종을 울린 안달루스의 대학자. 단테의 신곡에서 극찬을 받았고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무슬림 학자.
2. 생애
알 안달루스 (무슬림 지배 하의 이베리아 반도)의 학자 (1126 ~ 1198년). 신학, 철학, 의학, 법학에 출중하였으며 무와히드 왕조 시대 세비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루시드는 그리스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저서에 최소 한번 이상 주석을 다는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아랍어 외에도 중세 스페인어로도 저술활동을 열심히 했으며 덕분에 그의 저작들은 곧바로 라틴어로 번역되어 보급되었다.[2] .
그는 중세 이슬람의 후기 팔사파[3] 의 거두로서, 수피즘의 대부이자 팔사파와 대립했던 알 가잘리의 저서 '철학자들의 모순'을 반박하는 '철학자들의 모순의 모순'을 집필하였다. 다만 그는 '모든 인간은 질료적 속성을 지닌다'는 전기 팔사파의 주장과는 달리, 질료적 속성은 보편적 완벽함으로서 인간은 노력을 통해 질료적 지성을 인식할 수는 있으나 그를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하는 차이를 보였다.
수많은 그의 저서 중에 상당수가 유럽과 중동의 유서깊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븐 루시드는 단테의 신곡에서도 칭송받았으며, 르네상스의 대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유일한 아랍계 인물이다. 하지만 말년의 그는 급진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아 감금당하는 박해를 받다가 안달루스를 떠났고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서유럽에서 번역된 그의 저서들은 1270년대 파리 대학의 주요 연구 주제였으며 1271년,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베로에스 비판을 위한 지성 단일성'을 저술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반박하기도 하였다.[4]
3. 대중매체에서
코에이 역사시뮬레이션 게임 징기스칸 4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정발판에는 '이븐 루슈드'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됨. 능력치는 정치 75, 전투 21, 지모 41로 좀 짜다. 전반적으로 문관들에 대한 대우가 짠 게임이니 어쩔 수 없을지도.
4. 관련 문서
[1] 12~14세기 서양 문헌에서 아무런 맥락없이 Commentor라고 언급하면 이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Philosopher(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칭하는 단어였다는 것과 같은 맥락.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가라는 의미이다.[2]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너무 어려운 나머지 주석을 3번 이상의 책을 출판해야할 정도로 그만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그 당시 때와 지금까지도 어렵다고 한다.[3] 주의 : 마지막 '파'는 한자어로 파派가 아니며 '팔사파'자체로 한 단어다. 아랍어로 فَلْسَفَ라 쓰고 영어로는 falsafa로 읽으며, 그리스어 φιλοσοφία(philosophy, 철학)의 아랍어 음차다.[4] 다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오히려 그 시대에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수용한 학자이기도 했다. 다만 당시 유럽의 대학들에서 유행하던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들처럼 맹목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베로에스의 주석을 맹신하는데 반대했을 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이자 신부이기도 했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그로 인한 비판과 탄압을 받기도 했었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의미하며, '주석가'는 아베로에스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