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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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馬鍾基, 1939년 1월 17일 ~ ) (만 85세)
1. 개요
2. 생애
3. 작품 목록
3.1. 시집
3.2. 산문집
4. 수상 경력
5. 여담


1. 개요


시인, 의사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박사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및 부원장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및 초대 부원장
동 대학 의과대학 소아과 임상 정교수,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역임.
문학잡지 '의학과 문학' 편집장
문학동인 '평균율' 동인

2. 생애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전직 의사. 대한민국 최초의 동화작가 마해송과 현대무용가 박외선의 사이에서 도쿄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중 시인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1959년 "현대문학"에 시 '해부학교실' 로 등단했다. 1963년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임관하여 1966년까지 공군에서 복무했다.
군의관 시절에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2가지 사건이 있었다. 먼저 김수영 시인으로부터 '문단에 섞이지 말고, 문학에 의학을 잘 접목시켜 보라' 는 조언을 받은 것.[1]
그리고 1965년에 한일협정 반대 입장[2]을 표명하여, 공군 장교인데도 불구하고 군사 정권의 심한 고문을 받았다.
김수영 시인의 조언에 따라 의학적 경험, 의대 시절 이야기는 그의 시 세계의 일부분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고문의 후유증을 겪었던 그는 제대한 후 힘들었던 고초에 대한 시를 쓴 후, 대한민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전에 군에서 제대한 1966년에는 뇌질환으로 아버지 마해송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
도미한 그는 진단 방사선과 수련을 마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하며 시를 발표하게 된다. 도미 후 그의 시 세계는 귀소본능 과 그리움이 주축이 되며, 그의 취미라 할 수 있는 음악, 미술, 무용 등을 모티브로 창작을 이어 나갔다. 이러한 성향은 같은 평균율 동인인 무용 평론가 김영태와 삼인 시집 평균율에서 연결되기도 했다.
2002년에 의사 생활에서 은퇴하고, 현재는 문단 활동만 하고 있다.

3. 작품 목록



3.1. 시집


<조용한 개선>, 1960
<두 번째 겨울>, 1965
<평균율1>(공동시집), 1968
<평균율2>(공동시집), 1972
<변경의 꽃>, 1976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1980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1986
<그 나라 하늘빛>, 1991
<이슬의 눈>, 1997
<마종기 시전집>, 1999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2002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2004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2006
<하늘의 맨살>, 2010
<마흔두 개의 초록>, 2015

3.2.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2003
<아주 사적인, 긴 만남>, 2009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2010

4. 수상 경력


1961년 제1회 연세문학상
1976년 한국문학작가상
1989년 미주문학상
1997년 이산문학상
1997년 편운문학상
2003년 동서문학상
2009년 현대문학상 : 파타고니아의 양.
2011년 박두진문학상

5. 여담


그의 시는 대개 쉬운 단어를 통한 밝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한 밝은 분위기를 보이면서도 그리움이나 비애를 표현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가수 루시드폴이 마종기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며, 곡들 중에서는 마종기의 시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게 있다고 한다.
가수 루시드폴과 마종기 시인이 2년 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편지를 모아 만든 책인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 있다.

[1] 마종기 본인이 정신과 병동 학생 의사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정신과 병동 환자의 눈을 통해 삶의 쓸쓸함을 쓴 시 <정신과 병동>은 시인 김수영이 1963년도 최고의 시라고 칭찬한 작품이다.[2] 이명박이 잡혀간 원인이 된 그 사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