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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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2007년 한나라당 후보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통합민주신당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8] 이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서 두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에 해당한다. 성명의 영문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 불리기도 한다.[9]
이명박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경북 포항에서 자랐다. 본래 어렸을 때 아호는 '일송'이었지만 서울시장 재직 중 청계천 복원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고려대학교 동문이던 역사학자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로 '청계(淸溪)'라고 바꿔 지었다고 한다.
2. 약력
- 1954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 1957 포항중학교 졸업
- 1960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 1964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10]
- 196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 1965 현대건설 경리과 평사원
- 1976 한국포장건설 사장
- 1977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78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도시개발 대표이사 사장
- 1978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 1978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11]
-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 1980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 1981 대한알루미늄 사장
- 1981 대한수영연맹 회장[12]
- 1982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 1982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 198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 1983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 1983 해외건설협회 이사
- 1983 동남아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 1984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 1984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
- 1985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
- 1986 주한 부탄 왕국 명예총영사
- 19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 1988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 1988 한무쇼핑 대표이사 회장
- 1988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 1989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 1989 한·소련 경제협회 부회장[13]
- 1990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 1990 한국항만협회 이사
- 1990 대명기업 대표이사[14]
- 1990 대명통상 대표이사(영일빌딩 소유)
- 1991 한국사회발전연구소 이사장
- 1991 동북아민간경제협회 회장
- 1992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
- 1992 6.3동지회 회장[15]
- 1992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 1993 한국청년실업인협회 회장
- 1993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운영이사회장
- 1993 제1차 세계한인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16]
- 1993 부동산임대이명박 대표[17]
- 1995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 1995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 1995 소망교회 장로[18]
-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민주자유당 경선 후보
-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
- 1996 한국국악협회 고문
-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경선 후보
-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19]
- 1999 BBK투자자문 대표이사 회장[20]
- 2000 아시아·태평양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21]
- 2000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
- 2000 LKe뱅크 대표이사 회장
- 2000 e뱅크증권중개 대표이사 회장[22]
- 2000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 2001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23]
-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
-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후보
- 2002 제32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3기)
- 2002 제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이학박사
- 2005 몽골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5 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 2006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 #
- 2007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
-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 2008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 2008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명예박사
- 200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행정학박사
- 2011 프랑스 파리제7대학교 명예예술학·문학·철학·고전학박사
- 2011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명예환경학박사
- 2013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24]
3. 일생
4. 평가
'''의혹이 제기되고 특검까지 꾸려졌음에도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까닭은 결백을 주장하는 피고인을 믿고 피고인이 전문 경영인으로서 보여주었던 역량을 대통령으로서도 잘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한 다수의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의욕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재임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들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과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겨주었습니다.'''
5. 여담
- 여러 가지 휘호들을 남겼다.
- 1979년 6월 10일에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제전에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 옆에 당시 박근혜 영애와 최순실이 앉았다. 당시 이명박은 구국여성봉사단(새마음봉사단) 운영위원이었고, 박근혜는 봉사단 총재, 최순실은 전국새마음대학생총연합회장이었다.
- 최초의 기업 CEO 출신 대통령이다.
- 현대건설 사장 재직 시절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 현대건설 사장 재직 시절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관리 감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 유년 시절 장래희망은 교사과 소방관이었으며,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마하트마 간디와 안창호를, 좋아하는 음식으로 김치찌개와 스파게티를 꼽았다. 주량은 맥주 2컵이고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리고 대통령 당선일이 모두 12월 19일로 같다. 때문에 이날을 "트리플 크라운 데이"라고 부르면서 매년 전날인 12월 18일에 친이계 출신 전현직 의원들이 모여 송년회를 겸한 생일잔치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 비서관급과 수석비서관급, 장관급 인사들도 날짜를 달리해 각각 이명박과 회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측은 매년 벌여온 자축연이고 참석자가 많아 이명박과 안부 나누는 정도일 뿐이라며 세력화 등의 정치적 해석을 경계한다고 밝혔다.[27] 19일 당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503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716을 더하면 1219가 되는 탓에 드립이 흥하고 있다. 문서 참조.
-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7년에 과거 아들이 재학했었던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에 나온 식당은 현운재라는 교수 전용 숙박건물에 있는 교수 전용 식당이다.
- 인터넷상에서 이명박이 학생운동 시절 도피 차원에서 여장하는 사진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28]
- 서울시장 재직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2003년 WCG 폐막식에서 우승자 이용범과 이벤트 경기를 벌이는 사진이다. 종족은 저그로서 경기를 위해 5개월 전부터 연습했다는 후문이 있지만 시작 5분 만에 4드론으로 패배했다. 거기다 상대방의 정찰기(오버로드)를 잡는 위엄을 보였다고 한다.[29]
-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으로 인디 밴드에 대한 질타가 높아지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은 홍대 퇴폐공연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으름장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한때 홍대의 클럽들을 싹 다 뒤엎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디밴드의 반발로 무산되고, 친분이 있었던 유인촌의 설득을 듣고 오! 부라더스 공연을 관람하여 인디밴드와 화해하고, 홍대거리에 대한 생각 또한 긍정적으로 바꿨다고 한다. 여기서 설명했다시피 대통령 이전부터 이명박의 별명은 불도저였다.
- 취임 후 첫 철도 착공식인 원주강릉선 착공식에 병풍으로 KTX-산천 열차를 사용했는데, 하필 착공식이 강릉역에서 열린 나머지 KTX가 영동선 스위치백을 넘는 장면이 목격되었으며, 400억짜리 병풍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철덕들에게는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 대통령으로서는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평범하게 대통령을 했으나, 자기 앞뒤로 탄핵소추를 당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결과 또한 전자의 경우 부활한 반면, 후자의 경우 처참한 결말을 맞은 정반대다.
- 서울시장으로서도 본의 아니게 매우 희한한 이력이 생기고 말았다. 정작 본인은 임기를 전부 마치고 퇴임했지만 마지막으로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친 서울시장이 되었다.[30] 후임 서울시장 2명[31] 모두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않았다.
- 닮은 사람이 매우 많다. 주로 언급되는 사람으로는 마릴린 맨슨,[32] 유희열, 인피니트 김성규, 서승만, 박명수, 유동근,[33] 잉글랜드의 미드필더 존조 셸비 등이 있다. 양궁 선수 기보배와도 닮았으며, 젊은 시절을 보면 축구 선수 이천수와 야구 선수 김하성과도 닮았다.
- 폴아웃: 뉴 베가스의 그렉과도 닮았다. (미간 위치 주목)
- 나이에 비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현재 83세이며, 임기 중에도 65세가 넘어간 노인이었다. 당장 다음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나이차도 10살 이상이고 이전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 자기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듯하다.
- 유행어로는 '나도 해봐서 아는데~' 가 있다. 사용 예로는 '나도 호떡 장사 해봐서 아는데~'가 있다. '내가 건물 만들어 봐서 아는데~', '내가 배도 만들어 봐서 아는데~' 식의 발언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할 수 있다. 농담식으로 넘기면 될 듯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과 장사를 해본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여고 앞에서 한 뻥튀기 장사가 있다. 가난했던 유년시절
- 민주화 이후 최초로 임기 종료 시까지 소속된 당에서 탈당하지 않고 당적을 유지한 대통령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임기 말에 지지율이 떨어지면 소속된 당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탈당했는데, 처음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지킨 채 임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사실 대통령 임기 막판에는 인기가 시들해지고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당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당 차원에서는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임기 말 당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쫓겨나거나 탈당하는 관습이 존재했었다. 일례로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토사구팽당했고,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전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여생을 보냈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배경으로는 퇴임 지지율이 높았던 점도 한몫했지만 그게 결정적일 정도로 높은 지지율은 아니었다는 견해가 많다(탈당했던 김대중과도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이명박이 당적을 유지한 것은 역대 대통령이 대선까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과는 다르게 친이-친박을 필두로 척을 지는 이미지가 강해서 박근혜와 크게 엮이지 않은 점이 큰 요소였다. 다만, 대통령 퇴임 이후 당 회비를 계속 내지 않고 있었으며, 2017년 1월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면서 탈당했다.
- 논필가 지만원에게 뒷조사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의외로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하다. 그의 주장으로는 이명박의 부친은 (이명박 본인의) 자서전에 언급한 대로 양반 태생이 아니며, 친일 행각을 한 노비이며, 부친의 원래 이름은 떡쇠이며(32세였던 쇼와 14년에 이충우로 개명했다.) 이명박은 그의 일본인 첩 사이에서 낳은 서자라고 했다. 다만, 지만원 평소 행적 특성상 지만원의 말이 사실일 확률은 거의 없다. 애초에 지만원은 이명박을 공격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 같지만 부친의 친일 행각이라면 문제가 될지언정 신분제가 폐지된 현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아버지가 노비면 어떻고 본인이 서자면 뭐 어떻단 말인가?
-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관계가 좋다. 퇴임 후에도 사적으로 만난 적도 있었고 그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 중에 이명박 초상화도 있다.
- 청담동 가로수길 꼬르소 꼬모에서 아내 김윤옥 여사와 브런치를 즐기거나 원래 취미였던 테니스장이나 여러 공연장에서 목격되는 등 꽤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 대선 후보 당시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문답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로 원더걸스를 꼽았다. 물론 이 당시는 아이돌 그룹 자체의 수도 적었고 원더걸스가 천하통일을 했던 때였기 때문에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정치인들 대부분은 원더걸스를 뽑았다.[34]
- 노홍철이 아는 형님 중 가장 높은 사람이다. 무한도전에서 게스트로 초청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만 멤버들의 만류로 무산되었고,[35] 노홍철 본인에 의하면 정치적 목적은 없고 실제로 친분이 있다고 한다.[36]
- 서울시장 시절 탈모가 심해져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다. 실제로 서울시장 재직 중의 모습을 보면 거의 대머리 수준으로 탈모가 진행된[37]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 중 탈모로 인해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자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받은 두 번째(?) 대통령이다. 첫 번째는 안검하수 수술을 받은 노무현이 있지만 사실 이쪽은 안검하수 수술이기 때문에 미용 목적이라고 하기는 뭣하다.
- 박근혜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직무수행을 못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
- 사적으로는 형인 이상은, 이상득, 이재오[38] 와 사적으로 매우 친한 관계이다. 배우 유인촌과도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취임하자마자 유인촌을 문화체육관광장관으로 임명했다.[39][40] 정운찬의 경우 예전에도 친분이 있었으나 능력을 높이 사서 한때 국무총리로 임명하면서 더 친해지게 되었고, 지금도 그 친분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유인촌과 정운찬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 이명박의 아들 이시형보다 형 이상득의 아들(조카)이 이명박과 외모가 유사하며, 어째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을 닮은 편이다. 실제로 비교해 보면 많이 닮았다. 장녀 이주연은 이명박을 빼닮았다.
-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도 많이 친했다. 이재오와 함께 6.3 항쟁 때 서로 친해졌으며, 한나라당 시절 서울시장 때는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셋이 같이 만나 6.3항쟁 동지회라든지 모임을 상당히 많이 가졌었다고.[41]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같은 한나라당 소속일 때는 박근혜까지 포함해 소위 한나라당의 Big4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명박, 이재오, 손학규, 박근혜 중 4명 모두 각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고, 3명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며, 그 중 2명이나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름에 걸맞기는 했다.
- 제17대 대통령 당선 직후 바로 심상정을 직접 찾아 가서 만나서 인사하기도 했다.[43][44] 여담으로 이명박과 노회찬은 같은 고려대학교 출신이라고 한다.[45] 그리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진보신당을 창당하던 때에 이명박은 대통령이었는데, 진보신당 창당 때와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모두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냈다. 진보신당 창당 기념식장에 이명박이 보낸 축하 화환 창당 2년차에도 축하 화환을 보낸 점을 봤을 때 이명박과 노회찬, 심상정이 과거에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오히려 이들이 매우 친한 사이인 줄 알 정도다. 다만,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는 관계가 예전보다는 다소 멀어졌다.[46] 그래서 그런지 심상정과 노회찬은 이명박이 구속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는 짧은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47]
- 자기가 퇴임하기 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던 인물이 매우 친한 사이인 이재오와 정운찬이었고, 이재오랑은 알다시피 매우 친해서 이재오가 출마선언을 했을 때 이재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19대 대선 때 이재오뿐만 아니라 반기문, 홍준표, 유승민이 이명박을 예방했는데, 이재오가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명박은 이재오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인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역대급 사태로 범 보수계 정치세력이 대거 붕괴해 친이계나 보수계 모두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이재오를 지지한단 선언을 했으니, 이재오, 정운찬 등을 차기 수장으로 한 자 계파와 친박계가 새누리당에서 당권투쟁을 할 때도 실제로는 이재오나 정운찬이 차기 대권주자가 되길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현재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박원순과도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 서울시장 시절 월급 전액을 박원순이 설립한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고 아름다운가게의 명예고문으로도 활동했으며,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정책적 조언을 주고받는 등 교류가 활발했다. 특히 기부금 액수 때문에 한때 박원순의 든든한 후원자는 이명박이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도 이전이었던 2007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시에는 최태민 일가의 국정농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했고, 뜻밖에도 이는 현실이 되었다. 다만 박근혜의 무능과 최씨 일가와의 관계는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단지 이들이 자기보신 등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탓에 침묵을 택했거나 혹은 이 기사처럼 쓴소리나 폭로를 해도 묻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2007년 경선 과정에서 벌어진 양측의 네거티브 공방은 훗날 서로를 목 죄게 된 올가미가 되었다고 보기도 하지만[48]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박영선과 정봉주가 BBK, 다스 관련 의혹을 박근혜 캠프를 능가할 정도로 매우 끈질기게 제기했던 만큼 박근혜가 이런 의혹을 전혀 제기하지 못했어도 대선 과정에서 박영선, 정봉주 등의 민주당계 인물들에 의해 의혹으로 공격당했을 가능성이 여전히 매우 높다.
- KBS 2TV 추적 60분에서는 검찰과 권력 2부작 2편에서 '검사와 대통령의 아들' 편이 방송되었는데, 2014년 검찰이 마약 투약과 관련해 김무성 의원 예비사위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지만 용의선상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강남 클럽에선 대부분 마약을 하는데, 이시형이 이 강남클럽을 자주 갔다고 한다. 검찰도 김무성 의원 예비사위의 집에서 모두 9개의 주사기를 발견했다. 중앙지검 강력부에서 마약 수사 중 이명박 전 대통령 아들의 이름이 나왔지만 수사에 들어가지는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주력전차 MBT-70이 이명박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농담도 있다.
- 상도동계 직계 인물들과는 대부분 친한 편이지만 강삼재, 서청원 및 한나라당 시절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한 상도동계 김영춘, 박재호 등 직계 일부와는 현재로써는 친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강삼재는 이명박이 정계 입문했을 당시부터 이명박이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이명박이 17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도 대부분 이명박 지지선언을 한 상도동계 중진과는 다르게 이회창을 지지했다. 서청원과는 한때 친분이 있었지만[49] 2007년 서청원이 친박계가 된 직후에는 견원지간으로 변했다.[50] 이는 이재오도 마찬가지다. 또한, 김영춘과 박재호는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한나라당이 민주공화당처럼 변해간다면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했으니 이명박과 친분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시피 하다.
- 박근혜와 친박을 제외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인물들(민주당계, 진보계)에게는 딱히 직접적으로는 크게 언급한 바는 거의 없지만 BBK, 다스 관련 의혹을 모조리 파헤치며 공격한 정봉주는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51][52][53] 정봉주는 이명박에게 직접적으로 고발당해 걸려들어가면서 감옥에 가면서도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감옥에 갔다 와서도 이명박의 대부분의 의혹을 파헤쳤는데, 그 결과 그 말대로 이명박을 구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54]
- 이명박이 궁지에 몰린 직후 오랫동안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조사하던 정봉주가 "지금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다음에는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잘 들었나, MB?"라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곽한구가 정봉주의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서 화제가 됐다.#[55] 곽한구가 이명박을 싫어하는 듯하다.
-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 사격 자세와 관련하여 논란이 인 바 있다. 광대뼈 함몰 사격 자세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엉망인 사격 자세를 보여서 욕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시절 경계 근무 체험을 하면서 사격 자세를 잡았었는데, 그때는 정상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사격자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총기거치대가 탄착지점과 일치하는지 확인했던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참고.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과 서울시장 시절에 찍은 제대로 된 사격 자세 사진도 있다.
- 가훈이 '정직'이라고 한다.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기재되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범죄 수사 및 구속과 대비되면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 이명박의 전 측근인 정두언 전 의원은 2018년 2월 28일 tbs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일종의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정두언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명박은 하늘로부터 항상 보호를 받는다는 선민의식이 있었고, 이 때문인지 사석에서는 "이제껏 나(이명박)를 건드리고서 잘 된 인간은 1명도 못 봤고, 내가 하면 일이 모두 잘 풀린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정두언 혼자만의 주장인데다 실제로 정두언은 이명박에 대해 김희중 아내의 장례식 때 조화는커녕 청와대 직원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거나, 17대 대선 때 이명박의 후보 홍보물을 제작한 재미교포 인쇄업자가 돈을 요구하자 자기 사재를 털어서 막아줬다거나(참고), 이명박이 17대 대선의 사후처리를 위해 국정원 특활비를 썼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가 불분명한 험담을 수차례 늘어놓은 적이 있어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 본인이 뭐든지 직접 나서서 최전방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일을 처리하는 성향이 강한 편이었다고 한다.[56]
- 2018년 구속되어 법정에 섰을 때 검사 측 인원들을 보고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이라고 발언한 것[57] 에 기인한 것을 기반으로 패러디가 되어 인터넷 밈화가 된 것이다. 이 발언을 꺼낸 당사자보단 다른 대상으로 변형한 바리에이션들이 주류를 이뤄 정치와 거리가 먼 패러디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하스스톤에서도 "음...다 아는 책들이구먼."로 패러디되었다. #
5.1. 전과 관련
인터넷상에서는 이명박 전과 14범설이 퍼져 있었다. 이는 2007년 중순 박근혜와 이명박이 대통령 경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당시 박근혜 측 한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으로 추정된다. 당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6.3 항쟁 당시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되었으며, 1996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바 있지만 이는 사면받았다는 정도였다. 그 밖에 CEO 시절 크고 작은 벌금형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본인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려웠었다.[58] 첫 발언 이후 14범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당시 박근혜 캠프 대변인으로 있던 이혜훈으로 알려졌다.
도시전설급으로 취급되었던 소문이 2018년 3월, 공식적으로 '''형사처분을 받은 전과는 총 11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제출한 영장 청구서의 범죄 전력 칸에는 '''지난 1996년 10월 같은 법원에서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죄로 400만원 벌금형을 받은 것을 비롯해 총 11회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적시되었다. 다만, 재판에서 형사처분 받은 횟수만 11회라는 것이지 유죄를 받은 혐의는 최소 11개이거나 그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59] 현재까지는 고려대학교 재학 중 6.3 항쟁 참여로 내란 및 소요죄[60] , 1972년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중 저질렀던 건축법 위반[61] , 1988년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납치 및 노조설립 방해공작, 1996년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죄 등이 언론에서 알려져 있다.
어찌되었든 이명박이 대선 홍보물에 기재한 "전과경력 없음"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10여 년만에 밝혀졌다. 당시에도 이미 공개되었던 학생시위 관련 전과 조차도 없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서 논란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실무상 착오라며 '전과 1건'으로 수정한 바 있다. 물론 이것도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뇌물, 횡령, 직권남용,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뇌물죄에 대해서는 징역 12년과 벌금 130억원을, 횡령 등 나머지 범죄에 대해서는 징역 5년이 선고되 2건의 전과가 추가되어 벌금 130억원을 완납한다는 조건 하에 2036년 11월 13일까지 형을 살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이명박의 전과는 총 13회이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이명박/재판 항목 참조.
5.2. 먹방왕
대통령 재직 시절 냉면은 물론이고 보신탕까지 즐겨먹을 정도로 딱히 가리는 음식이 없었으며, 떡, 만두, 풀빵 등 군것질거리나 젊은 사람들 입맛 음식들인 피자와 스파게티도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대선 광고 때 보여준 국밥 먹방은 보는 사람마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고, 어묵 먹는 사진과 가래떡 먹는 사진도 있다. 심지어 모든 현역들과 예비역들이 악평하는 군대 짬밥도 맛나게 먹는다. 물론 이건 정치인들이 원래 보여주기식 서민 코스프레를 어느 정도 할 줄 안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62] 이명박의 먹방에서는 이런 쇼를 뛰어넘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유나 루리웹같이 반 이명박 성향이 강한 사이트 유저들도 인정할 정도로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그 이유로는 흙수저 출신이라 정말로 음식을 가리지 않는 식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 통설(?)이다. 실제로 대통령 재직 시절에도 밥을 가렸다는 에피소드가 없고[63] 같은 흙수저 출신 자수성가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한 먹방 했었다는 사실과, 반대로 먹방을 못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반대로 금수저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법 설득력 있는 추측이다. 실제로 이명박이 유일하게 가리는 음식은 잡곡밥인데, 어린 시절 쌀밥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쌀밥에 한이 맺혀서 잡곡밥을 가리는 식습관은 이명박과 비슷한 나잇대의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노년층들 대부분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명박은 사실상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대선 후보 당시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 MC 김승현이 이명박의 집을 찾아가서 아침밥을 대접받았는데,[64] 찌개 사이즈의 돌솥에 쌀밥을 짓고 날계란을 넣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65] # 뜨거운 쌀밥에 계란과 간장을 넣고 비빈 간장비빔밥은 기운이 없을 때마다 별식으로 부탁해서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후쿠시마 오이 먹방만은 실패했다. 사진을 보면 어째 셋 다 찝찝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다. 후쿠시마 오이 시식은 사전 협의도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식 이벤트 내용을 갑작스럽게 통보받고 시행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이명박이라도 제대로 먹방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참고로 좌측의 일본 정상은 당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우측은 중국 총리 원자바오다. 그래도 한입 베어먹고 만 둘과는 다르게 이명박은 한 개를 다 먹었다.
당연히 위험한 오이는 아니었고, 후쿠시마산 오이 시식을 할 것이라는 통역을 들은 각국의 수행원들도 황급히 현장에 준비된 오이와 방울토마토의 방사능 수치를 직접 검사했다고 하지만, 방사능 위험 논란이 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외국 정상들에게 반강제로 먹이는 장면이어서 외교적으로 심각한 결례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대중과 TV 카메라가 보는 공개적인 장소였기에 외교적으로 일본을 배려해서 웃으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수행원들도 지나친 행동이며, 놀림을 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한 꼴이라고 반발했다고 한다. 일본이 방사능으로 나라가 망하니 마니 하는 정신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앞뒤 가릴 거 없이 연출한 장면이어서 국제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에 반해 국산오이를 먹는 모습은 정말 완벽하게 맛있어보이게 찍혔다. # 심지어 저것도 기획된 쇼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그 이유는 자기가 알아서 먹게 내버려 두면 상상 이상으로 먹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66] 누가 옆에 있어도 저렇게 먹는데 대체 풀어놓았으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저렇게 너무 먹성이 좋았던 탓인지 퇴임 후 당뇨병에 걸렸다고 한다. 전두환의 알츠하이머병처럼 보석을 위한 거짓이라고 의심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혈당과 병원 기록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실제 당뇨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같은 대식가 대통령인 김대중도 당선 전부터[67] 당뇨병에 걸렸다.[68] 최측근 중 한 명인 이동관 전 홍보수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부터 있었던 지병이며 가족력의 영향도 있다는 듯 하다. # 이게 맞는 말인 것이 당뇨병은 생활 및 식습관이 좋은 사람들도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 대체로 유전 혹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대통령직이 주는 격무량과 스트레스, 나이를 감안하면 걸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만, 아직까지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봤을 때 본인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듯 하다.[69]
5.3. 수트핏의 대가
과거 대기업에서 고위직을 오래 지낸 경험 덕인지 양복 고르는 안목도 제법 있는데다가 대통령 중 비교적 큰 키에(173cm)[70][71] 슬림한 몸매 덕인지 수트빨을 잘 받는 패셔니스타이기도 하다. 연관 검색어에도 수트핏, 수트간지 등이 있을 정도. 다른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봐도 신체비율도 일품. 때문에 얼굴만 가린 채로 낚시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수트핏의 경우 이명박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이상득도 정장을 보는 안목도 똑같이 뛰어난데 이명박보다 키가 더 크기까지 해서 이상득에 비해서는 수트핏을 한 수 아래로 친다.
그리고 자기관리에도 철저해서 샤넬 메이크업 베이스, 유리아주 립밤, 크리스챤 디올 립글로우, 아벤느 미스트, 설화수 기초 등을 사용한다고. 인터넷에서는 맹뿌템, 명박템으로 불리고 있다. 기자들이 그가 지나가면 짙은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렇게 자기관리가 철저한 덕에 나이에 비해 엄청나게 동안이다. 대통령 재임 시절 60대 후반~70대 초반이었는데, 5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당한 동안을 자랑했다. 주름이 비교적 없어서 5살 어린 전임자 노무현보다 오히려 젊어보였을 정도. 노무현은 긴 흡연력으로 인한 팔자주름이 깊게 패이는 등 주름이 많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이명박은 동안으로 보이기 좋은 큰 눈, 동그란 얼굴 등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음에도 오로지 피부관리와 염색, 금연 등의 관리만으로 괄목할 수준의 안티에이징을 이루어 냈던 것이다. 꾸준한 피부관리와 노화방지 케어가 얼마나 사람의 인상을 달라지게 하는지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물론 그도 탈모는 피할 수가 없어서 서울시장 재직 중 모발이식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재직 초기와 후기 사진의 차이가 확 느껴진다. 현재 약 15년쯤 지난 후라 다시 머리가 듬성듬성한게 보인다.
6. 어록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겁니다. - 1965년 이낙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의 대화 중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여러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준비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것도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 1996년, 와이제이 학사고시 광고
부모가 뭐하는지 알릴 만하면 이 장사 하고 앉았겠어요, 제가? 그걸 왜 물어봐요, 어른이. '''"너 이름이 뭐지?"''' 이름 알아서 뭐해요. 돌아가면 잊어버릴 텐데, 이름 알아서 그 이름 가지고 자기가 메모했다가 이 다음에 뭐 도와줄 거에요? 아마 그 어른은 돌아가서 "내가 길바닥에 있는 한 놈을 내가 용기를 줬다"고 할는지 몰라요. 저는 그 어른이 지나고 난 다음에 수모까지 느껴요. 차라리 모른체 하고 지나가지. - 횐돌산 수양관 간증에서 고등학교 시절 장사 경험을 밝히며
저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해서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을 하기도 하고, 고생을 해서, 지금 정부에다가 제출해서 이제 며칠 전에 예비 허가 나왔습니다.- 2000년 광운대학교 강연 중에서[72]
기본적으로는 낙태에 대해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2007년 5월 1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 배우들이 많이 뜨잖아요. 그 영화는, 거기 중견배우들이 '''살짝 한물 좀 가신 분들'''이 모여가지고 한거야. 돈 적게 들이고 돈 번 거야. 그 배우들, 돈 적게 준거 같던데, 딱 보니까. 아주 머리를 썼더라고요. 내가 딱 보니까 그래. 아주 여럿이 있었는데, 한때 다 인기가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아마 그 배우들은 요즘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적게 들었을거야. 아, 아이디어, 벤처 아이디어다,''' 이게. 그렇잖아요. 요즘 비싼 계약하고, 젊은 배우 막 스카웃해 가지고 말이지, 그렇게 만든 영화가 아니고, '''시간이 남아가지고 말이지, "누가 안 불러 주나" 하고,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 말이지,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을, 역을 하나씩 다~ 줘 가지고,''' 활발하게 나오게 만드니까 얼마나 좋겠어.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왔을거야.''' (돈을) 준다고 계약하고, 실제로는 안 줬는지…. - 2007년 5월 19일,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백종진 벤처기업회장이 "이 전 시장께서 우리가 만든 '마파도2'를 함께 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이명박이 밝힌 '마파도2 감상 소감'
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사천 당원간담회에서
지난 2002년 김대업 같은 인물을 만들고, 정부의 모든 기관이 힘을 모아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했는데, 끝나고 나니 새빨간 거짓 음해임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김대업을 여러 명 준비해서 하나씩 내놓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통영·고성 당원간담회에서
저는 군대를 무척 가고 싶었습니다. 갈 수만 있었더라면 어떻게해서든 아마 갔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기침) 입학을 하고 저는 이태원동 재래시장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환경 미화를 하면서 다녔고, 제 어머니는 그 시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2년간 그 일을 하니깐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싶고, 그 기간에 군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기침)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만은 뜻 밖에 제가 기관지확장증 등 몇 가지 요인으로 퇴출 당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군의관에게 치료를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군대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만은, 결국엔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침) - 2007년 한나라당 예비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병역 면제 사유를 묻자
도곡동 땅,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은'''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이상 무슨 표현이 필요합니까. - 2007년 8월 16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기자회견에서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중략) 누구도 나의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 2007년 8월 17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서울합동연설회에서 (풀영상)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중략)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방이 어디 갔습니까? 허풍입니다, 허풍!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강재섭 대표 얼굴만 보면,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 2007년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농담조로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아마 내년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중략)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중
우리 내외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합니다. 그 외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겠습니다.''' - 2007년 12월 7일 대통령 선거 전 KBS 선거방송연설 중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쳤나 저게, 옛날엔 안 그랬는데 저렇게. - 2007년 박영선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명박에게 악수하면서 "왜 그러세요?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하면서 쏘아 붙이자 맞받아치면서[73]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열 번, 백 번을 수사하고 특검을 하더라도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2007년 12월 18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 2008년 6월 19일 촛불집회 관련 대국민 담화
그렇지만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2009년 6월 29일 18차 라디오 연설에서
그... 왜... 장사가...어... 야, 이것 좀 이것 좀 사먹어라 야~ 뻥튀기! (중략) 내가 노점상 할 때는 슈퍼마켓이 없었거든! - 이문동 재래시장에 방문해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
저는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2009년 7월 27일 20차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 2011년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중
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부모님을 잘 모셔야지'"2012년 12월 19일 청운동 투표소,,#
(지금 시국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소속이 어디에요? (저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어?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대표로 묻는 거 아니죠? (시국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시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죠. 어떻게 이렇게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위에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않은 국민들도 똑같은 심정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의 뜻을 잘 받아줬으면 좋겠고... 이 나라는 선진국 문턱까지 왔고, 또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헌법적인 절차가 중요하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도 거론되고 있는데) 그것도 헌법적인 절차의 하나죠. - 2016년 1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의 묘지 참배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물음에
본인이 뭐라고 하든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순리대로 따르면 되겠죠. - 2016년 12월 18일, 박근혜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박근혜가 탄핵 사유를 부인하자
아이고. 좀 잘해! 잘해가지고 모범을 보여야지. (중략) 시작은 좀 미약해도 끝이 아마 좋을 거야.- 2017년 3월 22일, 이재오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예방하러 오자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발전하는 동안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기침)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것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파괴해서는 아니 됩니다'''. -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전 인터뷰에서
그건 나한테 물어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2017년 12월 18일, 국민들이 "다스는 누구겁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라는 질문을 받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침)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기침)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기침)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 2018년 1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2018년 3월 14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 2018년 5월 23일 공판에 참석하여 검사석을 보면서 한 말
'''내가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아네, 나도 모르는…."''' - 2018년 5월 23일 공판 종료 후,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법정 맨앞에서 재판을 방청한 가족들에게 잠시 다가가며
7. 저서
- 신화는 없다 : 1995년에 이명박이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쓴 수필.
-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 2008년 대통령 취임 직전에 출간한 에세이.
- 대통령의 시간 2008-2013 : 대통령 퇴임 이후 쓴 회고록.
8. 가족 관계
-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1)[90] / 어머니 채태원 (? ~ 1965)[91]
- 누나 이귀선 (1929 ~ 2010) / 夫 김일용
- 조카 김동석
-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74]
- 형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 조카 이??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75]
- 형 이상득 (1935 ~ ) 前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 조카 이지형 (1966 ~ ) 前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77]
- 종손 구??[76]
-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78]
- 누나 이귀애[79]
- 본인 이상정 (나중에 이명박으로 개명) / 妻 김윤옥 (1947 ~ )
- 여동생 이귀분[87] / 夫 김진 에스엠 대표[88]
- 남동생 이상필[89]
- 누나 이귀선 (1929 ~ 2010) / 夫 김일용
9. 각종 타이틀
- 김대중에 이어 2번째 기업인 출신 대통령
-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 출신[92] 이면서 유일한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출신 대통령[93]
- 유일한 샐러리맨 출신 대통령
- 최초로 외국에서 출생한 대통령[94]
- 최초의 군면제자 대통령
-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다 득표율 차로 당선된 대통령[95]
- 재임기간 독도를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96]
- 6공 출범 이래로 임기 말에 탈당 및 당적변경을 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97][98]
- 헌정사상 4번째로 법정 구속된 전직 대통령
- 유일하게 임기 중 두 명[99] 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를 지켜본 전직 대통령[100]
10. 선거 이력
출마한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단, 15대 국회는 중간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11. 소속 정당
12. 관련 문서
12.1. 공약
12.2. 발언
12.3. 관련 사건
12.4. 기타
- 제17대 대통령 선거
- 이명박/별명
- 이명박근혜
- 친이
- 명박산성
- 내가 직접 나서겠다
-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 어맹뿌
- 명텐도
- 메이명박: 이명박을 모티브로 하여 예명을 지은 유튜버로, 자세한 건 문서참조.
- : 한때 구글 번역에서 하츠네 미쿠가 이명박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Bing에서는 아직도 이런다. 현재는 어느정도 수정되었지만, Bing 번역기를 사용하는 페이지는 아직도 이런다.
- : 북미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서 활동했던 3인조 태그팀 프로레슬러로 본래 팀명의 정의는 3 Man Band 첫글자 이니셜을 따서 지어진 팀명이지만 전직 대통령과 이니셜이 같다보니 한국팬들 사이에서 불리우고있는 한정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