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토바 나오키
1. 소개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 전직 야구선수이자 현직 1군 배터리코치.
2. 프로 시절
메이지대학 야구부 주장을 맡았고, 대학리그 베스트나인을 두번이나 수상하며 대졸 포수 최대어로 꼽혔다. 결국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다.
2.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그러나 조지마 겐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마토바는 백업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조지마가 메이저리그로 떠나자 가장 주전포수 역할을 잘 수행할 것으로 보였지만 다른 신인포수들이 약진하면서 결국 사이토 카즈미의 전담 포수자리밖에 얻지 못했다.[5]
2009년에는 그마저도 못하면서 시즌 직후 방출.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그러나 은퇴하지 않고 현역 연장 의지를 표명하고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을 통해 치바 롯데 마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합격하여 2010년 시즌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게 되었다.
2010년 시즌에는 사토자키 토모야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시즌 초반에는 주전포수로 나섰고, 후에는 백업포수로 전락하였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해 일본시리즈에도 대수비로 1경기 출장하여 우승반지도 획득.
그러나 2011년에는 아주 간간히 출장하였고, 2012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시즌 종료 후 방출당했다. 방출과 동시에 은퇴 선언.
2.3. 은퇴 이후
그 후 소프트뱅크 전력분석원을 거쳐 2014년 닛폰햄 2군 배터리코치로 취임하였고, 2018년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배터리코치를 맡게 된다.
3. 플레이 스타일
어깨가 강한 수비형 포수. 그러나 공격력이 심하게 쓰레기라서 통산 타율이 1할 6푼(...) 선구안도 좋지 않았다. 거기다가 주목받았던 수비력도 2군에서나 먹힐 수준이었기 때문에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어찌어찌 하기는 했지만 결국 통산 100안타조차 치지 못하고 은퇴.
그래도 롯데 이적 직후에는 수비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시즌 초반에는 주전 자리를 꿰찼다. 반 시즌만에 밀려나 버렸지만.
4. 연도별 성적
5. 기타
- 아버지가 스님이다. 뭔가 이상해 보이겠지만 일본에선 스님도 결혼 가능하다는 걸 알아두자.
- 눈물이 많은지 2005년~2006년에 둘 다 플레이오프 패배로 일본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 AKB48의 상당한 오타쿠인듯 하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롯데 재적시절에는. 등장곡과 응원가만 봐도 뭐... 심지어 응원가로 쓰인 みなさんもご一緒に는 누구나 쉽게 들어봤을 AKB 전성기 시절의 싱글 타이틀곡도 아니고, 극장 세트리스트의 수록곡인데 이 곡을 알고 있을 정도면...
- 전술했듯이 사이토 가즈미의 전담포수로 유명한데 입단할 때 사이토 가즈미는 조지마 겐지가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자리잡고 팀을 우승으로 이끈 1999년 드래프트에 지명을 받고 입단한 동년의 마토바를 보면서 "(조지마가 팀의 중심타자이자 주전포수로 자리잡아버린 팀에 덜컥 들어온) 저 녀석 어떻게 하면 좋으냐...가망이 없잖아"라고 속으로 동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2군에서 자신의 볼을 받아주는 상대역을 맡기면서 하면서 친교를 다졌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이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하면서 발언력이 생기고 조지마가 메이저리그로 이적하자 포수자리에 괜찮은 타격실력을 가진 타노우에 히데노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등판하는 경기에는 무조건 마토바가 공을 받아줄 것을 요구하면서 마토바를 계속 1군에 대동하게 했고 선수생활 연장에 도움을 줬다. 그리고 사이토가 어깨부상으로 긴긴 재활에 들어가게 되자 본인을 보호해오던 배경이 사라진 마토바도 더불어 1군 무대에 출전기회가 줄어들었고 결국 방출을 당했다.[6]
[1] 입단 당시에는 다이에 호크스였다.[2] 자주 바뀌었다. 2010 시즌에는 大声ダイヤモンド도 쓰였다. 2011년에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과 Everyday、カチューシャ를 사용한 것도 확인되었다.[3] 영상, '욧샤 이쿠조!'때 모두 다같이 점프하며 일어나는 모습이 장관이다.[4] '''いっけー!いけいけいけいけ 的場!ヨッシャーいくぞ!ラララララ(的場) ラララララ(的場)的場直樹の出番だ 俺たちの期待に応えて それ打て的場(가자 가자가자가자가자 마토바! 욧샤 가자! 라라라라라 마토바 라라라라라 마토바 마토바나오키의 차례다 우리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자 쳐라 마토바)'''[5] 그러나 사이토와의 호흡이 잘 맞아서 리그에서 시상하는 최우수 배터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6] 여담으로 마토바가 아예 1군에 오르지 못한 2009년에 타노우에는 26홈런을 치면서 거포형 포수 포텐이 터지고 베스트나인까지 수상했다. 그 다음 해에는 부상과 부진으로 주전과 백업을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최우수 배터리상까지 수상했으나 그 뒤로 어깨 부상 등으로 완전히 몸이 박살나면서 3년 동안 1군 30경기밖에 나오지 못하고 2013년 시즌 이후 은퇴했다. 마토바보다 1년 늦게 은퇴했지만 마토바가 3살 더 많고 둘 다 대졸인 걸 감안하면 오히려 선수생활은 마토바보다 짧았다. 물론 출장경기, 타석, 안타, 홈런, 타율 모두 타노우에가 더 앞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