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신성 로마 제국)
[image]
생애 : 1557년 2월 24일 ~ 1619년 3월 20일
재위기간 : 1612년 6월 13일 ~ 1619년 3월 20일
루돌프 2세처럼 무능하지는 않고 유능했으나 매우 불운했던 황제이다.
1578년에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을 받아 브뤼셀로 갔는데 그 곳에서 마티아스는 네덜란드 독립군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마티아스는 그것을 거부하고 네덜란드에서 빠져나왔다. 1593년 마티아스는 오스트리아 총독의 자리에 오른다.
마티아스 대공은 루돌프 2세 대신 전권을 맡아 1593년 ~ 1606년 헝가리에서 벌어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Long War)을 끝냈다. 루돌프 2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마티아스는 유력한 황제 후보로 떠오르게 된다.
1605년 루돌프 2세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메기 시작했다. 헝가리 인들은 루돌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새로운 전쟁을 기획하는 것에 화가 났다. 많은 헝가리 귀족들에게 마티아스는 평화를 지킬 수호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합스부르크 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무능한 루돌프 2세에게 이미 희망을 버렸으며 마티아스가 새로운 황제로 오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1606년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반란을 일으켰다. 새로운 황제로 마티아스를 내세우기로 결정한 것이다. 루돌프 2세는 보헤미아로 도망갔으나 보헤미아의 신교도들은 그들을 탄압했던 황제를 매우 싫어했다. 1608년 마티아스는 황제로부터 차기 보헤미아 왕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물론 헝가리 왕, 오스트리아 대공의 자리가 넘어왔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마티아스는 헝가리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는 협정을 맺는다.
루돌프 2세는 이 미치도록 미운 동생을 제거하기 위해 용병대로 마티아스를 해치우려는 방법을 썼으나 마티아스는 그것마저 가볍게 막아낸다. 용병대가 보헤미아에 와서 난리를 피우자 보헤미아 인들의 청원을 빌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용병대를 무찌르고 보헤미아 인들에게 신망을 얻은 것이다.
1612년 마티아스는 선제후들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그는 우선 헝가리에서는 종교의 자유롤 보장했으나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가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는 클레즐 추기경에게 거의 전권을 맡겼는데 클레즐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화합하도록 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마티아스의 동생 막시밀리안 대공이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막시밀리안 대공과 슈타이어마르크의 페르디난트 대공은 철두철미한 가톨릭 교도였다. 1618년 보헤미아에서 프라하 투척 사건 이후 개신교도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막시밀리안과 페르디난트는 클레즐 추기경을 체포해 티롤에 있는 암브로스 성에 가두었다. 마티아스는 노쇠해 정신이 혼미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보헤미아 왕의 자리에 올라있던 페르디난트는 헝가리 왕에 올라 차기 황제로서의 길을 나아가게 되었다.
마티아스 황제는 1619년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62세의 나이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