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절

 


1. 網切
2. 시조
3. 문중
4. 후손들
5. 참고 자료
6. 기타


1. 網切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일본 제번씨족(諸蕃氏族). 본관은 도간(島間, しまま)밖에 없다.[1]

2. 시조


1971년 귀화한 망절일랑(網切一郞)이다. 일본식 이름은 '아미키리 이치로'(あみきり いちろう)이다.

3. 문중


망절일랑이 귀화하게 된 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그는 1942년 경상남도[2]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는 한국인 양두연이고 아버지는 일본인 아미키리 요시우에몬(網切 義右衛門)으로 경찰간부(경무과장)였으며,[3] 망절일랑은 [4] 독자였다. 광복이 되던 무렵 가택연금 중이던 부모가 강제송환 당할 때, 그는 마침 이웃에 놀러가 있었던 때라 부모와 떨어져 4살 때 혼자 한국에 남겨졌다. 일본식 이름인 데다가 학창시절 한국어에 서툴러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그후 외할아버지 양모씨[5]의 보살핌을 받았고 호적에는 외가의 성인 '양일랑'이란 이름으로 올랐다.
진해 충무상업고등학교(현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 전신)를 중퇴하고 부산축산협동조합에서 취직했으며 1968년 군대에 입대했다가, 1970년 일본 가고시마현(鹿児島県)에 살고 있던 아버지 요시우에몬과 상봉하고 일본 국적을 회복했지만 이듬해 곧바로 한국에 귀화했다. 일본에 있는 사촌과 유산문제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망절일랑은 버섯 재배업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으며, 해마다 사는 곳인 경상남도 양산시[6]와 일본 쪽 고향인 가고시마현의 농민끼리 서로 와서 묵는 민간외교를 해왔으며 일본이 한창 독도영토분쟁을 하던 때에도 홈스테이는 이루어졌으며, 망절일랑은 반일을 하지 말고 경쟁으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미래지향적 다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평소 저혈압 증세가 있었다는 그는 2012년 8월 21일 양산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뇌졸중으로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7]

4. 후손들


망절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약 10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5. 참고 자료



6. 기타


  • 비슷한 유래를 가진 성씨로 즙(辻)씨가 있다.

[1] 가고시마현 쿠마게군 미나미타네정에 속한 곳이다.[2] 신문기사에 따라 김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과 진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이 공존하는데 진해에서 학교를 다닌 기록으로 볼 때 진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3] 일본측 주장에 의하면 경찰간부가 아닌 버스회사 경영자였다는 설이 있다.[4] 8대 독자라는 이야기는 중앙일보 일본어판 기사에만 등장하고, 다른 기사에는 드러나있지 않은지라 일어판 중앙일보의 보도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다.[5] 2006년 기사에는 양모씨가 이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2010년 기사에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외조부이다.[6] 하북면 백록리에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와 붙어 있다. '망절농장'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간판이 바로 보인다.[7] 여담으로 KBS1 세상사는 이야기에 망절일랑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는데, 방영날짜가 망절일랑의 사망 2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