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1898년)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507호

'''508호'''

509호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대한매일신보


1. 개요


每日新聞
주간지였던 기존의 협성회회보일간지로 전환하면서 이승만, 양홍묵, 유영석 등이 1898년 4월에 창간한 신문이다. 한국 최초의 민간 일간지이다.[1]

2. 상세


1면에 논설, 2면에 내보·관보·잡보, 3면에 외국통신과 전보, 4면에 협성회의 회중잡보와 광고 등을 실었다. 순한글 신문이었으며 한글신문시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외세에 저항하는 한국 신문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898년 5월 16일자(제32호) 1면에 러시아프랑스대한제국 정부에 대하여 토지와 탄광에 관한 이권을 요구해 온 외교문서를 폭로하여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두고 내분이 일어나서 이승만과 유영석이 해임당했고 그들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신문을 창간했다. 매일신문은 그 뒤로도 재정난이 계속되어 1899년 4월 4일자를 끝으로 종간했다.
2012년 10월 17일에 국가등록문화재 제508호로 지정되었다.

[1]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은 2년 앞선 1896년 창간되었으나 주 3회 발간됐기 때문에 일간지는 아니었다. 독립신문이 일간으로 바뀐 시점은 1898년 7월로 매일신문보다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