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사이드
1. 개요
[image]
- 사이트 제작 당시 이미지
DUNGBIG(덩빅)[2] 이란 유저가 운영했던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팬사이트이자 커뮤니티. 2006년 9월 29일에 폐쇄되었다.
* 맵사이드 탄생 시기를 이미지 및 백업파일을 통해 정확한 날짜를 입력중입니다. 덩빅이 2002년도 중-후반부터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2003년도 초~중기에 영원한 쉼터를 리뉴얼하면서 런칭하였습니다.
2. 역사
2.1. 탄생배경
맵사이드의 탄생은 스타크래프트맵 & 웹진(SCMAPZ; StarCraft MAPZine)라는 스타크래프트 맵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3] 맵진은 초기 유즈맵 사이트의 한 뿌리가 되었으며, 맵사이드 또한 이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Scmapz는 운영진의 운영부재와 비매너 유저의 급증으로 인하여 리뉴얼이라는 목적으로 사실상 폐쇄가 된다(늦게나마 리뉴얼이 완료되었지만 이미 대부분이 떠난 상태).
해당 웹사이트가 2002년 봄에 들어서자 후기로 접어들게 되면서 마침내 같은 해 9월 세디터(SSeditor)로 변경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2003년 여름에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이후 Scmapz는 포럼(4rum)과 세디터(SSeditor)로 분리된다.
포럼의 경우 기존의 Scmapz 유저의 유입이 많아 또 다시 맵계가 르네상스를 맞이하지만 운영진의 계정문제로 인한 다툼, 워크래프트3의 등장으로 스타맵에서 워크맵 중심으로 사이트가 전환되었고 스타맵은 포기했다.
세디터의 경우 맵사이드와 가장 유사한 형태(외계어의 금지라던가, 통신어의 금지, 하지만 햏언은 금지하지 않았다)를 띄었으나 비일관적인 운영 행태, 워크래프트3의 등장, 비매너 유저의 재유입으로 인하여 Scmapz 와 마찬가지로 리뉴얼을 선언. 사실상 사이트를 폐쇄한다.
이 시기, 덩빅이 자신이 2002년 여름부터 운영하던 작은 홈페이지를 2003년 초, 사이트를 확대시키면서 맵사이드가 개설된다.
2.2. 초기
초기의 맵사이드는 세디터를 계승한 형태로 외계어, 통신체(하오체, 초성체 등) 사용금지. 자유게시판 글 줄수 규정 등 상당히 엄격한 규율로 사이트를 운영하였다. 하지만 2004년의 맵사이드는 규율 범위 내에서 상당한 자유를 보장하며 기존의 Scmapz와 세디터가 오랫동안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맵 관련 내용이나 외적의 내용도 굉장히 잘 다루는 사이트였기 때문에 상당한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 시기는 유즈맵에 대한 연구의 증진을 보여주는 시기였다. 이전까지는 공방 유즈맵은 해외에서 유래한 것들과 간단한 형식의 맵들이 많았으나 맵사이드를 통해 스타크래프트 맵의 새로운 장르 [4] 가 등장하고 개량, 발전되면서 공방 유즈맵계는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었다. 이 때 나왔던 장르에는 AOS류 게임(고대의 문), 디펜스맵(뚫훓송 타워디펜스 등), 영상맵(버서크 광기의 배틀쿠르저 CF 시리즈, 빨강망토 차차, 황혼 등), 컴싸맵(판타지마스터) 등이 있었다. 또한 이 당시는 맵 관련 정보 교환이 수월했으며 올드 유저들이 PC통신 시절부터 제작되었던 맵을 자료실에 쌓고 여기에 활발한 새로운 맵의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한편 스타크래프트의 소스 자체를 뜯어 활용하는 특수 에디터가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또한, 신규 맵 제작자의 유입을 위해 누구나도 따라할수있는 유즈맵 강좌가 있어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었다.
메신저 체계가 MSN에 맞추어져 있었고, 이 문화는 인투더맵에도 계승되나, 이후 인투더맵은 MSN보다는 배틀넷 채팅이 더 강화되었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발전속도가 가장 비약적인 시대였다. 당시에는 실질적으로 유즈맵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이트.
2.3. 중기
2005년 1월에 들어서면서 덩빅의 부재가 시작되었고 덩빅 외에는 총 관리자가 없었으므로 이해부터 맵사이드 내 회원들의 무개념화 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렇게 되자 구역을 맡아 관리하던 관리자들은 철권 통치를 감행하게 되고 각 게시판에 소위 규칙이 아닌 '''법전'''이 세워지면서 레벨 강등과 IP밴이 수두룩하게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배틀넷에 맵사이드 채널이 창설된다. 하지만 채널의 운영자가 되는 과정, 채널 관리자를 정하는데 형평성이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5] 특히 형평성이 떨어지는 행동은 타 유즈맵 채널의 빈축을 사서 많은 질타를 받는다.
반면 일반 유저 사이에서도 여러가지 잡음이 있었다. 한 예를 들자면 테빈[6] 이라는 유저가 자유게시판, 맵자료실 등에서 농간이라는 코드를 밀었던 사건이 있다. 농간 코드란 모든 것을 농간으로 연결지어버리는 소위 개꿀잼몰카류의 억지밈이었다. 하지만 이에 호응하는 신도라고 불리우는 유저들이 생겨나고 차후 하나의 조직과 같은 형태가 이루어지자 덩빅이 테빈을 제재했다. 테빈은 이 이후로 맵사이드를 떠나게 되었고 친테빈파가 대부분 맵사를 M4라고 하며 까기 시작했다.[7] 이 이후 테빈은 인투더맵의 창설멤버가 된다.
이와 별개로 맵 제작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 여러가지 스타크래프트 에디터에 대한 꾸준한 연구 결과가 맵에 활용되면서 이전의 맵과 질적 차이가 벌어질 정도가 되었으며, EUD 기술[8] 이 발견되면서 맵 제작에 혁신이 일어났다.
2.4. 후기
2005년 12월 마침내 덩빅이 1년간의 공백기를 끝냈지만 이미 맵사이드의 사이트 균형은 크게 붕괴된 상태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덩빅이 직장을 가진 사회인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12월에 돌아오면서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덩빅은 수험에 실패하여 군 입대 문제가 생겼던 상황이었다. 결국 2006년 3월 군대 문제로 인하여 덩빅은 '''rpgkdh(게하오)'''[9] 에게 부운영자 권한을 넘겼지만 게하오는 운영진, 회원 숙청에 들어가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게하오는 기존의 운영진이 행해왔던 과거의 잘못[10] 을 들추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정확한 근거를 알리지 않고 대부분의 운영진을 강등하였다.[11] 결국 3개월 뒤인 2006년 6월에 들어가서는 운영진은 게하오와 그의 추종자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강등당한 기존의 관리자들은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며, 개설 준비중인 인투더맵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맵사이드에는 게하오가 독재하려 한다는 나쁜 소문을 퍼트림과 동시에, 인투더맵을 찬양하는 글을 올리게 되면서 맵사이드의 체계가 흔들리게 되는 근간을 마련하게 되었다.[12] 그들로 인해 사이트 곳곳에서는 이성을 잃은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으며,[13]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맵 제작이라는 사이트 본래의 취지는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온 DUNGBIG은 게하오를 쫓아내고 잠시 맵사이드 운영권을 쥐고 있다가 예고없이 갑자기 폐쇄에 관한 심경만을 남겨둔 채 즉시 맵사이드를 폐쇄한다.[14]
폐쇄 예고 없이 즉시 폐쇄되었기에 당시 게시판에 있던 여러 맵 데이터 및 맵 제작 스킬, 공략, 창작 소설들이 사라지게 되었다.몇 몇 자료는 아카이브를 통해서 복구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의 자료가 즉시 폐쇄로 인해 유실되었다.작성일: 2006/3/25
글쓴이: DUNGBIG
처음에는 그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조용하게 사이트를 운영하려고 만든 것이었지만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영원한 쉼터가 커져서 맵사이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고 너무 키운 것이 잘못된 것이었으며 제가
운영자였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 만든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가장 시간이 없던 때 만들었고 첫 시작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안목을 기르지 못한 점과 지금 이 인터넷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고집을 부린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맵사이드가 웹으로서 커뮤니티로서 너무 커지자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도 당연 나타났고
계약을 하자니 뭘하자니 자기가 운영을 하고 싶다니 뭐가 안좋다니 뭐가 잘못됐다니
하는 말들이 쏟아져오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일찍 인지하지 못하고 맵사이드의 본래
취지를 잊고 받아드린 저의 잘못이 매우 큽니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순수함을 원했던 것, 너무 완벽한 규율을 원했던 것, 모든 사람들이
규율과 순수함을 지켜줄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 제가 활동했던 조그만한 커뮤니티였던 Aod 처럼 단 한번의
싸움 없이 모든 사람들이 공지를 다 지키고 맵이라는 하나의 길에 모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사람을 잘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실수도 하고 안볼 수도 있고 제가 속했던 작은 커뮤니티의 '어른' 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반항적인 세대와 같이 있었다는 것을 자각 못했습니다.
그저 씨끌벅적하고 신나고 평화로웠던 그 곳처럼 언제나 사람들과 맵 테스트를 하고
맵 기술 하나에도 모두가 신날 수 있는 그 곳을 원했습니다.
그 곳처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그 동안 불태웠던 시간 새벽까지 죽도록 작업했던 시간, 아무도 노력을 알아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비웃었던 그런 곳이었지만 제가 가장 사랑했던 곳입니다.
이제 더 이상 저에게 시간은 없습니다.
제가 꿈꿨던 이상향, 시간에 의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 곳.
다음 맵계에 제가 돌아올 때는 그저 한 명의 맵메이커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들과 맵을 플레이 하렵니다.
모두 권력자였던 덩빅이 아닌 맵메이커였던 덩빅을 기억 해 주길 바라면서
모두들 사랑합니다.
-맵사이드에 접속하면 나왔던 글
3. 논란
3.1. 언프로텍트 논란
언프로텍트는 맵 에디터에서 맵을 열 수 없도록 한 '프로텍트' 행위를 되돌려 맵을 열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스타크래프트(워 크래프트를 포함하여)를 비롯한 RTS게임 맵계에서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돈 무한, 방장 사기, 한 플레이어만 섬맵 만들어놓기 등 불법수정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며, 악질적인 경우 제작자의 이름을 바꾸어 유포시킨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프로텍트가 생긴 것이었다.[15] 쉽게 말하자면 불법수정을 막기 위해 프로텍팅기법이나 MPQ를 다룰 줄 모르는 일반인을 위해서 프로텍트가 만들어진 것이지,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프로텍트와 언프로텍트가 존재할 리 없을 것이다. 애초에 '''맵사이드가 생겨나기도 전에 외국에서 제작된 GuEdit, SEditor 등의 툴에서 이미 프로텍트를 지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프로텍트의 필요성을 맵사이드 이전 시대의 맵 제작자들이 이미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16]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 맵 에디팅에 공식적인 법적 언급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타크래프트 맵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맵퍼를 고용하였던 온게임넷과 MBC GAME 측에서도 공식 맵을 배포할 때는 프로텍트를 걸어 배포했으므로 이러한 논리는 당시 기준으로는 타당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개마고원 같은 경우 프로텍트가 되어 있지 않은 원본을 김진태가 남기지 않고 군대에 가버려서 변종석이 원본을 따라서 지형을 찍어 새로 맵을 만들었다. 맵의 수정이나 공부를 위한 언프로텍트는 허용해야 한다던 일각의 주장과는 반대로, 당시 '공식 맵'이라는 개념으로 불리고 있었던 맵을 제작하는 게임 방송사 측에서도 스타크래프트 맵에 걸린 프로텍트를 푸는 것이 문제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는 증거.
이러한 당시의 여론에 따라서 맵사이드에서는 언프로텍트를 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맵의 수정, 버그 수정을 원한다면 원작자를 찾아가서 요청하고, 그것이 안 된다면 본인이 직접 맵을 만들라는 입장. 따라서 맵사이드 측에서는 자체 내부에서의 법전에 따라 언프로텍트를 금지했으며, 자체적으로 MSP(Mapside Protector), SKL(Seunkey's Lock : Seunkey는 맵사이드의 유저 이름임) 등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새로 배우는 맵퍼들의 장애이기도 했다. 이 점은 맵의 프로텍트를 풀지 않고 맵의 트리거와 사운드를 추출할 수 있는 툴이 후에 개발되면서 어느 정도 문제가 해소되었다. 한편으로 맵의 저작권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으나, 이에 대해서 블리자드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은 2010년 스타크래프트2 발매 전후의 일로 맵사이드가 있을 당시에는 블리자드는 유즈맵을 거의 방치하고 있었다.
반면 스타크래프트 맵진(다음 카페)과 RPG 길드 등 맵사이드 외의 사이트에서는 언프로텍트를 허용하거나 도와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맵을 수정하거나 버그를 수정하기 위한 언프로텍트에는 비교적 관대했다. 이로 인해 맵사이드는 타 사이트와 잦은 충돌을 빚었는데, 이 충돌이 아이러니하게도 RPG 길드 출신의 rpgkdh가 운영자로 취임하면서 혼란 속에서 사이트가 망하고 말았다. 참고로 rpgkdh는 언프로텍트 문제에 대해 2010년에도 맵 제작자들과 마찰을 빚으며 "제 기준에는 맵제작자님들의 맵보다 그 맵을 고쳐서 나온 맵들이 더 재미있거나 좋아 보입니다.", "맵제작자들이 왜 그리 '자기 이름 남기기'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중략) "그렇다면 게임 당장 그만두고 공부나 하십쇼."" 등의 발언을 남겼다. 링크 참고 다른 장르에 대입해 보면 소설가들이 소설을 써도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제 기준에는 소설가 분들이 쓴 소설보다 그 소설을 고쳐서 나온 소설들이 더 재밌으니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기 소설의 불법 개조판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본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맵을 만든 제작자들의 열정이 경이로운 수준이다.
현재도 프로텍트를 원하는 맵 제작자들과 언프로텍터들은 소소하나마 계속 분쟁을 벌이고 있지만 2010년대 전후로 블리자드가 표방한 공식적인 입장은 모든 맵의 저작권은 저작자가 아닌 블리자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법적으로는' 언프로텍터들의 판정승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지만, 이는 맵사이드가 망한지 수년도 더 지난 이후의 이야기이다.
3.2. EUD 논란
EUD 기술을 발표한 것은 외국 웹사이트였지만, 처음 이러한 것이 존재할 것이다 라고 처음 언급을 한건 게하오였다. 하지만 맵사이드의 회원들은 그러한 것이 존재할리가 없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게하오를 비난한 적이 있으며[17] , 추후 이는 외국에서 발표하여 사실로 드러났다. EUD 기술이 발표되자마자 맵사이드의 회원들도 이 기술을 쓴 적이 있었으나, 해킹의 가능성으로 인해 블리자드에서 1.14 패치를 하면서 이 기술이 일부 사용되지 못하게 되었다.
3.3. 저작권 논란
맵사이드의 회원들은 한국 맵계 대부분의 자료들이 맵사이드에게서 나왔다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맵사이드에서 발견된 자료들이 타 싸이트에서 발견되면 '''도배나 욕설''', 심지어 웹사이트 해킹까지 하기도 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맵사이드에 있는 자료가 엄연히 타 웹사이트에 있던 자료를 '''무단으로 퍼간 카피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원본에 찾아가 불펌을 하지 말라며 욕설도배를 쓰기도 했으며, 이는 추후 맵사이드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맵사이드의 폐쇄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18]
4. 기타
맵사이드의 유민은 버서크광기가 맵사이드에서 쫓겨난 이후 세운 인투더맵[19] 으로 유입되었다. 이 때문에 맵사이드가 폐쇄된 직후 버서크광기는 '추천 글'란에 '맵사이드의 역사'라는 글을 게재하여 맵사이드를 비판하고 인투더맵의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덩빅이 자신이 고등학생임을 숨기고 운영해왔는데도 무지막지했을 계정비를 부담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덩빅이 위인이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인투더맵의 버서크광기도 언급한 바있다.
버서크광기와 같은 유명 맵제작자들이 대부분 맵사이드 시기에 나왔기에 유즈맵 발전에 있어서는 상당히 의의가 있는 사이트이다. 맵 제작 팀들도 이 시기에 많이 나왔다. 이러한 맵사이드의 발전은 밀리맵 분야가 사실상 맵돌이닷컴의 몫으로 돌아간 데에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밀리맵 대한 지원이 매우 미진한 편이었던 반면 유즈맵 제작은 매우 활발했기 때문에 공방에서 유즈맵을 주로 하는 많은 유저들이 유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밀리맵 제작에도 활발히 관여하였던 사실상의 후신 사이트 인투더맵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편으로 이 당시에도 맵진 계통의 전통 아닌 전통인 덕력은 상당했다. 인투더맵에 비해 맵사이드는 개인과 관련된 이미지 서비스를 많이 제공했는데, 이 이미지에 오덕력이 많이 들어갔다. 다만 이렇지 않은 이용자도 충분히 많았고 이를 맵 제작에 반영하는 경향은 적었기에 사이트와 이곳에서 제작된 맵의 고립은 일어나지 않았다.
DUNGBIG 본인이 작성한 맵사이드에 관련한 이야기인데, 1편만 올라와있고 2편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