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 전투
[clearfix]
1. 개요
1592년 6월 6일[2] 현재의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열린 경상좌도 지역 조선 관군, 의병과 모리 데루모토의 부장인 무라카미가 이끄는 일본 제7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2. 전개
모리 데루모토의 경상도 침공군인 제7군은 낙동강을 이용해 식량을 보급하려 했고, 무계는 그 요충지였다. 모리는 자신의 부장 무라카미로 하여금 이곳을 점령하게 했다. 멀지 않은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면이 거창으로 옮기면서 전 첨사였던 손인갑에게 정인홍과 함께 무계를 치게 한다.
6월 6일 새벽에 김면, 손인갑과 정인홍 의병은 무계에 있는 보루를 제거하기 위해 야습을 강행했고, 경계거 소홀한 틈을 타 기습했다. 손인갑은 정예명 50명과 보루을 포위한 뒤 잡입했으나, 일본군 정찰병이 발견해 백병전으로 전투의 형세가 바뀌었다. 그러나 자다가 깨어난 병사들을 갑옷도 채 갖추지 못했고, 손인갑의 의병은 30명을 사살한 뒤 불을 질렀으니, 부상당한 무라카미를 비롯한 일본군은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했다. 날이 밝자, 불이 진화되었고, 조총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조선군은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나 조선군은 이번 전투에서 100여명을 사살해서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였다.
이후 7월 중에 또다른 의병장 김준민은 성의 시설들을 불을 질렀고, 이외에도 크고 작은 의병들의 공격에, 일본군은 무계진을 버리고 성주성으로 철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