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경기장
1. 개요
광주광역시 북구 임동 일대에 자리잡았던 스포츠 종합 복합시설. 축구경기장과 종합 육상트랙을 갖춘 주경기장과 야구장, 수영장, 양궁장, 태권도장, 실내체육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54년 흙더미로 담을 쌓아 만든 '광주공설운동장'이 시초였으며 전국체전을 유치하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축, 1965년 만들어진 것이 무등종합경기장이 되었다. 전남방직이 임동 부지를 국가에 헌납하면서 해당 부지에 시설이 들어온 이유로 임동에 자리잡게 되었다.[1]
그러나 협소한 부지 문제로 1980년도에 염주체육관이 들어서면서 일부 체육시설이 이전하였고,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실내수영장의 경우 역시 염주체육관과 기타 체육시설로 기능이 이전되면서 철거, 야구장 주차장으로 활용되었다. 이 문서에서는 2011년까지 남아있었던 주경기장과 야구장에 대해 서술.
1.1. 주경기장 ▶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무등경기장의 메인 스타디움이었던 곳이었고, 2014년부터 야구장으로 리모델링된 주 경기장이다. 3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무등 주경기장은 축구장과 육상시설을 갖춘 종합경기장이었다. 이 곳에서 1965년, 1977년, 1987년, 1993년 등 총 네 차례의 전국체육대회가 열렸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축구 예선경기 일부도 이곳에서 치러졌었다.[2]
광주광역시의 성장을 지켜보아 온 역사의 산 증인이자 야구장과 더불어 광주 시민들의 애환을 풀 수 있었던 곳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이곳이 시민군의 집결장소로 활용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5.18 관련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1984년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차 방한시기에 이 곳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던 적이 있었고, 훗날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가 지어지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이 확정되어 성인 반열에 오르게 되자 광주대교구 측의 요청으로 야구장 외야 쪽에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시설 노후화로 인해 관리가 소홀해졌고 부지 협소 문제로 더 이상 큰 체육행사를 유치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개최하여 광주에 경기장을 유치하게 되었을 때 노후화된 무등경기장을 대체하기 위해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종합경기장으로 설계하였다.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서면서 무등경기장에서 진행되는 행사의 규모는 조금씩 축소되었고, 일부 소규모 체육동호인들의 체육행사 대여 정도로 활용되면서 사실상 주경기장으로써의 기능이 상실된 상태였다.
그 이후 역사는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항목 참고.
1.2. 무등 야구장
사실 무등경기장 하면 주 경기장보다는 이곳이 더 알려져 있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야구경기가 열릴 때마다 광주 시민들의 축제의 장으로 활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항목을 참조.
2. 현재
1965년에 완공되어 지어진지 50년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노후화된 건물'''이었고, 그로 인해 안전 평가에서도 보수가 시급하다는 결과를 받는 등 점차적으로 해당 시설의 유지보수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다. 무등 야구장의 경우에는 야구 시즌마다 열리지만 배수 문제와 관중 동원 문제, 안전 문제와 관중들의 편의시설 미비 문제 등으로 신축 구장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으며 주경기장은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 기능을 내어준 채 일부 소규모 체육행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방치 상태로 전락해버린 상태였다.
그리하여 이 시설물들의 활용에 대해 십여년 간[3] 논의가 있었고, 강운태 시장 때에 와서야 비로소 '''주경기장 철거, 경기장 부지에 야구장 신축'''으로 결론이 났다.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야구 종목을 추가하면서 이 때까지는 무등 야구장을 활용해야 했기 때문에 무등 야구장을 보존하고, 주경기장 부지에 신축야구장을 건설하면서 임동 무등경기장 일대를 야구 타운으로 조성하겠다는 것.
이로써 무등경기장은 40여년 동안 종합체육시설로서의 임무를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야구장 신축을 위한 재원 마련의 이유[4] 와 광주 근현대 역사 사적지로서의 무등경기장의 상징성을 두기 위해서[5] 야구장과 주경기장 성화대와 스탠드 일부, 그리고 무등경기장 정문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다만 법적으로 해석할 시에는 새로 신축되는 야구장이 '''주경기장'''이 되는 셈.
2011년 11월 24일 신축 야구장 건설을 위해 주경기장이 철거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았던 실내연습장도 챔피언스 필드의 주차 부지 확보를 위해 철거되었다. 따라서 이제 무등경기장 부지에 들어선 건 야구장 두 곳 뿐이다.
[1] 마찬가지로 전남중학교, 전남고등학교도 전남방직이 세우고 나서 80년대에 국가에 기부하였다. 현재의 한국아델리움 자리.[2] 전국체전 개최 기념비와 서울 올림픽 예선경기 유치 기념비 등이 무등 야구장 뒤편 보도에 역사공원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챔피언스 필드 공사로 본래 주경기장 인근에 있던 기념비 등을 보행로 쪽으로 옮긴 것.[3] 3~4대 광주 시장이었던 박광태 전임 시장은 야구장 문제를 놓고 신축 야구장을 짓겠다고 매년 공약을 내세웠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었다. 2009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때에는 무려 '''돔구장'''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지만...[4] 무등경기장 정문과 성화대, 북쪽 스탠드 일부를 보존함으로써 '''신축'''이 아닌 '''구조변경'''으로 처리되어 국고를 지원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광주광역시 예산 300억 + 현대자동차그룹 지원금 300억 + 국비(스포츠토토 지원금) 300억을 합쳐 현재의 챔피언스필드가 탄생한 것. 이같은 방식은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짓고 있는 창원 야구장을 건립할 때도 활용됐다.[5] 무등경기장 정문은 그냥 하찮은 경기장 정문이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운전기사들이 차량 시위를 시작한 '''5.18 사적지'''다. 주경기장이 철거됐어도 정문만큼은 계속 보존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