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천 할머니

 




1914년 ~ 2004년 9월 8일 (향년 91세)
1. 개요
2. 생애
3. 외부 링크


1. 개요


'''제주 4.3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들 중 한 분'''
본명은 '''진아영(秦雅英)'''으로 제주 4.3 사건 당시 총상으로 인해 턱이 사라진 채로 평생을 산 인물이다. 본관은 풍기(豊基).

2. 생애


1914년 전라남도 제주군 구우면 판포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1]#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제주 4.3 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9년 1월 12일 신원 불상의 토벌대가 발사한 '''에 맞았다.''' 이 때 그녀의 나이 36세였다.
그 이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이후 아래을 소실하는 중상을 입었고 이후 평생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음식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 부상 이후 그녀는 턱을 하얀 무명천으로 가렸는데 그로부터 '무명천 할머니'라는 별명이 생겼다.
부상당한 이후엔 부모님을 여의어 사촌과 언니가 있던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로 옮겨와 남은 여생을 보내왔다. 턱 부상으로 인해 먹는 것도 어려워 늘 위장병과 영양실조가 따라와 고생했다고 한다. 평생을 약에 의지하여 살아야 했으며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가는게 외출의 전부였다. 또한 부상 당시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다른 이들 앞에서 절대로 무언가를 먹지 않았으며, 대문과 방문에는 늘 자물쇠를 걸고 다녔다.
이후 2001년 병세가 악화되어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2004년 9월 8일 본 사건으로 인한 후유증 및 기타 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91세의 나이에 숨졌다.
무명천 할머니 타계 10년 후인 2014년 무명천 할머니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4.3 사건 70주년을 맞은 2018년에는 그의 일대기를 쓴 그림책이 출판되었다.
현재 무명천 할머니가 살던 제주 한림읍 월령리의 자택은 추모관으로 개조되어있다. 무명천 할머니가 살던 2001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3. 외부 링크


본 사건을 다룬 글

[1] 인근의 고산리와 함께 풍기 진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