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씨)

 


1. 개요
2. 陳(베풀 진)
2.1. 여양 진씨(驪陽 陳氏) 계열
2.2. 광동 진씨(廣東 陳氏)
2.3. 양산 진씨(梁山 陳氏) 계열
2.4. 저명·유명인사
2.4.1. 한국
2.4.2. 외국
3. 秦(나라 진)
3.1. 풍기 진씨(豊基秦氏)
3.2. 진주 진씨(晉州秦氏)
3.2.1. 본관 통합 문제 및 조상 정립 문제
3.3. 하타씨(秦氏)
3.4. 저명·유명인사
3.4.1. 한국
3.4.2. 외국
4. 晋(나아갈 진)
4.1. 남원 진씨(南原 晋氏)
4.1.1. 집성촌
4.2. 저명·유명인사
5. 眞(참 진)
5.1. 서산 진씨(西山 眞氏)
6. 한자 미상
7. 예명
7.1. 한국
7.2. 외국
8. 가상 인물


1. 개요


한국의 성씨로 陳, 秦, 晉, 眞 네 종류가 있다. 네 가문의 전체 인구 수는 2015년 통계청 기준으로는 185,813명이지만 바로 아래에 서술할 여양진씨대종회 기준 476,912명 이상. 표기에 따라 전씨, 발음에 따라 김씨, 신씨와 헷갈릴 수 있는 성씨.

2. 陳(베풀 진)


2015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59,339명(인구순위 49위)으로 나와 '진씨'의 약 86%이지만 여양진씨대종회 홈페이지의 게시글여기에서는 45만명이라고 적혀있어 그 이상 되며 94~95%이다.
중국에서는 이(李), 왕(王), 장(張), 류(劉)씨와 함께 중국의 5대 성씨이다. 특히 남부에서 인구순 상위에 랭크되는 대성이다. 중국 성씨와 관련된 책인 백가성 중에서는 10번째. 대만싱가포르에서는 가장 흔한 성이며 베트남에서도 두 번째로 흔하다.
표준중국어로는 Chen(천)이라고 쓰지만, 홍콩에서는 광동어로 찬(Chan)[1],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는 민남어로 탄(Tan)이라고 많이 쓴다. 베트남 발음은 쩐(Trần).

2.1. 여양 진씨(驪陽 陳氏) 계열


한국의 진(陳)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본관이며 한글로 따져도 진씨 중 가장 많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참조.
조선 숙종 때 여양 진씨 대동보(大同譜)가 발간되었으나,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하였기에 문중의 대종손들만 소장하고 다른 종인들은 각자 필요한 부분만을 필사한 가승(家乘)을 소장하여 필사 과정에서의 기록 착오나 누락, 전란과 사화를 거치며 분실 또는 소실되어 구전으로 관향을 전하였다. 조선 건국기부터 삼척 진씨, 나주 진씨, 경주 진씨, 강릉 진씨, 신광 진씨 등 여양 진씨의 인물들을 시조로 두는 여러 본관이 존재해 왔으며, 상술한 과정을 거쳐 분화가 가속화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진(陳)씨 중 광동 진씨와 양산 진씨 계열 외에는 모두 여양 진씨 계열로 보며, 이들 중 많은 본관이 1992년에 간행된 임신(壬申)대동보에 족보를 합보하며 여양 진씨에 흡수되었지만, 일부 문중은 선계와 후계가 다르다며 합보를 거부하고 여양이 아닌, 전부터 칭하던 본관으로 독자 세계를 잇고 있기도 하다.

2.2. 광동 진씨(廣東 陳氏)


시조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 진린의 손자 진영소(陳泳溸)가 조선에 정착해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2.3. 양산 진씨(梁山 陳氏) 계열


양산 진씨의 시조는 원나라 말기 주원장과 대립했던 진우량(陳友諒)의 아버지 진보재(陳普才)이며 양산(梁山)은 그의 출신지다. 본래 사씨(謝氏)였는데 진보재의 아버지가 진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며 진씨가 되었다. 진우량이 주원장에게 패한 후 진우량의 아들 진리(陳理)가 주원장에 의해 고려로 보내져 세계를 이어오게 되었다.
순덕후(順德侯) 진리가 죽고 자식은 진명선(陳明善) 뿐이라는 진리의 처의 말이 태종실록에 실려있는데, 양산 진씨 족보에 진리의 아들은 진치화(陳致和)로 되어있고 진명선은 진치화의 아들로 되어있어 당대의 기록과 모순되는 점이 있다.
임피 진씨(臨陂陳氏)는 진'이'(陳理)의 아들 진여안(陳汝安)이 시조라는 설이 있어 양산 진씨와 같은 가문으로 여겨지는데, 고려의 판정주목사(判定州牧使) 진영안(陳永安)이 시조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설이든 진리의 자식은 진명선 뿐이라는 태종실록과 모순된다.
흥덕 진씨(興德 陳氏) 또한 진리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는데 흥덕이라는 본관이 진리가 조선에서 흥덕후(興德侯)에 봉해졌다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걸 근거로 들고 있으나 진리는 명에서는 귀덕후(歸德侯), 조선에서는 순덕후(順德侯)에 봉해졌다. 참고로 여양 진씨에 합보된 여러 본관 중엔 흥덕 진씨도 있다.

2.4. 저명·유명인사



2.4.1. 한국



2.4.2. 외국



3. 秦(나라 진)


2015년 기준 19,301명으로 제주도에 집성촌이 있는데, 아래에 서술할 진계백이 제주도로 피신하면서부터 이곳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3.1. 풍기 진씨(豊基秦氏)


시조: 진필명(秦弼明)
당나라 태원(太原) 출생.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 소정방백제 정벌군에 참여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뒤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신라에 정착하여 태원백(太原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15세손 진질명(秦礩明)이 고려 의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으로 정중부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에 봉해졌는데 기주의 지명이 풍기로 바뀌었으므로 후손들이 풍기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정중부의 난의 다른 이름은 무신정변으로서 성공한 반란이기에 평정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의종이 폐위되고 많은 문신들이 죽임을 당하고 무신들이 정권을 잡았으므로 뭔가 착오가 있는 듯 하다. 아마도 정중부가 경대승에게 살해를 당할 때에 진질명이 경대승의 편에 가담한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와전된 것 같다.

3.2. 진주 진씨(晉州秦氏)


시조: 진욱(秦郁)
고려 때 보리공신(補理功臣)에 책록된 진욱을 시조로 삼는다. 그의 조상은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진상(秦商)이다.

3.2.1. 본관 통합 문제 및 조상 정립 문제


풍기진씨세보와 진주진씨세보를 대조해 보면 진계백(秦季伯)이라는 이름이 겹쳐 나온다. 풍기 진씨에서 봤을 때 진질명의 증손자로, 진주 진씨에서 봤을 때 시조인 진욱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진계백 이후로 세계는 양쪽 모두 대체로 일치하나 1대 차이가 난다. 통계청의 인구조사를 비교해보면, 1985년에는 풍기 진씨와 진주 진씨는 각각 9,856명과 4,949명이었다가 2000년에는 각각 11,046명과 1,582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진주 진씨였다가 풍기 진씨로 통합한다는 이야기인데, 진계백에게는 (증)손자가 3명이 있는데 그 중에서 둘째인 진인한(秦仁漢)은 진주 진씨로, 나머지는 풍기 진씨로 갈렸다가 진인한의 후손들도 풍기 진씨로 통합하고 있다는 의미로 봐야 타당할 것이다. 참고 자료 1, 2 더불어 풍기 진씨와 진주 진씨가 하나의 일족이라고 가정한다면 진계백의 조상을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3.3. 하타씨(秦氏)


고대 일본의 씨 중 하나.[2] # 구마모토현의 기쿠치성에서 진인(秦人)이라고 쓰인 목간과 백제계 유물로 추정되는 불상이 발굴되었다. 이 발굴을 주도한 일본학자는 이를 토대로 기쿠치성이 백제계 관리에 의해 축조되었다는 논문을 썼다. 기사에 따르면 기쿠치성은 백제 멸망 이후 북큐슈에 세워진 성이다.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하타씨의 시조인 유즈키노키미(弓月君)는 진시황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에 백제에서 귀화했다는 기록이 나오므로 백제계 도래인으로 본다. 즉 진시황의 후예라고 한 건 자칭으로 추정되는데, 진나라의 황족인 영성 진씨들은 일본이 생기기 한참 전인 초한전쟁 시절에 항우에 의해 멸족 되었다.

3.4. 저명·유명인사



3.4.1. 한국




3.4.2. 외국



4. 晋(나아갈 진)


2015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7,566명. 본관은 남원 단본.

4.1. 남원 진씨(南原 晋氏)


시조: 진함조(晋含祖)
국가에 대사(大事)가 있으면 현종이 매번 그에게 도참(圖讖)으로 질의(質疑)하였는데 술수(術數)로 크게 기용되어 관직이 내사시랑(內史侍郞)에 이르렀다. 그의 후손 진석(晋錫)이 고려 고종 때 거란군의 침입을 크게 무찌른 공으로 남원군(南原君)에 봉해지고 남원(南原)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후손들이 그곳에 정착세거 하며 본관을 남원으로 하게 되였다.
인구는 2015년 기준 7,128명이다.

4.1.1.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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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북도 남원시 식정동: 첨정공파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 학사공파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지당리: 감무공파
  •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 판서공파
  •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천담리: 감무공파
  •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송전리: 감무공파

4.2. 저명·유명인사



5. 眞(참 진)


신라 문무왕 때의 금석문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을 보면 신라에 편입된 백제계 귀족 성씨 중 하나로 진씨(眞氏)가 나오며,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진씨는 백제(百濟)의 대성팔족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신라 신문왕 때 대아찬을 지낸 진공(眞功), 상대등을 지낸 진복(眞福)이 있고[3], 백제에는 고이왕(古爾王)때 좌평을 지낸 진복, 아신왕 때 국구 병관좌평인 진무 등의 이름이 나온다.
1930년도 국세조사 당시에는 전국에 함경북도 종성군에 살던 개성 본관의 진규석(眞圭錫)씨의 1가구가 유일하게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7, 8대 이전에 지금의 지역으로 이주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을 뿐, 성씨의 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5.1. 서산 진씨(西山 眞氏)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세계 등을 알 수 없다. 백제 대성팔족의 진씨(眞氏)의 후예가 아닌가 하는 추정이 있다.
2000년도 인구조사 당시 서산 1,555명 등 전체 1,579명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5년 후인 2015년에는 오히려 45명으로 266위로 크게 줄어들었다.

6. 한자 미상



7. 예명


진씨를 예명으로 쓰는 연예인이 많은 편이며, 단어가 주는 긍정적인 의미(眞, 珍)로 창작물을 비롯한 가상인물의 성씨로도 많이 쓰이는 편이다.

7.1. 한국


  • 진도희: 배우. 본명 김은경(2015년 췌장암으로 사망한 동명이인 배우 진도희 역시 예명으로 본명은 김태야이다.)
  • 진미령: 가수. 본명 김미령
  • 진서연: 배우. 본명 김정선
  • 진세연: 배우. 본명 김윤정
  • 진이한: 배우. 본명 김현중
  • 진자림: 트위치 스트리머. 본명 미공개
  • 진주형: 배우. 본명 김진태
  • 진태현: 한국 배우. 본명 김태현
  • 진달래: 가수. 본명 김은지

7.2. 외국



8. 가상 인물


[1] 성룡의 영어 이름 재키 찬이 여기서 나왔다.[2] 성(姓)이 아니다. 고대 일본에서 카바네(姓)와 우지(氏)는 구분되는 개념이었다.[3] 신라의 인물인 진공과 진복은 진씨가 아니고, 이름이 진공, 진복이고, 실제 성은 김씨(金氏)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