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생유

 


無中生有
병법 삼십육계 중 적전계의 제7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라는 말인데 신도 아니고 이게 가능할리 없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란 '''허상(虛像)'''을 의미한다. 즉, 아군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주요한 것이며, 반대로 아군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또한 중요하다. 쉽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흔히 들었던 동화인 양치기 소년을 생각하면 된다. 자신이 심심하다고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더니 나중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것처럼, 적들에게 자신의 공격을 할듯 안할듯 허와 실을 적절히 섞어서 적들의 판단을 흐려지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이러한 계책은 보통 쉽게 믿는 사람에게 잘 통하는 법이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에게도 잘 통하는 수법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당나라 중기에 안록산의 난 당시에 장순(張巡)의 계책을 꼽는다.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음 해 1월에 반란군의 장수인 장통오(張通晤)가 많은 지역을 함락시키고, 초군(潐郡) 지역까지 공격해왔다. 이에 이 지역을 지키던 양만석(楊萬石)은 투항하기로 결심을 하고 자신의 부관인 장순(張巡)에게 항복을 명하였다. 장순은 항복은커녕 오히려 반군을 격퇴하기로 마음먹고 옹구(雍丘)성에서 2천명의 병사만으로 수차례 적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에 격분한 반란군은 4만의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수개월의 전투로 장순의 군대는 화살을 다 사용하여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장순은 제갈량의 꾀를 빌려 허수아비 천개에 검은 옷을 입혀 칠흑같은 어두운 밤에 성벽을 타고 내려 보내자 적들은 수많은 화살을 쏘았고, 수십만개의 화살을 얻을 수 있었다. 반란군은 후에 이를 알고 억울해 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또 허수아비 500개가 성벽을 타고 내려오자 반란군은 웃으면서 방비를 소홀히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500명의 병사였고, 이들이 반란군을 급습하여 대파하였다.
현대의 사례로는 포티튜드 작전이 있다.
현재의 군대에서 이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곧이곧대로 악질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이런 식으로 갑질을 일삼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