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통한다
1. 소개
Extremes Meet. / Opposites Attract. / Horseshoe Theory[1]
서양 속담/격언 중의 하나. 다른 표현은 '양극단은 일치한다.'
영어에는 이와 비슷한 뜻으로 동전의 양면(two sides of the same coin)이란 관용구가 있다. 즉, 동전이 양면이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동전이라는 의미. 한국어에도 '동전의 양면'이라는 말이 쓰이지만,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한국어에서는 '하나의 존재/현상에 여러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양면성을 더 강조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이는 어순의 차이(~의 / of ~)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의미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극단주의와 그에 따른 폐단을 적절하게 표현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2. 내용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극단적인 정의는 실제로는 부정의이다.' 동양철학에서도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은 '어떤 것이 끝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가 된다.'는 뜻.[2] 음양(陰陽)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 음이 극한에 달하면 마치 양과 같이 되고, 양이 극에 달하면 음과 같이 된다는 뜻.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지만 빛이 너무 많으면 눈이 부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결국 완전한 어둠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된다.
비슷한 개념이 서로 통하는 유유상종과는 달리, 이 표현은 정반대의 개념이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을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주로 정치적인 비판을 할 때 이 표현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특히 철새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 표현이다. 이 외에도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극과 극이 통하는 일종의 긍정적인 예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말은 정치적으로 '''그 사회에 존재하는 정치집단 중에서''' 가장 진보와 가장 보수, 그 중간에 있는 집단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흔히 하는 수사이기도하다. 애초에 그 사회에서 가장 진보와 가장 보수의 포지션 자체가 뒤틀려 있을 지도 모른다.
주의할 점은,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 역시 "이래도 잘못, 저래도 잘못"식으로 까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비논리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중립이나 중도주의가 정당성이나 공정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며, 양극단에서 까인다고 해서 '''자기만 옳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자신은 공격당하지 않으면서 편리하게 여러 의견들을 까기 좋은 태도가 극과 극은 통한다일 수도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3. 실체
-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은 양 극단을 단지 하나의 관점으로만 본 것일 뿐이며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유유상종이었을 수도 있다.
- 하인리히 힘러와 니콜라이 예조프는 비밀경찰의 대명사로 꼽히는 게슈타포와 NKVD의 수장을 맡았던 인물들이다. 힘러는 아인자츠그루펜을 조직하고 설립해 독소전쟁 당시에 학살을 저지르고 다하우수용소를 연 이후 자신의 측근인 테오도어 아이케에게 수용소장을 맡기는 것을 시작으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많은 강제수용소들을 세우고 여러 학살을 진두지휘하여 수백만명 이상을 학살하였다. 예조프는 대숙청을 진두지휘해 불리는(스탈린이 뒤에서 실행하는 형태였지만)1937년~1938년 130만 명이 체포되었고 그 중 68만 명(그 이상일 수도 있다)이 처형되고 나머지는 굴라그로 끌려갔다. 굴라그에서도 가혹한 조건으로 적어도 14만 명이 사망하였다고 추정된다. 둘은 모두 "무고한 사람 열 명을 처형하더라도, 한 명의 스파이도 놓쳐선 안된다"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였다. 하지만 힘러는 나치패망 무렵까지 탑을 다투는 실권자로 군림한 반면, 예조프의 경우 상관이 지나치게 그의 권한이 강해진 것을 목격하고 토사구팽해 처형된 차이점이 있다.
-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과 유대인의 저항은 나무위키의 논리에서는 극과 극은 통한다에 성립한다.
결국 우리가 현재 극과 극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는 어떤 것이 사실은 양 극단에 치우친 관계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세력이 적대하더라도, 적대 명분의 논리 구조 자체가 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적대적 공생일 가능성이 높다.
- 위에서 논리 구조 자체가 통한다고 한 것처럼, 극과 극이 통하는 사례의 대부분은 성향만 다를 뿐 논리 전개 방식, 행동법, 현상 인식 구조는 비슷하다. 애초에 이것들이 바뀌지 않으니까 극좌가 전향을 해도 꼭 극우가 되고 꼴페미를 반대한다면서 꼴마초가 되는 원인이다.
-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공감할 수도 없는 사람이나 사물, 현상 등을 발견할 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남발한다. 복잡하게 사고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간편한 논리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 조차 포기한 채 '극단'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면 결국 편협한 사고의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된다. 즉, '극단주의'라는 정의를 내릴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인 '통찰력'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할수록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세상은 더욱 황폐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한 마디로 끝내 버리려고 하지 말고, 다른 관점이나 다른 사고방식으로도 접근해보려는 태도를 가져 보자. '통찰력'은 기를 수 있는 능력이다.
4. 관련 문서
[1] 편자 이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2]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도 오버플로라는 개념이 이와 매우 흡사하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3] 일례로 히틀러의 장검의 밤 숙청을 보고 스탈린은 이에 감명을 받아 후에 대숙청을 실시한다. 히틀러가 단시간에 바이마르 공화국당시 혼란상을 극복하며 독일 내에서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던 독일 공산당을 전멸시킴과 더불어 유럽의 대부분을 순식간에 정복하는 광경을 보며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개인적으로는 경외감을 간직했다. 독소전쟁이 터지고 한동안 멘탈붕괴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에 빠진 이유가 이것이다 동부전선의 대세가 기울인 1944년에 발생한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이후 히틀러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매우 부러워했는데 그 이유는 프로이센 출신 장교단이 자신의 말을 잘 안 따라서 전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스탈린 그 사람처럼 군부의 고집불통 짬밥들을 모조리 숙청해야 했는데... 그래야 그처럼 군부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을 텐데..." 라며 스탈린을 부러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