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햄

 

'''매리얼 마거릿 햄
(Mariel "Mia" Margaret Hamm)
'''
<colbgcolor=#006> '''생년월일'''
1972년 3월 17일 (52세)
'''국적'''
[image] 미국 (United States of America)
'''출신지'''
앨라배마 주 셀마
'''신장'''
165cm
'''포지션'''
공격수
'''유소년 경력'''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1988–1993)
'''소속 클럽'''
워싱턴 프리덤 (1987–2004)
'''국가 대표'''
275경기 158골
(1987–2004)
'''가족관계'''
배우자 노마 가르시아파라
1. 소개
2. 어린 시절
3. 선수 경력
3.1.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생 시절
3.2.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축구인
3.3. 1996년 하계 올림픽
3.5. 2004년 하계 올림픽
3.6. 워싱턴 프리덤 시절
4. 은퇴
5. 은퇴 후의 삶
6. 수상
6.1. 국가대표
6.2. 개인


1. 소개


매리얼 마거릿 햄, 일명 미아 햄은 미국의 前 축구 선수다. 그녀는 여성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이며 미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이다. 선수 시절 수많은 대회에서 대활약하며 미국을 명실상부한 여성 축구계의 최강국으로 우뚝서게 했다. 현재는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아내로서 한 가정을 단란하게 꾸리고 있으며 사회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2. 어린 시절


[image]
미아 햄은 1972년 3월 17일 미국 공군 조종사 출신인 아버지 빌 햄과 어머니 스테파니 햄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6자매 중 네번째 아이였다. 그녀는 태어났을 때 발이 안쪽으로 휘어진 내반족이란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아기 때부터 특별히 제작된 신발을 신어야 했다. 미아 햄은 어린 시절을 미국 공군 기지에서 자랐고 얼마 후엔 샌안토니오, 택사스, 그리고 이탈리아로 차례로 이주했다. 미아 햄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축구를 접했고 얼마 안가 모든 가족이 축구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축구를 매우 어린 나이에 시작했다. 그녀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남자들의 축구팀에 소속되어(!) 축구를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녀는 곧 그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후 미아 햄은 1987년 15살에 택사스의 노트르담 카톨릭 하이스쿨로 전학을 가서 학교 축구팀에 소속되어 축구 생활을 계속했다. 그녀는 그 팀에서 가장 어렸고 종종 공격수로 출전하긴 했지만 골은 기록하진 못했다. 이후 미아 햄은 1988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에 입학했다.

3. 선수 경력



3.1.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생 시절


[image]
발이 기형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그녀는 대학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미아 햄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이 전미 축구협회에서 주관한 전미 여자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5년간 맹활약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통산 100경기에 출전하여 103골 72 어시스트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그녀의 무지막지한 활약 덕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은 1989년과 1990년에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1992년과 1993년에도 또다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즉, 그녀는 대학에서 5년 동안 재학하면서 우승을 4번 한 것이다.(...)

3.2.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축구인'''



3.2.1. 1991 FIFA 여자 월드컵 중국


[image]
이렇게 엄청난 활약을 했으니 국가대표는 당연히 뽑힐 만 했다. 사실 그녀는 1987년에 불과 15살의 나이로 처음 국가대표에 뽑혔다. 이는 미국 여자 축구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선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경기에 뛴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1년의 일이었다. 그해는 FIFA 여자 월드컵 대회가 중국에서 열리는 시기였다. 미아 햄은 당시 19살의 나이로 팀 내에서 가장 어렸지만 당당히 주전 멤버로 뽑혔다. 그녀는 첫번째 경기인 스웨덴 전에서, 14,000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2로 팽팽하던 후반 62분경 강력한 중거리포를 작렬, 결승골을 이끌어냈다.
[image]
우승컵을 안고 기뻐하고 있는 미아 햄
이후 미국팀은 11월 19일 16강에서 브라질과 만나 5:0 완승을 거뒀는데, 이때 미아 햄도 한 골을 넣었다. 미국은 세번째 상대인 일본과 11월 21일에 맞붙어서 역시 승리를 거뒀고 다음 상대인 대만을 7:0으로 박살냈다.(...) 이후 준결승전에서 독일을 5:2로 격파한 미국팀은 노르웨이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6만 3천 여명의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은 노르웨이를 2:1로 격파하고 마침내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미아 햄 본인은 일본, 대만, 독일,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선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선배들이 골을 기록하는 데 큰 도움을 줘 한 몫을 똑똑히 해줬다.

3.2.2. 1995 FIFA 여자 월드컵 스웨덴


[image]
그녀는 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미국 여자 대학 축구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비록 미국은 중국에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지만, 그녀는 이 대회에서 6골을 기록하며 대회 득점왕에 선정되었다. 이후 그녀는 1995년 스웨덴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 참가했다. 6월 6일, 그녀는 중국과의 경기에서 팀의 3번째 골을 기록하며 3:3 무승부를 이끌었다. 미국 팀은 2번째 상대인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뒀다. 이때 미아 햄은 미국 골키퍼가 퇴장을 당하자 그녀 대신 골키퍼를 맡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6월 10일 오스트레일리아를 4:1로 제압했고 뒤이어 일본을 4:0으로 격파했다. 하지만 미국은 노르웨이에게 준결승전에서 1:0으로 졌고 중국과의 3,4위전에선 2:0 승리를 거뒀는데, 이때 미아 햄은 미국의 두번째 골을 기록했다.

3.3. 1996년 하계 올림픽


[image]
맨 오른쪽이 미아 햄이다.
미아 햄은 1996년 미국이 애틀란타 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5경기에 출장하여 1골을 기록하고 미국의 모든 골에 관여를 하며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그녀는 7만 6천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다가 부상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2:1로 격파하고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3.4. 1999 FIFA 여자 월드컵 미국


미아 햄은 1999년 미국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에서도 대활약했다. 그녀는 이 대회에서 2골을 기록했으며 9만 명이 보는 결승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승부차기에서 중국을 침몰시키는 페널티킥을 넣었다.

3.5. 2004년 하계 올림픽


[image]
미아 햄은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에서 2골을 기록하며 미국이 여자 축구 은메달을 수상하는 데 기여했고 2003년 여자 월드컵에서도 2골을 넣으며 미국이 3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그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32살의 나이로 참가했다. 여자 축구 선수로서는 황혼기인 나이였지만, 그녀는 여전한 기량을 선보였다. 그녀는 8월 11일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한 골을 넣으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냈고 브라질과의 경기에서도 한 골을 넣으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미아 햄은 미국이 치른 6경기를 모두 출장하며 미국이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2:1로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그녀는 아테네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미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3.6. 워싱턴 프리덤 시절


[image]
미아 햄은 커리어 내내 미국의 여자 축구 리그 중 단 한 팀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미국엔 여자 축구 리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2001년, 미국 축구 협회는 여자 축구 리그를 창설하기로 합의했고 미아 햄은 새롭게 창설된 여자 축구 팀들 중 하나인 워싱턴 프리덤에 소속되었다. 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평균 3만 4천여 명의 관중들이 RFK 스타디움에 모여들어 그녀를 구경했다. 미아 햄은 워싱턴 프리덤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시즌을 소화하며 49경기 25골을 기록했다. 그런데 2003년 9월 리그가 갑자기 중단되고 말았지만 워싱턴 프리덤은 그 해 우승을 차지했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리그가 중단된 것에 불만을 품고 얼마 후 클럽을 떠났다.

4. 은퇴


2004년 5월 14일, 미아 햄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뒤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선수 생활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2004년 12월 8일 캘리포니아 주 카슨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뤘다. 미아 햄은 이 경기에서 2골 1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미국은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5:0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미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오랫동안 주장을 맡았던 줄리 파우디와 함께 고별식을 가졌다.
미아 햄은 대표팀에서 5개의 월드컵 (1991, 1995, 1999, 2003)에 참여했고 3개의 올림픽(1996,2000, 2004)에 참가하였고 월드컵과 올림픽을 통틀어 38경기에 출장하여 13골을 기록했다. 또한 1991년과 1999년에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고 1996년과 2004년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녀는 대표팀에서 통산 275경기에 출장하여 158골을 기록했다.

5. 은퇴 후의 삶


[image]
미아 햄은 1994년에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미국 해병대 헬리콥터 조종사인 크리스티안 코리와 결혼했지만 2001년에 이혼했고 2003년 11월 22일 보스턴 레드 삭스 소속의 야구 선수인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재혼했다. 그녀는 2007년 3월 27일에 두 쌍둥이 딸을 낳고 이름을 각각 그레이스 이사벨라와 에바 케롤라인으로 지었다. 그리고 2012년 1월엔 아들 가렛 앤서니를 낳았다.
그녀는 개렛 햄을 입양하기도 했지만 1997년 4월 16일 재생불량성 빈혈로 인해 사망했다. 이 일은 그녀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이후 골수병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아 햄 재단'을 설립했다. 이 기관은 골수병에 걸린 이들을 위한 지원금을 모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 FC의 공동 구단주이자 AS 로마의 이사진 멤버이기도 하다.

6. 수상



6.1. 국가대표


  • 전미 여자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 FIFA 여자 월드컵 우승 : 1991년, 1999년
  • 올림픽 금메달 : 1996년, 2004년

6.2. 개인


  • 1997년 여자 스포츠 협회 선정 올해의 스포츠 우먼
  • 2004년 펠레가 선정한 FIFA 100인 선정. 참고로 여자 축구 선수로 여기에 선정된 이는 그녀와 미셸 에이커스 뿐이다.
  • 2006년 앨라베마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 2007년 미국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 2013년 세계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 2014년 ESPN 선정 임팩트를 준 스포츠인 25인에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