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가르시아파라
1. 개요
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야구 선수.
강한 어깨로 나쁘지 않은 수비를 하였고 1999, 2000년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을 2회 연속 수상하였으며, 정확성 뿐만 아니라 일발 장타력까지 갖춘 유격수였다. 총 6회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며(1997,1999,2000,2002,2003,2006) 빅리그 14년 통산 .313 .361 .521 의 비율 스탯과 229 홈런, 936 타점을 기록하였다 (누적 fWAR 41.4). 보통 3명의 유격수 중 에이로드에 이은 2인자로 생각되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길지 못해서 통산 기록에서 손해를 보았다. 그럼에도 넘버원이던 에이로드는 약쟁이로 밝혀졌기에 상대적으로 뒤쳐졌던 지터가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2]
2. 선수 생활
2.1.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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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에는 야구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와 축구 선수로도 활동했고 그와 동시에 학교 성적도 우수했던 엄친아였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1991년에 메이저리그 팀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5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을 거부하고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한다. 조지아 공대 시절에는 대학 야구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대학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에 일조한다(1994). 1992년에는 미국 국가대표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2.2. 보스턴 레드삭스(199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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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 페트로첼리 이후 최고의 레드삭스 유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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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라운드 12번 픽으로 보스턴에 입단하였다. 1996년까지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친 후 1996년 시즌 후반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다. 본격적인 활약은 신인왕을 수상하는 1997년부터 시작된다. 그 해 .306의 타율과 30 홈런, 209 안타 등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한다. 아메리칸 리그 역사상 6번째 만장일치로 뽑힌 신인왕이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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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야구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였다. 1999년에는 .357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수상하였다 (.357 .418 .603, 27홈런 104타점, fWAR 6.3). 이듬해인 2000년에는 .372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또 한 번의 타격왕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372 .434 .599, 21홈런 96타점, fWAR 7.6).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우타자중 가장 높은 시즌 타율로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당시 타격의 신이자 레드삭스의 레전설 테드 윌리엄스는 그를 두고 '4할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타자'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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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은 고난의 한 해였다. 타구에 손목을 맞아 부상으로 신음하며 거의 한 시즌을 통째로 결장하였다. 하지만 2002년과 2003년 연이어 3할 타율과 20 홈런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한다.
FA를 1년 앞둔 2003 시즌부터 심심치 않게 그의 이적 루머가 흘러나왔다. 당시 노마와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는 연봉 협상에 있어 마찰을 빚고 있었다. 2003 시즌 종료 후 보스턴은 4년간 6000만 달러의 조건으로 계약 연장을 시도하였으나 그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나 데릭 지터와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원했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었다[4] .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0년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 2억 52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켰고 이에 질세라 소속팀에게 징징댄 데릭 지터 역시 소속팀 뉴욕 양키스에서 2000 시즌 이후 10년간 1억 8900만 달러라는 장기계약을 한 상태. 하지만 보스턴엔 이미 페드로 마르티네즈, 매니 라미레즈, 커트 실링 등 고액연봉자들이 많은 상황이었고, 2001년부터 잔 부상에 시달리는 노마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기엔 힘든 상태였다[5] .
2004 시즌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하여 개막전에 출장하지 못한다. 복귀한 이후에는 수비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팬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협상 문제로 지지부진하던 탓에 악화되어있던 지역 언론과의 관계는 더욱 더 악화일로를 걸었고 보스턴 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게 된다. 결국 팀은 시즌 중 그의 대체자로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매니 라미레즈와 알렉스 로드리게스간의 트레이드를 한 뒤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매글리오 오도녜즈를 맞바꾸는 계획을 세웠으나 무산되고 만다. 이후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다시 한 번 시카고 컵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미네소타 트윈스와 함께 4각 트레이드를 단행하여 끝끝내 그를 시카고 컵스로 보내버린다. 보스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선수는 염원하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지 못한 채 허망하게 펜웨이파크를 떠나고 만다. 당시 그를 보내고 레드삭스가 데려온 선수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인 유격수 올란도 카브레라와 1루수 덕 민트키에비치이다. 엡스타인이 생각한 레드삭스의 약점은 바로 수비력이었다.
2.3. 시카고 컵스(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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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도중 4각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컵스에 온 그는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89승 73패의 성적으로 아쉽게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2004년 컵스에서의 성적은 43경기 출장, .297의 타율과 4홈런 20타점.
반면 전 소속팀인 보스턴 레드삭스는 노마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두 선수의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게 기적적인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며 월드시리즈에 진출.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승리하며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풀기에 이른다. 우승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 선수들은 노마에게도 포스트시즌 우승 배당금을 나눠주기로 합의하였다. 캡틴 제이슨 배리텍은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배당금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다'라고 말했다.
2004 시즌이 끝난 후에 FA 자격을 획득하였으나 에드가 렌테리아 등 다른 유격수들도 같은 시기에 FA가 되었기 때문에 결국 시카고 컵스와 1년 825만 달러라는 헐값으로 재계약을 하며 FA 재수생의 길을 걷는다. 보스턴과의 협상 결렬이 최종적으로는 악수가 된 셈.
2005년에는 석 달 이상 부상자 리스트에 있는 등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62경기에 출장하여 .283, 9홈런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남긴다. 결국 시즌 후 다시 한 번 팀을 옮기게 된다.
2.4. LA 다저스(200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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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입단식에서 자신의 아내 미아 햄과 함께
LA 다저스와 1년 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다. 고향팀이라고 할 수 있는 LA로 온 그는 주 포지션을 1루수로 전향하며 (유격수와 3루수 알바도 보았지만) 2006년 .303의 타율과 20홈런, 93타점을 기록하며 '올해의 재기선수 상'을 받는다. 시즌 종료후 2년간 185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 연장 하였으나 2007년과 2008년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며 크게 활약하지 못한다.
2.5.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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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와 1년 계약을 맺었으나 시즌 중 부상자 명단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며 부진, 결국 시즌 후 방출되며 은퇴를 목전에 두게 된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3대 유격수 중 가장 먼저 은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간 중부나 서부 쪽 내셔널리그 팀을 다니면서 보스턴과는 인터리그 일정이 잡히지 않으며 보스턴에 올 기회가 없었지만, 2009년에 펜웨이 파크에 왔을 땐 경기 전부터 팬들에게 사인 공세를 받았고, 타석에 들어서면서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2.6. 은퇴, 이후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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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발표하는 노마 가르시아파라. 그리고 옆에 보이는 테오 엡스타인. 절묘한 투샷.
2010년 5월 10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1일 계약'을 맺고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레드삭스 팬들은 한 때 레드삭스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그를 따뜻한 환대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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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포츠 채널인 ESPN의 야구 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2014 시즌에는 타임 워너 케이블과 역대급 중계권 계약을 맺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자체 중계 채널인 '스포츠넷 LA'를 송출하기 시작하는데, 이 방송의 주요 패널 중 한 명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ESPN 에서 일할 때에도 잘생긴 얼굴과 정확한 발음, 그리고 분명한 화법 때문에 '방송에도 재능이 있다' 는 평을 들었는데, 비록 아직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채널이지만 여기에서도 나름대로 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알렉산더 게레로와 디 고든이 경쟁을 벌일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다저스의 2루에 대해서는 '이미 핸리 라미레즈가 유격수로 있는데 2루에 빳다 재능은 필요없다. 글러브 질만 사람같이 해 주는 건강한 선수면 상관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미겔 로하스가 유일하게 수비 재능이 있는 선수라 보기에 그가 2루수에 적당할 거라 본다' 라는 발언을 했다. 문제는 미겔 로하스는 더블 A 에서도 타율이 .230 이었던 공격 재능은 정말 정말 바닥인 선수(...) 애초에 다저스가 수비로 밥값을 하는 마크 엘리스를 내보내고 게레로를 데려온 목적은 2루 자리의 공격력 강화였다.[6] 그와는 별개로 유격수였던 게레로, 디 고든의 2루수 전환이 왜 힘든지를 스튜디오에 마련된 작은 내야에서 재현해 준 부분은 역시 한때 이름을 날린 유격수로써 날카로웠다는 평가.
2015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 후보에 올랐으나, 5.5%의 득표율로 간신히 후보 자격만 유지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1.8%의 투표율에 그치며 장렬히 광탈.
2017년 현재는 SportsNet LA의 다저스 중계 도중에 이닝 교대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이닝 교대 때뿐만 아니라 함께 해설을 하는 오렐 허샤이저와 마찬가지로 경기 전에 다저스 선수들과 야구 관련 대화를 자주 하는 식으로 많이 모습을 비추는 편.
3. 연도별 기록
4. 기타 이야기거리
-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타격 준비동작이 요란한 선수 중 하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긴 준비 동작과는 다르게 가르시아파라는 상당한 초구 덕후.[7]
-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펜웨이 파크의 명물이었다. 저런 장난 뿐만 아니라 가끔 야구공으로 축구 트래핑을 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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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 시절 SI 표지 모델로 나서기도.
-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에 두 개의 만루홈런을 터트린 13명의 선수 중 하나다. 동시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11번째로 한 경기 10타점 이상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1999년 5월 10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로, 만루홈런 두 개, 투런 홈런 하나를 기록하며 팀의 12득점 중 홀로 10타점을 기록하였다.
- 10살 아래의 동생 마이클도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36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된 야구 선수이다. 이 쪽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흑역사. 데이비드 라이트를 거르고 뽑았더니 메이저리그는 커녕 AAA에도 겨우 88경기밖에 못 뛰고 주로 AA에서만 뛰다가 은퇴했다. 그 데이비드 라이트는 다음다음 순번에서 뉴욕 메츠에서 픽. 그리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여담으로 마이클 가르시아파라 바로 앞에서 드래프트된 선수가 J.D. 마틴이었다.
- 이름이 너무 길어서 마구마구 카드에 '가르시아파'까지 잘려 나왔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를 잘 모르는 마구마구 유저들은 가르시아파라의 이름을 '가르시아파'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5. 관련 문서
[1] 부모님이 모두 멕시코 혈통으로 '가르시아파라'라는 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인 '가르시아'와 '파라'가 하이픈없이 합쳐져 만들어진 성이다. 또한 '노마(Nomar)'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인 '라몬(Ramon)'을 거꾸로 배치해 만들어낸 이름이라고 한다.[2] 에이로드의 fWAR은 113.4, 지터는 71.7 이다.[3] 가르시아파라가 데뷔하기 전 이미 레드삭스에는 존 발렌틴이라는 뛰어난 유격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레드삭스는 가르시아파라에게 유격수 주전 자리를 주기로 했고, 몇 년 간 좋은 활약을 하고도 왠 애송이에게 유격수 자리를 빼앗기게 된 존 발렌틴은 당연히 반발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이너에서 뛰던 가르시아파라의 플레이를 보게 되었고.. 그 후 발렌틴은 '''가르시아파라에게 군 말 없이 유격수 자리를 넘겨주고(...)''' 3루를 보게 되었다.[4] 4년 6800만 달러를 요구[5] 매니 라미레즈가 8년 1억 6천만 달러라는 MLB 전체 2위의 초고액연봉자인 상황에서 노마에게 비슷한 대우를 해주긴 힘든 상황이었다. 애당초 유격수로서 40~50 홈런을 뻥뻥 쳐대는 A-rod와 노마는 어느 정도는 레벨의 차가 있었다. [6] 이마저도 2014 시즌 후 디 고든과 로하스가 트레이드로 마이애미 말린스로 가버렸고, 게레로는 수비에서는 답이 없는 모습과 함께 막스윙만 보여주다가 방출당한 뒤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뛰게 되었다. 2015 시즌 2루수 자리는 에인절스 주전 2루수인 하위 켄드릭이 들어왔으나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아서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맞춰 체이스 어틀리를 트레이드해 왔다. 결과적으로 노마의 이 예상은 미겔 로하스까지 정리가 된 것을 빼면 나머지는 모두 적중을 한 셈.[7] 양손을 활용해 화려하게 배팅글러브를 조인다.[8] 풀 네임은 마리엘 마거릿 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