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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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최대 도시이자 중심 도시다.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상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과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동안 메디치 가문이 다스렸고, 1865년에서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도시 중심에는 거대한 돔을 가진 성당인 두오모(Duomo)[2] 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는 피렌체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이 성당의 본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매년 수백만이 넘는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2. 르네상스의 본고장
과거 피렌체를 호령했던 메디치 가문의 예술애호사상에 입각하여 배출된 수많은 르네상스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이 피렌체 곳곳에 널려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굵직굵직한 르네상스의 예술가/철학자/과학자들이 모두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수많은 작품을 피렌체에 남겼다. 이로 인해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표적인 피렌체 예술가의 명단
기타 유명인
3. 인구
- 피렌체/인구 참조.
4. 역사
피렌체는 기원전 8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아르노 강가에 자신의 병사들을 위한 정착지를 세울 때 "두 강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플루엔티아"라는 도시를 세웠는데 이 명칭이 후에 "플로렌티아"로 바뀌었다.[3] 그러나 술라의 퇴역병들은 곧 도시를 방기하여 이때의 식민지 건설은 실패했고,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 퇴역병을 이주시켜 건설한 것이 현재 피렌체의 시작이다. 이후 피렌체는 4세기 초 주교좌가 되었고 서로마 제국 멸망과 10세기를 거쳤다.
11세기부터 상업과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국력이 발전, 몰락한 항구 도시 피사를 내륙 도시인 자신들의 외항으로 접수하며 이탈리아 반도의 경제·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1152년 도시국가인 피렌체 공화국이 수립되었고, 1252년에는 7세기 이래 유럽 최초의 금화 피오리노 도로 fiorino d'oro(영어로는 플로린 금화라고 부른다)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3세기에는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중 누구 편을 들 것인가를 두고 구엘프(교황파)와 기벨린(황제파) 양 집단이 사실상의 내전을 벌였다.[4] 이후로 피렌체 등 도시 국가들의 정치 방식이 본래의 코무네(Commune, 지방 자치)에서 점차 한 가문의 지도자가 "시뇨리아(Signoria)"라는 칭호를 달고 지배하는 구도로 가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여러 유력가문이 정쟁을 벌이다 1434년부터 메디치 가문이 완전히 정계를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메디치 가문의 지배 시기는 사실상 피렌체의 최전성기로, 메디치 가의 강력한 후원 덕에 무수한 학자와 예술인의 작품들이 만들어졌고, 메디치 가가 자랑하는 정예군 '''검은 군단''' 등의 강력한 군사력 또한 위용을 뽐냈다. 더구나 이 시기는 피렌체뿐 아니라 인근의 밀라노, 나폴리, 베네치아 등 북이탈리아 전체가 흑사병을 견뎌낸 이후의 산업의 호황과 각지에서 몰려든 인재들의 역량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상을 구가한 황금기였다.
그러나 북쪽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내부를 추스르고 강대국으로 변모하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피렌체를 포함해 각 도시국가별로 제각각 방위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유럽 본토의 상황이 혼란스러웠으나, 그 양상이 두 강대국 체제로 정리되면서 불똥은 사이에 낀 이탈리아로 옮겨 붙었다. 초기에는 그래도 양국에 적당히 옮겨 붙으며 실리를 취할 수 있었으나, 16세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가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까지 아우르는 유럽 최대 패자로 부상하면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기울어진다.
이에 당황한 메디치 가문은 카를 5세를 견제하고자 프랑스 편에 붙었으나, 양측이 전면적으로 격돌한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에 증원해 준 검은 군단이 카를 5세에게 패배하는 굴욕을 당한다.[5] 그리고 프랑스를 꺾은 카를 5세는 로마까지 침공하여 관광 보내 이탈리아에서의 적대 세력을 완전히 찍어 눌렀고, 즉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복귀시킨다. 하지만 교황과 화해한 카를 5세는 메디치 가문의 통치를 복구시킨다. 이후 피렌체는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프랑스 왕자였던 앙리 2세에게 정략적으로 시집 보낸 보람도 없이 상공업마저 독일 산업권에 많이 빼앗겨 몰락, 쇠퇴하고 만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계속 피렌체 공작령의 주인으로 남았고 오히려 주변 지역들을 흡수하여 1569년 토스카나 대공국을 세우기도 했다. 1737년 메디치 가문이 끝내 단절되자 피렌체를 비롯한 토스카나 지방은 오스트리아의 속령이 되었다.
이러다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개입을 통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1865년 잠시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가 1871년 수도의 지위를 로마에 내어 준 후 현재에 이른다. 그래도 잠시 수도로 있을 때에 구축된 인프라 덕분에, 단순한 지방도시로 남을 뻔한 이곳이 관광도시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기, 북이탈리아에서 영국군과 싸우던 독일군은 피렌체에서 퇴각하면서 모든 다리를 끊으려 했지만 히틀러가 베키오 다리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포격을 거의 받지 않은 도시라 다행스럽게도 많은 문화유적들이 온전한 채로 남을 수 있었다.
1966년 11월 아르노 강이 범람하면서 많은 문화 유적, 유물들이 피해를 입었다. 대부분은 오랜 기간 동안의 작업을 거쳐 복원에 성공하였으나 일부는 영원히 소실되었다.
현재 인구는 38만여 명으로, 거대한 돔#s-1을 가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과 우피치 미술관 등이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관광 도시다.
세리에 A 소속 축구 팀인 ACF 피오렌티나가 이곳을 연고로 삼고 있다.
또한 북부 이탈리아답게 많은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 구찌, 페라가모, 토즈[6] 등의 브랜드가 이 도시에서 시작한 브랜드이다.[7]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명품관 느낌이 날 정도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신주쿠보다 인파가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5. 관광/구경거리
- 피렌체 카드
관광 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피렌체 시내의 공영 박물관/전시관을 72시간 동안 모조리 한 번씩 패스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72유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박물관 돌아다니기 좋아한다면 박물관이 많은 피렌체에서 상당히 유용하며 아카데미아나 우피치에서 줄 안 선다는 것은 장점. 이제 피렌체 패스를 구매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며, 따로 5유로를 지불하고 대중교통권을 구매해야 한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두오모)
피렌체의 중심에 있는 웅장한 성당. 거대한 돔으로 유명하며, 녹암과 대리석을 사용하여 장식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크게 6가지 시설로 구분되어 있는데 대성당 입장(무료), 옛 성당 지하 유적(Crypt),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세례당(Baptistery), 종탑 전망대, 쿠폴라(돔 전망대)가 있다. 공짜인 대성당은 당연하고, 나머지 5개는 통합권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다만 돔에 올라가려면 시간 예약을 해야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
- 산 로렌초 성당
피렌체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 성당. 피렌체 대성당 북서쪽에 있다. 돔 형태의 메디치 예배당과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으며, 메디치 예배당의 메디치 가문 묘에는 학교 미술실에서 흔히 봤을 줄리앙 석고상의 원본인 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의 전신상이 있다.
- 우피치 미술관(갤러리아 우피치)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베키오 궁전 바로 옆에 있는 ㄷ자 형태의 건물이다. 과거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대량의 그림들이 시대순으로 정렬되어 걸려 있다. 르네상스 회화에 있어서 이곳을 능가하는 갤러리아가 없다고 칭할 정도로 엄청난 수량이라[13] 재빠르게 돌아봐도 1시간 반은 걸린다(느긋하게 돌면 3시간 정도 예상). 원래는 조합 건물이었으나 베키오 궁전에 더 이상 걸어 놓을 곳이 없어서 이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평시엔 6.5유로지만, 특별 전시회 때는 11유로로 크게 올라간다. 플래시를 이용한 촬영만 금지되어있고. 일반 촬영은 허용하며 건물 보호를 위해 한 번에 일정 인원만 들어갈 수 있어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다.[14] 그래서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가장 구경하기 어려운 갤러리."[15] 참고로 이 갤러리아를 대표하는 그림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16]
- 베키오 다리
갤러리아 우피치의 뒤쪽에 있는 다리로,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일한 다리이다. 이 근방에 환전상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지금은 온통 귀금속 매장으로 가득차 있다.
- 베키오 궁전
두오모와 함께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지만 의외로 수수한 외관과, 정점 바로 옆에 자리한 덕에 안습한 처지가 된 명소이다. 찾는 인원이 너무나 안습한 나머지 어지간하면 안 해주는 비유럽권 학생 할인도 그냥 해줄 정도다(일반 7.5유로, 학생 4.5유로). 처음에 중앙 본당이 나오고, 서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며 여러 개의 궁전 방들을 돌아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진 촬영은 플래시가 없으면 허용된다. 베키오궁 앞의 홀로페르네스를 베는 유디트 상과 다비드 상, 헤라클레스 상은 모두 적을 물리치는 강력함을 보여주는 석상으로, 당대 피렌체 지배 세력의 적들은 이렇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모두 모조품으로 유디트 상과 헤라클레스 상의 진본은 베키오궁 안에 있으며 유명한 다비드 상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그 밖에 베키오궁 앞의 시뇨리아 광장의 발코니에 있는 메두사의 목을 든 페르세우스와 사비니의 약탈도 모두 모조품으로 진본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다.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 중앙역 건너편에 있는 성당.[17] 건물 내부 옆에 관광 안내소를 겸하고 있다. 성당 박물관이나 본관 모두 유료(5유로).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
역에서 바라본 성당의 오른쪽 골목 안. 현존하는 최고령의 성당 약국. 본업이 약국인데 정작 약은 소화제밖에 없고 오히려 화장품 업체로 유명하다. 각종 화장품과 비누, 리큐르, 선크림, 도자기와 은기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이 센 편이다. 참고로 가장 전통이 오래된 제품은 소화제인 아쿠아 디 멜리사(산타 마리아 노벨라).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가 꽤 잘 되어 있어서 8개 국어로 된 인덱스가 비치되어 있다. 어려우면 찾아서 도와달라고 하자 내부로 들어가면 과거 제약에 사용했던 도구들과 그 당시 약국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 구찌 박물관
명품 매장인 그 구찌(Gucci)의 생존 역사를 볼 수 있는 사립 박물관. 입장료는 6유로이며, 옆에 매장과 커피숍(겸 리스토란테)을 운영하고 있다. 베키오 궁전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 갤러리아 아카데미아(아카데미아 미술관)
우피치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박물관이다. 약간 구석진 곳에 있어서 피렌체에서도 찾아가기 어려운 편에 속한다. 원래는 미술학도들을 위한 일종의 대학 같은 곳이었고, 대량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건 미켈란젤로의 진품 다비드 상. 시뇨리아 광장(베키오 궁전 앞)에는 복제품이 있다. 참고로 석상인데도 사진 촬영이 불가하나, 인파가 많은 점을 이용해 몰래 찍는 사람도 있다. 2016년 1월 현재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단 플래시를 이용한 촬영은 금지된다. 여담으로 이 건물 옆에도 미술관이 있는데, 장소가 가까워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지 입구에 여기가 아니라 옆 건물이라고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 피티 궁전
궁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궁전에 포함되어 있는 보볼리 정원이 더 유명하다. 피렌체 본 시가지에서 아르노강의 베키오 다리 건너편에 있으며 피티가의 루카 피티가 브루넬레스키에 의뢰해 만들었다. 원래는 메디치가의 건물이 아니었으나 루카 피티의 죽음과 파산으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구입하여 메디치 소유로 주궁이 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코시모 치세 때 베키오다리는 푸줏간 등 식료품 가게가 대부분이라 길이 더럽고 냄새가 났다. 그래서 코시모는 베키오다리 2층에 시청사(지금의 우피치 미술관)까지 쭉 연결된 통로를 만들어서 출근하였다. 이 통로를 바사리 회랑(Vasari Corridor)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피치-베키오2층-피티궁까지 연결되어 있는 통로를 볼 수는 있지만 직접 들어가볼 수는 없다.[18] 표는 통합 10유로이며 이곳을 가려면 이른 시간에 가야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정말 무지무지무지무지 엄청 넓다!!! 작정하고 걸어야 정원을 다 둘러볼 수 있으며 + 피티궁 안의 미술관도 봐야 하니 편한 복장과 신발을 추천한다. 정원에서 보는 피렌체 시내는 본시가지 밖에서 보는 것이라 정말 절경이며 종유석 동굴을 인공적으로 만든 부온탈렌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에는 미켈란젤로의 4명의 죄수들이 있다. 팁을 주자면 건물을 등지고 좌측 시작지점에 있다 피티궁 내부 미술관에는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 의자의 앉은 성모가 유명하며 티치아노, 루벤스의 작품도 많아서 우피치 버금가는 큰 미술관이다. 보볼리 정원은 꼭대기의 도자기 미술관 옆 장미 꽃밭이 유명한데, 동절기에는 꽃이 피지 않아 전체적으로 볼거리가 적으니 가능하다면 하절기를 추천한다.
- 산토 스피리토 성당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단정한 성당.
- 라우렌시오 도서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홀로 유명하다.
6. 이야깃거리
- 가죽 제품이 이곳의 대표 특산품. 북쪽의 밀라노도 명품으로 유명하지만, 굳이 명품에 관심이 없다면 이곳에서 적당한 것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죽 공방에서 쓸 가죽을 생산하고 남은 고기를 활용하다 보니 소고기도 유명해 졌다.
- 피렌체의 대표 먹거리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 일명 피렌체 스테이크라고 불리는 굉장히 두툼한 T본 스테이크이다. 500g부터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19] 숯불에 겉부분만 확실히 익혀주는 수준으로 나오므로 핏물 내성이 있어도 먹기 힘들다. 다만 숯불구이라 느끼하지는 않고 부드러운 편. 가격대는 2012년 기준 500g에 12유로~32유로(평균 20유로). 보통 달호스테라고 하는 식당을 많이들 간다.트러플 오일 파스타도 먹을 만 하니 참고하자.
- 피렌체 물가는 밀라노만큼은 아니나 로마에 비해서도 많이 비싼데, 특히 성수기에 음식점, 젤라테리아나 가죽 시장 등지에서 교묘하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단가를 낮춰서 제공하는 집이 많으니 주의하자.
-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다보니 거리 곳곳의 모든 것이 예술품이자 이탈리아 정부의 중요재산이다. 예술품 파손이나 낙서 등을 막기위해 이탈리아 당국은 주요 관광지 예술품 주위에 CCTV를 항시 가동하여 배상조치를 위해 고발하고 있다.
- 2016년 이탈리아 은행(Banco d'Italia)의 주도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밀란과의 전쟁이 한창으로 시의 재정이 바닥이던 1427년, 추가 세금 징수를 위해 조사한 재력가들의 부가 6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뿌리깊은 이탈리아의 가족주의, 지역주의, 또는 연고주의를 보여주는 연구결과임이 분명하다. 관련 기사
- 관광도시라 그런지 사람의 산을 이루는 도시다. 단위면적당으로 보면 서울보다 100배는 사람이 많은 것같이 느껴지는 도시다.
- 분지이기 때문에 더울 땐 엄청 덥다.
7. 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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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오 아우디토레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것으로 설정되었으며, 그의 풀 네임도 언제나 뒤에 피렌체를 붙여서 에치오 아우디토레 다 피렌체. 초중기 어쌔신 크리드 2의 주요 활동 무대로서, 에치오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 가족의 몰살, 암살자로서의 인생의 시작, 로드리고 보르지아와의 만남 등이 여기서 이뤄진다. 중간에 도시의 지배자인 메디치 가의 인물들을 구하고 메디치 가의 망토를 얻고 나면 깃털/진실 찾기 빼곤 올 일이 거의 없다. 메디치 가의 망토를 착용시 일단 악명도가 오르지 않기 때문에 대놓고 소매치기로 짤짤이 벌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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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치오 아우디토레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것으로 설정되었으며, 그의 풀 네임도 언제나 뒤에 피렌체를 붙여서 에치오 아우디토레 다 피렌체. 초중기 어쌔신 크리드 2의 주요 활동 무대로서, 에치오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 가족의 몰살, 암살자로서의 인생의 시작, 로드리고 보르지아와의 만남 등이 여기서 이뤄진다. 중간에 도시의 지배자인 메디치 가의 인물들을 구하고 메디치 가의 망토를 얻고 나면 깃털/진실 찾기 빼곤 올 일이 거의 없다. 메디치 가의 망토를 착용시 일단 악명도가 오르지 않기 때문에 대놓고 소매치기로 짤짤이 벌기 좋은 곳.
작중에서는 영문명인 '플로렌스'라고만 불리며, 교황 로드리고 보르지아에 반대하는 추기경이 피렌체의 도움을 얻기 위해 방문하면서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는데, 여기서 니콜로 마키아벨리 역시 등장. 또한 체사레 보르자가 마키아벨리와의 협상을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프랑스 국왕 샤를 8세가 쳐들어가는 과정에서 돈도 뜯기고 프랑스군의 주둔을 지원해주어야 했지만, 결국 도시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었다.
원제 : Da Vinci's Demons.
미국의 케이블 방송사 Starz에서 제작한 역사 판타지물 드라마로, 주인공이 다빈치인 만큼 피렌체와 메디치 가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사 Starz에서 제작한 역사 판타지물 드라마로, 주인공이 다빈치인 만큼 피렌체와 메디치 가도 중요하게 등장한다.
- 알쓸신잡 시즌3
3회, 4회의 여행지.
등장하는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 6 언더그라운드 초반부 카체이싱의 배경으로 나온다. 주인공 일행이 탄 녹색 계열 형광 색상의 알파 로메오 줄리아와 주인공 일행을 쫒는 적 차량들이 백미.
- 피노키오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하고있다. 작가 카를로 콜로디도 피렌체 출신이다.
[1] 발음은 플로렌스. 프랑스어로도 똑같은 철자로 쓴다(다만 발음은 '플로항스'에 가깝다). 유명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이름도 이 도시에서 따왔는데 그녀가 피렌체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언니도 나폴리에서 태어나서 나폴리의 그리스식 명칭인 파세노프를 이름으로 삼았다. 참고로 그 외에도 영미권에서 여성의 인명에 쓰인다.[2] 이탈리아어이며, 성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3] 현재 이탈리아어 명칭 피렌체는, Florentia(플로렌티아) -> Fiorenza(피오렌차) - Firenze(피렌체) 순으로 발음이 변형된 것이다.[4] 이런 양상은 피렌체를 넘어선 전 이탈리아에서 벌어졌고, 이 난리통에 휩쓸린 단테는 칩거해 있는 동안 유명한 신곡을 썼다.[5] 이 무렵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공화정의 비정규직 서기관으로 일하다 밀려난 뒤(유력 가문 소속도 아니었고 대학도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내내 불안한 신분이었다) 군주론을 메디치 가에 헌상하였으나 결국 공직에 돌아가진 못했다.[6] ACF 피오렌티나의 구단주인 델라 발레 가문이 소유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7] 피렌체에서 한 시간 거리 정도에 프라다 생산 공장이 있어 직접 가면 국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오늘도 많은 여성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는다.[8]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9]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0]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11]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2]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3] 근데 수집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수태고지를 비롯한 성화가 대다수이다. 때문에 교회미술에 관심이 없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라면 지루할 수도 있다.[14] 관광객이 감소하는 동절기에도 많은 관람객 수를 자랑한다.[15] 예약하면 다음 날 바로 들어갈 수 있긴 한데 예약 수수료가 무려 4유로다(...). 피렌체 패스를 구입할 경우 예약이 없어도 당일 대기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반 관광객과는 다른 줄로 입장하는데 훨씬 짧고 빠르게 줄어든다.[16]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도 전시되어있기는 한데 마이너한 작품이라 지명도는 안습하다(...).[17] 그래서 역 이름이 SMN,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이다.[18] 인페르노 영화에서 랭던이 보볼리 정원에서 우피치로 갈 때 사용하는 그 통로다. 영화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슥 사용하지만 현실은 당연히 출입금지로 통제되어 있다.[19] 그것도 모자라 일부 식당은 kg 단위로 판매한다(…).